취사장을 지나 창고들이 모여있는 곳 중에도 가장 구석에 있는 곳.

나는 군수과 보급병이고 저 구석에 있는 곳은
내가 뺀질나게 드나드는 2종 창고다.

상황은 이렇다.

나는 이미 부사수에게 모든 업무를 넘기고 할 일 없이 뒹구는 말년.

말년이라 오늘도 군수처 사무실에서 할 일도 없는 주제에 
남은 전역일 수 계산기 같은거나 엑셀로 만들며 히히덕대던 나에게 보급관이 다가와 말했다.

"오늘 아침에 배차 냈다. 빨리 나온나! 거기 니 부사수도 챙기고!"

말년에 배차라니! 은혜로운 일이다.
군수과 보급병 보직을 받고 지금까지 수도없이 배차를 내서
군생활의 반을 5톤 트럭에서 보냈지만 지금도 나는 배차를 냈으니 나오라는 소리가 좋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지만 내가 부대를 벗어나 있는 시간만큼
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일에 기동되지 않아 좋았고 가끔 담당관이 사주는 사제 음식이 좋았다.

그리하여 익숙한 운전병과 어리바리한 부사수를 앞세우고 꿀잠만 미친듯이 쳐자다보니
어느새 모든 일은 끝나있었고 군지단에서 받아온 보급품을 점심시간에 모두 방출하고 나니 더 이상은 할 일이 없었다.

"할 일 없지! 말년인데 그냥 생활관에 짱박혀서 디비 누워있으라!"

 

보급관님,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쫓겨나듯이 막사로 향하던 나는 또 무얼 하며 잉여대나 고민하던 차였다.
하지만 즐거운 발걸음도 잠시, 막사로 향하던 도중에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방송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 아, 행정반에서 알립니다. 막사 내 전병력! 전병력은 지금 즉시 중앙현관으로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막사 내..."


1년 9개월을 넘어서는 내 군생활의 촉은 자연스레 위기경보를 알리고 있었다.

'지금 생활관으로 돌아갔다가 걸리면 좆된다...!!"

나는 그 즉시 낮은 포복자세에 가까우리만치 걸음걸이를 낮춘 채로
슬금슬금 막사 뒤편 취사장 쪽으로 향했다.

마침 조금 전 점심시간에 보급품 불출을 하느라 창고 열쇠가 내게 있었던 게 기회였다.

조금이라도 더 빨고 싶은 말년!

나는 상급닌자 카카시 뺨따구를 후려갈길 말년의 은신술로 무사히 2종 창고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후아, 다행이다. 하마터면 좆될뻔 했네. 이 짬 먹고 땀 찔찔 흘려가면서 예초는 씨발
캬 구석탱이에서 한잠 때릴까"

그렇게 순식간에 급 피로해진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창고 안으로 걸어들어가는데


"추, 충성!!"
"와아아악!! 뭐야 씨발!!"

갑자기 큰 소리로 들려오는 소리에 혼비백산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햇빛만 겨우 조금 들어오는 2종 창고로
내 부사수가 나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이 새끼야! 왜 여깄어??"


놀람은 잠시, 나는 바로 갈굴 태세로 전환했다.


당장에 든 생각은 바로 이 녀석이 땡땡이를 치고 있는건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부사수에게 나온 답변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저... 실은 김 병장님 따라왔습니다...!"

 

 

 

 

 

후속편 따윈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