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들어간 지가 10년이 다 되어가서, 지금 대학 생활하는 사람하고는 또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전산개론 수업 가르치던 당시 교수 말대로, 한국에서 대학생은 학생과 어른 사이의 중간에 있는 존재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작 수업은 좆같이 가르쳐서 배운 거는 거의 없었고, 중간에 다리까지 심하게 다쳐서 강판되는 바람에 많이 보지도 못했다만, 10년이 지나도 그 말은 기억에 남는다. 학부시절에 방황하고 어지러운 건 사실 중고등학생 때 고된 수험생활로 미뤄왔던 사춘기를 터뜨리듯 맞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참 와닿았었다.


우리 학교 사람들은 의견 교환을 무척 직설적으로 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학교에 문과 전공자가 전혀 없어서 수사를 우아하게 하는 법을 따로 배운 사람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공계 학문 특성상 자기가 전개하는 논리가 수식 또는 실험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그저 개인의 공상 정도로 취급 당하기 때문에, 할 말과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만 대면 의견이 존중받는 문화 탓일 수도 있다. 


실제로 친구나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면 타 대학교 대학원이나, 직장에 들어가고서도 그 버릇을 못 버리면 '저 새끼는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다.'라는 뒷담 또는, '말을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하느냐'고 면전에서도 곧잘 힐난을 듣는 모양이더라. 그래도 난 꽤 좋아했다. 말의 이면에 대해 생각할 필요 없이 신속하게 할 말만 교환하면 되니까, 쓸 데 없는 데에 머리 쓸 필요 없어서. 


내 개인적인 기억을 들춰보면, 그 중에서도 아싸 중에 아싸였지. 공부 따라가기 바빠서, 그 흔한 엠티도 한 번 안 가고, 방학 때도 미적분, 4대역학 교과서 까뒤집으면서 집에서 공부만 하고, 숙제도 한 번 모여서 했다가 돌대가리 여럿이 모이면 돌 덜그럭 거리는 소리 말고는 얻을 게 없다 싶어서 그 이후로는 독고다이로 숙제하고 살았고. 1년마다 열리는 학교축제+각종 학과파티 씹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집에 도시에 있을 뿐, 산 속에 사는 중처럼 공부만 하고 살았다. 아, 취미로 엔하위키 많이 봤고. 


그렇게 아싸처럼 살았던 것이 당시에는 엄청 부끄러웠고, 아쉬웠지. 캠퍼스에 CC로 연애질하고 다니는 것들 개부러웠고, 나도 인싸들처럼 파티나 축제에 가서 밤새 달리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다른 걸 다 떠나서, 난 왜 이렇게 즐기지 못하고 찌질하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었다. 왜 항상 다가오지 않은 무언가를 대비하며 사느라 바쁘고, 그렇게 정신 없이 공부만 하며 사는데도 정작 남들과 실적을 비교하면, 그렇게 썩 빛날만큼 우등생도 아닌 것에 더 열폭했고.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개썅마이웨이로 살아왔기에, 오늘날처럼 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남들이 인정할만큼 무언가를 이뤄서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 눈에는 아직도 난 10년이나 대학에서 공부만 하고 앉은 현실감각 없는데 머리까지 빠진 샌님에 불과하니까.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그런 것들을 열심히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고민해왔기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별로 위로가 될 소리는 아니겠지만, 네가 남들과 쉬이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네가 못난 사람인 건 아니다. 어쩌면, 남에게 신경 쓸 시간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더 많이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바른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산다면, 언젠가 네 어깨에 자연히 힘이 들어갈 것이다. 그 과정이 결코 쉽고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넌 혼자가 아니며, 항상 너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천천히 걸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