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물리학은 실험물리학이든 전산물리학이든 밀리칸이 현미경 눈금으로 기름방울 떠다니는거 기록하던 때랑 비교가 안될정도로 정밀하고 방대한 양의 실험/시뮬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해야되는데, 이것때문에 실험/전산물리 하는 사람들이 엔지니어링/프로그래밍에 쏟아붓는 시간이 너무 많아진것 같음. 아예 instrumentation을 전문으로 하는 물리학자가 생기고, 실험기구 설계나 특정한 시뮬레이션 코드에 새 루틴을 짜넣는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따야할 정도로, 제대로 하려면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게 됐는데 이걸 학생/포닥한테 논문, 책 읽고 배워서 만들어라 하고 시키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함.


내가 생각하기에 이제는 학과, 또는 여러 랩끼리 묶인 연구그룹 차원에서 엔지니어,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해서 설계부터 적용단계까지 컨설팅해주고 여러모로 도와 줄 인력을 좀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함. 물론 결과적으로 실험기계를 설계한다는건 그 기계가 뭘 해야하는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니 공학/프로그래밍 공부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건 아님. 다만, 일단 실험기계/코드가 무슨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윤곽이 잡힌 상태부터 완성까지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시행착오에 낭비되는 인력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함.


예를 들자면, 바이오피직스같은 경우 microscopy가 엄청 중요한데, 그냥 고성능 돋보기 수준의 현미경을 쓰던 옛날에야 새로운 현미경 장비를 만들려면 광학 공부하고, 필요에 따라 렌즈 가공같은거 정도만 알아도 실험설비를 만드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현대 BP에 쓰는 현미경 세팅하는데는 기본적으로 현미경을 돈주고 사서 써도 고급 광학 지식은 기본이고, 데이터 아웃풋 정리하느라 데이터 전송 파이프라인 구축하려면 네트워킹/서버관리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하고, 그렇게 전송된 데이터 post-processing 하는 과정에서 온갖 첨단 image processing 기술이 떡칠되는데 연구실에 Computer Vision쪽 전공한 엔지니어 없으면 그런거 배워다가 적용하는것도 엄청 고생임. 참고로 내가 일하는 연구실 포닥의 대학 논문이 전자현미경으로 박테리아 사진 찍어서 위치/크기 추적하는 셋업 만들기였음. 실험에 적합한 박테리아 선별+유전자 변형부터 digital image processing까지 전부다 혼자했으니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지 상상도 안됨. 그러다보니 약간 과장해서 컴공과, 기계과 전공자 각각 한명씩 붙여놓고 한 3년? 주면 훨씬 더 좋은 퀄리티로 완성했을 셋업을 물리학자 한명한테 시키니까 박사학위과정 5년 다 소모했고, 지금도 대학원생 한명이 붙어서 코드 업그레이드하는데 시간을 바치고 있음.


짧게 말하자면 학부 4년+석사급 2년동안 물리학 배운 학생들 모아놓고 물리학으로 뽕을 뽑아야되는데 기술적인 문제에 발목잡혀서 시간 소모하는거 보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