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교양시간 첫번째인가, 두번째인가에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바로 해줬던 기억이 난다. "생명과학은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는 있으나, 어째서? 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단편적으로 설명하자면,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생화학적 현상들에 대해서 생명과학은 메커니즘에 대해서 잘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째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째서'를 좁게 생각한다면, 이러한 논의에는 생물학의 한 부분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얼핏 보았을때 서서히 진화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기관에 대해서도 모두 진화로 인해 얻어진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수의 내 또래 친구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정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미노산은 생명체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일종의 레고블록 같은 것이다. 지구위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아미노산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0가지의 주요 아미노산의 대부분이 구조적으로 대칭인 거울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몸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아미노산은 L형태와 D형태중에서 오직 L형태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가 없다.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얼핏 배웠던 것을 떠올려보면 태초의 지구의 환경과 비슷하게 플라스크 내부에 혼합물을 넣고 가열하고 전기를 흐르게 해줬더니 시간이 흐른 후에 몇가지 아미노산들이 플라스크 내부에 생겼다고 했던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것이다.(나도 지금 기억만 난다) 생명 활동에 이용되는 아미노산중에서 몇가지는 신체 내부에서 직접 합성할 수 있고 합성할 수 없는 몇 가지는 음식물 섭취로 가져와야 한다. 그렇다면 "필수 아미노산들은 합성이 되지도 않는데 다른 동식물들에 어떻게 있을 수 있는 것이냐?"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건 내가 생물학 전공이 아니다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추론해보자면 필수 아미노산도 인간이 합성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다른 동식물은 잘 합성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아무튼 지구상의 생물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서 아미노산들을 지금도 많이 만들고 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진화론적으로 생각해서 가설을 세워보자면 초창기 지구에서 단세포 생물이 처음 등장했을때 얘네들이 썼던 아미노산이 L형태였고 이들이 모든 생명체의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지구 위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L형태만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초창기에 D형태 아미노산과 L형태 아미노산을 사용하는 생물체들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경합을 벌이면서 D형태 아미노산을 사용하는 생명체 쪽이 도태되었다는 가설도 생각할 수 있다. 여러모로 볼때 가능성이 낮은 것 같지만.

 

아무튼 아미노산이 거울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쪽 방향만 전세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생명의 탄생이 순수한 자연환경에서 발생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성이 낮고 기적같은 사건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생물학에서 한가지 신기했던 점은 생물체 내부의 생명현상들의 까탈스러운 조건들이었다. 이를테면 원소 브로민은 생명체 내부의 설필리민 결합 반응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콜라겐의 특정 구조를 만드는 이 반응에서 사용된다고 하는 브로민은 어디에서 조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더 궁금한 것은 '다른 원소는 브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였다. 실제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일상속에서 극소량만 존재한다는 브로민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니.

 

아마도 생명체는 가능만 하다면 더 에너지 효율이 좋았을 수도 있고 생물학적 결함이 더 없었을 수도 있으며 슈퍼히어로처럼 피부는 강철같고 혹은 몸이 쭉쭉 늘어나거나, 아니면 무산소 공간에서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데에 필요한 특정 화학적 반응이 있었다고 해보자. 이 화학적 반응에 필요한 물질이 있는지 검토를 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염소나 브로민 같은 것들 말이다. 만약 그 화학적 반응을 만족시키는 물질이 없었다면 내가 방금 상상한 새로운 생명체의 발전은 불가능한 계획으로 끝나게 되는것이다.

 

나는 과거에 봤던 과학교양 서적에서 식물을 여러 화분에서 기르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각각의 화분에는 생명체에 필요한 특정 원소들이 하나씩 빠져있었다. 인, 칼슘, 망간, 몰리브덴, 붕소 등등..... 화분에는 빠져있는 원소기호가 프린트되어서 붙어 있는데 여기서 자라나는 식물들은 각각의 치명적인 증상을 보여주면서 비실비실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 종합해보면 생물체에 있어 특정 원소들은 몸속에서 나름의 사용처가 있는 셈이다. 브롬! 몰리브덴! 자랑스러워 해도 좋은 것이다. 인간들에게 우쭐대어도 좋다.

 

"우리들이 있어서 니들이 존재하는거야. 어!? 임마. 우리들이 없었어봐. 그랬으면 니들은 지금보다 훨씬 덜 떨어지고 취약한 생명체가 되었을껄?"

 

잡담이 길었지만, 생명과학적 현상이 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생각을 확장한다면 생물체의 모든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정말 특별한 '의도'가 없지 않은 한 이러한 현상은 불가능해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진화론에 대한 고리타분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는데,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지적설계같은 가설이 나온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뒤에서는 '의도된 생명'과 같은 지적설계 가설은 모두 배제하려 한다.

 

나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는 기존의 진화론대로, 정말 단순하게 오랜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고유한 생물학적 메커니즘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용불용설처럼 일명 '약한 지적설계 스타일'의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이 발달한다는 그 용불용설이다. 알다시피 용불용설은 진화론과는 상충되는 가설이다. 일반적으로는 틀렸다고 여겨지는데,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던 후성유전학에서는 용불용설을 일부 용인하고 있기도 하다. 후성유전학에서는 생명체의 경험이 DNA에 새겨지는 메커니즘이 존재해서 생명의 발달과 진화에 사실상 의식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엄밀히 말한다면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지만. 하지만 생명체의 경험이 DNA에 새겨진다는건 핵심 주장이다.

 

 

 

이런 생물학적 설명을 다른 것으로 빗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인류도 항상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만약 시나리오 라이터가 각본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참신한 각본을 만들고 싶다면 이 사람은 창작이라는 것을 해야한다. 근데 창작이 어디 쉬운 일인가? 창작의 경우에도 위의 두가지 설명을 적용해볼 수 있다.

 

첫번째로 진화론적 메커니즘이다. 이 사람은 그냥 시간을 오래 투자해서 과거의 모든 기억과 지식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것들이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면 채택하는 것이다. 이 사람도 자다가 깨면 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것인데 만약 그 꿈이 인상적이지 않다면 그저 개꿈이 되는 것이고 그 꿈이 인상적이였다면 자기가 쓰고있는 각본의 아이디어로 들어가게 되는것이다.

 

두번째로 용불용설이다. 이 사람이 쓰고자 하는 극본의 최종 모습이 존재할 것이다. 예를들자면 재미있는 블록버스터 극본, 애뜻한 로맨스 극본, 재미있는 코미디 극본 같은 것들이다. 이 사람은 그러한 극본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극본이 만들어질 수 있는 요소들을 떠올린다. 블록버스터 극본이라면 주인공이 존재할 것이고 주인공과 썸을타는 이성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개인적 환경과 그가 개입하게 될 거대한 사건 사이의 접점이 마련될 것이다. 그 거대한 사건을 마주하는 주인공은 자동차 액션을 하고 달리는 철도에서 적들을 따돌리고 날아다니는 비행기에 매달리는 액션 등을 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날아다니는 총탄을 예측으로 피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를 막으려고 한다. 그와중에 작중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고 결국 그 충격으로 주인공 일행을 배신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의 충실한 조력자의 도움에 힘입어 적들도 물리치고 50년 미래로 시간여행도 갔다오면서 수습이 불가능해보였던 거대한 사건을 종결시킨다. 그러한 과정에서 주인공은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고 그 사건을 치룬 전 세계는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된다. 이게 왜 용불용설이냐면, 이 사람은 블록버스터에서 사용될만한 요소들을 계속 넣고있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로서 성공할 만한 요소만을 집어넣는 이 과정은 무작위에 의존하는 진화론과는 다르다. 철학적인 요소, 지루해질 수 있는 요소들은 이 각본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두번째 케이스가 정말로 창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뻔한 극본이 되었으니까. 용불용설 자체가 그렇다. 계속 사용한 기관이 발달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 기관의 탄생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꼬리가 없던 쥐의 생물학적 조상이 아침에 일어나서 '아 꼬리가 있고싶다.'. 밥먹기 전에 항상 '꼬리가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자기 전에는 '아 난 왜 꼬리가 없는걸까?' 하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쥐들은 꼬리가 생긴 것일까? 후성유전학 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물론 설명이 아예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라는 설명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즉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수준의 진정한 의미의 창작이라면 어쩔 수 없이 진화론적 무작위성에 기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적어놓고나니까 후성유전학이라는 것 자체가 진화론적 범주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생명체의 경험이 DNA로 새겨지는 메커니즘도 진화론적으로 발전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남는 또 하나의 의문은 '세상에 어째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가 존재하게 된 것이냐? 로맨스라는 것도 왜 존재하냐. 왜 세상이 이모양 이꼴이냐.'라는 질문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사실 맨 처음 교수님이 말한 어째서는 궁극적으로 이걸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건 생명과학을 포함해서 그저 과학이 지니는 한계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과학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존재나, 초월적 대상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신은 없겠지만 세상의 뒷편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신을 믿었다고 한다. 그들이 신을 믿은 것은 어째서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특히 뉴턴은 신과 관련된 문헌을 엄청나게 썼다고 한다. '그냥 그렇다.'라고 나는(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 미래에 누군가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합당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8-04-17)

 

 

 

 

 

 

...여기까지가 예전에 제가 메모장에 끄적여본 내용이었습니다..

글은 여기에서 완결이 되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생각은 지금 더 적어보죠.

 

 

 

 

저는 언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됬습니다. 언어도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체계화되었으니까요. 

 

언어가 사람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은 분명합니다.

 

언어의 창조적인 발전과정에는 인류의 지적능력이 기여했습니다. 생명체는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했지만요.

 

그런데 그 인간의 지적 능력이라는 것도 우연성에 기대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그 지적능력을 가능케하는 DNA가 결국에는 돌연변이를 거듭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튼 모두 진화론으로 설명가능한 범주에 있습니다.

 

한편 언어가 사람들의 소통에 기여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 어떤 의미라도 전달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으로 언어는 수천개의 단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전달시킬 수 있는 음운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다행히도 사람이 낼 수 있는 구분 가능한 음운은 일반적으로 마흔개는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정도 음운의 개수라면 수천개의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만약 사람이 낼 수 있는 음운의 숫자가 10여개밖에 안되었다고 한다면 그 세계에서의 언어는 오늘날의 언어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도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수많은 단어를 구분하기 위해서 단어의 길이는 길어질 것이고, 또 단어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도 힘들게 되겠죠. 이건 마치 브롬이나 몰리브덴 같은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가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그런데 우리 세계는 생명체들도 잘 존재할 뿐더러, 언어도 잘 존재합니다. 

 

이것을 위 글의 결론으로 설명한다면 역시 '그냥 그렇게 세상이 생겼으니까'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굳이 풀어쓴다면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이 다양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이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했고 언어가 존재했던 겁니다.

 

 

그리고 일단은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논의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