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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듣던 진동 대신 처음 듣는 멜로디가 귓가에 울렸다. 

승연은 몸을 뒤척이다 '내가 알람소리를 바꿨나.' 생각하며 핸드폰을 찾아 여기저기로 손을 뻗는다.

곧 한 손에 들어갈만한 그러나 두께감이 있는 물건이 손에 잡혔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작고, 무엇보다 모니터가 느껴지지 않았다.


승연은 베개 속에 파묻었던 고개를 홱 들어올려 물건을 확인했다. 

그의 손 안에는 중학생때나 썼던 폴더폰이 쥐어져있었다.


'뭐지. 어제 술마시고 꺼내놨나?'


승연은 폴더폰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는 폴더폰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폴더폰 뚜껑을 연다.

곧 폴더가 열리자 특유의 벨소리가 승연을 반겼다. 승연은 폴더폰 화면을 살펴봤다.

배터리칸도 가득 채워져있었고, 날짜도 2010년 4월 12일이었다.


"2010년. 그래, 2010년이구나."


승연은 괜히 놀랐다며 폴더폰을 옆에 던져둔다. 그리고 모자란 잠을 채우기 위해 다시 눈을 천천히 감으려는 찰나, 그는 눈을 번쩍 뜨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오늘 2020년인데. 어제가 2019년 12월 31일이었고···."


그는 충격에 빠진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거실보다 더 커진 방. 사라져버린 카메라와 전공서적 그리고 그 대신 채워진 역사와 사회관련 도서.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 화이트, 블루 투톤의 실내 인테리어까지, 중학생시절 그의 방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승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혹시 누군가 나에게 장난치는 것은 아닐까. 친구들이 꾸민 몰래카메라가 아닐까하고 방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나 곧 방에 있던 전신거울을 마주하자 그는 상황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도 입고 있는 옷을 빼면 중학생 때 모습이였기 때문이었다.




...




방문이 덜컥 열린다. 승연은 방에서 조심스럽게 나와 누가 있을까하고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거실, 안방, 부엌, 서재, 방, 또 다른 방, 또 다른 방, 욕실까지 누구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온 집안이 그의 방처럼 화이트, 블루 투 톤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러나 집에는 모두 여행이라도 간 것인지, 아니면 이른시간부터 출근한 것인지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누가 디자인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차가운 사람인가보네."


승연은 거실 쇼파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 기억에 아차하며 중얼거린다.


"나 혼자 따로 살고 있었는데, 디자인도 내가 했고···."


승연은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는지 쇼파에 눕는다. 그리고 높은 천장을 빤히바라본다.


"돌아온 김에 아빠한테 집 옮겨달라고 할까. 혼자 살기엔 너무 넓은데."


그는 담배를 찾는 것인지 바지주머니 속에 손을 넣는다. 양쪽을 뒤적뒤적거리니 라이타와 담배곽, 그리고 스마트폰과 충전기가 잡혔다.

승연은 스마트폰이 잡히자 재빨리 꺼내들어 화면을 킨다. 그는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며 상태를 확인한다. 

스마트폰은 날짜를 빼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대부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지원도 되지 않았다.

가능한 것은 인터넷뿐이었다.


"시발, 아이폰 살 걸. 아이폰이면 지금 카카오톡도 될텐데."


승연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옆자리에 툭 던져버리며 읊조린다. 이 때, 승연의 폴더폰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승연은 폴더폰을 열어 화면을 확인했다. 저장명 '상무적동맹' 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상무적동맹? 누구지? 중학생 땐···.'


승연은 기억을 하나, 하나 더듬어가며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홍승연. 지금 어디야?"


상무적동맹은 낮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승연을 부른다.

승연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어디긴 집이지."

"집이라고? 지금 집이면 어떡해. 1교시까지 25분 남았는데."

"그게 뭔 소리야, 9시 등교 통과된···."


승연은 말을 하다 멈춘다. 폴더폰 너머 상무적동맹은 승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의 이름을 계속 부른다.

곧 승연이 입을 연다.


"20분 안에 간다."


승연은 상대방이 대답하기도 전에 폴더폰을 닫아버리고 욕실로 들어간다.

그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등교준비를 마쳤다. 

통넓은 교복바지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빼면 말이다. 


승연은 현관문으로 나가기 전, 로비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 든 것인지 자동차키 보관함 앞으로 다가온다.




...




8시 30분이 가까워지는 중학교 출입문. 학생들이 지각을 면하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온다. 그 와중에도 학생부 학생들은 복장이나 두발상태가 불량한 학생들을 잡아 벌점을 매겼고, 뒷편에서는 학생부 교사가 체벌을 가하고 있었다.


"야, 새끼야 너 일로 와."


등교하던 한 학생이 학생부 교사에게 걸린다. 

학생은 잔뜩 겁먹은 모습으로 교사 앞으로 다가온다. 교사는 학생이 다가오자 머리를 부여잡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한다.


"넌 임마. 학생이란 새끼가 머리가 이게 뭐야."

"죄송합니다."

"내가 어제 자르고 오라고 했지. 엎드려."


교사가 머리를 풀어주자, 학생은 엎드린다. 

이윽고 '퍽' 소리와 함께 통칭 '사랑의 매'라 불리는 목각이 엉덩이를 가격하자 학생이 '윽' 하고 엎어진다.

그리고 두번째 매질이 이어지는 순간, 멀리서 벤틀리GT 한 대가 경적소리를 내며 빠르게 학교 출입문으로 다가온다.

무섭다던 학생부 학생조차도 속도가 붙은 벤틀리GT는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대로 학교 출입문을 처음보는 낮선 차량에 학교 출입문을 허용해야했다.

학생부 교사도 교직생활동안 처음보는 모습에 학생을 때리는 일조차 잊고 넋나간 주차장으로 향하는 벤틀리GT의 뒷꽁무늬만 바라봤다.


곧 30분이 되었다. 아침조회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내와 운동장을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퍼진다.

승연은 어렵사리 자신의 중학생 시절 반을 찾아왔다. 그리고 뒷문을 열어 오랜만에 반 아이들과 마주한다.

그가 반으로 발을 내딛자,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승연에게 쏠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친근함도 걱정스러움도 아닌 낯설음과 경계심 그리고 가려진 비웃음이었다.


승연은 반 분위기에 이상함을 느끼며 자연스레 맨 뒷자리로 걸어와 앉았다. 일부 아이들이 그의 행동을 보고 흠칫 놀라워한다.    

반은 한창 출석을 부르는 중이었는지 반장이 교탁 앞에 서있었다.

반장 역시 그를 처음보는 사람마냥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나 지각 아니지?"


승연이 얼어붙어있는 반장에게 먼저 질문했다.


"어? 어. 지각 아니지."


반장이 당황하며 대답한다. 그리고 뜸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근데 홍승연 니 자리 거기···."

"넌 니 자리도 모르냐?"


반장이 말을 마치기도 전, 한 학생이 승연을 힐책한다.

승연은 그 학생을 슬쩍 쳐다본다. 학생은 웃가에 옅은 웃음을 띄며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다.


"미안, 내가 요새 정신이 너무 없어서."


승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빈자리. 교실 창가 앞에서 두번째 자리로 걸어간다.

그가 한걸음씩 자리로 다가오자, 옆자리에 앉아있는 한 소년이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눈이 마추치는 순간, 승연은 걸음을 멈추고 소년을 멍하니 바라본다. 

소년의 얼굴부터 명찰에 쓰인 '손용준'이란 이름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야. 홍승연. 홍승연!"

"야! 반장이 부르잖아!"


학생 몇 명이 이름을 부르자, 승연은 정신을 차린다.


"어?"

"너 빨리 자리에 앉아."

"어, 그래야지. 앉아야지."


승연은 넋나간 표정으로 '손용준'이라는 소년 옆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 승연이 가방을 정리하는 사이 용준이 승연의 책상 위에 조용히 메모를 남긴다.


"학교랑 40분이나 걸리잖아. 어떻게 빨리왔어?"


승연은 메모를 본 것인지, 책을 가방에서 서랍 안으로 옮겨놓으며 대답한다.


"날라왔어."

"어?"

"날라왔다고."

"아, 으응."


용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띤다. 승연은 필기구를 늘여놓는 척, 용준이 남긴 메모장을 몰래 챙긴다.

그리고 용준에게 괜히 한마디 한다.


"그리고 메모장 남기는 건 뭐야. 말로 하면 되잖아."

"니가 조용한게 좋다고, 학교에서는 메모장으로···."

"내가?"


승연이 용준을 보며 되묻는다. 용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연은 속으로 '첫번째 흑역사구나.' 외치며 용준에게 말한다.


"너 나랑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잖아. 근데 날 그렇게 모르냐."

"우린 상무적조약관계라 하지 않았어? 친구는 아니고···."

"그런게 어딨어."


승연은 자신이 말한 것이 창피한지 괜히 다른 곳을 보며 말한다.


"친구라고. 상무적조약, 하여튼 그런 이상한게 아니고."

"그래."


용준이 말을 마치자,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교사 들어온다. 반장은 대표로 일어서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외친다.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은 후, 아침조회를 시작한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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