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연과 용준은 식판을 들고 햇볕에 드는 창가 자리에 서로 마주 앉았다.

둘은 메인으로 나온 오므라이스를 케첩과 슥슥 비빈다. 그러던 중 용준이 승연이 오므라이스를 비비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왜 웃어? 오므라이스 비비는 모습 처음 봐?"

"니가 비벼먹는 건 처음보지."


승연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무슨 소리야. 나 원래 비벼먹었는데."

"니가? 그랬다고 하자."


용준은 알겠다며 넘어간다. 승연은 계란과 볶음밥 그리고 케첩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오므라이스를 한숟가락 들어올린다. 그리고 이 때, 그의 머릿속에서 중학생 시절 자신이 어떻게 오므라이스를 먹었는지가 문뜩 스쳐지나간다. 승연은 그대로 숟가락을 오므라이스 위에 떨어트린다. 용준은 승연을 보며 무슨 일 있냐 묻는다. 승연은 용준의 목소리를 듣고 제정신차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한다.


"어, 아니. 내가 너한테 예전에 말을 심하게 한 것 같아서."

"갑자기?"

"사람이 갑자기 후회할 때가 있다고 하잖아."

"그렇긴한데···."


용준이 오므라이스를 야금야금 넘기며 대답한다. 승연은 용준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괜히 말을 돌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벼먹는게 맛있다. 그렇다는 거지."



···



승연은 애니메이션부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뒤늦게 혼자 밥먹으러 온 용준은 애니메이션부의 눈치를 보다 승연의 옆자리에 조심히 앉는다.

그는 오므라이스가 나오던 어느 날처럼 숟가락으로 오므라이스를 눌러비빈다.

이 때 누군가 아주 짧게 말한다.


"천박하네."


용준은 고개를 들어 승연과 애니메이션부 아이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말없이 식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용준은 자기가 잘못들어나하고 오므라이스를 마저 비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 입을 연다.


"오므라이스를 비벼먹는 사람도 있나."


용준은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본다. 목소리의 정체는 승연이었다.

승연은 용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식사를 하며 말을 마저 이어간다.


"그러니까 양아치들이 안되는거야. 에티켓이 없잖아."



···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점심시간답게 복도와 교실은 왁자지껄하다. 그 중에서도 아주 단정한 옷차림. 마치 아빠 옷을 빌려 입은듯한 남학생 세명이 창가에 붙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띤다. 승연은 그들이 단박에 애니메이션부란 것을 알아차린다.


"쟤들이 애니메이션부인가?"


승연이 낮은 목소리로 용준에게 물어본다.


"어. 늘 같이 다니던 얘들이잖아."

"이제 손절치려고. 인생에 도움이 안돼."


용준은 처음들어보는 용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절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있어. 그나저나 우리 동아리 언제부터 바꿀 수 있는지 알아?"


승연이 질문하자 용준이 고민하더니 날짜를 떠올린다.


"다음 학기?"


용준의 대답을 듣고 승연이 조용히 "시발." 속삭인다. 그리고 욕쓰는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용준과 눈을 마주치며 부탁한다.


"너 나랑 2학기때 동아리 같이듣자."

"어, 좋지. 어떤거?"

"농구."



···



하교시간. 용준은 학원가는 승연과 헤어진 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초록색과 하얀색 투톤으로 디자인된 900번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추자 버스에 올라탄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버스가 출발하자 지나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다른 사람 같아."


용준은 이틀만에 자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승연을 떠올리며 작게 읊조렸다.

사실, 저번주까지만해도 승연은 용준에게 유독 쌀쌀맞았다. 

가끔이나마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했지만 양아치라며 기피하는 날이 더 많았다.


"난 너같이 날티나는 얘가 제일 싫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며칠 전 승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용준은 창가에서 몸을 때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자를 때가 되었는지 조금 길지만 단정한 생머리. 사나움과는 거리가 먼 순박한 외모. 아무리봐도 날티와 거리가 멀어보였다. 

단순히 바지 줄이고 와이셔츠 위에 후드집업 입었다는 이유로 그런거라면 왠지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후드집업 주머니 속에서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울린다.

용준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는 메시지를 읽더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 폴더를 닫는다.

그리고 창가에 다시 머리를 기대며 지나가는 풍경을 쓸쓸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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