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나자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게 됐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인터넷과 게임, 영화와 드라마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쯤 지나 그런 식으로 노는 것에도 마침내 지겨워진 나는 이왕 백수로 살고 있는 동안 뭔가 그럴듯한 취미를 가져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선택한 것은 피아노 배우기. 집에서도 연습을 해보리라 결심한 나는 중고 전자 피아노를 알아보게 되었다.

 

  1년인가 아님 2년이었던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되었는데, 울면서 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무튼 그 뒤로 그럭저럭 재미를 붙이고 피아노를 배우다가 역시 어머니의 결정으로 학원을 그만둔 후, 지금까지 피아노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피아노를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편, 내가 전자 피아노를 사기로 한 건 물론 실제 피아노를 살만한 돈이 없다는 점 외에도 내 작은 방에 넣기에 알맞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음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헤드폰도 연결할 수 있어 편리했다.

 

 일단 전자 피아노를 사기로 결정하고 나서 중고 매물을 눈이 빠져라 찾았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나로서는 새것을 사는데 좀 보태 주십사 손을 벌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모니터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괜찮은 물건이 올라왔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중고거래는 조건에 맞는 상품을 발견하는 순간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게 필요하다. 언제 경쟁자가 등장해서 나보다 먼저 거래를 끝내버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주가 지났을까, 월요일 아침이었는데 7시 쯤 알람이 떴다. 나는 매물이 사이트에 등록되면 바로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전자 피아노를 관심 키워드로 해두었었다.

 

 ‘저희 아이 입시준비를 위해 구입했던 전자 피아노입니다. 사정이 생겨서 많이 치지 못해 건반 상태는 거의 신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한 거리라면 제가 운반해드릴 수도 있어요.’

 

 올라온 매물과 설명을 읽고는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순간 온몸이 찌릿찌릿함을 느꼈다. 조건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전공준비를 위해 구입한 모델이라면 키를 누르는 터치감이나 여타 기능에 있어 초보인 나에게는 차고 넘치는 수준일 것은 분명하였고 게다가 많이 치지 않았다고 하니 건반이 헐거워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내 가슴을 뛰게 한 점은 가격이 믿을 수 없이 저렴했다는 것이다. 신품과 비교해서 거의 반의 반값에 내놓은 것이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는 두 번 세 번 꼼꼼히 따져보다가 이미 물건이 팔려 허탕을 친 적도 많았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판매글을 다 읽자마자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중고마켓에서 전자 피아노 판다는 글을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혹시 아직 판매하시나요?”

 

 “아뇨, 아직 안 팔렸어요.”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걸 참고 애써 침착한 척 말을 이어갔다.

 

 “네, 그래요? 작동은 잘 되죠? 그럼 제가 구매하고 싶은데요.”

 

 “그러시면 혹시 가지러 오실 수 있나요?”

 

 “아, 제가 차가 없어서요... 모모시 땡땡동에 사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네, 그 쪽이라면 제가 볼일 보고 잠시 들러서 실어다드릴 수는 있겠네요. 그런데 오셔서 직접 물건을 보시는 게 좋지 않으실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별 이상 없겠죠, 뭐.”

 

 나는 서둘러 구매를 확정짓고 싶었다. 전자 피아노도 전자제품의 일종이므로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 판매자 주장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는 게 중고거래의 원칙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바로 거래 날짜를 정해버렸다.

 

 어쩌면 내가 그 때 판매자가 권유한 대로 먼저 물건을 보았더라면, 그리고 만에 하나 전자 피아노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래를 포기했더라면 이 일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것도 어떤 인연이었을까. 난 결국 이 전자 피아노를 구입하였다. 판매자는 약속대로 내가 사는 곳 근처까지 전자 피아노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기쁘게 값을 지불하고 전자 피아노를 내 방으로 들여왔다.

 예상대로 전자 피아노는 상태가 매우 훌륭했다. 전혀 중고품 같지 않았다. 예상대로 터치도 묵직하니 실제 피아노와 흡사했고 내장 스피커로 듣는 피아노 음색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즉시 서점에서 피아노 연습곡집을 몇 권 사왔다. 마치 어르신들이 독수리타법으로 타자를 치듯이 어설프게 뚱땅거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전자 피아노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순수한 행운인 것만 같았다. 아래 일이 있기까지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쉬다가 주변이 조용해진 것 같아 피아노 덮개를 걷고 전자 피아노를 켰다. 그리고 음계 연습을 시작했다. 삼십 분쯤 됐을까. 신경 써서 쳐봐도 자꾸만 반복해서 틀리는 음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나는 스스로에게 신경질을 부리면서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차수의 연습에서는 틀리는 부분은 건너뛰고 잘 쳐지는 부분만 치고 연습을 끝내려고 했다.

 

 ‘딩-댕-동-댕-딩-댕-딩-댕...’

 

 나는 가볍게 건반을 눌러나갔다. 잠시 후, 곧 매번 틀리던 부분이 가까워 졌다. 이번에는 키를 누를 필요 없이 머릿속으로 눌렀다고 상상하고 지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띵”

 

 하고 건반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내가 누르지 않아도 되는 그 키였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누르지 않았고 눌렀어도 틀린 소리가 났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누르지도 않은 키에서 제대로 소리가 난 것이다. 사실 그 때 바로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는데. 나도 참 둔한 건지 멍청한 건지... 내가 누른 적이 없다는 건 떠올리지도 못하고 이번엔 성공했네 하는 마음에 신나서 다음 마디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연습을 끝내고 전자 피아노를 꺼버렸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연습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원래 내 손은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한번에 9도나 10도 음정을 겨우 칠 수 있는 정도인데도 12도, 13도 음정이 들리는 것이다. 마치 누가 옆에서 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건반의 도에서 다음 도까지는 옥타브이고 음정으로는 8도가 된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손가락을 펼쳐 봐도 엄지손가락을 떼고 도약을 하지 않는 한, 도에서 다음 레까지가 한계이다. 내 새끼손가락이 다음 미까지 닿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소리는 제대로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내가 ‘도’ 음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가냘프게나마 그 다음 옥타브의 ‘파’나 ‘솔’음이 들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화음을 완성해주는 기능이 전자 피아노에 있고 그것이 켜져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나 스스로 납득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워서 곰곰이 그 일을 다시 돌이켜보니까 내가 그런 기능을 건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기능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어느 전자 피아노가 연주자의 머릿속을 읽어서 요구하지도 않은 음을 쳐줄 수 있단 말인가. AI라도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전자 피아노에 고장이 났나? 뭐 컴퓨터 키보드도 이물질이 들어가면 누르지 않은 것이 눌리기도 하고 반대로 눌리던 것이 안 눌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려던 그때,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잠이 확 깨고 말았다.

 

 “땅-당당, 땅-당당, 땅-드리뜨리리링, 땅-당당-뚱땅”

 

 갑자기 뭔가를 내려치는듯한 피아노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불을 켰다. 그것은 전자 피아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환해진 불빛에 눈을 비비고 나서야 전자 피아노를 자세히 바라보게 된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피아노의 전원 코드는 아까 뽑아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음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연주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무의미한 음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피아노 소나타였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더 우울하고 음산해져가고 있었다.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닭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얼마나 세게 열었던지 방문 목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뛰쳐나온 나는 전등이란 전등은 모두 켜고 소파와 현관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동안 놀란 부모님께서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오셨다. 전자 피아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말씀드려볼까도 생각했지만, 믿어 주실 것 같지 않았다. 하기야 나도 지금 내가 목격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집 밖으로 나온 나는 어두운 밤거리를 목적없이 배회했다. 하지만 마음은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서 밤을 새웠다.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방을 나온 뒤로 음악소리는 그친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계속 그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넋이 나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어제 일을 떠올리니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악몽을 꾼 것 같았다. 흘끗 전자 피아노를 쳐다봤는데 그것은 역시 꺼져 있었다. 하지만 왠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어제 내가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닌지 밤새도록 수십 번 의심을 해봤다. 기계고장의 가능성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전원이 꺼진 피아노에서 마치 피아니스트가 치는 듯한 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은 나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나는 이 전자 피아노에 뭔가 평범하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판매자는 상태 좋은 매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싸게 내놓았었다. 그동안 좋은 물건을 싸게 구했다는 생각에 취해 잊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시세에 비해 지나치게 싼 물건이었다는 데에 비로소 생각이 미친 것이다. ‘아... 싼 이유가 있었던 건가...’ 나는 불안해졌다. 판매자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난번 그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어... 얼마 전에 전자 피아노를 구입한 사람인데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어... 그게... 전자 피아노가 조금 이상해서요... 혹시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싶어서요...”

 

 “어떤 일 말씀이죠?”

 

 “후... 좀 이상하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는데요... 음, 그게... 밤에 피아노에서 저절로 음악이 나와요. 보통 전자 피아노에 녹음되어 있는 그런 게 아니라요, 진짜 누가 치는 소리가 나요. 그리고 뭐 못 믿으실 수도 있는데……. 전원이 꺼져 있어도 소리가 나요……. 진짜에요.”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기에 나를 생트집을 잡으려는 진상 소비자라며 욕하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중언부언 설명을 하는 동안 저편에서는 잠자코 듣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내 말이 끝났음에도 말도 안 된다거나 정신이 온전하냐는 식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정적이 이어졌다.

 

 “후우... 거기서도 그랬나보네요...”

 

 긴 침묵 끝에 상대방이 한 답변에 나는 머리가 어질했다. 

 

 “전자 피아노를 팔면 끝나는 일인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나봐요. 죄송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게 사연이 좀 있어요... 원래 그 피아노는 저희 아이가 사용했던 것은 아시죠?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나서부터 시작됐어요...”

 

 “네? 뭐라구요?”

 

 나는 판매자의 담담한 대답에 오히려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 그 전자 피아노는 저희 아이가 매우 아끼던 물건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좋아했고 전공을 염두에 두었던 아이라 작은 그랜드 피아노도 한 대 집에다 마련해 주었는데, 그 전자 피아노에 더 애착이 갔던 것 같아요. 언제든지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칠 수 있고, 음색도 바꿀 수 있고, 컴퓨터에도 연결하고... 아무튼 레슨이나 실제 피아노로 연습해야 할 때가 아니고는 항상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았답니다...”

 

 난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자 피아노에서 스스로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그 음악을 들어보니 저희 아이가 평소에 치던 곡이더라구요... 그 이후로 저희는 죽은 아이가 치는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 피아노를 저에게 파신 거군요.”

 

 “죄송해요. 저희도 사실 팔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피아노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딸아이가 피아노를 치던 때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들을수록 점점 음악에서 뭔가를 원망하고 울분에 차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어요.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죠. 그래서 한을 풀지 못하는 것 같아 부모로서 더 마음이 아팠어요.”

 

 “저기, 죄송한데... 혹시 따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딸애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딸의 죽음에 대해 나에게 들려준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딸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었다. 성격도 밝았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 이후 심한 따돌림이 시작됐고 이는 수년 간 계속됐다. 딸의 부모가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엔 이미 딸에게 치유하기 힘든 커다란 상처가 남겨진 뒤였다. 딸은 그동안 고통의 시간을 피아노 연주에 몰두하며 맹렬히 연습을 거듭하는 것으로 버텼다. 아마도 딸의 자존감을 지탱해준 것은 입시를 통해 자존감을 보상받으려는 목표의식이었을 것이다. 딸은 마치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에 목숨을 건 듯 연습을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목표 대학에 충분히 합격할 것을 의심치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상일은 쫓아가면 갈수록 달아난다고 했던가, 딸은 실기시험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불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딸에게 남아있던 희망을 완전히 꺼트렸다. 그리고 삶의 의지도 무너뜨렸다. 그날 저녁 딸은 가족이 잠든 밤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

 

 “후우...”

 

 딸 어머니의 말을 모두 듣고 나서 한동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슬프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판매자가 다시 말을 했다.

 

 “저희는 딸이 정말로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미련을 버리고 떠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러다 누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딸과 관련된 물건을 다 치워보라고. 그럼 딸도 결국 떠나지 않겠냐고. 그래서 저희는 딸 아이 물건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했죠. 그렇게 전자 피아노도 팔게 된 거예요.”

 

 “그러셨군요.”

 

 “하지만 이제 그것도 소용없는 짓인 것을 알았네요. 죄송해요. 아무래도 폐만 끼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건 제 생각인데 괜찮으시다면 전자 피아노를 저희가 다시 가져가도록 할께요. 당연히 환불해드리구요. 어떠신가요?”

 

 “어...”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번 주말에 댁으로 가도록 할게요. 그 때 말씀해 주세요.”

 

 “아, 네...”

 

 통화를 마치고 나는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난 전자 피아노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약간은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내가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날 밤 피아노가 스스로 연주하던 것을 떠올리면 여전히 소름이 돋았지만 사연을 듣고 나니 이제 그 딸의 영혼(?)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주변에서는 아무도 따돌림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 그 딸은 결국 상처를 끌어안고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피아노는 다시 돌려주면 그만이지만 그 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원히 그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일까? 밤마다 전자 피아노를 치면서? 마음속에서 잠겼다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상념 가운데 나는 점점 잠에 빠져 들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