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추후 재연재할 소설의 설정을 정립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함경도 사투리가 사용되지만 전문가가 아닌기 때문에 약간 어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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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혜산시

 

한량한 언덕 위에 쭈그려 앉아있는 6살짜리 남자아이. 남자아이는 언덕 위에 앉아 저 너머로 흘러가는 압록강을 한없이 바라본다. 강가의 건물들은 모두 지진의 융단을 맞아 내려앉았고 압록강은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 모를 판자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소년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남자아이가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낮이 지나도 밤이 지나도 2주동안 소년의 눈은 흔적만 남은 집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직도 여기 있냐? 이젠 좀 내려오라."

소년의 어머니가 말한다. 소년은 슬픔에 말이 없다. 소년의 어머니가 계속 불러보지만 소년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에도 마침내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포기했다는 듯이 점심밥을 대충 건네주고 언덕을 내려간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을 본 지나가던 한 남자가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을 건다. 그 남자는 단원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무슨 일이심메까? 기분이 아니 좋아 보인다우."

소년의 어머니가 힘없이 대답한다.

"2주 전에 지진이 나고 강이 불어났을 때 스나이(남편)가 물에 휩쓸려 갔슴메. 그래서 우리 집 아들이 아니 잊고 지금까지 온할날(하루종일) 앉아있수다."

남자가 사정을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짐한 듯이 말했다.

"내래 가서 설득해보겠수다."

"가능하심메까?"

"일단 해보겠수다."

 

남자가 언덕을 올라간다. 언덕을 올라갈수록 마을 전체의 일그러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걸어가자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남자가 무슨 말을 할 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옷을 가다듬고 소년의 옆에 앉는다.

"뉘김메까?"

소년이 기운 없이 말한다. 시선은 아직도 따뜻했던 옛 집에 고정되어있다.

"혜산시 혁명결사 단원이다. 이 시국에 조국을 더 따따사게 만드려는 놈이지비."

남자가 소년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했다. 혜산시 혁명결사는 백두산 분화로 인해 김정은이 사망하자 탄생한 혁명단체. 그러나 소년은 아무 말이 없다. 남자가 말을 잇는다.

"동무의 아부지가 강물에 죽었다 들었다."

"아즈바이는 삐치지 말라우.(아저씨는 참견하지 마세요.)"

소년이 무감각하게 답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렇게 울고만 있는 건 동무의 아부지가 원하는 바가 아닐 거라우."

"그걸 아즈바이가 어떻게 암메까? 아즈바이는 아부지가 죽기나 했슴메까?"

남자가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의 가족은 모두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는 떠올렸다. 아버지와 비슷한 무언가가 죽어있었다는 것을. 그 생각에 미치자 남자가 말했다.

"아부지는 아니지만 다른 아부지가 죽었었지비. 정의라는 이름의 아부지가."

소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그 아부지가 죽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도 많이 낙담했슴메. 아주 슬펐고 좌절했지비. 그러나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 슬픔을 이기고 정의를 위해 살자는 다짐을 했다우. 그렇게 정의를 위한 마음을 가지며 살았고 시간이 흘렀지비. 그리고 그 결실이 이루어졌소. 그 아부지를 다시 살릴 기회가 왔다우."

소년이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동무도 그렇다. 그 고통은 이해한다. 근데 아부지의 죽음에 너무 매달려있는 건 아니 좋다우. 그건 아버지가 바라는 바가 아니우. 나의 아부지가 자신의 죽음에 상심하기 아니 원했던 것처럼 동무의 아부지도 자기의 죽음에 상심해있길 아니 원하실 거라우."

"그러면 어쩌라는 겁메까?"

"아부지가 바라는 것은 자신을 기억해주고 죽음의 슬픔을 이겨내는 것. 그리고 슬픔을 이겨내어 성장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라우."

 

남자가 소년을 토닥이고 언덕을 내려갔다. 소년은 언덕 위에 계속 앉아있었다. 소년은 이게 무슨 소리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생각하고 곱씹었다. 

 

얼마 뒤, 마침내 소년은 언덕을 내려왔다. 슬픔을 이겨내어 성장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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