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고르, 밖에 좀 봐줘."

이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쪽에 위치한 딱 자기 얼굴 사이즈의 창문으로 몸을 돌렸다.

"여전히 우릴 따라오고 있어."

이반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입 안에서 웅얼거렸다. 이고르는 자신에게 내뱉은 소리인지 아니면 일종의 한숨인지 구분이 안되어 눈치를 보며 곁눈질을 했다.

"우리는 '비밀무기' 같은 거 없어?"

"있지."

"그럼 써!"

이고르는 천천히 뒷자석으로 이동했다. 소비에트 협회에서 비상시를 대비해 친절히 달아준 Gsh-90 중기관총은 우주에서도 그 위력을 맛볼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메이드 인 블라디보스토크 기관총을 쥐고 과녁 위에 바로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우주선을 올려놓았다. 리플렉스형 조준기라서 시야가 넓었다. 이고르는 몇시간째 자신과 이반을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알짱거리는 중인 머큐리 8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고르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주에서까지 서로를 쏴 죽이는 세상이 온 것인가........

"CYKA BLYAT! 아 빨리 좀 쏴! 이러다가 오히려 우리가 당하겠어!"

이반의 재촉에 화들짝 놀라 손가락이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이고르는 머큐리호 뒤로 떠오르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찬란한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란색, 주황색, 감귤색, 한라봉색, 자몽색, 빨간색, 와인색 아니 레드와인색까지 이고르의 눈에 순간 불의 오묘한 색감이 전해졌다. 

.

.

.

"이 병신새기야!"

 황금색 단계에 취해있던 이고르는 이반이 꽥 내지르는 소리덕에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쏘라고! 쏴!"

불쌍한 이고르, 그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방아쇠는 당겨졌고, 자기 눈 앞에 있는 또다른 인간 둘은 죽은 목숨이었다. 

.

.

.

.

.

.

사실 우주는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총소리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

.

.

.

.

.

그렇다고 팝콘 터지는 소리는 안 나겠죠?

.

.

.

이고르가 기절에서 깨어났을 때, 이반이 그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별이 새겨진 회색 담요가 이고르를 감싸고 있었고 주위에는 조그만 물방울들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깼냐, 덜 배워 처먹은 놈아."

"...."

"너가 쏜 저 기관총말이야...."

꿀꺽.

이고르의 목구멍으로 자연스레 침이 넘어갔다.

"가짜였어."

넘어가던 침이 급제동을 하더니 식도와 기도를 바이킹 왔다갔다하듯 넘나들었다.

"총이 발사되는 게 아니라 단순 위협용이었던거지...그걸 양키놈들은 실제로 쓸 당사자들보다 먼저 안거고." 

이고르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런 장애물없이 온전히 그 빛을 내뿜는 태양을 보기로 했다. 라임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