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명, 어떤 경우에는 많을 수도 어떤 경우에는 적을 수도 있는 사람의 숫자겠지.
 내가 어려서 자라왔던 촌구석 마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몇 명일까? 자세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500여명정도 되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나,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첫사랑은 어떤 놈과 침대에서 뒹굴었을까 궁금했지만 이내 피식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

 “우, 우웩!”
 젠장, 또 속을 게워냈군. 변기 안에 고인 토사물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메스꺼워지면서 목구멍으로 무언가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얼굴에 찬 물을 뭍히니 겨우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생각을 해보자.
 분명 200일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곳 화성에서 아무 걱정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자로 두 개 중 하나에서 냉매가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고 왕복선 한대가 계산상의 실수 때문에 화성궤도로 진입하다가 추락할 뻔하고 생존장비를 깜박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외부탐사를 나갔다가 반쯤 죽어서 들어온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였으며 거주구에서 공기가 새는 바람에 기지전체에 비상이 내려진 적도 있지만 적어도 최소한 100일 전까지만 해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이래 처음으로 외행성에 세운 대규모 유인기지인 ‘화성도시’는 지구로부터 별도의 자원을 얻지 않고서도 수년을 생활할 수 있는 자급자족 기지로 화성 개척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며 최종적으로 제 2의 지구를 만들어 낸다는 거창한 계획하에 탄생되었다...는 개소리고 그렇게 하려고 했더니 많은 부분에서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계획입안단계에서 알아버린 바람에 의회 청문회에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고 결국 10만명 이상을 거주시킬 외행성 도시계획은 1200명을 겨우 거주시킬 정도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화성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말이 안 되었던 것이 자원만 있다고 모든 것이 알아서 만들어질 턱이 없지 않은가.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저 스크류드라이버만 해도 그걸 만들기 위해선 저것을 만들 소재를 캐내서 용광로에 집어넣고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이것저것 첨가해서 합금으로 소재를 뽑아낸 뒤, 각종 연마도구로 오차가 나오지 않게 깎아내야 한다. 이게 말이 쉬운 거지 용광로같은 걸 어떻게 화성으로 들고 올수 있단 말인가.

 한낱 도구도 그런데 내가 쓰는 랩탑에 들어갈 반도체는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려면 인구10만이 아니라 100만이상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들여 화성에 도시를 세워봤자 별로 효용성도 없는게 어느 과학저널에서 인류의 과학기술을 고려했을 때 지구의 인구부양능력은 적어도 300억정도는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지구인구는 80억 언저리에 도달했으니 앞으로 220억 정도는 더 수용할 수 있다고 봐야 맞겠지. 그런데다가 출산율 감소와 더불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고령층이 대거 죽어나가기 시작한 바람에 도로 70억대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외행성에 도시같은 걸 세워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회의 판단은 NASA의 일원인 내가 보기에도 맞다고 보여질 정도였다.

 그러함에도 이곳에 1200여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대구모 기지가 세워지고 우리가 6개월 이상을 날아와 정착하게 된 것은 사람이 거주할 지구가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인해 발생될 환경오염을 막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산업플랜트를 화성에 만들기 위해서라고 언론에서 떠들었지만,
 “소장님, 괜찮으세요?”
 조금 앳되보이는 동양인 여성이 서류를 가지고 들어오다 변기옆에 주저 앉아 있는 나를 보고서 놀란 마음에 달려와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류옌, 그것보다 왕복선들은 어떻게 되었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던가?”
 “일단 이곳으로 운항중인 왕복선들은 정상적으로 순항중입니다. 그리고 어제 떠날 예정이었던 왕복선은 아직 대기 중입니다.”
 “그래, 알았어. 일단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모든 걸 보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박사님.”
 어두운 표정으로 나가던 류옌, 우주개발의 우위를 점하면서도 불필요한 화성 기지건설에 돈을 아끼려는 미국정부와 그런 미국의 뒤를 따라 화성에 자신들의 깃발을 꼽고자 하는 중국의 정치적 타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중국이 큰돈을 들여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 기지는 계획단계에서 취소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중국에서도 독자적으로 화성에 기지를 세우려고 했으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아무리 중국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60년 전부터 우주에 위성을 띄우던 미국과의 기술적 격차는 좁힐 방법이 없었고 달 탐사까지는 어찌어찌 진행하더라도 화성에 기지를 세우는 것은 수많은 위험요소를 고려했을 때 기본적인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 중국의 현실때문에라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화성탐사를 하는데 명색이 라이벌이라는 자신들이 못하겠는가라는 생각때문이었는지 그토록 꺼리던 미국과의 협력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다국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화성도시건설을 추진하게 된 것이 수면아래에 잠긴 진실이다. 그래서 원래라면 중국국적을 가진 그녀를 볼 이유가 없음에도 그녀가 이 자리에 서있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다 그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류옌의 침착한 대응 덕분에 화성도시는 화성에 내리꽂힐 예정이었던 운석파편들을 대부분 막아내는데 성공했으니 나로서도 그녀를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고 보니 운석의 파편이 직격하여 화성의 대기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돔이 깨져나간 덕분에 인공수림시설에서 죽은 195명이 갑작스레 생각났다.
 “젠장!”
 그와 동시에 갑작스럽게 화가 나서 애꿎은 책상을 두들겨버렸다. 어찌나 힘차게 내리쳤는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는 게 뼈에 금이라도 간 듯 싶었지만 그래도 주체못할 정도로 치밀어오른 짜증이 적당히 해소되어 차분해질 수 있었다.

 6600만 년 전이었던가, 당시 지구상을 지배하던 공룡들을 싸그리 몰살해버린 운석의 크기가 10km정도였다고 했는데 내가 본 소행성은 못해도 지금이 50km가 넘어갔다. 그 정도로 커다란 소행성을, 화성에 20미터짜리 파편을 떨구고 지나갈 때까지 관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 자신을 한없이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그걸 관측할 수 있었다면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뭔가 지구에서 대책이라도 세워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죽은 사람들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운석의 파편에 파괴된 인공수림시설은 화성도시 주변에 세워진 4개의 공기정화시설 중 하나였다. 게다가 아직 남아있는 자재들이 있어 잘만 하면 복구가 가능할 지도 몰랐다. 식량은 이미 몇 년분을 비축해놓았기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돼지처럼 자포자기로 쳐 먹어대지 않는 이상 전혀 문제될게 없고 혹시나 문제가 있더라도 화성기후에 적응시키기 위한 실험의 일환으로 반입한 동식물도 있어 잘만하면 제한적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갑작스레 갈증이 몰려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몸에서 갈증을 호소하는 듯 했다. 찬 물이 한모금씩 들어갈때마다 열기가 느껴지던 뱃속이 한결 나아졌다. 완전히 비어버린 물컵을 내려논 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생각을 정리했다.

 기나긴 슬픔의 시간은 지났고 이제부터 치열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앞으로는 생존이 최우선 과제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끔찍한 환경을 가진 화성에서 살아남는 것, 그것이 이곳 화성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1005명의 사람들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무의식적으로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오늘로 날짜가 12월 23일이로군. 그럼 저 빌어먹을 엿 같은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진 게 언제였더라? 내 기억으로 7일전이었던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