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던 것은 생일에 눈으로 뒤덮인 매화가 피었기 때문이라고, 옆자리에서 나와 손을 맞잡은 그녀가 얼굴을 올려다본다.

버스를 타고 친가로 올라간다. 가족을 보기 위함이다. 이런 날은 드물다. 일이 바쁘기 때문이다. 언제나 밤늦게 버스를 탔다. 막차는 밤 8시 30분이다. 침대에 앉아 시계를 본다. 30분이 남았다.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갈 것이다. 일어나서 옷장을 열었다. 면으로 만든 하얀색 셔츠와 까만 바지를 빼서 입는다. 까무스름한 트렌치코트를 걸친다. 추위를 타지만 상관없다. 현관까지 걸어가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 신는다. 경첩이 망설인다. 현관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풍경에 내려앉아 꽃을 피운다. 발소리가 섞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김을 분다. 감정이 마음에서 바깥으로 퍼진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은 나의 것이다. 오른손이 주머니에서 꺼내 담담하게 곧추선 벽을 쓴다. 까끌까끌한 시멘트가 손끝을 찌른다.

건물에서 벗어났다. 버스터미널까지 계속 앞만 보고 걸으면 된다. 지방의 밤길은 그윽하다. 처음 왔을 때도 똑같았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못했다. 자동차가 넓은 도로를 오간다. 불이 꺼진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나친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은 없다. 별이 꺼멓고 추운 곳에서 빛을 태운들 혼자다. 빛깔을 잃은 나무와 풀이 모질다. 한기가 코를 삼킨다. 알량한 빛이 늘어난다. 차가 모이고 있다. 곧이어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안에 들어가서 전광판을 본다. 시간은 밤 8시 25분이었다.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매끈한 철제 의자에 띄엄띄엄 사람이 앉아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버스까지 걸어간다. 운전사가 문 앞에서 표를 확인한다. 사람이 없는 안쪽 자리에 앉아 코트를 벗고 창문에 머리를 기댄다. 입김이 창문에 닿아 투명한 얼룩이 번진다. 가로등에서 나오는 샛노란 빛이 은근히 감정을 홀린다. 따라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몸을 반쯤 굽히지 않으면 멀미가 난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차츰차츰 움직이는 버스가 머리를 흔든다. 눈물이 옮는다. 그조차 깨닫기 전에 선잠에 빠진다.

고속도로를 탄 버스는 심하게 요동친다. 막차는 승객을 내려놓고 서둘러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였다. 회전목마가 맴도는 가슴은 이미 뒤죽박죽이다. 언뜻 눈을 뜬다. 창문에 얼굴이 비친다.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길을 나아가고 돌면서 슬쩍 웃는다. 이대로면 지구의 반대편에 떨어질 것이다. 그대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과거의 나와 만난다면 선뜻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나의 친구들은 이미 지킬 것을 손에 넣었다. 이대로 가족의 품에 돌아가도 될까. 마음 속의 천칭에 감정을 올린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끝이 기다리는 도로를 달려왔다. 언제나 불안정하다.

종착지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한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젊은 여자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말쑥한 옷을 입은 남자가 여자를 부축한다. 곧이어 버스에 올라탄다. 그들은 내 앞자리에 앉았다. 남자가 얼굴을 찡그린다. 하품을 뱉으며 여자를 안쪽 자리에 내던진다. 여자가 신음을 낸다. 남자가 그 옆자리에 앉는다. 숨을 죽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곧바로 눈을 돌린다. 버스는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였다. 바깥에 정류장이 있다. 유리에 얼룩이 묻어있다. 여러 전단지가 아무렇게나 겹친다. 의자에 칠한 녹색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다. 나의 보금자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해진 끝을 향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몸을 재우면 되는 것일까. 차라리 구더기에 뜯어먹히거나 썩어서 흙이 되면 좋으련만. 하지만 죽음은 자신의 손으로 정할 수 없다. 두렵기 때문이다.

죽고 싶던 것은 아직도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고개를 돌리자 앞자리에서 뒤를 돌아본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어디 사세요?" 이마에 검은 머리칼이 드리운다. 그녀의 눈동자는 방금까지 몸을 가누기 힘들었음에도 고요하였다. 작은 코와 함께 새붉은 입술이 살랑거린다. "아무 곳에도 살지 않아요." 그녀가 의자를 끝까지 내리고 나에게로 손을 내민다. "그렇다면 언제까지고 길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녀가 내민 손은 빛깔이 희고 섬세하다. 손톱이 둥그렇고 색이 불긋하다. 그녀의 손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하지만 만질 수 없었다. 비겁한 일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외롭다고 말하며 위로를 구해도 되는 것일까.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나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 어루만진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부끄러움이 혈관을 타고 움직인다. "괜찮답니다. 어차피 당신도 외로움을 느끼고 계실 테지요." 의자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숙인 그녀가 못내 슬프게만 느껴진다. 그녀의 감촉이 살결과 피를 타고 심장을 건드린다. "그만둬요. 불쾌하니까요." 어눌한 목소리로 급히 뱉는다. 그녀가 얼굴을 조금 옆으로 숙이고 입꼬리를 잔잔히 올린다. 새까만 눈동자가 밤하늘을 품는다. 허벅지에 직접 손을 올린다.

이윽고 그녀가 엷게 웃으며 나의 손을 맞잡는다. 따스함이 흐르는 손이다. 살포시 손가락을 겹친다. 고작 손이 닿았을 뿐인데, 돌연히 그녀가 사랑스럽게 변한다. 이토록 사람의 정에 약할 줄은 몰랐다. 서로의 손가락으로 지문을 강하게 찍는다. 아담한 손길에 손바닥이 식어 내린다. 몇 마디 중얼거린다. "사랑스러워. 사랑스러워……."

그녀가 손을 뗀다. 의자를 다시 올린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다시 일어나 걷는다. 의자를 지난다. 조심히 발걸음을 때어 낸다. 점차 가까워진다. 나에게 안긴다. "오늘 새벽은 또 어느 분을 위하여 춤출까요." 그녀가 나의 허벅지에 앉는다. 목에 양팔을 두른다. 이마를 맞대 숨을 나눈다. "저를 이상하게 느끼시겠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겠어요. 저를 혼자 두지 말아 주세요……."

뜨듯한 숨결을 내쉬는 붉고 나지막한 입술, 단정한 외모가 나의 마음을 흔든다. 으슥한 불빛 아래서 보이는 그녀의 몸이 아리따움을 선보인다. 하얀 블라우스가 위로 올라가고 매끈한 뱃살이 드러난다. 빨간 체크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맨다리가 나의 골반과 겹친다. 버스가 요동친다. 같이 고요함을 찾는다. 시간이 멈춘다. 양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리고 조금씩 민다. 그녀의 애달픈 눈빛이 자신을 뒤흔들지 못하도록 눈을 감는다. 다시금 자리에 앉힌다. 심장에 손을 올린다. 뜨거움이 고동친다. 어느새 온몸에 땀이 축축하다.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안으로 굽힌다. 숨을 다잡는다.

나직한 울음소리가 귀를 맴돈다.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눈물을 훔친다. 팔등을 눈가에 비비는 와중에 언뜻 보이는 눈동자가 나의 마음을 떨어트린다. 무엇이 그토록 서러운 것일까. 어떻게 해야 달랠 수 있을까. 감정을 애태운다. 결국 그녀를 다시 안는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마음도 없는 위로를 내뱉는다. 오늘에서야 처음 만난 사이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쉽게도 말을 쏟을까. 울먹이는 말소리가 들린다. "어렸을 적에도 제게 사랑스럽다는 말을 되뇌던 사람이 있었지요. 그가 바로 제 첫사랑이었는데, 언제나 가까이서 장래와 사랑을 털어놓았는데, 지금은 꿈을 꾸면 닿는 머나먼 끝에 있지요." 그녀는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새로운 아침에 몸을 맡기어 자신을 새하얗게 바꾸고 싶다.

"그것 아세요? 오늘이 바로 제 생일이랍니다. 고향은 한없이 먼 곳에 있지만, 어머니께서 편지를 보내오셨어요. 눈꽃에 뒤덮인 매화가 예쁘게 피었다고 해요. 슬픔은 값을 헤아릴 수가 없는데, 꽃은 고작 한 두 푼에 팔리고 있답니다. 이토록 힘없는 자신이 싫어요."

속삭임이 마음을 삼킨다. 이대로 끝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때에 맞추어 정류장에 버스가 섰다. 다음이 종착지다. 그녀의 손을 움켜쥔다. 버스를 벗어난다. 냉랭한 공기가 살결을 쓸어내린다.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굵은 눈발이 날린다. 소복이 쌓인 눈에 자국을 남긴다. 그녀가 망설인다. 얼굴을 들며 미소를 짓는다. 그녀가 계단을 발을 내디디며 나에게로 쓰러진다. 균형을 잃어 넘어진다. 눈밭에 무릎을 짚는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아니. 하나도 몰라. 하지만 이대로 너를 보내기 싫었어. 다시 누군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얼마나 아플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녀가 아무 말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이 그녀의 살결에 부슬부슬 쌓이고 겹쳐지며 녹는다. "제 마음은 식지 않아요."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걸친다. 맞닿은 손이 애달프지 않도록 앞을 향해 발을 뗀다. 발이 땅을 스칠 때마다 울리는 보드득한 소리가 사랑스럽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인데 단둘이 바깥을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가 얼어 죽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아요." 손발이 감각을 잃는 순간까지 길을 걷고 나서야 우리는 눈밭에 몸을 눕힌다. 맞닿은 손이 뻣뻣하여 잘 움직이지 않는다. "언젠가 저도 고향에 갈 수 있겠지요."

그녀가 나의 몸에 올라탄다. 양팔로 덮고 감싸준다. 시작하는 사랑을 눈치채지 못하고 뺨을 붉힌다. 그녀의 품으로 몸을 오그리고 체온을 태운다. "어떠신가요. 당신의 마음도 마찬가지인가요?" 계속 그녀의 곁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나의 삶은 이미 쇠락하여 끝에 다다다랐다. 죽기 전에 있을 곳을 찾아야 한다. 괴로움과 함께 저무는 자신을 바라본다. "너의 곁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후미진 방에서 홀로 빛바랜 추억을 꺼내 마음을 달랬다. 별과 눈을 보는 것조차도 잃은 삶이었다. 살기 위하여 내쉬는 숨은 이토록 쓰라리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모두 혼자 살아야 할 순간이 찾아오지요. 빛을 잃고 땅에 떨어진 것들을 찾다 체념하셨나요. 애절한 작별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상대를 위한 이별을 모르는 당신은 가엾은 사람이군요. 사랑을 품은 오직 단 한 사람만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요." 세상은 사람에게 살아있기를 강요한다. 말 한 두 마디로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는다. 흐름에 따라 잊힌다. 그런데도 죽을 수 없다. 구역질을 느끼고 눈물을 토한다.

"제가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녀의 꺼먼 머리카락에 눈꽃이 조각으로 바뀌어 묻어난다. 하얗게 뒤덮인 그녀는 한 송이 매화다. 슬며시 감정이 스민다. "저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랍니다." 조그만 움직임도 쉽게 표현하는 입술이 곱다. 얼굴이 가깝다. "네가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지만 사랑하고 있어." 한참동안 감정을 바닥까지 졸이며 껴안는다.

"일어서요. 저와 같이 가요." 그녀가 눈이 묻은 무릎을 털며 일어선다. 눈이 그친다. 하늘에서 별이 보인다. 언뜻 보인 별에 마음이 환하다. "네 고향에 가고 싶어. 내가 데려다줄게." 내가 다시금 손을 맞잡으며 그리 말한다. 우리는 이제 끝을 모르는 길을 걸을 것이다. "다시 돋아날 싹과 함께."


첫 문장은 amazarashi 작사 작곡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의 가사 가운데 한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まふまふ 작사 작곡 朧月를 한 번 듣고 영감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