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 쿨럭..."

어두컴컴한 방. 노인은 힘 없는 기침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도 저희 레이크 코퍼레이션이 주민 여러분께..."

"우라질... 아침부터 골 울리게 지랄이여... 지랄은..."

밖에서 들려오는 방송에 노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숙취 때문에 가누기 힘든 늙은 몸을 겨우 움직여서 창문을 쾅하고 닫았다.

"육시럴 놈들!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자리에 주저 앉으며 저주를 퍼부은 노인은 좀처럼 날아가지 않는 숙취를 날리기 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바닥을 마구 더듬었다.

그런 노인의 손에 덥석. 무언가가 잡혔다. 닫힌 창문으로 들어오는 옅은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깜깜한 방이지만, 노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소주. 아니, 그의 생명수였다.

"흐어어..."

노인은 고약한 술 기운을 날숨에 실어 뱉어내고는, 손에 집어든 소주 병을 까고 그대로 그것을 들이켰다.

그러자 목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한 감각에 노인의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갔다.

생명수의 놀라운 효능에 감탄할 틈도 없이 병을 비운 노인은 전에 없을 정도로 또렷해진 정신으로 벌떡하고 몸을 일으켰다.

새벽 5시 13분. 출근까지 1시간 정도가 남은 시각을 가르키고 있는 골동품 시계를 잠시동안 미동도 없이 쳐다보던 노인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부워어어어얽!"

화장실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쏟아져 나온 토를 변기를 붙잡고 쏟아낸 노인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옷을 벗어 밖으로 내던졌다.

그렇게 씻을 준비를 마친 노인은 기어서 세수대야 앞까지 가서는 늙고 병든 몸뚱아리를 찬찬히 씻기 시작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어중간한 물로. 배는 불룩 튀어나왔고, 오래된 흉터가 잔뜩 남아있는 흉한 몸뚱어리를 아주 찬찬히.

기껏 씻겨나갈 것이면 살면서 쌓아온 수많은 후회, 그리고 초라한 삶에 들러붙은 새까만 비참함 또한 씻겨나가길 바라며 노인은 구석구석 몸을 씻었다.

공들인 목욕재계를 마친 노인은 화장실을 나섰다. 술기운이 떨어진 탓인지 살짝 흐려진 정신으로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노인은 요깃거리를 찾기 위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우라질. 남아있는 게 없구만!"

오이 두 개. 사과 하나. 계란 하나. 그리고 너무나도 소중한 녹색 병들이 도열해있는 냉장고를 들여다본 노인은 그렇게 중얼 거리고는 오이 하나랑 소주 한병을 꺼내들었다.

초라한 아침을 바닥에 내려놓은 노인은 털썩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한입 크게 오이를 베어물자,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터져나왔다.

"... 안 상했구만."

아직은 싱싱함이 남아있는 듯한 맛에 만족하며 노인은 소주를 깠다.

또 벌컥벌컥. 싱싱한 오이를 안주삼아 영혼을 위한 연료를 정신없이 채운 노인은 크게 트림을 한번 하고는 시계를 올려다봤다.

6시 8분.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늦을 듯한 그 시각에 노인은 소주병을 근처에 모여있는 소주병 더미에 대충 던져놓고는 집을 나섰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루퍼트 씨. 오늘도 레이크..."

"육시럴 놈들! 적당히라는 걸 몰러! 적당히를!"

도어락에서 흘러나오는 친절한 배웅에도 역정을 낸 노인은 절뚝거리면서 엘레베이터 앞까지 걸어갔다.

버튼을 누르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엘레베이터를 한참 기다리던 노인은 엘레베이터에 힘없이 올라탔다.

"혁신 선도기업이랍시구 만날 시끄럽게 해대더니만..."

쇠로 대충 이어붙여 만든 듯한 엘레베이터에 올라탄 노인이 그렇게 불평하자, 엘레베이터는 그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덜컹하고 크게 흔들리더니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덜컹. 엘레베이터가 크게 흔들리며 멈춰섰다. 이윽고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젊은 여성이 한명 서있었다.

정갈한 양복을 차려입은 그 여성은 문이 열린 순간부터 풍겨오는 강렬한 술 냄새에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흐어어어엄..."

불룩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며 한바탕 하품을 하는 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성은 최대한 노인에서 먼쪽에 서서는 고개를 돌린 채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불쾌한 만남은 별탈없이 엘레베이터가 1층에 다다르며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5층을 지나가는 순간, 불현듯 노인은 배에서 격통을 느꼈다.

내장에 불이 붙은 듯한 끔찍한 통증에 배를 감싸쥐며 노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끔찍한 통증을 힘겹게 버티며 정신줄을 붙잡으려는 그때, 덜컹하고 엘레베이터는 1층에 닿았다.

"진짜...!"

여성은 엘레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노인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러간 것이라고 생각하며 힘겹게 몸을 움직여서 엘레베이터를 벗어났다.

그 복도에서 아까 본 여자가 수위나 119라도 불러서 데려올 것이라고 생각한 남자가 복도에 쥐저앉아 천천히 심호흡하며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여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제 더는 못 참겠어요! 더러운 부랑자나 시민의식도 없는 바보들만 사는 이 거주동에는 더 이상은 못 있겠다고요!"

"아. 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지금 더 좋은 단계의 동들은 지난번 침공 이후로 수리중이라서 옮겨드리기 힘들다고 저번에도..."

"오늘만 해도 그래요! 술에 잔뜩 쩔은 기분나쁜 노친네가 갑자기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댔다고요! 진짜! 진짜로 못 참아요. 본사에 정식으로 항의해서 이동 요청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희도 이게 노력을..."

거기서 대화는 끊겨버렸다. 아무래도 여성이 급하게 자리를 뜬 듯했다.

"... 재수 없는 년."

노인은 솔직담백한 의견을 입 밖으로 뱉고는 바닥에 퉤하고 가래침 또한 뱉어냈다.

그러고는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이 쑤셔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입구 쪽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입구에 곤란한 표정으로 서있던 수위는 절뚝거리며 걸어나오는 노인을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루퍼트씨! 또 당신입니까?"

"그려. 뭐 불만 있는겨?"

퉁명스럽게 그렇게 대답하는 노인의 태도에 수위는 머리를 쥐어싸맸다.

"도대체 이게 몇번쨉니까? 루퍼트씨가 술마시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탓에 겁먹은 주민들이 한둘이 아니라고요!"

"우라질! 뭐만 혔다하면 내보고만 지랄이여! 지랄은! 술 먹고 그 기집애를 내가 덮치기를 혔어? 아니잖여! 아파 가지고 바닥에 뒹굴고 있는데두 홀랑 내뿌리고 간 그 기집애가 육시럴 년이지. 왜 나한테 성을 내구 있어!"

"그래도 자꾸 그러시면... 어디 가세요!"

격앙된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낸 노인은 이어지는 수위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빠르게 그를 지나쳐서 단지를 벗어났다.

방금 지른 소리에 술기운이 날아갔는지 다시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때 소주 한병만 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애석하게도, 그에게 더 이상의 생명수는 남아있지않았다.

별 수 없이 노인은 점점 흐려져가는 정신으로 간신히 몸을 움직였다. 이윽고 익숙한 정류장에 도착한 노인은 힘겹게 통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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