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한 설원에서 띵- 하는 소리가 미약하게 울려퍼졌다. 설원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기에 그 소리는 멀리 못가서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그 소리의 진원지는 위에 수북히 눈이 쌓인 거대한 얼음덩이였고 그 안에 있던 존재는 일전의 그 소리가 자명종이라도 되는것처럼 눈을 떴다.

그가 얼어붙어있던 신체에 힘을 주자 거대한 얼음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얼음에 쩍쩍 금이 가기 시작하고, 경쾌한 파쇄음과 함께 얼음이 산산조각난다. 그리고 그 얼음 속에서 수천년간 얼어붙어 있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움직일때마다 그의 몸에 있던 얼음들이 깨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에게 걸쳐진 코트는 다행히도 얼지 않고 붙어있는 얼음들을 흩날리며 바람에 펄럭였다.

건장한 성인 남성만한 크기의 그 존재는 눈을 맞으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무감정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지?"

그는 목에 대충 걸쳐져있던 팬던트형 목걸이를 열어서 안에 담겨있는 플루토늄의 양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양과 비교했다. 그러자 그는 플루토늄의 반감기를 이용하여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었다.

"7300년 정도 지났군."

한참동안 팬던트를 보고있던 그는 이 팬던트를 만든 설계자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렇기에 그 '설계자'라는 존재를 찾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무기고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다소 무거웠기에 그가 지나간 곳에있던 눈들은 얼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발자국이 남았다.

무기고는 별로 멀리 있지 않았다. 지하에 위치하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무기고의 위에는 눈이 가득 쌓여있었고, 그 눈들은 단단하게 얼어있었다.

그 눈더미들을 마라보던 그는 공기중에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마치 태풍에 종이가 날아가듯 마력들은 빠른 속도로 그에게 끌려들어가서 7300년동안 천천히 줄어들었던 그의 마력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는 얼어붙은 눈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무기고 위의 눈들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그러자 큰 충격음과 함께 땅이 진동하고 얼어붙은 사방으로 깨져나갔다. 그가 깨져나간 얼음을 우왁스럽게 손으로 치우자, 눈덮인 평야와는 어울리지 않는 별 모양의 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그 판 위에 손을 갖다대자 판이 우웅- 소리를 내며 푸른빛을 띄며 빛나다가, 초록색 빛을 방출하더니 빛을 잃고 잠잠해졌다. 그가 한참을 가만히 서있자 땅이 지진이라도 난것마냥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진동과 함께 무기고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대략 컨테이너 박스 크기만한 무기고는 벽면에 새겨진 신비한 모양의 문양을 초록색으로 빛내고 있었다.

그는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를 기다렸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직접 가서 문을 앞으로 밀어보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수천년동안 얼어붙었어서 맛이 갔나보군."

그렇게 말한 그는 문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쇳덩이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큰 충격음이 울려펴지고 무기고의 문에 붙어있는 얼음들은 산산조각나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무기고의 벽면에 있는 문양들도 빛을 잃었다.

무기고의 문에는 그가 들어갈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구멍 안에 비집고 들어간 그는 무기고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조명이 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그래도 조명은 지직 거리는 소리만 낼 뿐, 켜지지 않았다.

그가 문을 너무 쎄게 쳐서 손상이 온 것이거나, 너무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었기에 고장난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잠시 멍하게 서있다가 말했다.

"일일이 더듬어가면서 무기를 확인해야겠군..."

조명이 없었기에 그는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무기고 안의 무기를 꺼내고 확인해보는 것을 반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뒤져보던 그는 결론을 내렸다.

"무기가 죄다 고장났어. 수천년간 정비도 안받은 무기가 정상일리 없지."

무기들은 죄다 녹슬고 회로가 끊기거나 화약이 산화되어 작동하지 않았다. 마력으로 작동하는 무기는 마력이 다 소진되어 벽돌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력을 충전하면 되겠지만, 충전해도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도 그는 선반에서 온도계와 나침반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정도면 소득이 아예 없는것은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무기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발에 무언가가 채이는 것을 느꼈다. 발과 부딪친 것을 주워들자,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봉이었다. 그가 그 봉을 휘두르자, 봉은 놀랍게도 미약하게 초록색 빛을 내었다. 아직 작동하는 것이다.

봉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기고 안의 무기들이 그렇듯, 이 봉도 내부에 복잡한 설계가 적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기에 그는 만족하며 봉을 들고 무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별 모양의 판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나 그 판은 이전처럼 빛을 내지도 않았고 작동하지도 않았다. 무기고는 전과 상태가 같았다. 문이 박살나있었고, 전처럼 신비한 문양을 초록색으로 빛내지도 않았다.

그는 짜증이 난듯 봉을 내려두고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무기고의 벽면에 손가락을 박아넣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기에 손가락이 벽에 박힐때 그리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양 손의 손가락이 벽에 제대로 박힌걸 확인한 골렘은 힘을 주어 손가락을 아래를 향해 끌어내렸다. 그러자 쇳덩이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드드드드- 하는 소리가 나며 무기고가 아래로 차츰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기고가 반쯤 땅속에 박혀들어가자 그는 벽에 박혀있던 손가락을 빼서 무기고의 천장에 손을 올렸다. 무기고의 천장에는 흙이 있고 또 그 위에 눈이 가득 쌓여있었기에 그가 천장을 아래로 누르자, 눈이 움푹 파였다.

그의 억척스런 힘에 의해 무기고는 심하게 진동하며 땅속으로 들어갔다. 무기고 아랫부분은 원래 빈공간이었기에 무기고는 깔끔하게 땅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그 자리에는 손 모양으로 파여있는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기고가 고장났는지, 연동된 판이 고장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 아무도 이 무기고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그는 외관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봉을 들고 '설계자'를 찾으러 떠났다.

-

설계자는 어디있지... 설계자는 나에게 알람이 울리도록 설계된 플루토늄 팬던트를 주고는 알람이 울릴때까지 가만히 있으라 하고 가버렸다. 한참동안 눈에 맞고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으며 생각하기를 포기했는데 그 뒤로 7300년이나 지나버렸으니 설계자를 찾는건 어려운 일이 될것임이 분명하다.

주변에는 동물 한마리 조차 보이지 않는다. 너무 추워서 식물 하나 자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 바다가 있다면 모를까 이래서야 동물이 있을 턱이 없다. 어딜 가나 눈이 내렸고, 발은 푹푹 빠졌다.

'뛰어가야지. 걸어가서 좋을게 없다.'

-

나침반이 남쪽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참을 뛰어갔다. 얼음에서 나온지 4일쯤 되는것 같았다. 그렇게 오래 걸은 보람이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았고, 바닥은 눈이 얼어서 단단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결 뛰기 편해져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오두막집이 보였다.

오두막집 창문에서 붉은 빛이 새어나왔다. 안에 사람이 살고있는듯 했다. 나는 이곳을 너무나도 모른다.

'저 집주인에게 설명이라도 들으면 무언가 계획이라도 생기겠지.'

그 집으로 가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서 멈칫했다. 집주인이랑 대화할 명분이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동물을 잡아서 집주인에게 주고 대화를 하기로 마믐먹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에 오는 4일동안, 몇몇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곰이라던가 늑대라던가... 7300년 전에는 이곳에 땅이 없고, 빙하만이 가득했다. 무슨 지각변동 같은것이 일어나서 북극에 대륙이 생긴것임이 분명했다.

무기고에서부터 직선으로 걸었기에 바다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북극곰이 있는걸로 보아 인근에 바다가 있는듯 했다. 물론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늑대든 북극곰이든 뭐든 잡아야했다.

한참을 걷자 멀리 떨어진곳에 늑대 한마리가 보였다.늑대는 먹잇감을 찾고있는듯 했다. 거리는 약 1.2km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늑대 크기가 왜이래? 거리를 잘못쟀나?'

늑대가 좀... 내가 알던것과 달랐다. 좀더 크기가 컸다. 거리를 잘못쟀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주변 풍경이 휙휙 지나가고 금방 늑대 앞에 노착할 수 있었다. 늑대는 내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놀란듯, 몸을 낮추고 나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나는 늑대가 달려들기 전에 먼저 땅을 박차고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봉을 휘둘러 늑대의 머리를 내려쳤다. 늑대는 반응속도가 그리 좋지 않은듯, 방금 그 몸을 낮춘 자세 그대로 즉사했다.

전에 알던 늑대보다 왜인지 무게가 2배 더 나가는 늑대를 짊어지고 그때 본 그 집을 향해 걸어갔다. 나침반이 있었기에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

그때 그 오두막집이 보였다. 여전히 붉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외엔 특이점이 없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있다는 점이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다.

'고기도 있으니까 대화할 명분은 있겠지. 겸사겸사 사회 구도같은것도 물어봐야겠어.'

집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리자, 누가 깜짝 놀라는 목소리와 함께 소녀가 창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자, 창을 나에게 빼들었다.

소녀는 금색의 장발머리를 갖고있었는대, 왜인지 늑대같은 귀가 달려있었고, 꼬리가 있었다. 그 소녀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어이 잠깐. 난 해칠생각이 없어. 그저 대화를 나누고싶을 뿐이야.

"■■■ ■■■■?"

소녀는 여전히 경계심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어가 안통하는듯 했다.

'7300년이나 지났으니 언어가 달라질수는 있지만... 귀는 왜 늑대처럼 변한거지? 그런식으로 자연선택될정도로 극단적인 위협이 있었던걸까?'

"이런... 말이 안통해..."

"■■■ ■■■■ ■■■■■■■■■..."

소녀에게 매일매일 고기를 주면서 친해지고 언어를 배우는것도 좋은 방법이겠으나, 그럴수는 없었다. 언어를 배우려면 오랜 시간 같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가진 팬던트 안에는 플루토늄이 들어있다. 필히 이 소녀는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어갈것이다.

'크윽... 그치만...! 루안짱은 팬던트를 버릴 순 없어! 그건... 설계자가 준 유일한 선물이란 말이야!'

내 이름은 루안. 설계자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뛰어난 존재이다. 설계자를 볼 수 없다니... 이 루안짱은 슬퍼서 눈물이 날것같다.

"설계자 이 나쁜자식! 따...딱히 너를 위해서 그러는건 아니지만 찾으러갈거야!"

소녀는 내가 갑자기 울부짖자 당황한듯 뭐라 말을 했다.

"■■, ■■ ■■■■ ■■■■■?"

이 이상 있다가는 설계자 짜응이 준 팬던트가 소녀를 피폭시킬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저 멀리 뛰어갔다.

"우... 설계자짱... 어디에 있는거야... 흑흑"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설계자와 함께하던 12명의 지도자들을 떠올렸다. 농업,공업,언론,정보 등등... 열두 분야의 지도자들은 그 당시의 문명 수준을 매우 빠르게 향상시켰다. 그중 의학 지도자는 그 어떤 상태의 환자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설계자짱이 태초의 신과 싸우러 갔을때, 그들 지도자들은 설계자를 도와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패색이 짙어지자, 지도자들은 태초의 신이 찾을 수 없도록 세계 곳곳에 숨어서 스스로를 봉인시켰다.

설계자짱이 스스로를 봉인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태초의 신에게 죽임을 당했을수도 있고 멀리 도망갔을수도 있고 지도자들처럼 어딘가에 숨어서 스스로를 봉인했을수도 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설계자짱을 찾아내자.

지도자들의 위치는 알고있기에 의학지도자를 찾아서 내 주변 사람들이 방사능에 피폭되어도 살 수 있도록 해야했다. 의학 지도자는 유전자 수준의 손상도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 지도자는 북부의 설산 깊은곳에 스스로를 봉인했었지... 어차피 설계자짱을 구하려면 지도자들을 다 깨우는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래. 가자."

-

의학 지도자를 찾는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지도도 없었을 뿐더러 대규모 지각변동으로 인해 의학 지도자가 봉인된 산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침반만 들고 3달을 헤맨 끝에 의학 지도자가 봉인된 산과 비슷하게 생긴 산을 찾아냈고, 그 산을 오르며 수천번 벽을 두드리니 벽이 무너져내리며 동굴이 나왔던 것이다.

동굴 안에 들어가자 스위치가 보였고, 스위치를 누르자 조명에 의해 동굴 안이 밝게 빛났다.

"좋아! 이제 곧 의학 지도자를 깨울 수 있게됐어! 설계자짱... 내가 꼭 모든 지도자를 깨워서 찾아줄게... 크흑."

동굴 안을 좀더 걸어가자, 하얀색의 수정 안에서 눈을 감고 봉인되어있는 의학 지도자를 볼 수 있었다. 수정은 푸른 막으로 감싸져 있었는데,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마법과 과학을 적절히 융합해서 만든  패드에 암호를 입력해서 그 푸른 막을 없애야 했다.

"그러니까... 그때 설계자짱이 입력한 암호가 472097...!"

패드에 암호를 입력하자 조명이 잠깐 깜박거리더니 수정을 감싸던 푸른 막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수정을 봉으로 내리쳤다.

큰 충격음과 함께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고, 수정에는 큰 금이 가있었다. 수정 뒷편의 바위벽은 완전히 박살나서 무너져내렸다.

"음... 수정이 이렇게 단단한건 예상 외인데..."

나는 다시 봉을 휘둘러서 수정을 내리쳤고, 동굴은 다시 흔들리며 천장에서 돌덩이들이 떨어졌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수정이 깨져서 그 안에 있던 의학 지도자의 몸이 내 쪽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의학 지도자를 두 순으로 잡아내고 잠시 가만히 있자, 의학 지도자가 눈을 떴다.

"아...? 루안?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야?"

"너가 봉인되고나서 7300년정도 지났다. 자세히 얼마나 지난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자 의학 지도자는 옷에 달라붙은 수정조각을 툭툭 털어내고 말했다.

"근데 그 팬던트는 뭐야? 왜 방사선이 나오고있는거같지?"

"설계자짱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그러자 의학 지도자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버려. 방사능덩어리를 도대체 왜 들고다니는거야?"

"크흑...! 의학 지도자 나빠!"

의학 지도자는 다가와서 팬던트를 가져가더니 동굴 밖을 향해 던졌다.

"안돼!"

나는 서둘러 뛰어가서 날아가던 팬던트를 잡아냈다.

"의학지도자...! 어떻게 설계자짱이 준 팬던트를 버리려고 할수가 있어? 으..."

그러자 의학 지도자는 내 말을 들은체도 안하며 플루토늄 팬던트에 의해 피폭되어 손상된 자신의 유전자를 마법으로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