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창문 옆의 싸구려 화분이 바닥에 떨어졌다. 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도기질로 된 큼지막한 파편들을 튀겼다. 파편들은 주변의 한 여학생 다리를 깊게 훑으며 지나갔다. 파편이 지나간 상처에는 바닥까지 피투성이로 만들 정도의 피가 솟구쳤다. 그 광경을 본 화분을 떨어뜨린 여학생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했다. 표정도 당장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미, 민아야! 괜찮아?"

"걱정 마. 지혈만 하면 되니까 사람 좀 불러줄래?"


무서울 정도로 피가 나는데도 민아라 불린 여학생의 태도는 담담했다. 표정변화도 없이 피가 흐르는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한 채 사람들이 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학생들을 담임선생이 제지했다. 보건 선생은 순식간에 그녀의 다리를 지혈했고 구급차도 불렀다. 오지랖은 덤이었다.

"피가 많이 나서 지혈대를 쓸 건데, 좀 아플 거야."


피가 많이 난다는 보건 선생의 말에 민아는 운이 좋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에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귀찮아질 거란 생각에 조용히 정신을 잃은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흘긋 상처를 보니 종아리 부근이었다. 종아리는 지혈대로 출혈이 잦아들게 뻔했다. 기대는 접어야 했다.


'허벅지 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민아는 계속 정신을 잃은 척 누워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구급 대원들이 보건 선생과 민아를 태우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민아의 모습을 보고 화분을 깨뜨린 여학생이 그제야 펑펑 울었다. 반면 민아는 조용히 잠을 청했다. 그마저도 여의치는 않았다. 주변이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민아의 상처는 의료사고 없이 잘 봉합됐다. 빠져나간 피도 전부 수혈됐다. 허겁지겁 달려온 민아의 엄마는 마음을 추스르며 민아가 누워있는 병상 옆에 걸터앉았다. 링거의 수액이 출렁거렸다.


"약속을 어기진 않을 거야. 이건 그냥 단순한 사고야. 아직 한 달이나 남았잖아?"


"제발 다시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약속은 약속이야. 18년하고도 335일이나 참았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이자 당신에게 끼친 피해에 관한 보상이야."


민아의 말을 듣고 그녀의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민아의 마음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 바꿀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랬으니까 누구보다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