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대전 지하철: https://arca.live/b/writingnovel/860085

#2 | 정거장 가락국수: https://arca.live/b/writingnovel/884826


 오늘도 빵집은 줄이 길다. 빨리 오면 줄이 짧을 때도 가끔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게 밖에서 줄을 서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사실 줄을 안 서도 가게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러면 그 유명한 빵, 튀김소보로(줄여서 튀소)를 사지 못하니까.

 내가 줄은 선 이 곳은 성심당 대전역점이다.

 본점도 마찬가지지만, 대전에 들른 김에 튀소를 사서 가려는 사람이 워낙 많았는지 그런 사람들이 서는 줄이 따로 있다. 빵집의 이쪽 문의 오른쪽 반은 튀소 줄이 차지하고 있고, 다른 빵을 사려는 사람들은 왼쪽 반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나도 튀소를 사야 되니 자연스레 오른쪽으로 쭉 삐져나온 줄에 선다. 반대편에는 아무개 열차가 곧 오는 시간을 쭉 늘어놓은 전광판이 보인다.

 줄을 선 사람들의 면면은 언제나 다양했다. 울산에 있는 어느 대학교의 점퍼를 입은 사람도 보인다. 누군지 아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다들 대전이 아닌 다른 곳에 집이 있을 것이다. 대전에 살면 굳이 역까지 오지 않아도 은행동이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롯데백화점이나, 정 안 되면 대덕컨벤션센터인가 뭔가 하는 데서도 튀소를 살 수 있으니까.

 기차 시간표를 알려주는 전광판만 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니, 반대편에 빵집에서 내놓은 전시물이 보인다. 예전에 역에 있었다던 목재 창고에 대한 내용과, 뭔가를 틀고 있는 옛날 텔레비전. 그리고 밀가루 포대 비슷한 것들이 보였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매장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따뜻한 공기가 몸을 덥힌다. 그리고 ‘빵집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정작 T 프랜차이즈 같은 데서는 맡을 수 없는 그런 신선하고 고소한 냄새. 이제 좀만 있으면 빵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카드를 꺼낸다. 갑자기 앞으로 빵을 가득 실은 카트가 지나가길래 몸을 기울여 비켜준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3번 세트에 튀소구마 하나요.”

 3번 세트. 튀소 세 개에 (판타롱) 부추빵 세 개. 가족들이 부추빵을 되게 좋아하는지라 항상 이 세트로 시키게 된다. 튀소구마는 튀김소보로에 팥소 대신 고구마 소를 넣은 것으로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만 이천사백 원입니다.”

 세트를 시키면 상자 값 천 원을 더 받는다.

 그리고 익숙한 종이가방이 손에 들어왔다. 근데 이번에도 세트 상자는 뚜껑이 열려 있어서, 가게 밖으로 나와 (다시 찬바람이 느껴진다) 상자를 눌러 닫았다.

 종이가방엔 ‘대전 빵문의 해’라고 적혀 있는 기차가 그려져 있다. ‘방’을 ‘빵’으로 바꿔버렸다. 덤으로 행선지는 ‘출발<->대전’.

 계단을 올라선다. 계단 옆면에는 시설공단과 철도공사를 통합하라는 노조의 문구가 쓰였다. 음… 통합해서 좋은 게 있으려나. 이 문제에 관해서 더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서울·인천공항 방면’, ‘부산·마산·포항 방면’ 등등의 간판들이 보인다. 나는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오늘도 사람은 많은데 앉을 자리는 몇 안 보이는 대전역…이지만 다행히도 앉을 자리를 찾았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바닥에 앉기 십상인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 잠깐 핸드폰을 꺼내 아무거나 읽는다.

-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나고 -

 “17시 53분에, 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 1711 열차를 이용하실 고객께서는 타는 곳 7번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말씀 드립니다. 17시 53분에, 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 1711 열차를 이용하실 고객께서는 타는 곳 7번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려…는데 손이 갑자기 허전하다. 아차, 성심당 가방을 놓고 갈 뻔했다. 주섬주섬 가방을 다시 들고 걸어나간다. 편의점에 들러 우유를 한 팩 산다.

 ‘7·8 청주·제천·영주 방면”

 이 승강장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바로 열차 시간표다. 경부선 상행이나 하행은 원체 열차가 많다 보니 적어넣을 수 없지만, 충북선은 열차가 적으니 이런 걸 다 적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는 올라오는 것만 있어서 계단으로 내려간다.

 어김없이 ‘순천향대 열차 강의실’이 보인다. 18시 44분에 제천으로 출발하는 누리로 열차다. 누리로가 순천향대 근처에도 들어가서 랩핑해 놓은 거 같긴 한데 충북선 열차에서도 굳이 저걸 봐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내가 탈 무궁화호 열차가 보인다.

 잠시 자리에 앉는다. 저 멀리, 부산으로 가는 KTX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문득 가방 속에 손을 넣어 튀소구마를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처음 이에 닿은 부분은 튀김옷이라 바삭하지만, 그 다음은 부드러운 빵이고, 그 안에는 달콤한 고구마소가 느껴진다. 눈으로 보니 노란 고구마소가 안에 가득 차 있다. 빵을 먹다 보니 물 비슷한 게 마시고 싶어 우유를 까서 마신다.

 이제 기차에 올라선다. 열차 밖으로 빼꼼 튀어나온 철판에 한 번 발을 디디고, 그 다음은 열차 안에 있는 계단에 발을 디디고, 몇 단 더 올라간 뒤, 옆에 있는 문을 열어 객차 안으로 들어간다. 자리를 찾아서, 성심당 종이가방을 위에 올려놓고, 책가방도 어깨에서 빼서 올려놓는다. 그리고 앞의 그물망에 (가방 옆에 꽂혀 있던) 물병을 꽂아넣는다.

 “우리 열차는 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입니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가지고 계신 승차권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한 명이 급하게 뛰어내려온다. (다행히 열차에 무사히 탄 모양이다.) 

 17시 53분, 열차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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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오랜만에 올려서 다 까먹으셨을 것 같지만... 2월 안에 써내겠다고 결심해서 급하게 쓴 3편입니다.

덤으로, 소재가 되는 '집 가는 기차'를 마지막으로 탄 지 1달이 넘어가는 상태라 4편도 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