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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용준의 핸드폰을 찾아준 다음 날이었다. 

어제 마주쳤던 일진무리 중 한 명이 승연의 책상 옆을 지나간다. 그러면서 책상을 '툭' 건드린다. 

책상에 걸터놓은 승연의 필통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에 있던 필기구가 떼구르르 굴러나오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승연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필통과 흩어진 필기구를 찾아 주워담기 시작한다.

책상을 친 일진은 의자 밀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다.


승연의 손이 바닥에 떨어진 샤프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일진이 다가와 샤프를 발로 짓눌렀다. 샤프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승연은 그대로 고개를 올려 일진을 쳐다봤다. 일진과 승연의 눈이 마주친다.


"미안. 못봤다."


일진은 씨익 웃으며 사과를 남겼다. 그러나 지나가는 누가 보아도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승연은 한마디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나 외쳐질 뿐,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나오진 않았다.

그는 일진이 발을 치우고 돌아가자 두동강 난 샤프를 조심스럽게 수습하였다.


"저기, 괜찮아?"


승연이 자리로 돌아오자 용준이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는다.

옛날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었나, 승연은 조금 전 일이 용준을 도와준 것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용준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묵묵히 필통을 정리하며 용준이 자신에게 말 걸지 않기를 빌었다.

지금 상태에서 그의 목소리를 더 들으면 괜히 화만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용준은 군말없이 필기구만 챙기는 승연이 더 걱정되었다.

그는 승연의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승연아,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승연이 까칠하게 나오자 용준은 흠칫 놀라며 그에게 미안하다 사과한다. 승연은 필통을 책가방에 힘주어 넣으며 괜히 화풀이를 한다.

용준은 그 모습을 보며 자기가 더 잘못한 거 마냥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만난 일진무리가 승연의 책상을 치지도 않았다. 필통이 바닥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승연이 필기구를 주워 담는 일도 없었고 일진이 승연의 샤프를 발로 밟아 두동강 내는 일도 없었다.

승연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용준에게 괜히 화를 내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설령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가 용준에게 화를 내는 일만은 없었을 것이다.


승연은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의 책상을 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필통을 떨어트리기 쉽게 만들기로 한다.

그는 필통을 책상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터놓는다.


용준은 조금 전부터 무관심한 척하면서 승연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치는 승연은 오늘따라 더욱 이상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시원찮았다. 스마트폰이나 벽걸이 시계로 시간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가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멍하니 일진무리를 바라보곤 했다. 


용준은 승연이 어제 자신을 도운 것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인가 생각이라도 들었다. 아니, 생긴 것 같았다.

그는 승연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용준은 승연을 부르며 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승연아."


승연은 용준이 자신을 부르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팔꿈치로 책상을 건드린다. 책상에 위태롭게 올려져있던 필통이 미세한 반동을 못이기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승연은 필기구가 흩어지는 소리를 듣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용준도 고개를 밖으로 살짝 내밀며 바닥에 떨어진 필통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필기구를 목격한다.


"이게 여기서 떨어지네."


승연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나온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필기구를 줍기 시작한다.

용준도 승연을 돕겠다고 따라나와 그의 필기구를 같이 주워준다.

흩어져있던 필기구는 하나, 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샤프 하나가 끝까지 보이지 않았다.

승연은 자신의 분단과 옆분단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샤프 하나가 보이질 않네."


그리고 자신과 반대방향인 교탁 쪽을 살펴보고 있는 용준에게 샤프를 봤는지 묻는다.

용준은 "찾는 중이야." 대답하다가 교탁 맞은 편 책상 끝에 들어가있는 샤프를 발견한다. 

그는 자세를 낮춰 승연의 샤프를 집는다. 그리고 뒤돌아 승연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승연은 용준에게 시선을 돌리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못보고 그대로 발을 헛디딛으며 어깨와 등을 부딪친다.


"시발···."


승연과 부딪힌 학생이 짧게 욕을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