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이 왔다는 전갈을 쓰고 나서 한 번 써봤던 프리퀄 소설입니다. 원래는 전갈이 왔다는 전갈의 배경이 되는 부분을 가운데에 넣고 길게 설명하는 식으로 쓰려고 했는데, 원작은 코미디인데 프리퀄이 고어물이 되어버려서 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개그 파트만 다시 써서 따로 올린게 예전에 올린 <전갈이 왔다는 전갈>입니다.

 

퇴고도 안하고 올리는 거라, 약간 뭔가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천이 아니라 부산이라고 써있는데, 초기설정은 부산이어서 그렇습니다. 이 외에 다른 설정들도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갈이 왔다는 전갈> 보기https://arca.live/b/writingnovel/18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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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땀방울이 절로 떨어져내린다. 다리가 빠질 것 같이 아파오고 숨이 가슴턱까지 차오른다. 부산에서부터 같이 달려온 짚신이 땅바닥을 힘차게 밟고 뛰어나간다. 입고있는 관복은 바람에 휘날려 펄럭거리고 짚신은 다 헤질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든다고 해도 빨리 임금님께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 
 
저 멀리 임금님께서 사용하시는 집무실이 보인다. 드디어 이 소식을 전할 수 있겠구나 하고 속으로 내심 기뻤다. 앞에서 왜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며 뛰느냐고 묻는 궁궐 사람의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무실로 달려갔다. 
 
임금님의 집무실에 다다라 인정사정없이 눈 앞에 보이는 미닫이를 세차게 열었다. 드디어 집무실에 도착했다.
 
"여봐라, 무엄하도다! 이 신성한 왕의 방에서 뭐 하는 짓이느냐!"
 
내가 너무 물불 안 가리고 열었는지 앞에서 임금님이 호통을 친다. 나는 최대한 진정할 수 있도록 숨을 가다듬으며 이곳이 오기까지의 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보았다.
 
*
때는 일주일 전 부산.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부산에서 관직을 맡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가로이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일상은 말그대로 하루아침에 깨져버렸다.
 
나는 그 일이 있었을 때 궁에 가기 위해 막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작아서 눈치를 채기는 어려웠지만 자세히 들으면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별 일 없었겠지 하고 갈 길을 재촉했으나 그 괴상한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것이었다. 나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오는 해안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곳에는 거대하고 흉측한 것이 저 멀리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요상한 것은 온 몸이 새까만 색깔로 뒤덮여있었고 방금 바다에서 나왔는지 몸에 물기가 있었다. 두 손이 그 팔보다 거대했으며, 자신의 몸집마냥 검은 꼬리가 달려있었다. 몸집은 또 아주 거대해 보통 사람의 5배는 가뿐히 넘어버릴 것만 같았다. 
 
옆에 지나가던 엿장수가 내가 어디를 보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 그 괴물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그 엿장수는 건강해보였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자신의 가족을 부르며 도망쳤다.
 
가족.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빨래를 하고 있을 내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부모님이 생각났다. 나도 그 엿장수처럼 원래 궐에 가려던 것을 잊어버린 채 내 집으로 뛰어갔다.
 
방문을 거세게 열었다. 아내는 손님이 왔나 싶어 주섬주섬 일어나다가 나를 보더니 내가 이 시간에 왜 왔냐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내와 가족들을 빨리 구출해내기 위해 서둘러 말했다.
 
"저기, 내가 궐에 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바닷가 쪽을 바라봤더니 무슨 큼지막한 괴물이 서있었어! 그러니까 빨리 가족들을 데리고... "
"그게 무슨 말이죠? 그리고, 그 괴물 이야기는 또 뭐요?"
 
아내가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아, 아무튼 큼지막하고 새까만 괴물이 오고 있다니까! 키가 내 5배는 훌쩍 넘는다고! 그게 여기에 오면 우리 다 죽을지도 몰라!"
 
아내가 이내 충격에 휩싸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리가 풀렸다. 나는 아내를 이 알 수 없는 위기에서 꺼내기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손을 잡고 일으키는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오느라 미처 닫지 못했던 창호문 밖에서 활을 들고 뛰어가는 포졸들의 무리가 보였다. 아마 그 괴물이 여기까지 도착했으리라.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아내가 일어서자마자 밖으로 잡아 끌면서 아이들과 부모님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7살도 안 된 어린아이 두 명이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신이 나서 명랑하게 대답하고는 내 앞으로 총총 뛰어왔다. 
 
"네, 아버지!"
"얘들아! 당장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를 데리고 빨리 바닷가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가라!"
 
나는 아이들을 보며 최대한 혼신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왜요?"
 
아이들이 아까와 다름없이 명랑하게 물었다. 그것을 듣고 더 다급해진 나는 다시 소리쳤다.
 
"그런 거 물어볼 시간 없다! 저기 문 밖에 포졸들 보이지? 그거랑 관련 있는 일이다. 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을 떠나라!"
 
아이들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수긍한다는 듯이 대답하며 총총 뛰어갔다. 어서 빨리 피난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이들이 간 것을 대충 확인하고 나는 아내의 손을 꽉 잡고 달렸다. 아내는 갑자기 뛰어서 놀란 눈치이다. 
 
뒤에서 큼지막한 소리와 함께 장군이 큰북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큰 북을 울리는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는 동안 화살이 날아가서 괴물의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러한 방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천지를 뒤덮는 쿵쿵 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남자들의 비명소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큰북 소리는 더 빨라졌으며 집이 부서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어린아이의 비명소리가 났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우리 첫째인 것 같았다. 첫째는 계속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아내의 손목을 잡은 왼손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뒤를 바라보니 아내가 내 손을 뿌리치고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으로 가고있었다. 
 
내가 아무리 뒤에서 설득해봐도 무용지물이었다. 아내는 내 행동이 비도덕적으로 보일 정도로 오로지 자신의 아들딸을 위해 뛰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더욱 가까워져 내 귀를 울렸다. 그러더니 이내 아내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조심해!"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잠시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알아챌 틈도 없이 그 전갈같이 생긴 거대한 괴물의 검은 꼬리가 아내의 복부를 관통했다. 피가 쏟아져나오는 아내의 죽음에 나는 온몸에 전율이 돌고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어디엔가 몸을 피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나는 나라도 살고 보자는 마음에 옆에 있던 주막으로 달려가 숨었다. 그 거대한 괴물이 다가오는 소리가 전보다 더 거대해 진 것 같았다. 그 괴물이 내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불안감에 나는 한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저쪽으로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서 보인 것은 내 앞으로 집이 2채나 처참히 파괴되어있었고 내가 있는 곳에서 이불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바닥이 부서져 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거대한 괴물이 지나갔다는 안도감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그 괴물은 생긴 게 꼭 전갈같이 생겼다. 꼬리의 모양이나 온몸의 빛깔도 전갈과 꼭 닮았다. 
 
산산조각 난 집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내 가족. 내 아내. 내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
 
충격에 빠진 채 일어나 터덜터덜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보았다. 예상대로 집은 부서져있었고 아까의 명랑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처참하게 붉은 선혈을 흘리며 시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붉게 물든 시체가 부서진 기왓장과 나무조각 사이에 파묻혀있었다. 나는 감히 우리 부모님을 꺼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시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아있었다가 생각했다. 여기만 해도 피해가 이만큼인데 다른 곳은 어떻겠는가. 이를 당장 조정에 알려야 한다. 
 
이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급하게 정신없이 한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양이 얼마나 먼 지도 망각한 채로. 달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아까 본 아내의 주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나오느라 정돈되지 않은 치맛주름이 흘러나온 피에 소름끼치게 물들어있었다.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찌하여 이 사태가 닥쳐왔다는 것인가. 어찌하여 신은 이런 시련을 나에게 내렸을까. 어찌하면 이를 되돌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