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것은 무엇일까.

라고는 하지만 사실 쓸 말이 없었다.

 

황량한 시골에 아파트 한 채...

소설에선 많이들 갈등 거리로 쓰지만 현실에선 그런 걸 갈등 거리로 삼지 않는다.

술 먹으면서 안주 거리로 씹을 수는 있지만.

 

황량한 창소챈에 이상한 글 두 편...

소설에선 많이들 갈등 거리로 삼고 현실에선 그럴 리 없지만 사이트의 사람들은 충분히 이상하다.

약간 튀는 행동 했다고 마녀 사냥 하는 이들이 인터넷에 영혼을 두고 나온 사람들인데 인터넷에 인생을 버린 사람들이 그렇지 아니할 리 없잖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에 낙원을 세우고, 실제로 있는 장소인 것마냥 소속감을 느낀다.

그러며 자신들의 인터넷 낙원을 파괴하면 용서와 자비란 걸 모른 채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는 이의 인생을 파괴한다.

내가 무척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인터넷에 영혼을 두었었던 사람이다.

 

그가 어느덧 외로울 때였다.

취미로만 삼던 것이 유일하다.

그의 방은 온갖 잡동사니로 한가득 쌓여있었지만, 그는 공허하다고 느낀다.

그는 이미 무엇을 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가 살려는 욕구를 잃었다고 자가 판단을 하고 취미를 하기만 한다.

그의 마지막 양심이 그에게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마지막 보루를 잃게 하였다.

취미는 퍼거다.

 

전부 똑같은 취미를 가지고 똑같은 행위를 하며, 마치 자신이 보통 사람인 것마냥 행동한다.

그는 그것을 잘 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이냐 묻는 상황을 공상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언제 만들어져서 어떤 기술을 사용했고, 이 다음 후속작으로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며 현재 대한민국에선 무엇과 무엇으로 도입된 적이 있습니다.'

전부 나무위키다.

 

그는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본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바란다.

그는 다른 그에게로 가 그가 아는 걸 말한다.

그도 그에게로 그가 아는 걸 연설한다.

그가 그가 되고 그가 그가 되어 모든 그가 하나가 되면 그는 그가 말할 그가 없기에 홀로 혼잣말을 한다.

'S차다 나이스!'

 

그가 집에서 이야기를 한다.

어미도 아비도 어디론가 가고 홀로 이야기한다.

더 이상 목이 말라 말이 막히면 손으로 이야기한다.

모두 손으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

아무도 답변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욕구만이 가득차 있다.

그는 욕심의 덩어리다.

그는 들어주어야만 하는 위치에 있고 싶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사시나무는 떤다.

 

그러나 그는 양이다.

늑대는 시끄럽게 우는 양을 문다.

그는 피가 나서 아팠다.

양들이 그를 보고 웃는다.

비웃고 쳐웃는다.

양이 양을 보고 도리어 웃는다.

지나가던 양이 그걸 보고 웃는다.

양들은 두 양을 린치한다.

 

퍼거인가.

 

나는 그를 다시 본다.

그는 나의 거울이다.

나도 그의 거울일 테다.

그가 다시 취미를 했으면 좋은가.

그는 환상이 없다.

순수한 쾌락이 그를 움직일 뿐이다.

 

그는 당신보다 퍼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