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북한의 영변 핵실험장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해 북한의 모든 인민이 좀비가 된다. 좀비는 1주일간 잠복기를 가지는데, 그 1주일동안 지능을 유지하며 좀비에 유리하게 행동한다. 이에 감염된 김정은은 일부러 서울 코엑스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바이러스를 퍼뜨렸고, 그 중 회담에서 좀비에 물린 MBC와 중앙일보 기자를 시작으로는 상암동에 좀비들이 출몰한다.
YTN 소속 한천석 대리(주인공,기자)와 김진우 대리(카메라맨)는 개성공단으로 취재를 갔다가 좀비를 피해 도망친 행렬(유형준 통일부장관 수행비서, 현지원 주차장 아르바이트, 석대식 (주)나신 트럭기사)과 함께 본사가 있는 상암동으로 도망치지만, 하필 상암동은 이미 좀비사태가 시작되어 겨우 YTN 본사로 도망간다. 그러나 잠복기 좀비인 YTN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며 안전지대는 정부가 구하러온다는 건물 옥상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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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비서가 쓰러진 경비원의 머리에 태블릿PC를 휘둘렀다. 경비원의 머리에서 아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린 유 비서의 아이패드의 사과 로고가 붉게 익어갔다.

그 경비원이 처치되었다. 옥상으로 가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 가지고 나온 무기는 회사에서 대충 챙긴 내 키보드랑 석 기사님의 책생용 스탠드밖에 없었다. 여기는 맨 꼭대기 18층이니까 한 층만 더 가면...

"유 비서! 빨리 와!"
경비원을 처치한 유 비서가 고통에 젖어있었다. 하기야 아무리 좀비라지만 사람을 죽였으니 심리적 타격이 어마무시할 것이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그로테스크했다. 경비원 좀비의 피가 유 비서를 거의 적시다시피 했고, 태블릿은 때리는 과정에서 부서지고 완전히 피로 흥건해서 저게 태블릿인지 핏덩이인지 구별조차 안 갈 지경이었다.

"일단 좀비 못 들어오게 저 문부터 닫자."
"어."
유 비서가 슬금슬금 걸어가며 문을 닫았다. 손이 부서진 태블릿에 찢겨 상처로 가득했다.

"자, 이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돼. 저쪽 비상구까지만 가면 돼!"
재난안내문자에 따르면 위로 올라가면 구조대가 온다고 했다. 그나저나 진짜 우리 말고 아무도 안 왔다고? 이 넓은 건물에서 살아남은 게 딱 우리 다섯 명? 아무리 잠복기인 경비원이 있다고 해도 이건 미친 재난이었다. 괜히 공중파 방송화면이 전부 다 마비되고 MBC 주조정실에서 뉴스로 유서를 쏴버리는 게 아니었다고 실감했다.

그때였다.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굉장히 의외의 인물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강신호 부장님?"
"어, 한 대리? 어떻게 왔어?"
"부장님, 살아계셨군요!"
"응, 그렇지. 나 살아있지. 근데 말이야, 넌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부장님,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 지 모르겠어요.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 구조 복잡하다는 방송국이 이렇게 처첨하게... 12층은 문 열려서 다 죽었고 18층은 엘리베이터 타고 온 좀비한테 죽었고, 8층 라디오실도 전멸했고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아예 다..."
"아니, 그거 말고. 네가 왜 살아있냐고."
"네?"
"설마 경비원이 당한 거야?"
"네?"
섬뜩했다. 본능이 나에게 도망가라고 시켰다. 아니면 맞서 싸우거나.

행동은 강신호 부장님이 빨랐다. 어디서 들고 왔는 지는 모르겠는데 들고 있던 슬레이트로 우리를 가격하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석 기사님이 나보다 더 빨라서 책상용 스탠드로 어떻게든 막아냈다. 슬레이트가 금이 갔고, 책상용 스탠드의 유리 조각이 산산조각나 바닥에 널브러졌다. 저길 맨손으로 짚으면 바로 죽을 것 같았다.
지금 보니까 저기 어디 뉴스스튜디오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슬레이트로 사람을 죽인다니. 자세히 보니 슬레이트에 이미 피가 흥건해있었다. 장면의 시작을 알리는 게 아닌 임종의 시작을 알리는 슬레이트였다.
강신호 부장님은 어느새 잠복기 좀비가 되어 있었다.

"뭐하고 있어! 공격해야지!"
"아, 네!"
나도 키보드를 휘둘렀다. 그런데 너무 무거워서 느렸다. 강 부장님이 움직임을 예상하고 슬레이트로 쳐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느려."
대체 슬레이트 하나 가지고 어떻게 그런 무쌍을 찍을 수 있을 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부장님의 손기술은 매우 현란했다. 슬레이트가 아무리 가볍다지만 그렇다고 휘두르기에 좋은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좀비에 물리면 저렇게까지 피지컬 능력이 상승해버리는 건가 싶었다.
반면에 석 기사님도 그 이상한 테이블 스탠드로 어떻게든 싸우는 걸 보고 솔직히 감탄했다. 다행히 유리부분을 제외하면 단단한 플라스틱 재질이었기에 휘두르는 효과가 극에 달했다.

그때 탁. 강 부장님의 공격이 처음 먹혀들었다. 공격 대상은... 나였다. 머리에 탁 소리가 나더니 어질어질했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은 듯 했다. 아니, 평시에는 그게 더 문제있는 게 아닌가? 뇌출혈인가 내출혈인가 그거 아니야? ㅈ됐네?

내가 리타이어되자 이제 강 부장님과 석 기사님의 1대1 싸움이 되었다. 이 난리통에 나이는 기억 안 나지만 멀리서 보니 중년답게 움직임이 삐그덕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전력이라지만 신체의 한계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현지원이 언제 왔는지 뒤에서 강 부장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가격한 무기는 지금 봐서는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이스샷이었다.
강 부장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행이었다.
"현지원! 나이스 샷!"
"그렇지! 이래야지!"
진짜 걸스캔두애니띵을 보여주며 감탄이 절로 나오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가격한 무기를 자세히 보니... 누군가에 책상 위에 있었던 듯한 철제 탁상시계였다. 살짝 튀어나온 뾰족한 받침대 부분으로 부분으로 찍어누른 것이었다. 슬레이트에 이어 스탠드에 탁상시계라니. 이제 난 책상에 못 앉겠다 싶었다.

현지원이 긴장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머리를 맞은 사람이 막 영화만큼 반격하는 일은 없었다. 실제 사건에서는 한 번만 맞아도 끝이니까.
강 부장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눈이 충혈된다거나 혈관이 부었다던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목 쪽에 살짝 괴사된 듯한 흔적은 있었다. 이게 흔적인 듯 했다.

또다시 그때였다. 이번에는... 김진우? 저긴 또 뭐야? 유 비서가 당했나?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김진우였다. 당장 달려갔다. 저기도 잠복기 좀비가 존재한다는 거야 뭐야?
그렇게 달려가니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뭐에 맞은 듯한 상처와 함께. 목덜미를 자세히 보니 물린 이빨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바라보니 그게 누구인 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설마... 아니야... 진우야...!"
내 가장 친했던 동료. 김진우. 입사동기였는데 이렇게 되다니, 이건 좀 아니잖아. 아니잖아!
순간 멍때리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죽었던 사람은 적어도 나랑 상관없거나 나한테 갑질했던 부장님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진우는...

그런 감상에 젖어 신파극을 펼칠 시간도 없이 옆에서 국어사전이 날아들었다. 아슬아슬하게 간발의 차로 우리를 비껴갔지마는 진우의 죽음을 뒷전으로 놔야 할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던진 사람을 보니 유형준이었다. 그 수행비서. 통일부장관을 파주까지 대피시킨 장본인. 잠깐, 뭐? 유형준? 대체 어떻게?
그러고보니 혈액으로 감염된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까 태블릿으로 공격할 때 손이 부서졌다면. 그래서 손이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경비원 좀비의 피가 흘러들어갔다면. 그랬다면 혈액 감염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매우 충분했다.
"설마 손에 난 상처에 좀비의 피가 스며든 거야?"
"뭐, 그런 것 같네. 그보다도 놀랐어. 이렇게나 빨리 잠복기가 시작되다니."
좀비바이러스의 무서움이 더 실감이 났다. 이래서 이 서울이 그 난리가 나고 있구나.
"그러니까, 그냥 죽어줘."

오른손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몽키스패너를 들고 있었다. 어디 서랍장에서 뒤적이다 발견한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내 무기인 키보드로는 딸려도 너무 딸려보였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했다.
"도망쳐!"
일단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키보드는 아까 부장과의 근접전에서 보았듯 무거워서 효과가 없다. 그러므로 키보드를 대체할 무기를 찾아야 한다.
저 뒤에서 둘이 힘겨워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무래도 무기가 몽키스패너다보니 유 비서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긴 했다.
눈앞 책상 위의 클립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싸구려 중국산으로, 서류 받치라고 만든 용도인데, 마침 단단해서 일단 이걸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클립보드를 들고 유형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내 피지컬은 그를 이기지 못했다. 순식간에 반격당해 어깨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클립보드를 방패삼아 피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건 아파도 너무 아팠다. 경비원이나 부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피지컬이었다.
"아 이 도움 안 되는 놈!"
유 비서가 나를 타격하려고 이쪽으로 접근하는 걸 보자마자 현지원이 와서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더니 유 비서에게 분사했다. 날아오는 안전핀을 보려고 유 비서가 현지원 쪽으로 시선을 옮긴 사이, 현지원이 소화기를 유 비서의 눈에 정확하게 뿌렸다.
"아악! 내 눈!"
이 기회를 석 기사님은 놓치지 않았다. 석 기사는 테이블 스탠드의 남은 유리 부분으로 유 비서를 가격했다. 유리가 또다시 산산조각나더니 그 다음으로 온 스탠드 기둥에 맞아 유리조각이 살에 깊게 박히며 스탠드 기둥의 타격감이 들어왔다.

유 비서가 이내 쓰러졌다. 그리고 석 기사와 현지원이 그런 유 비서를 가격하고 있었다. 유 비서는 계속 발악하고 있었다. 피를 묻히려는 속셈이었다.
"이제 그만... 그러다 감염되요..."
내가 거의 죽어가는 소리와 함께 신음하며 말했다. 그러자 둘이 유 비서에게서 떨어졌다. 유 비서는 이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겨우 끝났다. 강 부장님이, 진우가, 유 비서가 당했다는 걸 다시 곱씹을 시간도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살아야만 했다.

이제 옥상으로 올라가야했다. 옥상으로 가는 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앞으로 몇 명이 더 죽어나갈 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앞으로 가는 게 중요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석 기사와 현지원이 데리고 갔다. 한 쪽에 석 기사. 한 쪽에 현지원. 부축받으면서.
경비원 바로 옆에는 열쇠가 있었다. 김진우가 경비원의 주머니를 뒤져서 꺼내려다가 유 비서에게 당한 것 같았다.
왔던 곳을 되돌아가 옥상 문을 열었다. 이 문만 열려있었어도 적어도 두 명은 더 살아남았을텐데.
일행 다섯 명 중 사망자 둘. 건물 전체에서 생존자 셋. 그 중 한 명은 중상, 두 명은 외부인. 영화에서나 보던 처참한 수치였다.

그때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구세주였다. 이 와중에도 소방청은 제 기능을 너무나도 잘 해내고 있었다. 그 재난영화에서 무능한 정부는 어디갔는지 여기 있는 정부는 매우 강력했다.

"여기에요! 여기!"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저 헬리콥터를 타고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이제 우린 살았어요! 살았다고요!"
"그래..."
"이제 우린 자유야!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요!"
"그런가..."
석대식 트럭기사가 뭔가 힘들어하는 듯 했다. 하긴 그 지옥을 겪었는데 나처럼 안 된게 신기한 거지.
그런데 석대식 트럭기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있잖아. 나 감염된 것 같아."
"네?"
또? 방금 보낸 게 몇 명인데 또?
"그게 무슨..."
"뭔가 기분이 이상해.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 짜릿해. 뭔가 저지를 것만 같아."
"기사님?"
"너희들끼리 먼저 가. 안 그러면 이상해질 지도 모르니까."
석 기사님이 손에 든 스탠드를 버렸다.
"기사님!"
"느껴져.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는 게. 아무래도 좀비겠지. 강한 냄새야."
"..."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트럭기사의 말은 그만큼 결연했다.

석대식 트럭기사님이 나를 슬금슬금 놓더니 뒤로 슬금슬금 갔다. 본인의 최후를 인지한 듯한 걸음걸이였다. 억지로 웃는 미소는 눈물을 가리지 못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석대식 트럭기사님의 마지막 말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언인가 하고 이제 사망플래그가 뜨나 싶었다. 이런 전개는 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나서..."
그 순간 석대식 트럭기사님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감정이 사라지고 냉혹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만 남았다.
"죽여야겠네?"
트럭기사였던 잠복기 좀비가 신발을 벗어 던지려 들었다. 그러나 이내 소방관들이 테이저건에 트럭기사가 무참히 당했다.
뒤이어 김진우도 달려왔다. 그러나 똑같이 테이저건에 진압당했다. 테이저건은 경찰들만 쓰는 줄 알았는데 소방관들에게도 허가됐구나 싶었다.

"자, 타시죠!"
그렇게 추후에도 YTN 본사의 생존자는 나 한천석 기자와 개성공단 주차장 아르바이트 현지원 둘뿐이었다고 기록되었다.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소방관이 내 코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래도 머리랑 어깨가 아픈 거에 비하면 약과였다. 현지원도 말없이 진행했다.
"일단 뜨는 걸 보니 음성인 것 같고. 다행이네요. 대피하셔서."
헬리콥터의 밑을 바라보니 상암동은 이미 처참했다. 어느새 YTN 본사는 1층에서 불이 붙고 있었다. 아무래도 벽을 뚫겠다고 유조차를 박다가 터진 것 같았다.
MBC, SBS, YTN, 중앙일보, JTBC, KBS... 이 세상의 사건을 알려야 할 장소는 이 세상의 사건을 가장 먼저 직면한 곳이 되어버렸다. 이곳은 탐사도 논평도 허용되지 않았다. 오로지 리얼다큐 밀착취재 서바이벌만이 있을 뿐.
아수라장이 된 상암동 위로 헬리콥터가 떠다녔다. 저기 SBS 건물에서 몇 명이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아마 많아봤자 10명인가. 저기 KBS는 생각보다 좀 많네. 몇십명은 되겠어.

소방관이 나지막히 말했다.
"진천 인재개발원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로 모시겠습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그런 형식적인 말들을 끝으로 눈이 서서히 감겼다. 거기서는 내 머리랑 어깨나 좀 치료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 눈앞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졸음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