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들! LOB 특별 간담회입니다! 저희는 각계 각층의 여러 전문가들을 모아두고 이번 재앙이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야 할지를 알아보고 같이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와~ 하는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들린다. 이곳은 LOB스튜디오가 맞다. 대한민국의 모든 재앙을 가까스로 비껴간 바로 그 방송국 말이다. 본래 이름없는 케이블이었던 이곳은 어떨결에 브라운관을 독점! 시청률 100%의 호재를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희는 여기에 도합 여덟 분의 전문가들을 모셨습니다. 비록 세계의 많은 곳이 재앙과 멸망에 빠졌을지라도 우리는 답을 찾아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나라의 기업들 중 99%가 말 그대로 사라지고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LOB방송국은 사실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그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선 첫번째로, 잠자리 박사님을 모시겠습니다. 대한민국 이과의 상징!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이신 잠자리박사님! 묻겠습니다. 이 재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사태는 과학자인 저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일들이 상식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문제해결 연구소도 사실상 패닉 상태입니다. 제가 여러가지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물론 여러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여기에 소개해드릴만큼 설득력있는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믿을 수 있을만한 증거들 조차 과학법칙을 부정하는 수준입니다. 말 그대로 저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를테면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집단 성전환 사건은 저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은행나무입니까? 왜 열매가 나지않도록 수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는데 나중에 그것들이 열매를 맺는 암나무로 성별을 전환한다잖아요? 그런데 그것 또 아십니까? 사실 은행나무는 성전환을 하지 않습니다.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시기는 싹이 트고나서 15년쯤 지났을 때입니다. 그렇게 열매없는 기간이 기니 사람들이 수나무로 오해를 하는겁니다. 그러다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숫놈이 암놈이 되었나보다 생각하는거죠. 그러니 은행나무도 하지 않는 성전환을 인간남자가 그것도 대량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한 일들도 일어났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각양각색입니다. 그런대로 버티는 곳도 있지만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비극과 인간성의 하락을 맞이한 곳도 있어요. 하지만 명심해야해요. 멸망사태 이전까지의 건재했던 과학이 지금 시점에서 휴짓조각이 되는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예외들 또한 과학적으로 분석해야하는게 맞을 거에요. 과학이 왜?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을 보고계실 많은 시청자분들께 말씀드리자면, 미신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학은 그동안 소위 '믿음의 영역'을 줄여오는데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믿음의 영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그 어느때보다 많습니다. 적어도 시청자 여러분들은 과학적 상식을 머릿속에 믿고 적어도 새로운 정보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과학이 이 멸망의 해답이 될 순 없어도 도구로서 도움을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사회자가 말을 잇는다.


 "잠자리 박사님은 소위 과학을 대표하는 자로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소극적으로, 신중한 답변을 해주셨네요. 얼핏보면 과학적으로 이 재앙을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런 것을 기대했는데요."


 "지금 전 세계의 연구소에서 재앙들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강구중입니다. 단지 그것만을 알려드릴 수 있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과학이 해답은 될 수 없되 재앙극복을 위한 훌륭한 도구는 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자, 두번째로 우리나라 현대예술계의 거장 물만두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런 사태에서는 저같은 사람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이 세계의 멸망이 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요란하게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정말이지 충격적입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이젠 예술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폭죽이 폭발하는 것 처럼 말이에요. 부글부글 끓는 이 세상이 저는 너무 황홀합니다. 물론 제가 도의적으로 비판받을 것임을 잘 압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혼란에 빠졌는데 예술이라고? 단단히 미쳤네. 예 그렇습니다. 저는 미쳤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동안의 생이 후회가 될 지경입니다. 저의 작업물들을 저는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건 사실이었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데아에서 저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였죠. 하지만 이 멸망의 면면들은 마치 저를 포함한 예술가들을 꾸짖는 것 같습니다. 이게 진짜 예술이다. 이게 진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물이다 라는 것을 세계를 매개체로, 캔버스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세계의 모습에 압도되었습니다. 제가 살아있으면서 느낄 수 있을까 싶었던 황홀함의 감정을 바로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이 저 자신으로서도 믿겨지지 않습니다. 이 멸망은 굉장한 예술입니다. 눈 똑똑히 뜨고 바라보십시요. 이게 바로 세계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알던."


 "물만두 작가님는 굉장한 궤변을 늘어놓으셨습니다. 아마 이 방송에서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자 다음 세번 째 분은 파우나위원회의 벌컨위원장입니다."


 "파우나위원회가 자연보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저희를 코웃음치며 바라볼 것 같군요. 자연보호 해봤자 뭐하냐? 이미 세상은 다른 방식으로 끝장났는데. 그냥 막 살아도 됐어. 지금을 즐기지 못한 자는 정말 불쌍했던 거지. 아마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많은 환경단체들이 그리고 환경을 보존하고자 했던 많은 분들이 꿈꾸었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대부분의 환경단체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저희는 숨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파우나위원회의 또 다른 존재의의를. 그건 바로. 저를 포함한 파우나위원회의 몇 명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궤변이군요. 벌컨원장님. 혹시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미래에서 왔다면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어야합니다."


 "사회자님. 잠깐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잠자리박사님."


 "시간여행은 인과율이라는 법칙을 어기어야만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여행이란 가능하지 않습니다. 미래에서 왔다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인과율! 네. 인과율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과율을 반드시 어겨야한다는 법도 없죠.. 시간여행을 통해 변한 미래는 둘 중 하나로 택해지거나, 혹은 중첩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선 평행세계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시간여행 기술은 미래에 발명되었고 몇 명의 과학자들이 인과율을 어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최소한의 학문적 탐사만을 허용한 채로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꼭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었죠. 과거를 변형하여 지금을 더 나은 세계로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은 분들. 이 분들은 과거에 대한 간섭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줄 모르는 성급한 사람들입니다. 사적인 감정을 품고서 과거나 미래로 가서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죠. 이들은 더 괘씸하지만 어쨌거나 과거에 대한 간섭을 한다는 점에서 전자랑 똑같은 위험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가 뭐냐구요.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남용한 나머지 평행세계가 너무 많이 생성되었습니다. 자연상태의 우주는 그것을 모두 감당할만한 역량이 되지 못해요! 그래서 이제 스스로 붕괴하려고 하는 겁니다! 마치 지하수를 과다채취한 나머지 도시를 지탱하고있던 지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지금의 멸망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이구요. 참고로 미래를 바꾸고 싶었던 성급한 사람이 저와 몇몇 동료들입니다. 미래의 사회는 환경이 거의 다 파괴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그리워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저 환경보호를 외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변해버린 미래에 절망하기 이전에,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우주에 파묻히게 생겼습니다."


 스튜디오의 방청객들이 웅성거렸다.


 "시간여행으로 발생한 평행세계의 중첩으로 인한 우주공간의 과부하로 멸망했다는 의견입니다. 이 의견은 검증이 필요하겠는데요. 일단 시청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죠. 네번 째 분은 김영한 목사님이십니다. 이 멸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요한계시록에서는 세계의 멸망과 교인들의 구원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멸망이 그 계시의 실행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선 이 세상이 과연 멸망시킬 정도로 부패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기독교인, 그리고 넓게는 양심에 따라 살아간 신실한 사람들 또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심지어 몇몇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기적과 재앙에 대한 묘사도 지금의 것과 다릅니다. 이 재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나 이 재앙이 끝나고 나서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멸망이 어떠한 것이냐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재앙이 절대적인 멸망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를 극복해나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은 이런 상황일지라도 절대 믿음을 잃어선 안됩니다. 이 재앙이 인간의 욕심과 태만, 오만, 하나님에 대한 불경과 같은 원죄로 부패하고 병든 이 세상에게 징벌을 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성경에서 하는 말씀을 잊지 않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여야 합니다."


 "지금 상황이 멸망이 아닐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 인구의 99.7%가 실종 및 사망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멸망이 아니라니."


 "물론 지금이 성경에서의 그 멸망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재앙에 뒤이어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의 여부와 상관없이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다음은 한 남학생입니다. 인연고등학교 2학년 박현태 학생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무언가 증언하고 싶으신 게 있다고 하던데......"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말할 것은 바로 이곳에 대한 것이에요. 이 방송국이 있는 행운시. 사람들은 이곳이 모든 멸망이 피해가고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스튜디오도 아무런 문제 없이 멀쩡해보이구요. 우리도 멀쩡히 학교를 다닌답니다. 심지어 행운역에는 여전히 식당과 옷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려요. 너무나 평온하죠. 그렇죠?"


 "네 그렇죠."


 "하지만 사실 멸망이라고 할 수 있는건진 잘 모르겠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아마 멸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허접♡ 모질이♡' 문자가 오고나서 첫날엔 아무 일도 없어보였습니다. 둘째날도 마찬가지. 셋째날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A라고 하죠. 자기 남자친구랑 커피숍에 갔다고 해요. 그런데 분명 마카롱이 있는 가게라고 들었는데 진열장에 마카롱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A가 점원에게 물었죠. 마카롱이 어디있나요? 그러자 점원이 말하는거에요. 뭐라구요?"


 "잠시만요. 마카..롱? 그게 뭔가요?"


 "A는 몇번 더 마카롱을 물어봤는데 점원 반응은 비슷했어요. 예상하지 못한 응대가 돌아오자 A는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잃었어요. 자기가 무시당하고 있는건가 생각에 A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서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인터넷에서도 마카롱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마카롱이라는게 어떤 건가요?"


 "프랑스에서 유래된 디저트에요. 우리나라에도 대중화되어 있었어요. 아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을 그런 거라구요."


 "방청객 여러분. 혹시 마카롱이 뭔지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스튜디오의 방청객들이 조용히 웅성거렸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저도 처음 들어보는데요. 일단 들어보겠습니다."


 "남자친구가 벙쪄있는 A를 겨우 끌고왔어요. 그런데 남친은 마카롱이 뭔지 안다는 거에요. 심지어 바로 전날 집에 사놓은 마카롱을 먹기까지 했대요! A는 몇 주전에 보았던 드라마'그대의 파티시에'를 다시 돌려봐요. 그 드라마에서 빵가게가 나오고 등장인물 중 한명이 여주인공의 빵가게에서 마카롱을 시키거든요. 분명 A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돌려보니까 마카롱 대신 블루베리 치즈케익을 주문하는 거죠. A는 의심했어요. 내 기억이 잘못된걸까? 그런데 남친도 마카롱의 존재를 알거든요? 그렇다면 그 드라마 VOD가 조작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잖아요?"


 "지금 이야기를 지어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A는 절박한 표정으로 자기 친구들에게 '마카롱! 마카롱!'이라며 절규에 가까운 말을 반복해서 내밷고 있었어요. 복도에서 그러고 있었다니깐요. 그런데 옆에서 가만이 있던 B가 이런 말을 해요. 자기도 집 근처 상가의 화원에 들어갔는데 뭔가 어색하고 허전했다는 거죠.. 산세베리아가 사라졌다는 걸 알았대요. 인터넷에서든, 서적에서든, 다른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든. 학교 정문 옆에있던 화단에 있는 것 것도. 그런데 그건 그저께였대요. 지금까지 사라진 것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아요."


 치실, 호치키스, 마카롱, 산세베리아, 9볼트 건전지, 호랑나비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를 학교에서 찾아보니 A와 남친, B, C, D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명이었어요. 우리끼리 열심히 조사한 결과에요. A의 남친은 대형 슈퍼마켓을 둘러보다 9볼트 건전지가 진열대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도서관에서 나비대백과를 훑어봤는데 호랑나비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산세베리아는 그저께, 마카롱은 어제 사라졌구요. 9볼트 건전지는 오늘 사라진게 확실해요. 치실, 호치키스는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아직 찾지못한 것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제 생각은 이래요. 지금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긴 하다. 이 현상이 언제부터 지속되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무엇이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세상 자체가 사라지고 말거라는 것을. 그것도 멸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예. 예. 납득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납득은 어렵네요. 저 목록, 아무렇게나 막 붙인 이름들을 나열한건 아닌가요? 아무튼 자, 여섯번째로 모신 분은 얼굴을 가리고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분입니다. 이번 멸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여우가면을 쓴 그녀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적어도 이 지역의 멸망 만큼은 제가 주재하고 있어요."


 현태가 가면쓴 여자를 놀란 눈으로 돌아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까부터 다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러다 저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이런 걸 방송에 내보낸다는게 낭비 아닙니까?"


 "아직까지 상식을 애써 지니신 분이네요. 사회자님. 제가 당신을 어떻게 본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어느 연회의 선지자입니다. 아마 아실 분은 알겁니다. 이 행운시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제 연회에 참석하니까요. 물론 여기서 저를 죽이신다고 해도 멸망이 멈춰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인드라?"

 "인드라가 뭔데."

 "사이비야 사이비."


 방청석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야! 너가 진짜 걔야? 내 남동생이 니 집회에 참석한답시고 지 가정에 소홀하고. 바로 니년이었어?"

 "내 아내가 너에게 돈을 수천만원을 넘게 바쳤다고! 도대체 뭔데 너가?"


 가면을 쓴 여자는 고개를 한번 젓고는 말했다.


 "그건 그분들이 원하셔서 그리 한 것이지. 제가 강요하거나 종용한 건 아닙니다."


 "헛소리야 헛소리."


 성난 방청객들이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가만히있던 방청객들이 덤벼들려는 그들을 붙잡는다. 사회자는 당황한다.


 "저희 신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소란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방청석에서는 싸움판이 벌어진다. 현태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서 가면쓴 여자를 본다. 그녀의 목소리가 낯익다.


 "그보다 신이 이 세계를 만드느라고 고생한 것을 생각해봐요. 목사님도 아시잖아요. 천지를 창조하는데에 일주일이 걸렸다구요. 그리고 세계에 많은 자손들과 생명들에 축복을 내리느라 애썼죠. 세상을 그동안 바라보고 지켜보던 그분. 이제 세상의 것들을 거두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이젠 질린대나?"


가면 쓴 여자에게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더니 그녀가 그 사이로 몸을 숨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현태는 아수라장이 된 LOB스튜디오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빠져나온다.





며칠 후.

현태는 집 밖으로 나섰다. 

계단을 천천히 다 내려갔다.

집 밖으로 나왔을 때 아침 햇살이 현태를 비추었다. 현태는 더 주눅이 든 채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보폭은 점점 작아졌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그저께랑 어제 일어난 일도 현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다. 

'외계인이 온걸까? 아니면 우리 세계가 귀신에 잠식된 걸까? 나는 언제 사라질까? 죽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차이지? 어떻게 이 골목길에 사람이 나 밖에 없는거지?사람들이 전부 어디갔지? 너무 무섭다. 이렇게 천연한 세상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식환자의 숨쉬기처럼 가쁘다.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지? 집에 돌아갈 수도 없어. 앞으로 갈 수밖에 없어.'

 분명 잘 심어져있는 가로수들이 전부 뒤집혀서 땅바닥에 쳐박혀 있는 것 같다. 구름 낀 하늘이 그의 마음속을 불투명한 연기로 가득 채웠다. 이상할 바 없어보이는 텅 빈 길거리가 그에게는 매초마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분명 아무일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따른 생각을 해왔다. 침대에서 뒤척이며 신 레몬에 대한 망상을 할 때까지는 좋았다. 일어나보니 부억에는 엄마가 없었다. 동생도 집에 없었다. 핸드폰은 재앙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디로 갔다해도 연락할 수단은 없었다. 그는 베란다 앞으로 걸어나갔었다.

 "현태야."

 창문을 활짝 열고서 현태는 소리쳤다.

 '거기 누구 있어요!' '여기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몇번 더 악을 질렀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어떤 호응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뿐이었다. 바람소리와. 단지 되돌아오는 자신의 외침만이. 그는 두려워졌다.

 "현태?"

 그는 몸에 힘이 탁 풀려 휘청거렸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인혜였다. D이자, 가면을 쓴 전문가. 그 가면 뒤에는 지금 보이는 것 같은 예쁜 얼굴이 있었겠지. 그 방송 이후로 그녀는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태연자약하게도 교복을 입고 마치 어느때처럼 등교하는 듯한 차림을 하고서 현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너는...."

 "왜긴. 우리 부는 영향을 받지 않았잖아. 너도 그걸 알고서 나왔지?"

 "난!"

 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난 아직 이해를 못하겠어. 너가 하는 이야기따윈 믿지않아. 다 이해할 수 없어. 외계인의 짓일까? 신의 장난일까? 장난이라면 이런건 그만둬. 나쁜 자의 짓이라면 우린 대책을 세워야 해.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많은 없어. 그게 아니면?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집에.. 집에있던 가족들도 없어. 내가 아는 사람들도 없어졌겠지. 난 모르겠어. 무서울 뿐이야. 솔직히."

 인혜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이 떨린다.

 "이렇게 떨 필요는 없는데."

  현태는 그녀에게서 한발짝 물러선다.

  "도대체 너가 원하는게 뭐야!"

  "나는 나의 신을 받들 뿐이야."

 그녀가 현태 앞에 얼굴을 내민다. 현태는 그녀의 얼굴이 부담스럽다. 굉장히 준수한 외모이긴 한데, 솔직히 연예인을 해도 될것 같은데 진짜 자기가 만든 종교의 우상이 되어버렸다. 둘다 영어로 하면 아이돌이지. 오똑한 코. 부드러워보이는 입술. 살구빛이 감도는 눈동자의 색. 알게뭐야. 아마 민아도 사라졌을거야. 걔도 마카롱이 뭔지 몰랐으니. 걔를 좋아한 지가 1년이 다되어가는데.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해보기도 전에 그녀는 사라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분에게 내가 감히 조언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아마 우리 독서부를 남긴건, 아마 이 멸망을 지켜볼 관찰자가 필요해서일지도? 내가 따로 이야기한 건 없으니까. 우리 신도들도 전부 사라진 마당에 말이지. 우리 신도들은 남겨둘 줄 알았는데."

 현태는 여전히 잔뜩 움츠린 채로 말했다.


 "뭐야. 너도 아무것도 아니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면 뭔데."

 "난 애초에 널 믿지 않았어."

 "그래."

 "외로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 근데 넌 아니야."


 현태는 땅을 바라본 채 가만히 있었다.


 "....일단 부실에는 가야하겠는데, 더 이상 걷고싶지도 않아."

 "내 손 잡으면서 가. 위안이 될거야."

 인혜는 현태의 한쪽 손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현태는 마지못해 그녀를 뒤따른다. 아스팔트 위로 약한 햇빛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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