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32화, 현신


‘인비디아’는 얼음이 된 트롤 위로 거칠게 착지했다. 그 충격으로 얼음이 된 트롤이 산산조각이 나 흩날리고, ‘인비디아’는 입과 코에서 냉기를 흘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칼, 그 방패… 얼마나 많은 동족들이 그 칼에 쓰러졌는가… 네놈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존재다. 위대한 그분을 위해서라도,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그 말과 동시에 ‘인비디아’의 입에서 다시 파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피해!”


그와 동시에 ‘인비디아’의 입에서 푸른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모두가 폭탄처럼 신속하고도 뿔뿔이 흩어졌다. 오로지 아인만이 냅다 방패를 올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냉기가 걷히자 대지에 냉기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얼음이 얼어 있었고, 그 사이로 역시 곳곳에 얼음이 언 방패를 든 아인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네놈은 네놈이 든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모른다! 그것의 진정한 힘을 모른다! 나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면 네놈에게 끔찍한 죽음을 선사해주마!”


그 말과 함께 ‘인비디아’는 괴성을 질렀다. 방금 전 게비알의 괴성보다는 약했지만, 그럼에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괴성이 가라앉았을 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없는데?”


그때, 저 멀리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막이 나간 아인은 듣지 못했지만, 잔이 물었다.


“적들이 철수하는 건가?”


하지만, 그들 모두 레드암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는 것에서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이어, 오크 하나가 바람보다 빠르게 달려왔다.


(“괴물들이! 괴물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이리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뭣이?!”)


레드암스가 다시 묻기도 전에, 북서쪽에서 엄청난 수의 군세가 밀려들었다. 도저히 곰이라고 부르기 힘든 외형을 가진 괴수 황야 곰과 말의 하체에 인간형 상체가 달린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필두로 거대한 뱀의 모습에 팔이 달린 나가나 트롤보다는 작지만 하나 뿐인 눈을 굴리며 자기 상체만한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해 안달인 퀴클롭스 등 수많은 종류의 수많은 괴물들이 아인 일행을 향해 돌격했다. 용만큼이나, 어쩌면 용보다 더 위험한 존재들의 공격에 아인 일행은 이를 악물고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전투를 가만히 받아들였다.


“여기선 내가 하늘에 있는 게 더 재밌겠군.”


‘인비디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동시에, 잔이 발사한 바위가 선두에서 달리던 켄타우로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레드암스와 아인이 괴물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켄타우로스는 말의 다리를 베어버리면 땅에 꼬꾸라지며 그 충격에 허리나 목이 부러져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아인이 가장 선두의 켄타우로스를 베어버릴 때, 레드암스는 아인이 봐오던 곰 보다 몇 배는 거대한 황야 곰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괴력으로 황야 곰을 밀어붙인 레드암스는 황야 곰이 중심을 잃는 그 순간 검으로 목을 베었다. 곧바로 나가가 달려들어 입에서 맹독을 발사했으나, 그보다 빠른 잔의 마법 방패에 가로막힌 뒤 눈 앞에서 발사된 마누엘의 총탄에 머리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쓰러졌다.


“여기다!”


그 다음으론 마리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성스러운 빛의 힘은 충분히 불경한 괴물들의 눈을 일시적으로 멀게 만들기 충분했고, 제아무리 4미터에 달하는 거구를 자랑하는 퀴클롭스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저 거대한 표적에 불과했다. 레드암스의 칼에 발목이 베여 쓰러진 뒤 아인의 검에 눈이 찔려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황은 아인 일행에게 불리했다. 5 대 최소 2천의 싸움은 그 누가 오더라도 성립될 수가 없었다. 아인이 소리쳤다.


“레드암스, 적이 너무 많아요!”


“여기서 도망치면 마을이 위험해!”


“하지만 여기 계속 있다간 우리 모두 죽어요!”


그 순간, 갑자기 괴물들의 공격 방향이 바뀌었다. 아인 일행을 향해 물밀 듯 몰려들던 적들이 일제히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잔이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다른 이들도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오로지 레드암스 만이 이미 이겼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이어 전투가 벌어지는 평야에서 강한 바람 소리가 나더니 이네 늑대의 울음소리가 되고, 맑은 하늘에 구름이 끼더니 갑자기 북서쪽 어딘가에 번개가 내리쳤다. 레드암스가 자신감이 충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전에 본 적이 있겠지? 우리들의 파수꾼들이다.”


곧이어 늑대의 울음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다이어울프의 소리는 아니었다. 더욱더 사나우면서도 더욱더 차가운 그런 목소리였다. 괴물들의 진영에 혼란이 일자 아인 일행은 이를 놓치지 않고 다시 달려들어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난전 속에 들어가서야 아인은 방금 전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푸른 빛이 도는 반투명의 늑대들이 괴물들을 찢어발기고 있던 것이었다. 바로 오크들이 섬기는 ‘사냥의 신’의 수하, ‘야수의 정령’들이었다. 괴물들이 어떠한 공격을 가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적들을 찢어발기는 야수의 정령들과 그들을 소환해 함께 싸우는,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주술사들이 가세하자 수만의 괴물들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원래의 전장에 있던 오크 군대들까지 합류하자 이젠 완전히 전세가 넘어와 있었다. ‘인비디아’라는 변수만 아니라면. 게다가 놈은 척 봐도 몹시 분노해 있었다. 레드암스가 소리쳤다.


(“주술사 들이여! ‘그분’을 불러라! 용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 말에 주술사들이 정령을 거두더니 나무로 만든 토템을 한곳에 일제히 기하학적인 배열로 꽂고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전장 한복판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전사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다가오는 괴물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샌디!”


“오, 아인!”


“샌디, 저들은 이 상황에서 뭘 하는 겁니까?!”


샌디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거대 거미를 가볍게 베어버린 뒤 말했다.


“기대해도 좋다, 10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모습이니까.”


아인이 무어라 하려던 그때, 아인은 물론이고 괴물들까지 그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바람 한점 불지 않던 황무지에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계속해서 절을 올리던 주술사들을 빙 둘러싸자 갑자기 미친듯이 강해지더니 이내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하지만, 주술사들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던 괴물과 오크들 그 누구도 그 바람에 휩쓸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것을 지켜볼 때, 오로지 ‘인비디아’만이 재미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놈을 부르려는 구나. 그 정도는 해야지.”


곧이어 번개가 회오리바람 안에서 일기 시작하더니 번개가 칠 때마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마치 멀리서부터 천천히 가까이 오듯 들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어느때보다도 거대한 번개가 회오리바람 안에서 내리치자 그 빛 속에서 늑대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오크들이 하나 둘 무기를 내려놓고 그것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더니 이내 몬스터들과 외지인인 아인 일행을 제외한 모든 오크들이 그것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사납게 휘몰아치던 회오리바람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회오리바람 안에는 거대한 늑대가 한 마리 있었다. 하지만 아인도, 주변의 일행들도 그것이 단순한 늑대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용과 맞먹는 크기의 거체,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 회색이지만 묘하게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털까지. 저 늑대가 바로 오크들이 섬기는 ‘사냥의 신’, ‘야생의 정령군주’였다.

 ------------

늑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