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지그문트와 마왕 하비에트의 승부가 끝이 났습니다. 수천번은 더 있어왔고, 앞으로 수만번은 더 있을 예정인 지겨운 싸움이 또

이번대에서는 끝이나게 된 것이지요.  


 이긴쪽은 헉 헉, 소리네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진 쪽은 쿨컥쿨럭 젖은 기침을 바닥에 뱉어 냅니다. 시뻘건 피가 입가에서 주르륵 

흐르고, 곧 이어 힘을 주던 눈의 초점이 흐려지지곤 하죠. 이어서 바닥에 얼굴을 쳐박는건 당연한 수순인거고.


 그러며는 이제 이긴 쪽에서는 그제서야 승부의 끝을 체감하며 환호성을 치곤 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한참을 눈을 꿈뻑 꿈뻑 거릴 뿐이지요. 싸움덕택에 어지러운 단상엔 돌조각들이 여기저기. 스산한 바람은 구멍단 벽을 타고 

스르륵,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때쯔음, 뒤에서 힘을 다 써서 응원하고 있던 여인이 소리칩니다. 지그문트! 하면서 왈칵, 몸에 안깁니다. 안기면 

뭐 눈이 마주치는거고 혈기 왕성한 두 남녀가 이 감격스러운 운명의 끝에서 세상을 구해내었다는 환희에 젖어서 뭘 하겠어요?

뻔하지.


 이제는 몇번이고 더 했는지 모를 지겨운 싸움의 끝. 본인은 감격 스러워 하고 성취감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 입장서는 미간에 감정이라곤 요만큼도 못 느껴질만큼 지루하디 지루한 일상들 중 하나가 된  결전. 특히나, 이 푸른별의 운명과 계절을 몸소 체감하며 무한이라고도 부르고 억겁이라고도 부르는 시간을 지켜 봐 온 입장에선 더더욱. 우웩.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이 토나오는 용사와 마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관점이냐면 지금 저 바닥에 피가 잔뜩 묻은채로 내팽개쳐진, 저 것에 대해서요. 신줏단지 모시듯이 데려 갈 때는 언제고. 용도가 다 끝나니까 저거 보세요  어? 아주 둘이 아가리 비비느라 정신없지 누가 신경 씁니까? 저깟 날붙이 따위.  


 검이 웁니다. 고생은 같이 해 놓고선 일이 다 끝나니까 지 몸 하나 비비기 바쁜 저 두 사람들 한테, 서러워서요. 그나마 얘는, 이겨서 다행이죠. 진 놈은 더 펑펑 웁니다. 앞으로 한동안 또 좆같아질 자신의 취급 때문에. '하, 씨발 또 한동안 좆같은 마검 취급 받으면서 어디 신전 구석탱이에서 퀴퀴한 먼지 뒤집어 쓰고 한참을 있겠구만. 다음 주인은 좀 제대로 된 놈이었음 좋겠다.' 


 사실 여기 이 바닥에 떨어진 두 검이 맞붙는건 벌써 28회차 입니다. 당신은 잘 모를테지만요. 지금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멋드러지게 생겨먹은 저 성검은 23대 주인 케인의 손에 있었을때는 재앙의 손아귀라고 불렸습니다. 반면에 지금, 저 거무튀튀하고  밋밋한 마검은 18대 주인에게 있었을때는 에스페란사라고도 불리웠죠. 희망. 네 그렇습니다. 희망이라고요.


 아까 의인(擬人) 화 시켜서 말 했지만서도, 의인(義人) 이 되지 못하는게 칼의 운명입니다. 쥔사람의 뜻에 비례하여 그에 걸맞는 힘과 능력을 물려줄 뿐인데...... 순수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든 사람의 초롱 초롱한 눈동자에 못이겨 힘을 건내는 그런 자리일 뿐인데도 그들의 운명은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요. 든 사람의 잘잘못과 든 사람의 명성과 든 사람의 의지와 그 뜻에 의해서 본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철저한 피동적 삶. 그것이 칼의 일생입니다. 그나마도 그게 일관성이라도 있었으면 다행일텐 그것조차 아니고.


  제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검의 이야기입니다. 혹자에 의하면 성검이라고 또 마검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특수한 검의 

이야기. 그럼, 시작부터 조금 찌끄려 볼까요? 태초에 뭐가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 따위의 이야기 말입니다.


 처음은, 그저 날벼락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직 세상살이가 미쳐 사람의 손을 타기 이전, 까마득히도 먼 옛날의 이야기였지요.


 우연찮게, 저 먼 창공에서 떨어져 내려온 거대한 운석덩이 하나. 시작은 시커먼 우주를 한참을 떠돌다가 이제는 그것도 지겨워져

어디 변방의 행성 한군데에 머리 박고 쉴 곳 없나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던 그 돌덩이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돌덩이가 

녹음이 짙고 청명하고 젊은, 푸른빛의 행성에 자신의 몸뚱아리를 툭 하고 던져놓은 것에서부터 였지요.


 날벼락이라 했지요? 천지는 굉음으로 가득했고, 땅바닥은 벌벌벌 몸을 떨며 육중한 몸집을 바닥에 내던진 돌덩이의 무게에 신

음 했습니다. 오랫동안 자리에 박혀 있던 흙덩이들, 땅에 촘촘히 무리지어 묻혀있던 돌멩이, 자갈무리들을 뒤집어내며 돌덩이는

그 사이사이로 자신의 몸을 뉘였습니다.


 그것은 몇세기인지 알 수 없는 길고 긴 유랑 생활을 끝마치고 돌덩이가 드디어, 잠에 든 순간이었지요.  허나 이 존귀한 돌덩이는 잠에 든 순간에도 수세기를 떠돌던 우주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던 모양인지 낮이건 밤이건, 저 먼 산등성이 너머까지 빛을내며

자신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알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푸른별에 떠오른 작은 태양.' 물론 그것이 무구로서 검으로서 빗어지게 되는 것은 떨어지고난 직후는 아니고 한참 이후의 이야기이긴 합니다. 이때의 푸른별은 아직 첫 자손조차 잉태하기 이전인 유년기의 때였으니까.


 하지만, 결국엔 시간은 흐르지요. 시간은 흘럿습니다. 이 시간이 흐른다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르듯 말입니다. 떠나가지 말아라 으름장을 내어놓고, 가지말라며 두손으로 잡아 채 묶고 가두어 두어도 끝끝내 아련한 향기만 남기고 떠나가는 나의 님과 같이. 아 이건 너무 감성적인가? 아무튼 시간은 위에서, 또 밑으로 흘렀습니다.


 유년기던 푸른별은 어느세 새파란 청년기를 지나서 확고한 성년으로 넘어가고 나서도 조금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시대는 창공을 

비상하며 지상을 굽어 살피는 위대한, 네발 짐승의 시대의 황혼. 푸른별의 첫 자손이기도 한 그들과 이제 막 자라난  푸른별의 

두번째 자손인 인간이 종의 운명을 걸고 한판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도, 첫 자손의 힘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위대한 네발 짐승들이 가진 힘은 이명 그대로 였거든요. 천지를 찢어

발길듯한 그들의 날개짓은 강대하였고, 지천을 뒤덮을것 같은 그 몸집은 거대 했습니다. 두 앞 발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의 

문장들은 지대 한 힘을 품었고, 말 한 마디 한마디에서 전해지는 지식의 깊이라는건 존대함 그 자체였거든요. 


 고작해야 나무의 3분의 1 도 안되는 몸집에 글도 말도 하나로 묶여있지 않아서 손짓과 발짓 그리고 그림으로서 겨우 자신의 뜻을

표현하던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너무도 무모한 것이라 할 수 밖에 없었죠. 이자들이 뭐가 남아 있겠습니까? 예리한 손톱도

단단한 발톱도 영특한 지식도 유려한 언변도 없는데. 


 그저, 머릿수. 머리수 밖에 없던 인류가 그래봤자 얼마나 싸움이 되었겠습니까? 도망치기 바뻣고 싸우고자 하면 흩어지기 바뻣죠.  사실, 이때는 이것을 싸움이라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일방적인 살육, 폭행이었죠.  그렇게 종의 운명을 건 사투는 한쪽만 목숨을 건 일방적인 살육으로 이어져 나가던 그 때, 도망치던 인류는 발견하고 맙니다.  저 먼 언덕베기 너머에서 밤이건 낮이건 빚추는 환한 빛 줄기를요. 


 걷고, 뛰었습니다. 그 밟고 따스한 빛을 따라 저 먼 풀숲을 해쳐 지나. 끝끝내, 돌덩이의 앞에서 그들은 이 환한 빛이 나는 돌덩이를두 눈으로 맞이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가슴 가득히, 충만한 빛을 뿜어대는 돌덩이 앞에서 그들은 무릎을 꿇고 돌덩이의 힘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운명처럼, 만난 인류와 돌덩이의 이 날은 이후 인류를 새로운 푸른별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최초의 만남이었

지요.


 그것은 인류에게 결핍된 모든 것을 가득, 채워주웠습니다. 수세기를 떠돌며 축적했던 지식과 샘솓아 나오는 강대한 힘. 날붙이로서

벼려져 감히 위대한 네발 짐승과도 겨룰 수 있을정도로 단단해진 무구들,또 무장들. 그것으로 인해 더 이상 인류는 뒤로 도망쳐 나갈

필요가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상대또한 드디어 종의 운명을 건 싸움에 공평히 목숨줄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사투였습니다. 혈투였죠.  그리고, 꽤 길었습니다. 네 발 달린 위대한 짐승의 시간으로도 꽤나 긴 시간동안 싸움을 이어가게 되었죠.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써 가며 발버둥치고 자신의 운명을 피해보고자 안달을 냈지만서도 피하지 못한것은  오랜 혈투의 끝. 끝끝내 결론은, 나게 되었습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동이 트면 해가 떠오르듯, 그런 찬란한 문명을 일궈냇던 위대한 네발 짐승은 그보다 존귀하고 위대한 작은 태양의 후광을 이어받은 인간에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창공을 비상하며 지상을 굽어 살피는 마지막 짐승의 단말마로서.


 그렇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인류에 있어서는 신화의 시대라고도 불리우고, 번쩍이는 돌의 계절이라고도 불리우는 그 창세기.


..... 목이 탑니다. 물을 조금 마셔야 할 꺼 같아요. 잠깐 쉬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때가 언제가 될련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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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에 썻던거 보면서 좀 이것저것 덧붙여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