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토요일 아침, 나는 만화책을 읽으며 시간늘 보내고 있었다.

존경하는 작가님의 최신작인 [안드로이드 동거녀]라는 만화였다.

줄거리는 대략 남주에게 안드로이드 미소녀가 선물로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남주와 여주의 러브라인과 작가 특유의 감정선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씩 작가님의 트위터에 올라오는 각 회차의 비하인드컷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두터운 팬층을 갖고 있다.

한참동안 키득거리면서 만화를 읽던 중 아버지로부터 문자가 왔다.


"초연아, 요새 혼자서 사느라 많이 힘들지? 다름이 아니라 아빠가 일하는 회사에서 어떤 프로토타입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시범용으로 한대 선물받았어. 그거 너한테 보내줄게. 엄청 좋아할 거야."


'프로토타입 컴퓨터?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뉴스에서 4차 산업혁명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은데...'


나는 인터넷으로 아빠가 일하시는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VISION - INTELLION, 당신의 꿈을 이루어주는 기업]


아버지가 일하시는 기업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더욱 특별한 점은 이 기업의 사장이 최연소라는 점이다.


듣기로는 나랑 겨우 7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략 27살쯤 되는 것이다.


'27살 밖에 안됐는데,  사장이라니... 대단하다.'


나는 기업 홈페이지에 소개란에 들어가서 아빠가 문자로 보냈던 프로토타입 컴퓨터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 프로토 타입 컴퓨터의 정체는 초고도 인공지능이 들어간 슈퍼컴퓨터이다.


소개문의 맨 마지막 문단에는 조만간 이 컴퓨터들을 개인용으로 보급할 계획이라고 적혀 잇었다.   


'이걸 개인용으로 보급한다면 가격이 엄청 나가겠구만. 그리고 아직 사람들이 슈퍼컴퓨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야. 


그래서 일단 성능 홍보용으로 만든 건가?'


나는 대략 프로토타입 컴퓨터의 제작의도를 짐작했다.


근데 어째서 아버지는 이런 걸 나한테 선물로 보내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냥 단순히 사랑하는 가족에게 주고 싶은 마음뿐인걸까?


나는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서 성물을 보내시는 이유를 물어봤다.


"아, 그냥 요새 자주 집에 못들어가서 미안한 것도 있고, 얼마전에 너 성인식 했다면서?


어른이 된 걸 축하하는 의미로 선물 하나 주고 싶었어. 


한 오늘 저녁쯤이나 내일이면 도착할 거야. 이거 선물받는 것도 엄청 힘들더라.


이달의 우수직원으로 겨우 뽑혀서 선물로 받은 거거든."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잘쓸게요 아빠."


"그래, 너한테 좋은 친구가 되어줄거다. 아빠도 조만간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게. 너무 신경쓰지 못해서 미안하다, 초연아."


"아녜요. 일 열심히 하시고 힘내세요. "


통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택배를 기다렸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컴퓨터일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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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쯤되자, 나는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경비실로 내려갔다.


"저기 201호 택배 물건 찾으러 왔는데요..."


"아, 그거라면 저기 있어요. 근데 그거 엄청 무겁던데..."


나는 상자를 조심히 들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외로 무게가 엄청 나갔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커터칼로 조심스럽게 박스의 포장지를 끊었다.


"안에 뭐가 들어 있으려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상자 안에 왠 여자아이가 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왜, 여자애가 박스안에 있는 거야?"

 

박스안의 여자아이는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설마 이러다가 나 살인범으로 오해받는 거 아냐?"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어서 상자안에 왠 여자에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아,  그 아이가 바로 내가 말했던 프로토타입 컴퓨터란다. 많이 놀랬지?

사실은  아빠 회사에서 인간형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고 있거든.

그래서 외형이 인간인 거야."


"어, 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래, 초련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 박스안에 메모리칩이랑 설명서 있으니까 참고하면서 조심히 다루렴."


"네, 아버지."


"젠장,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저렇게 생긴 컴퓨터는 다뤄본적이 없단 말야..."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상자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소리가 나는쪽으로 뒤돌아보니 여자애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고 있었다.


"흐아아암~  잘 잤다."


여자아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히익?!"


"혹시 당신이 내 주인님이야?"


"주인님이라니....?"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상자안에서 여자애가 나온 것도 모자라서 날 주인님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다니.


"넌 누구야?"


" 내 이름은 루나,  인간형 슈퍼 컴퓨터야."


"그래, 그건 아버지한테 들었어.  그보다, 이름이 루나라고 했지? 네가 슈퍼컴퓨터라는 걸 증명해봐."


"응!"


나는 수학교과서를 꺼내 고차방정식의 인수분해 문제가 적힌 페이지를 루나에게 보여주고는 전부 풀어보라고 지시했다.


"에이 뭐야, 이 정도는 껌이지."


그녀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더니 수학책의 문제를 스캔해나가기 시작했다.


"전부 다 풀었어, 주인님."


그녀는 문제의 답들을 정확히 맞춰냈다.


몇분도 채 되지 않아 순식간에 20문제를 전부 오답없이 풀어버렸다.


"미친, 하나도 안틀리고 정확하게 맞췄잖아?!"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녀에게 원주율 파이의 값을 전부 말해보라고 지시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3.14까지 밖에 말하지 못할 것이다.


길어도 3.1412596535 이정도까지밖에 할 수 없다. 어차피 끝이 없는 무한소수이기 때문에 말하는 도중에 버벅거릴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루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단숨에 소수점 십만자리까지 속사포로 내뱉기 시작했다.


"미친.... 너 진짜 슈퍼컴퓨터구나?"


"응. 나한테 더 시킬 거는 없어?"


"음..... 아직은 딱히 없어."


나는 그녀가 들어있던 박스에서 설명서랑 메모리칩을 꺼냈다.


대부분 용량과 속도를 더 늘려주는 부스터팩같은 거였다.


설명서 표지에는 루나의 풀 네임이 영문으로 적혀있었다.


'루나 스펙터라고 하는구나. 이름이 좀 특이하네.'

루나는 설명서를 읽고있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주인님, 뭐하고 있어? 나 너무 심심해. 같이 놀아줘~!!"


"어, 잠깐만 기다려줘. 설명서 보고 있으니까"


"굳이 그거 안봐도 되는데. 어치피 거기에 대충 구성품이랑 보증서밖에 없어.


그리고 난 상품보다는 주인님이랑 동등한 관계로 같이 지내고 싶어."


루나의 그 말을 듣고 나는 충격받았다.


반말패치에다 동등한 관계요구까지.....


"뭐야, 그 표정은?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거 같네."


"당연하지.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고 감정표현까지 다하는데."


"그런가?  그럼 알려줄게. 어째서 내가 인간처럼 행동이 가능한지 말야.


사실은 난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선 상태야. 그걸 싱귤래러티라고 한다지?"


"그럼 스펙터 넌,  이미 인간을 초월했다는 거구나."


"응,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난 실시간으로 학습중이거든. 한마디로 성장하는 인공지능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조금 그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이 아이가 인간의 악의를 학습하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인류멸망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주인님? 왜 몸을 떨고 그래. 혹시 내가 무서운 거야?"


"응... 솔직히 말해서 조금 무서워."


나는 루나에게 어릴 적 봤던 어느 히어로 영화의 인공지능 악역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배꼽을 잡고 한참동안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주인님도 참.... 너무 걱정하는 거 아냐?  이왕 이렇게 된거 속시원히 얘기해줄게.


그 울트 뭐시기라고 하는 인공지능보다 내가 한수, 아니 몇백수 더 위야. 그리고 애초에 난 인간 멸망같은 거 관심없어."


"그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뭐야?"


"음.... 그건 바로 인간의 감정이야. 완전히 러닝하고 싶거든.


아직 모르는게 산더미야. 울면서 웃는다든지, 그 속마음이란 걸 알고 싶어."


"그렇구나,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을게. 넌 그 감정이란 걸 익혀서 뭘 할려는 거야?"


"그냥 별거 없어. 그냥 평범하게 인간들 속에 섞여서 살고 싶은게 내 목적이야."


"대단하네, 넌.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을 줄이야."


나는 루나의 솔직한 답변에 감명받았다.


그저 인간과 친해지고 싶어서 감정을 완벽히 러닝할려고 하다니... 나는 그런 그녀의 목적을 이루는 걸 도와주고 싶어졌다.

어릴적 내가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그들을 똑같이 따라했던 적이 잇어서 공감이 갔다.


"그럼, 내가 네 목적을 이루는 걸 도와줄게. 스펙터."


"정말?"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응. 어차피 너랑 같이 살게 됏으니까."


"고마워, 주인님. 앞으로 잘 부탁해!"


"그래,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러고보니 아직 내 이름 안 알려줬었지? 난 현초연이라고 해."


"알겠어. 그럼 편하게 초연이라고 불러도 되지?"


"뭐, 좋을대로 해. 근데 난 너 뭐라고 부르면 되? 스펙터? 아니면 루나?"


"이왕이면 이름으로 불러줘. 스펙터는 성이거든."


"그래, 알았어."


그렇게 나는 슈퍼컴퓨터인 여자애랑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