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쌔끼. 좀 부드럽게 다루라니까......뭐 문제 있으신 분 계신가요?"


 피를 닦으며 남자는 씨익, 웃었다. 이빨이 새하얗게 보이는 환한 웃음. 하지만 남자의 서늘한 인상 덕택인 것인지 분위기는 그다지

유쾌해보이지 않았다. 


 주먹질에 뻗은 병사는 정신을 잃은듯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렇게 되자 병사에게 위협받아 바닥에서 벌벌 기던 인질 중 하나,

머리가 벗겨진 남성이  표정을 싹 바꾸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말했다. 


 "어휴, 이제 좀 대화가 통하시는 분 오셨네." 


저지하는 병사들의 손을 뿌리치며 남성은 씽긋 웃는 남자 앞에 다가선다. 


"그래 이렇게 인질을 무식하게 대해도 되는거야? 야 이 새끼들아. 아 저 좀 말씀좀 드려도 될까요?"


무장한 주변 병사들에게 윽박지르며 다가와 따라 웃으며 말 하는 남성. 


"그럼요.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고객을 응대하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자.  남성은 남자의 편안한 말투에 감화되었는지 남자의 앞에 서서 당당히 

말했다. 


"그 자리좀 옮겨주쇼. 찬 바닥에 엉덩이를 오래 대고 있으니까 좀 불편하네  거기다가 물도 좀 주고. 여기서 인질로 몇시간째

앉아 있었는데 그 정도는 해 줄수 있는거 아니야?"


 아까와는 다른 고압적인 태도. 존대로 이어가던 말 끝은 어느세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무기를 들고 있는건 자신들인데도 남성은

몇번의 대화로서 이 남자를 어느정도 파악한듯 싶었다. 


"흠.....네! 뭐. 그럼 저기. 앉아게세요. 의자에."


잠깐 고민하는듯한 표정 이후 흔쾌히 웃으며 대답하는 남자.


"어이 고마워요.  놔 이새끼야! 내 발로 간다."


 남자의 흔쾌한 대답에 만족스런 표정으로 의자로 걸어가는 남자. 의기 양양한 모습으로 다른 병사들의 팔을 물리치며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흠. 그럼 뭐 또, 문제 있으신 분 계십니까? 거수!" 


 손을 올리면서 모여서 잡혀있는 인질들에게 묻는 남자. 처음에는 잠시 머뭇했으나 멀리서 편히 앉아있는 남성의 모습을 보자 여기 저기서 하나 둘씩 천천히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 기저기를 갈아야 합니다. 가방안에 있는 기저귀좀 가져다 주세요!"


"오줌보 터질거 같소! 화장실좀 다녀와도 되겠소?"


"엄마한테 전화 한통만 하게 해 주세요! 우리 어머니, 심장이 약해서 아직 살아있다는거 모르면 심장 다치셔서 돌아가실 수도 있단

말이에요!"


 한번 터지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요구사항들. 개중에는 거슬릴법한 부탁들도 있었으나 남자는 웃음기를

유지한채로 흔쾌히 부탁들을 들어주었다.  부탁을 들어 줄 뿐 아니라 부탁을 끝마친 사람들은 모두 차디 찬 찬바닥이 아닌 푹신한 의자가 있는 상석으로 자리를 옮겨주기도 하였다. 


 하나 하나, 불만사항을 늘어놓던 인질들의 요구사항이 어느정도 끝을 보였다. 차디찬 바닥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던 노인하나만 남아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피부에 여기저기 검버섯이 섥긴 노인 하나.  남자는 노인의 앞에 서서 물었다. 


"어르신, 혹시나 문제 있으십니까?"


"......."


 다른 인질들에게서처럼 웃으면서 정중한 말투로 묻는 남자. 노인은 그런 남자의 물음이 무색하게 아무런 대답이 없이  한참 흘겨보다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따로 요구할 사항은 없네만.....하나 궁금한 것이 있네."


"흠? 뭐 어떤게 궁금하시죠?"


"대답 해 줄 수 있겠는가?"


".....뭐 제가 대답 할 수 있는 사항에서는 충분히 대답 해 드릴 생각입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자네..... ......인 인가?"


하필이면, 그와 동시에 조명을 끼고 바깥을 도는 헬기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은 노인의 말. 


"......어떻게?"


 환하게 이빨을 보이며 웃던 남자는 노인의 말을 듣더니 삽시간에 표정이 굳어버렸다. 굳은 표정에서 나온 남자의 질문. 노인은 

남자의 표정에서 답을 들은 듯 남자의 질문에 답했다. 


"마지막에 하나씩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이 영락없이 그들과 같으니까. 나 때 까지만해도 아직, 당신네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


 말끝을 흐리던 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끌끌끌...... 그렇다는것은 협상이 잘 안됐나 보구만. 알겠네. 내 자리를 저리로 옮기도록 함새. 빠르게 끝내는게, 서로에게 좋을듯 

하니. "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노인은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그런 노인을 바라 본 후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고개를 숙이는 남자의 앞에서 노인은 숙연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네, 잘못한건 우리들이었으니. 미안해 할 필요 없네. 내가, 이 늙은이들이.....미안허이......"


 탄식하며 말끝을 흐리는 노인.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좌석쪽으로 걸어 나갔다. 생각에 잠긴듯한 남자는 노인이 자리에 뒤돌아 안기 전, 허리춤에 낀 권총을 빼어들어 노인의 뒷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노인은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끼야아아악! "


"히....히이익! "


"제발! 살려주세요! "


 노인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편히 좌석에 앉아있던 인질들은 혼비백산했다. 좌 우 양 옆으로 가릴 것 없이 몸을 날리며 인질들은 

자리를 이탈해 도망치려했다. 


"야! 총 좀 줘봐!"


 남자는 옆에 선 군인들 중 하나의 소총을 뺏어 든 후, 도망쳐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조준간을 연발로 바꿨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연속되는 총성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시끄럽던 비명소리는 곧 그보다 큰 격발음 소리에 하나 둘 조용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자 실 내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