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배(裵)이고 명(名)은 기량(騎倆)이요 자(字)는 덕감(悳坩)이니, 말 타는 재주라는 이름대로 굳센 기계로 하여금 나라를 편안케 한다는 건담(健譚)의 이름에 꼭 알맞도록 활동한 뛰어난 조종장수요 자(字)처럼 덕을 담는 도가니 같은 인품을 지니었다.


   배기량은 융경(隆慶) 2년(1568년)에 태어났으며, 형으로는 배설량(裵偰倆)과 배뇨량(裵嫋倆)(혹은 배요량이라고도 전한다, 역주)이 있었으며 여동생으로 배수량(裵秀倆)이 있었다. 아버지는 배고파(裵高波)로 병조에서 건담 훈련을 맡아 했으며 조부 배나무(裵拏武)는 건담 신기체 시험 담당관이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이 되어 나이가 차자 기량 왈, “내 이때까지 글공부를 하였으니 야추(野錐)(들에 피어난 송곳, 역주) 달고 태어난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나라의 큰 일 하나 맡아봐야 하지 않겠는가?”하며 문과에 응시하니 낙방하였고, 이듬해 응시하였으나 다시 낙방하였다.


   이에 분을 삭히지 못하고 붓을 분질러 내버리려 하니, 그 모습 본 부(父) 왈, “붓이 무슨 잘못을 하였다 그러느냐?”하며 꾸짖으려 하자, 기량 즉시 답하길, “제가 뜻하는 바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붓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자신을 쓰는 주인의 생각이 종이에 그대로 드러나야 붓이 좋은 붓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였다. 그러자 이를 듣는 하인들이 괴이하게 여기었으나 안에 있던 조부 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며 왈, “사내 대장부 되어 주변을 자신에 맞게 바꾸는 것도 중하나 자신을 주변에 맞게 바꾸는 것 또한 대장부가 필히 갖추어야 할 덕이니라. 허나 기량 너에게 맞는 건담 신기체를 병부에서 새로 들였으니 다음 해에 무과에 응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하니 기량 문과는 접어두고 무과 급제하여 조선 팔도를 지키겠다 하였다.


   만력(萬曆) 16년(1588년) 무과에 응시하여 건담을 타고 무용을 보이니, 제 뜻대로 건담을 조종하여 자유자재로 무용을 보였다. 속히 움직일 때 발생하는 가속력을 쉬이 견뎌내었으며, 지상에서 자연히 몸이 받는 힘의 10배를 능히 견디며 조종하였다. 화면에 등장하는 표적이 열 개를 넘어가도 쉬이 눈으로 쫓았으며 뒤에서 쫓아오는 미사일(尾射軼)(상대의 꼬리 뒤를 향해 쏘아 넘기는 원거리 무기, 역주)을 뒤를 표시하는 화면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경보음만 듣고 채푸(債䬌)(빛을 바람에 흔들리게 뿌리는 미사일 회피병기, 역주)를 알맞게 살포하여 피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론적인 부분은 완벽하였으나 조종간을 직접 돌리어 움직이는 부분에서 약점을 보여 실전 조종부분에서 큰 감점을 당하였다.


   이에 무과 응시 후 돌아오는 길에 동무들과 함께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왈, “내 문과 급제는 고사하고 무과 급제를 위해 노력하였거늘 어찌 기체는 나를 따르지 못하는가?” 하니 그의 동무(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왈, “무엇보다 빨리 성장하는 사내를 어찌 생각 못하는 물건과 기술력이 따라오겠는가? 그대의 빠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이나 빠르니 번개와 같고 그대의 사내다움은 붉게 불타는 불보다 뜨거우니 내 호(號)를 짓기를 적뇌(赤雷)라 지어주리다.” 그러자 마음에 들어하며 적뇌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낙담하여 마루에 걸터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조종간을 어찌 조종하여야 하는가를 담은 『아프니까 건담이다(痛症健譚)』를 쓸쓸히 읽고 있으니 가족 모두가 근심하였다. 허나 근심함도 잠시 결과가 발표되어 신기체 조종에 걸맞는 자로 발탁되어 특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크게 기뻐하며 기량 왈, “내 사내 대장부 되어 조선 팔도에 사는 백성들과 종묘사직을 수호하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허나 자만하지 말고 훈련에 정진하여 문관인 큰형님과 같은 무관인 작은형님과 비교되지 아니하게 하며 배가(裵家)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다.”며 스스로를 낮추며 집안 어른들에게 공을 돌려 감사인사를 전하였다.


   기량이 사용한 건담 기체는 로봇과 사랑을 나눌 정도로 교감해야 조종할 수 있다하여 애반(愛頒)이란 명이 붙은 것이다. 애반 기종은 이후로도 여럿이 있는데, 기량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첫번째 애반이므로 기량의 애반은 이후 대에서 초호기(初号機)라 부르는 것이다. 애반은 징구로율(徵九擄率)이라 하여 조종수가 한 차례 부르면 아홉 차례 기체를 완전히 사로잡는 것을 전체로 삼아 나타낸 비율을 높이 가져가는 자가 쉬이 조종할 수 있는 기체인데, 시험 당시는 일시적으로나마 가장 높게 비율을 가져간 자가 1할 5푼에 불과할 정도로 조종이 어려운 기체였다. 허나 기량이 조종하자 비율이 처음부터 3할에 이르러 병조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워했으며 보고를 받고 직접 훈련을 지켜본 병조 판서 기록하길, “내 환갑을 산 노인처럼 긴 삶을 살지는 않았으나 이리 훌륭히 건담을 조종하는 조종수는 처음 보며 이후로도 보기 힘들지어다.”하여 극찬하였다.


   만력 18년(1590년) 기량은 7할에 이르는 징구로율을 보였으며 원래 가지던 재주에 더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애반 초호기를 사용한 덕에 쉬이 조종하여 부족했던 조종간 조종 실력을 메꾸는 것을 넘어 가득 채웠으매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에 훈련 수료 직후 기량 왈, “내 애반 기체 그대가 없으면 어떤 방식으로 조선 팔도와 종묘사직을 지키는 무관이 되었을꼬?”하며 자신의 기체를 아끼었다. 우수한 수료 성적에 더해 애반 기종의 특수한 기동 방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훈련기를 전용기로 반출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특례를 받자 지체없이 자신의 기체를 자신의 훈련기로 정하였다.


   기량은 여진족과 대치하는 북쪽 국경에 처음 배치된 형 뇨량과 달리 심상찮은 왜구를 막기 위해 전라좌수영에 배치 받았다. 왜구가 오래동안 번번히 동래부터 시작하여 남해안과 동해안의 어민들을 약탈하며 어촌을 노략질하니 주상의 근심이 컸으며 해안에 접한 어촌을 넘어 몇몇 무리는 육지로 상륙해 농촌까지 약탈하여 주민들의 신음소리가 한양까지 들리는 듯하였다. 이에 더해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나오는 조운선을 약탈하여 조세 징수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니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기량이 처음 근무하는 날 경계 근무를 서다 섬진강 나와 바다로 나아가는 조운선이 약탈당하고 어촌에 상륙하는 왜구 기계전함(機械戰艦)을 보자 크게 노하며 소리치길, “어찌 조선의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조선의 백성들이 고통받고 팔도 땅이 짓밟히는 것을 보고 견디겠느냐?”하며 보고 올리지도 않은 채 기계전함에 돌격했다.


   이전에 보지 못한 애반 기종이 이전에 조종간으로 보이지 못한 정확도와 속도로 움직이자 왜구들 혼비백산하여 조선 관아에서 약탈한 미사일 발사하나 채푸 뒤로 흩날리며 피하였고 광선검 발도하여 왜구 기함이던 기계전함 양분하니 기개에 눌리어 나머지 왜구들 줄행랑쳤다. 왜구 쫓아내고서 기량 정신차리니 보고 올리어 허가 받지 아니하고 건담 발도하여 군율에 의해 벌 받을까 두려워하나 이내 마음 다잡으매, “저지른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바로 말하는 것이 옳다.”하며 바른대로 고하였다. 기량의 직속 상관은 크게 문책하였으나 장계를 받아든 전라 좌수사 이순신(李舜臣) 왈, “군율에 어긋난 것은 잘못이나 조선 백성을 위해 움직인 것이니 군율에 나온 만큼이나 무겁게 처벌할 수 없다.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하며 기량을 직속 건담부대로 옮기나 다만 3개월 간의 감봉과 1개월 간의 근신 처분을 내리었다. 이에 기량 사죄하고 반성하며 받아들였다.


   만력 20년(1592년) 4월 (양력으로는 5월, 역주) 왜군이 동래에서 벌떼같이 몰려오니, 기계전함이 750척이요 건담이 470기며 병졸들이 십수만에 이르렀다. 기계전함 외의 선박도 가득하야 달 뜨는 동래 앞바다의 동쪽을 새까맣게 물들이니 물보다 배와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이에 동래 함락되고 왜군 파죽지세로 넘어오니 전라좌수사 이순신 수군 몰고 옥포에서 왜군 섬멸할 적에 기량 함께하였다. 전투 개시 무전이 들려오자 기량 광선검 발도하매 왜군 기계전함 양단하고 왜건담과 맞서니 조선광선검과 왜광선도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십수합 주고받으매 결판나지 않자 기량 기지 발휘하여 광선도 숙여 피하매 채푸 흩날려 상대 시야 가리고 침몰한 기계전함 들어 내리치니 왜건담 오른팔이 나가떨어졌다. 이에 왜건담 급히 도망치니 기량 쫓다가 잠수함(潛水艦) 어뢰 발사되는 소리 듣고 물 위로 폴짝 뛰어 피하매 어뢰 왜군 기뢰부설함(機雷敷設艦) 맞추나 오른팔 없는 왜건담 온데간데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량 끝내 아쉬워하나 좌수사 공을 치하하며 장계에 공 빠짐없이 적어 올리니 주상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기량 자신의 애반 초호기 도색하도록 하는 상 받자 붉은 색으로 칠하며 자신의 호인 적뇌(赤雷)새기자 도색하는 병사 이유 묻자 “적기삼배속(赤機三倍速)이니 붉은 색이 더 빠르다.”라 대답하였다.


   사천에서 시작하여 며칠간 바다를 휩쓰매, 기량 급한 성질 보완하고자 좌수사 순신 강심장(姜心臟) 철갑건담 귀선(龜船)(거북선이라고도 부른다, 역주) 조종하여 같이 행동하게 하니, 득거통행(得居通幸)(도쿠이 미치유키, 역주)의 건담 목을 베는데 공을 세웠다. 한산도에서 순신 거짓 퇴각하며 왜군 끌어들여 섬멸하려 할 때 기량 참지 못하고 뛰어나가 왜건담 물리치려 하나 순신과 지휘관들 다른 함선 위치 조정하며 잠수함 어뢰 좌표 논하느라 무전치지 못하였다. 이 때 심장 꾸짖으며, “덕감아, 배덕감아! 어찌 좌수사께서 짜놓은 판을 망치려 하는가? 이전에 있던 일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는가? 참을 일과 뛰어들 일을 구분치 못하는 자는 대장부라 칭하지 않고 소인배라 하니, 두 일을 잘 구분해야 대인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라 무전하자 기량 이내 정신 차리고 답하길, “내 다시 이성 잃고 뛰어들 뻔했으나 도범(菟範)(강심장의 자(字), 역주) 그대의 꾸짖음에 정신차려 올바른 길을 나아가게 되었으니 어찌 고마움을 표할꼬?”라 대답하였다. 이후 한산도에서 학익진으로 포위섬멸하여 건담 하나를 베고 기계전함 셋을 갈랐으며 십수의 함정을 베었다.


   수많은 바다를 누비매 부산포에서 정박한 건담과 함정을 벤 공으로 기량 건담부대장으로 승진하나 기량 사양하매, “소인 성질이 급하여 대장에는 맞지 않습니다.”하니 품계만 높이고 수석건담조종수로 임명하였다. 만력 25년(1597년) 충무공 모함당하여 백의종군하매 삼도수군통제사로 원균 임명되어 칠전량에서 크게 패할 적에 기량 퇴각하는 무리에서 심장 공격당해 위기에 처하는 것을 보자, “친우를 돕는 것은 마땅한 인간의 도리요, 전우를 돕는 것은 마땅한 군인의 도리요, 한산도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갚는 것은 마땅한 의협이니 내 어찌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는가?”하며 달려들었다. 왜건담 일본도 조선검 발도하여 막아내니 빛이 튀었고 한 손으로 검 휘두르며 다른 손으로 왜건담 허리 잡아 메치니 파도가 크게 일어 일순 비가 내리는 듯하였다. 귀선 탄 심장 정신 차리지 못하매 두 팔 날아가 온전치 못한 귀선 한 손에 잡고 채푸 뿌리어 왜함 미사일 피하나 어뢰 다가오자 짊어진 무게 무거워 뛰지 못할 것을 알고 순간 기지 발휘해 광선검으로 어뢰 잘라내되 애반 손상 입어 기량 함께 부상 입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무사히 귀환하더라. 이에 심장 감사하며, “내 어찌 이 은혜를 갚겠는가?”하니 기량 웃으며, “내가 한산도의 은혜를 갚은 것이니 도범 그대는 정 고맙다면 술이나 한 잔 사게.”하였다.


   충무공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복귀하여 명량에서 전투 치르려 하니 귀함 모두 파괴되어 쓸 수 있는 것이 수리된 애반 포함 건담 3척과 전함 포함한 함이 10척이었다. 허나 왜군은 이에 10배 넘는 병력을 끌고 오니 병사들 겁에 질려 오지 못하나 통제사 홀로 건담 탑승하여 조선검으로 왜건담 맞서고 왜군 함정 갈랐다. 이에 물보라 치며 시야 한 차례 가리니 왜함 하나 사라지고 다시 물보라 치며 시야 가렸다 통제사 탄 건담 보이니 왜건담 팔 하나 날아가나 통제사의 건담은 새로 출고된 것 마냥 반들반들하였다. 기량 이를 보고, “어찌 왜적에 맞서라는 명을 무시하겠는가?”하며 병사 중에서 가장 먼저 돌격하며 발도하여 왜건담 가슴 찔러 뚫어내니 전자장비가 바닷물에 튀었다. 뒤돌아서매 기계전함 함포 놀라운 움직임으로 피해내고 탄약고 찔러내어 유폭시키나 뒤에서 다가온 비행선(飛行船) 보지 못하여 기총소사 당하니 순간 움찔하여 움직임이 굳었다. 이 때를 노려 왜건담 하나 발도하여 허리 치려 하나 통제사 일순 구원하러와 왜건담 손 쳐내어 일본도 물에 떨어트리고 발로 다리 걷어차 다리 부서지며 쓰러지니 건담 부품 흩뿌리며 바다 위로 떨어졌다. 기량 구원 감사해하자 통제사 전체 무전으로 모두 들으라 꾸짖으며, “이제야 오다니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어서 왜군을 쳐부시지 못할까!”하니 조선 병사들 정신 차리고 사기 크게 올라오며 새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혈색 돌아와 왜군 베어내고 함포 사격하여 왜선 백수십을 가루로 만들었다.


   만력 26년(1598년) 노량에서 퇴각하는 왜군들 쫓으매, 화려한 기예 보이며 기량 왜선 베어내고 왜건담과 수십합 주고받아 빛이 휘날리는 듯했다. 도검 말고도 애반 특성 살려 다리도 움직여 현란한 발놀림으로 무게중심 옮겨 상대 쓰러트려 물보라 튀는 가운데 가슴에 검 꽂아 무력화하니 비 오는 폭풍 속에 현란하게 태양 움직이는 듯했다. 허나 통제사 왜군 탄에 맞아 쓰러지니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하나 이 이야기를 건담 탄 장수들과 지휘 장수들에게 무전으로 전한 것이라 기량 무전 듣고 알게 되어 격분하며, “통제사께서 내 급하고 참지 못하는 성질을 잘 이용해 종묘사직 지키고 백성들 보호하는데 큰 도움 주시고 공을 세우는 것에 도움 주시나 자신의 공으로 바꾸지 아니하여 온전히 상 받게 하시니 통자세의 은혜로 군(君)과 부(父)에 비할 만한 사(師)로 칭하는 것이 실오라기 하나만큼의 무리조차 아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였으니 임금이 죽고 부모가 죽은 만큼이나 슬픈 이 감정을 어찌하겠는가?”라 말하고 왜군에게 뛰어들었다.


   징구로율이 전체를 의미하는 10할을 넘어 수백, 수천할에 이르니 적기삼배속(赤機三倍速)이란 말 그대로 눈 감았다 뜰 때마다 파도 일으키며 움직이고 외부에 다 들리도록 소리치길, “갈(喝)! 너희 왜놈들은 백성을 괴롭히고 국토를 유린했으며 통제사 목숨마저 앗아가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하니 왜군들 겁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검 발도하여 건담 십수기를 베어내니 볼투(乶套)와 노투(櫓套)가 바다에 흩뿌려지며 해저의 잠수정 포착하고 발로 걷어차 공중에 띄워 베어내니 마치 관우와 항우의 무용을 보는 듯했다. 전함 베어내고 구축함 썰어내니 번쩍이는 검이 벼락과도 같았고 고작 수 합 주고받고서 건담 팔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몸체가 벼락 맞은 나무 쓰러지듯 무너지니 왜군들 사색이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줄행랑쳤다. 허나 애반 조종에 너무 많은 힘을 쓴 나머지 기량 쇠약해졌으며 복귀조차 하기 힘들어 전투 후 구조해 나왔다. 이내 기운 회복치 못하고 가족들과 친우들, 전우들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말을 남기니, “왜적들은 모두 물러갔는가? 조선은 무사한가?”라 하자 심장 눈물 보이며 그렇다 하자 웃으며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이에 주상 슬퍼하며 시호 내리길 충의공(忠義公)이라 하였다.


   사관(史官)은 논한다. 버려질 뻔한 재주를 무과에 응시하여 살려내었고 기술의 발전으로 구해내어 훌륭한 장수로 키웠으니, 진로를 정해준 조부의 덕이며 기술을 발전시킨 학자들의 공이 크다. 또한 유능한 장수 밑에서 자신의 천성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으니 충무공의 공과 덕이 여기까지 미친다. 비록 급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천성을 타고 났으나 인복(人福)을 타고나 자신을 잘 이끌어갈 사람을 만나 자신의 무용을 펼치며 역사에 이름 석자를 남기고 사나운 성미를 비적 무리가 되는 것이 아닌 조선을 위해 쓸 수 있었으니, 이것은 이러한 환경을 조성케 한 군주의 덕이라, 이 또한 역군은(亦君恩)이샷다.



장소챈 대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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