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writingnovel/52883269?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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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라는 말 이후로 한마디도 없던 험악한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는 드디어 입을 뗐다.


“거기 여자만 나 따라오고 나머지는 밖에서 망봐라. 누구 오면 얘기하고.”


이렇게 말하고선 내 팔을 세게 잡아끌고 창고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라?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학교인데. 아니겠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남자는 내 팔을 더욱 세게 잡아당기며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나머지 네 명의 얼굴은 당황스러워 보였으나 화를 입는 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조금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나와 남자는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내던져졌고, 남자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벨트를 풀었다.


바닥에 내려앉아있던 먼지들이 순식간에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


하나밖에 없는 어두운 램프 아래, 산 제물처럼 내가 누워있다.


남자는 셔츠에 단추까지 전부 풀고서야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내 양팔을 잡아 머리 위쪽으로 올려 교차시키고선 왼손으로 세게 눌러 제압했다.


나는 나름대로 저항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다리를 이리저리 차 보거나 몸을 비틀어대며 빠져나가려 애썼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내 옷을 벗기려 하고 있었다.


남자의 아랫도리를 보니 벌써부터 바지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미친. 진짜다. 이 새끼는 진짜야.


아무리 몸으로 저항해 봤자 나는 여장을 해도 들키지 않을 정도의 체격밖에는 안되고, 이 남자는 대충 봐도 180 후반에 몸무게 세 자릿수는 족히 넘어 보였다.


신체적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다가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그 자리에서 내 계획은 바로 끝이다. 그것만은 절대 사절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 반드시 생각해 내야 한다. 제발 뭐라도 생각해 내라...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남자가 다른 F들한테 분명히 망을 보다가 누군가 오면 얘기하라고 했었다. 그렇다는 건 이 남자는 역시 선생이 아니다. 설령 선생이 맞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이 상황이 들키면 안되는 입장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조건 시간을 끌어야 한다. 아무나 이 주변을 지나갈 때까지. 일단 말. 말이라도 걸어보자.


“잠깐! 지금 이, 이런 짓 해도 되는 거야? 강간은 중범죄라고!”


“중범죄? 그런 건 이 학교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내가 2학년 B반이라는 거다. B등급이라고. 거기다 너는 F고.”


“그깟 등급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야? 이거 놔, 당장!”


“그깟 등급? 네가 신입생이라 아직 이 학교에 적응이 안 된 모양인데. 이 학교에선 등급이 다야. 이 학교는 등급이 높으면 강간이든 폭행이든 용서해 준다. 하고 싶은 건 거의 전부 할 수 있어. 다시 말하지만 나는 B등급이고, 너는 F등급이다. 이제 알겠냐?”


거짓말이다. 이런 짓을 그렇게 쉽게 용서해 준다면 이런 구석진 곳에서, 그것도 망까지 봐가면서 벌일 리가 없다. 누군가 이 주변을 지나가주기만 한다면 벗어날 수 있다. 그때까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 그래도 이런 짓은...!”


“그래도는 무슨. 안 그래도 신입생 F들 교육담당 걸려서 짜증 났는데 마침 잘 됐어. 대충 기강만 잡고 끝내려 했는데 F에 이렇게 예쁜 년이 걸렸을 줄이야. 네가 잘못한 거야. 알겠어? 네가 예쁜 게 잘못이라는 거다.”


미친... 이제 할 말도 없는데. 제발, 아무나 빨리...!


“아, 안 돼! 그만해!”


“가만히 좀 있어! 최대한 빨리 끝낼 테니까.”


남자의 손이 치마에 닿았다. 이걸 내리면 계획은 끝이야...! 제발...!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저, 저기... 여기로 누구 오시는데...요.”


남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 당황하며 재빨리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맞은 모양이다.


“너도 옷 빨리 다시 입고 가! 기숙사는 너네들끼리 알아서 잘 가보고.”


이렇게 말하고선 정말 빠르게 줄행랑을 쳤다. 얼마나 급하게 갔는지 벨트를 깜빡하고 간 모양이다. 이건 혹시 모르니 챙기기로 했다. 


“저기... 괜찮아?”


밖에서 망을 보던 F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 응, 괜찮아. 끝까지 가지는 않았어.”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떡하지? 그 녀석도 도망가 버렸고.”


“그 남자, 나가기 전에 나보고 기숙사는 알아서 찾아가라던데.”


“어? 진짜? 그럼 너 혹시 기숙사 어딘지 알아?”


“...아니? 너는?”


“나도 모르는데?”


...이 학교에서 F의 삶이 어떤 건지 대충은 깨달은 듯하다.


하늘은 점점 붉어지고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