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뿐인 장소에 걸쭉한 붉은 액체가 꿈틀거리며 형상을 이뤄나갔다.
“불사신씨, 완전 재생까지 7.1초...”
분쇄기에 넣어 곤죽을 만들었음에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에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깜찍한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수첩에 탁탁- 두 번 볼펜으로 두드려 잉크가 잘 나오는 걸 확인 후, 1313이랑 7.1을 적어넣었다.
1313번째 실험 결과 7.1초.
제 모습을 되찾은 험상궂게 생긴 불사신씨가 몸을 일으켜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렸고, 무어라 외쳤지만 목소리는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방음 설비 완벽히 작동 중.
오늘 있을 설비 점검도 아무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나올 거 같다.
내가 담당하는 실험실인 만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걸 저렇게 방치해선 안 되겠지?
고개를 기울이며 침과 피눈물을 질질 흘리며 유리창을 두드리는 불사신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실험실 밖에 놓여진 초록색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불사신씨가 있는 실험실에 뿌연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불사신씨는 그렇게 쓰러졌다.
다음 실험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 푹 자두는 게 좋을 거다.
“디디, 어딨어?”
아, 나 부르신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리창을 거울삼아 방긋방긋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대로 수첩을 가진 채로 달려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엔 나를 좋아해 주시는 착한 언니가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내 머리에 손을 얹어 마구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무척이나 따스하다.
“디디, 여깄었구나?”
언니는 따스한 손길과 어울리는 포근한 목소리로 나를 이야기했다.
디디, 내 이름이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저건 애칭이고 내 이름은 D.
하지만 나를 부를 때마다 언니는 그냥 디 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항상 디디라고 불러주신다.
나에게 부여된 이름은 그게 아닌데도 기분이 나쁘긴커녕 살짝 몽글몽글해지는 기분.
헤실헤실 바보같은 미소가 지어진다.
“실험은 다 끝났니?”
“네! 불사신씨 이번엔 7.1초에요!”
“저번보다 0.4초 느려졌네?”
고개를 붕붕- 끄덕이자 언니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내 볼을 어루어 만지며 말을 이어나갔다.
“실험이 힘들진 않니?”
“괜찮아요! 제가 만들어진 이유인걸요!”
진짜다. 그렇게 힘들진 않다.
나는 연구원분들의 실험을 대신하거나 돕도록 만들어진 인형이지 않나.
나는 내 몫에 최선을 다할 거다.
만약 내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소장님이 나를 폐기처분 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직 살고 싶었다.
내 이전 인형인 A, B, C처럼 허무하게 죽기 싫었다.
몸을 잘게 떨자 머쓱해진 건지 언니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 언니는 “배고프다~”라며 말을 돌렸고 나는 그 장단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 오래 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어수선했다. 음식물 따위가 바닥에 흩어져있었고 식기가 부서져 조각났다.
“또 누가 실험규칙을 어겼나보네.”
“그러게요.”
“진짜 우리 디디만큼만 하면 좋을 텐데 그치?”
나는 그 말에 선뜻 긍정을 표할 수가 없었다.
언니가 특별히 나를 잘 대해주는 거지, 모두가 날 예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불쾌해하시거나 심할 경우는 혐오감을 종종 드러내기도 하신다.
불쾌하고 혐오감이 드는 존재가 자신들보다 낫다는 말에 긍정을 표한다면 언니가 없는 사이 흠씬 두들겨 맞을 거라 확신한다!
“에, 에이 그래도 여러분들이 저보다 낫죠! 저는 인형일 뿐인걸요!”
과장되게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자 따갑게 쏘아지던 눈빛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다행이다.
적어도 얻어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다.
언니는 다 좋은데 눈치가 없는 건지 나를 너무 곤란한 상황으로 만들 때가 많단 말이지.
고의는 아니다.
그냥 사람이 그렇다!
내 시선을 무시한 채로 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 지금 상황을 물었고, 그에 대한 답변을 나 역시 옆에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
사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뻔한 일이지만, 한 번 더 확인하여 확신을 가지는 것과 그저 예측으로 끝나는 건 천지 차이 아닌가.
뭐가 어떻게 되었든 지금 이야기에 집중하자.
이번에 미쳐버린 이는 이미 며칠 전부터 환각과 환청을 호소했다고 한다.
다만, 인력이 부족하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계속 실험에 투입되었고 지금이 그 결과라는 것이다.
“정신계 실험체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소장님은 무슨 생각인지.”
“소장님의 생각이 아니라 돈의 생각 아니겠냐.”
한숨과 함께 이번 일을 설명해준 아저씨는 나를 흘깃 바라보았고, 움찔- 몸을 움츠리자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사탕이다, 난 안 먹으니까 먹던지.”
“가, 감사합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착한 아저씨였다.
레몬 맛 막대사탕을 소중히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방긋 지어 보였다.
“근데 얘는 옷 따로 안 준 다냐? 뭐가 어떻게 되었든 여기서 일을 하면 옷은 좀 맞췄으면 좋겠는데.”
이야기 주제가 갑자기 나로 변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옷.
나는 내가 입은 것을 바라보았다.
속에 입은 거야 반바지랑 반 팔 따위로 문제 될 건 없지만 저 아저씨가 말하는 건 아마 겉옷을 말하는 걸 거다.
폐기 처분된 연구원이 입던 흰 가운.
키가 120 언저리인 내가 입기엔 너무나 커서 끝자락이 바닥에 전부 쓸리고 있으니 아마 이걸 보고 말하는 거 아닐까.
이 시설에서 보급해주는 물품들은 대부분 좋은 것들인데 끝자락이 바닥에 하도 쓸려서 다 해졌다.
언니는 아저씨의 말에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시선이 살짝 불안하다.
“다음에 물품 신청할 때 이야기해볼게, 근데 확실히 더럽긴 하다. 일단 저 밑자락 잘라낼까?”
내 가운을 자른다는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언니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다.
“디디야, 네가 싫다면 별수는 없긴 한데 그거 그렇게 질질 끌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요! 이게 좋아요!”
흰 가운은 내가 이 시설에 소속감을 가지게 해준다.
그런데 그런 흰 가운을 멋대로 잘라낸다면 소속감 같은 게 잘려 나갈 거 같다.
아예 내가 입을 사이즈로 흰 가운을 준다면 모를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에 가위질을 하게 둘 수는 없다.
허리를 쭉 피고 양손을 허리에 얹어 불만을 표시했지만 돌아오는 건 머리를 쓰다듬는 거친 손길 뿐.
“으아아아아아-...”
“이 언니가 이번에 힘써서 네 가운 하나 받아올게.”
거친 손길이었지만 따뜻했고, 장난기 묻어있는 목소리였지만 포근했다.
나는 그런 언니의 모습에 베시시- 웃어 보였다.
착한 언니다. 만약 언니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시설에서의 생활이 이토록 수월하진 않았겠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은혜 반드시 갚으리라.
양손을 꼭 쥐고 다짐하며 우린 식당 밖으로 나섰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나.
실험체의 영향을 받아 미쳐버린 사람은 대개 종을 초월한 힘을 내기에 진압반 사람들이 와서 처리해야 한다.
아쉽지만 이번에 미쳐버린 분은 다음부터 얼굴을 볼일이 사라지리라.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언니의 방에 도착했다.
밖은 전부 회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언니의 방은 하늘색이며 노란색이며 색이 많았다.
이 시설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모습에 이질적이면서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언니의 침대에 앉아 손등으로 시트를 쓸어보았다.
부드럽다.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는데.
살짝 부러워한다면 내가 양심이 없는 걸까.
기본적으로 나는 지병이나 근육통 따위에 시달리지 않는 몸이니, 침대는 사치품아닌가.
푹신푹신 한 게 기분 좋아서 다리에 힘을 줘 몇 번 방방이를 타고 있자 언니가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박스 채로 쌓인 에너지바와 동결건조된 우유 분말.
그리고 생수.
오늘의 저녁밥이다.
우유 분말을 머그컵에 넣고 물을 따라서 잘 섞고, 에너지바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달달한 초코맛이다.
“천천히 먹어, 많으니까.”
언니가 나를 챙겨주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거 너무 낯설었는데.
언니가 나를 너무 잘 챙겨줘서 이젠 너무 익숙해졌다.
만약 언니가 죽어버리면, 나는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갈텐데.
그때가 되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 끝에 결론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언니는 안전 수칙 꼭 지키셔야 해요?”
만약 언니가 죽어 사라지면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텐데.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서 다시 그 생활을 버틸 자신이 없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난 죽을 생각이 없어. 별 이상한 걱정은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
콩- 괜한 소리를 했다가 딱밤을 얻어맞았다.
슬그머니 한 손을 올려 정수리를 문질렀다. 살짝 아팠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통제 시간에 걸리기 전 헤어졌다.
시간이 지나 다음날이 되었고, 언니는 죽어버렸다.
“...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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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을 펼쳐라 그것이 바로 문학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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