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6화

 

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완결


하야시는 사쓰마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이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과 가을에 잘 익은 곡식을 거두는게 삶의 낙인 평범한 사내였다. 평생을 글을 읽어 본 적도 없고, 무기를 손에 쥐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사내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인외의 마경, 현세에 강림한 지옥도 그 자체였다.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내 주변에는 갈가리 찢겨 형체를 알아 볼 수조차 없는 조각들이 널려있었다. 발바닥은 이미 피에 절어 살색을 잃었다. 질척거리는 땅은 사람의 혈액으로 윤기가 흘렀다. 남자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창대를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처음에 사무라이는 자신만만하게 그랬다. 칼도 쓰지 못하는 조선 놈들은 내가 칼 한 번 휘두르면 모조리 쓸려갈 거라고. 그때는 별 생각없이 믿었다. 살면서 처음보는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고 칼을 찬 무사를 죽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선군을 보며 우리는 모두 웃었다. 변변찮은 창이나 칼 없이 이상한 막대기를 들고 있는게 멍청한 놈들 같았기 때문이다. 별 고민 없이 사무라이는 돌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놈들이 가진 막대기가 말 그대로ㅡ 불을 내뱉었다. 자각할 틈도 없이 사람들이 쓰러져나갔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그 불 뿜는 막대기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았고, 그 사이에 다시 한 번 돌격했다. 


그러자 가까이 가기 전 까지는 보이지 않던 창 잡은 병사들이 튀어나와 달려들던 이들을 꼬챙이로 꿰메놓았다. 그 사이에 준비를 마친 이들은 다시 한 번 불을 뱉어냈고, 그대로 끝이었다. 땅 위에 서있는 자들은 몇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뚝 서 있던 성은 어느새 그 형체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조선군 뒤쪽에서 날라오는 쇠구슬은 날라올 때 마다 소름돋게 성벽의 약한 부분만 때려대고 있었다. 더 무서웠던 건 조선군의 표정이었다. 눈 앞에서 사람이 분리되는데도 어떤 동요도 없던 그 표정. 그건 절대로 경험이 많아서 나올 수 있는 무감각함은 아니었다. 오히려ㅡ그래. 이지를 잃고, 아니 이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느낌.


대체 나는 여기 왜 서있는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가?ㅡ 그것이 평생을 순박하게 살다가 총탄에 목숨을 잃은 남자가 이승에서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결론부터 말하면 파이크 병은 개 혜자 유닛이었다. 묘하게 현실적인 이 시스템 상에서 머스킷의 연사력과 개틀링의 잔고장 사이를 매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많이 쌌다. 근데 얘는 이거 어떻게 안거야?


"문명을 발로한거냐? 아니면 공부를 안 한건가? 테르시오 몰라?"


알긴 하지만 그걸 실전에서 쓰는 건 다른 문제지. 얘 진짜 천잰가?


"야. 너 문명 5 모스트 3개만 뽑아봐."


"폴란드, 몽골, 훈족."


"정복승리만 했냐?"


"어. 딴 건 재미없어."


역시 그랬군. 우리 마님은 내가 외교승리 한 번 해보려고 허리 숙여가며 빌빌기고 과학승리 하려고 로켓이나 만지작거리던 와중에 군대를 이끌고 대륙을 쓸어버리고 계셨던 것이다.


"아, 근데 이럴 줄 알았으면 파이크 병 뽑으라 할 때 그냥 이유 알려줘도 됐잖아?


"싫어. 요즘 니 태도가 개같았어."


하긴 그랬다. 일이 하도 많아서 받은 짜증을 무심코 얘한테 풀었나보다. 그러고 나니까 미안한 마음이 생겼..


"그리고 내가 니 약점 하나 정도는 잡고 있어야 나한테 잘 할거 아냐? 그래서 그 문서 챙겨뒀는데?"


..었는대요, 그런데 짜잔! 없어졌습니다!


뭐 여튼 우리 군대는 쭉쭉 나아갔다. 진군한지 한 달만에 쓰시마를 포함한 일본 남부 전역이 우리 손에 떨어졌고, 한 달 후에는 교토가 완전히 포위되었다. 애초에 결속력이라고는 뭣도 없는 무로마치 막부였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높으신 분들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이대로 포위하고 대포로 두들기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2주 후, 무로마치 막부 4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무치가 직접 항복 사절을 이끌고 입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 * *


좋은 날이었다. 바람도 적당히, 햇빛도 적당히, 습도도 적당히 있는 기분 좋은 날. 오늘은 쇼군이 입조하러 오는 날이었다. 경복궁의 근정전 앞의 품계석에는 문무백관이 도열해 있었고, 주상 전하께서는 관을 갖춘 채로 옥좌에 앉아 계셨다. 이윽고 근정문을 지나 들어온 일본 사절이 당도했다. 


뭐 복잡한 절차가 여차여차 지나갔다. 우리 일본국은 어쩌고 저쩌고 대조선국은 어쩌고....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하례를 하고 내려온 쇼군에게 나는 말해줬다.


"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


크으!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내가 이거 해보려고 그렇게 일했나봐...흑.


쇼군은 뭔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얼굴이었고, 그 말을 들은 역관은 새파랗게 질렸으나, 뭐 내 알바는 아니었다. 난 소원성취 했거든! 


이제 남은 건 뒤처리 하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