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마차가 달린지 두 시간 정도 지나자 나는 런던 시내를 벗어나 교외를 달리고 있었다. 창 밖은 여전히 맑았다. 넓은 평원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제국 농촌의 풍경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내 건너에 있던 남자ㅡ2등 수사관 칼이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칠링워스라니, 악취미군요."


"무슨 이야기인가?"


"학교 이름이 험악해지는(worse) 추위(chilling)라니요. 무슨 조난당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구했다.


"뭐, 교장이 재난소설을 인상깊게 읽었나보군. 시덥잖은 이야기는 됐고, 자네 이야기나 해보세. 요즘 어떤가?"


내 물음에 기껏해야 20대 초반인 칼이 쓴웃음을 지으며 피곤한 투로 답했다.


"여전히 일에 치여 삽니다. 도대체 그놈들은 일을 하는건지 원. 돈도 많은 인간들이 일도 안하고 꼬박꼬박 월급타가는거 보면 속이 탑니다, 아주."


"자네 지위가 더 높지 않나? 2등 수사관 중 백작위 이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네만."


"이름뿐인 백작위 아닙니까. 콧대 높은 인간들이 평민 출신 백작의 말을 들을리가요."


마법은 귀족의 전유물이나, 아주 드물게 그 능력이 평민에게도 발현되는 경우가 있었다. 내 앞의 칼이 그런 경우였다. 2등 이상의 수사관 인력은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제국은 이들에게 단승직위지만 백작위를 부여했다. 마법에 관한 사건은 주로 귀족가 내에서 일어지기 때문에 이들이 눈치보지 않고 수사를 하라는 의도였으나ㅡ현실적으로는 세습 백작가의 아들부터는 이들을 기껏해야 준남작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여튼 고생이 많네. 2개월만 더 참게. 연차 채우자 마자 내 직속 비서관으로 보직이동 시켜주지."


"그 전에도 사건 터지면 불러주십쇼."


"그건 자네 하는거 봐서."


낄낄거리며 웃는 사이 어느새 해는 거의 저물어갔다. 막 어둠이 내려앉기 전, 우리는 사립 칠링워스 여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나 경사가 가팔랐기에 우리는 마차를 두고 걸어올라가야 했다.


"누구십니까?"


"여왕폐하의 1등 수사관, 바스커빌 공 존 레스트레이드 바스커빌. 이쪽은 2등 수사관 어니스트 백 칼. D. 어니스트다. 최근 일어난 사건 조사차 방문했다."


"칠링워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각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정원을 잠시 걸은 후, 우리는 시간이 늦었으니 본격적인 수사와 교장과의 면담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방을 배정받은 우리는 잠시 학교 주위를 걸었다.


"어째 으스스한 느낌이군요. 눌려있는 느낌도 들고."


"지난 보고서에도 써 있었지. 정확히 봤네. 마나가 지나치게 밀집되어 있어. 확실히 인위적이군."


보통의 마나는 한 군데에 밀집되어있지 않는다. 자연은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의 집중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정한 장소에 마나가 밀집되어 있다는 것은 뭔가 마법적인 조치가 행해졌다는 의미였다.


"여기까지 온 김에 투신 현장 좀 가보세. 거기서 자연의 기억술을 행하면 뭔가 나오지 않겠나?"


하얀 분필로 투신한 자리가 표시된 그곳에서 나는 기억술을 시전했다. 주변 자연물을 이용해 과거의 급격한 변화를 보는 마법이라 흐릿하게 보이긴 하지만 꽤나 유용한 마법이었다. 마법을 시전한후, 나는 이내 이상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이걸 보게."


나는 내가 본 영상을 칼도 볼 수 있도록 허공에 띄워주었고, 그 역시도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안되지. 어떤 마법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 따윈 못하네. 엄청난 마나를 쏟는다면 모를까. 더구나 마법으로 정신지배를 시도해도 이 정도로 본체의 저항 없이 몸을 차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세."


"마법이 아닌 자살이라 하기에도 의문점이 남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망설임 없이 똑바로 떨어지는거 가능합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지. 이건 차라리... 약에 취한거라고 보는게 맞겠는데."


무언가 핀트가 어긋났다. 마법에 의한 살인이 아닌,단순 살인 사건이었나. 허나 그렇다고 보기엔 교내 곳곳에 묻어있는,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짓누르는 이 마나가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몸을 이상하게 감싸오는 위화감을 애써 무시한 채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