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중심, 런던은 거의 1년 내내 흐렸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꽤나 특별한 날이었다. 환한 햇살이 회색의 칙칙하던 런던의 거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런던의 중심에 위치한 제국 중앙 치안국의 가장 상층부ㅡ부국장실에도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들어온 밝은 빛도 내 책상 위를 밝히고 있었다. 흠, 오늘 홍차는 맛이 나쁘지 않은데? 왠일로 다즐링을 내온거야? 제국 내각의 여느 부서나 다 똑같겠지만,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건 몇 일 없었다. 제국이 부유한거지 내각 예산이 부유한 건 아니었으니까. 

쾅!

평화롭던 아침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노크도 없이 다짜고짜 들어온 무례한 행동에 한마디 하려 고개를 들었지만 문 앞의 남자를 보며 난 한숨밖에 쉴 수 없었다. 어쩐지, 오늘 다즐링이 있더라.

"앉으시죠, 전하.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렇다. 내 앞에 있는 매너없는 남자는 황태자 에드워드였다. 에드워드는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건데."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입니까, 국장님?"

제국 치안국의 국장은 공식적으로 황태자의 지위 중 하나였다. 국가의 질서는 황실이 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번 국장님은 유난히 이 일에 신경쓰곤 했다.

"우선 이걸 읽어보게나."

신임 교장의 가혹한 교육? 사립 칠링워스 여학교, 
이번 달 벌써 2명 자살!

교육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게 아니다! 교육부 장관의 일갈!

울부짖는 학부모들... 장례식 3일 거행


"그다지 새로울 건 없는 소식이군요."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를 본 내 첫 감상은 그것이었다. 엄격하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은 항상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교육부에서는 사립학교 교육방침에 손을 대려했지만 보수적인 학부모들과 귀족원의 반대에 번번히 막혔다. 그때마다 개혁안이 쓰레기통에 박힌 건 더 말 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저 개혁안을 낸 교육부의 태반이 사립학교 출신인데, 뭐.

"그런 단순한 문제라면 내가 자네를 부르지 않았겠지. 이걸 보게."


* * *

~사립 칠링워스 여학교 자살사건 조사 보고~

2급 기밀

1. 발견된 시신은 두 구. 
2. 한 구는 목을 매어 사망:질식사
3. 한 구는 투신하여 사망:과다 출혈 및 골절
4. 탐문 결과 특별한 원한 관계는 파악되지 않음.
5. 특징사항ㅡ두 사람 모두 평상시에 매우 활발한 성격이었다고 함. 특별히 자살할만 한 요인은 없었을 거라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의견. 유서 또한 발견되지 않음.

정확한 수사를 위해 2등수사관 파견 요청함.

-3등 수사관 마이크 론

1. 교내에서 마법의 흔적이 발견됨. 
2. 특기사항ㅡ친지 및 학교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시신은 이미 장례절차가 마무리 되었음.

정확한 수사를 위해 1등수사관 파견 요청함.

-2등 수사관 칼 D. 어니스트, 1대 어니스트 백작


* * *

"보다시피, 단순 자살 사건이 아닐세. 오히려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농후하지. 결과 보고만 봐도 의심스러운 데가 한 두군데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군요. 마법에 의한 살인이라. 요새 부르주아 계층은 살벌하군요. 벌써 두 세기 전에 사장된 방법을 용케도 찾아서 쓰다니."

대내외적으로는 비밀인, 그러나 귀족 가문의 일원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마법이 실존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마법은 강력한 힘이었기에 그 능력을 가진 이들은 오래 전 부터 귀족으로 군림해왔다. 자연 질서의 힘인 마법은 최근 들어 자연의 균형이 무너지며ㅡ귀족 가문의 저택이 공기 좋은 교외에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거다. 최대한 환경이 좋은 곳에서 마법의 힘을 보존하기 위해서ㅡ그 힘이 거의 사장되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이용해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부르주아 계층 사이에서는 그게 살인의 도구로 이용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별 수 있겠나? 흔적없이 쓱삭하는 데에 마법만 한 것이 없으니 말일세. 여튼, 부국장. 수고 좀 하세나. 지금 런던에 있는 1등 수사관이 자네 밖에 없네."

"그러게 1등 수사관 좀 더 뽑자 했지 않습니까."

"요새 마법 쓸 수 있는 귀족 가문이 흔한가?"

"뭐, 알겠습니다. 출장 수당이나 챙겨주십시오."

"돈도 많은 사람이 무슨."

"티끌모아 태산 아닙니까?"

여튼 귀찮게 됐다. 하필 1등 수사관이 나밖에 없다니. 

마법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3등 수사관, 마법의 흔적만 제한적으로 파악 가능한 2등 수사관. 이들의 정점에 있는 것이 1등 수사관ㅡ각종 마법 시전이 가능한 수사관이었다. 대내적으로는 이 등급이 권한이나 봉급, 혹은 실력 차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하여튼 이렇다 보니 1등 수사관은 언제나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공작이자 부국장인 내가 일선에서 뛰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1등 수사관 파견 허가서~

위 사건에 대한 1등 수사관 파견 요청을 허가함


제국 중앙 치안국 부국장

존. R. 바스커빌, 3대 바스커빌 공작


 나는 파견 허가서에 사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내 파견을 허락하는게 기분이 묘하기는 했지만 뭐 어쨌든. 사건의 틀은 대강 잡힌 것 같으니, 이번 수사는 쉽겠어ㅡ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칠링워스로 가는 마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 기대는 칠링워스에 도착하자마자 산산히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