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민재. 갑자기 내 온도가 오르고 코가 뛰었습니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보통 이렇게 단시간에 감기에 걸리는 사람은 없거든.” 


 “감기?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병이야, 병. 대체로 몸 전체가 아프고, 가끔은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기침도 나고, 너처럼 열도 나고 콧물이 나기도 하는, 아주 악독한 놈이지.”


 리돌은 나의 설명을 듣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감기 처음 걸린 사람한테 하는 이야기 치고는 좀 겁을 많이 준 것 같지만, 사실인 걸. 최소한 병에 걸리지 말아야 겠다는 경각심은 갖고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할 거 아냐. 기왕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이 김에 아예 질병 예방법까지 설명을 좀 해 둬야 될 듯 싶다. 


 “말하자면 긴데, 그게 다 병균때문에 그런 거야.“


 “병균? 병균은 또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생명체인데, 아아아주 작은 생명체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런 녀석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서 난리를 피워서, 그렇게 몸이 아픈 거야. 방금 너처럼 날 추운데 철 모르고 옷 얇게 입고 돌아 다니거나, 밖에서 돌아와서 손 안 씻고 밥 먹고 그러면 병균이 들어가는 거야. 니.몸.속.으.로.”


 나는 한 음절 한 음절, 니.몸.속.으.로. 를 한껏 강조해 주었다. 빈약한 설득력에 강세라도 주기 위해서. ...내가 생각해도 굉장히 무언가 생략하고 왜곡된 설명이다. 바이러스와 병균의 차이점조차 제대로 짚지 못하고, 감기의 원인을 너무 뭉뚱그려서 이야기한 것 같다. 이것은 내가 문과라 그렇다고 조심스럽게 변명을 해 본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훈육을 하는 것 같지만, 뭐 어떠랴. 몸만 컸지, 이 녀석의 수준 자체가 초등학생인데. 이것 봐봐.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다시금 되짚어 보는 달나라 아가씨의 모습을.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같이 강습을 듣는 또 하나의 존재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 나는 지금까지 옷 한 벌 걸치지 않고서도,  밖에서 아무렇게나 식사를 해도 몸 한번 아파본 적이 없었노라.”


 “짐승은 빠지세요. 넌 인간이 아니잖아.”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의 첫 번째 조건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인간의 범주에 어느 정도는 발을 걸치고 있다고 본다만.”


 “그런 복잡한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하면 안 될까? . 일단 리돌이 지금 몸을 추스리는 게 우선인 것 같은데 말이지.”


 나비는 내 핀잔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난 이 녀석하고 지금 철학적인 논제로 입씨름할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달나라에서 온 소녀는 달나라에서 온 소녀로, 말하는 고양이는 말하는 고양이로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사람이라고. 날 좀 생각 없이 살게 내버려 둬 줘. 

 리돌은 나와 나비가 인간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해보였다. 코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는 채로. 그러다, 내가 나비의 입을 다물게 하자 그제서야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민재, 그러면, 병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병에 걸렸느냐고 물어 보는 거라면, 아니.”


 “아니, 아닙니다.”


 리돌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다시 골똘히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이불 속에 파묻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는 그 모습은, 마치 유령을 연상케 했다. 팔다리의 형체가 밤하늘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그런 유령.


 “미생물.”


 “응, 미생물. 아까 이야기하는 병균 말하는 거야?”

 

 “네, 맞습니다. 미생물은 인지합니까?”


 “인지...하냐고?”


 “그렇습니다. 미생물은 생각할 수 있습니까?”


 미생물이 생각할 수 있느냐...라니? 리돌, 이제는 너마저 이러기냐. 난 진짜 더 이상 골아프기 싫단 말이야.

 그런데, 정말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명제다. 분명 바이러스나 세균이나, 그 나름의 생존을 위해서 노력을 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나 동물들처럼, 명확한 종족 번식의 의지나 생존을 위한 노력이 스스로 원하는 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거란 말이지. 그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무 의지 없는 생존 본능을?

 아, 모르겠다. 아까 나비가 꺼낸 이야기야 토론의 범주였다지만, 지금 리돌은 그냥 대답을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해서 대답하면 되겠지. 어차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음, 아니? 생각 못 할 걸?”


 그냥 내 생각이 가는 대로 대답해 버렸다. 병균들이 입이 달린 것도 아니고, 지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알 게 뭐냐. 어차피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 사람 몸에 해를 끼치는 그런 녀석들이 어떤 의지를 갖고 움직인다고 하면 그게 더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렇습니까.”


 리돌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서는, 몸에 둘렀던 이불을 걷어 내고서는 옷 안에서 그 끔찍한 물건을 꺼내었다. 무엇이든 만들었다 없앨 수 있는, 마치 만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듯한 바로 그 물건, 원자분해기를. 그리고서는, 총구 옆의 다이얼을 까딱까딱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흉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뜨악한 표정으로 침대 아래로 들어가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야, 그거 치워라.”


 내가 낮게 읊조리는 것을 들으면서, 리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여전히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어우, 저 놈의 물건은 보기만 해도 섬찟하단 말이지. 어디 잘못해서 방향만 조금 돌아가면 내가 사라지는 거 아냐.

 리돌은 총구를 붙잡고 꽤나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뭐를 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단백질 큐브를 만들던 때도, 머리를 염색할 때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한 5분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조작이 다 되었는지 리돌은 분해기 조작을 그만 두고서는 총신 전체를 이리 한번  돌려 보고, 저리도 한번 돌려 보았다. 정확하게 조율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악기상처럼. 그리고서는, 입 안에 총구를 집어 넣었다. 잠시 섬찟하여 리돌을 말리려 하였으나, 저번에 이 녀석이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서 어떤 일을 했는 지를 기억해 내고서는 뻗으려던 손을 접었다. 뭔가 하려는 건 알겠는데, 왜 매일같이 동작이 하나같이 저 모양이야?

 브즈으으... 

 예의 작동음과 함께, 리돌의 몸 안으로 광선이 뻗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면, 이 녀석의 몸 전체가 연두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리돌의 가슴 중간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흐르듯 연두색 빛은 천천히 그렇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리돌은 총을 쥔 손가락 끝까지 빛이 도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서는, 입에서 총구를 꺼냈다. 총구를 꺼내자마자 리돌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얀 색으로 돌아왔다. 무엇인지 모를 모종의 시술이 끝나고, 리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고서는 멍청히 그 광경을 바라 보고 있는 나를 보며, 바로 외출을 권하였다. 


 “나갑시다, 민재.” 


 “뭐? 어딜 나갈라고. 감기 걸린 애가 그렇게 밖에 쉽게 나가는 게 아냐.”


 “독감은 몸 밖으로 완전히 튕겨 나갔습니다. 공무원은 질병을  피하는 방법에 관해 우리 모두에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그것을 따라 가야한다.”


 “뭐? 튕겨나가... 벌써 다 나았다고?”


 리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 그렇게 코를 훌쩍 거리던 애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보였다. 그리고 발개졌던 얼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의심 가득한 표정과 함께 손으로 리돌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그녀가 정상이라는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원자분해기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해야 될 듯 싶었다. 이전에는 그냥 파괴신의 망치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손에 들린 미니 성궤로 보인다.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머리 색깔이야 그렇다 치고, 병마까지 몰아낼 수 있단 말이야?

 이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에 놀라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 단지 멍해질 뿐이다. 나는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고 띄워 날려 보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멍청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사이 리돌은 문 밖으로 나가 있었고, 나비는 당연한 듯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 역시 짓고 있던 표정 그대로 그 뒤를 따랐다.  

 이젠 진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진짜로.



  그렇게 리돌은 눈밭을 날아 다니는 것처럼 뛰어 놀고 있었다. 급작스러운 추위 때문인지 길거리에도, 공원에도 지나 다니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 그래도 외모부터 눈에 띄는 아이가, 저렇게 하늘하늘거리는 옷 한 벌만 입고 돌아 다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아까 광선을 맞을 때 무슨 다른 조치라도 해 둔 듯, 춥다는 이야기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보통 눈이 오는 날에 노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눈을 뭉쳐 던지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게 가장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달나라 아가씨는 그 본질적인 모습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듯 해보였다. 지금 리돌이 하고 있는 일은, 놀이라기보다는 고고학 발굴 작업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은 모두 이파리가 떨어지고 없는 나뭇가지에 덮인 눈을 흔들어 떨어트려 보거나, 잔디밭에 덮인 눈을 파헤쳐 그 안에 있는 것들이 원래 무엇인지 알아보는, 그런 작업. 그러다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원형이 발견되면,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꺄륵 한 번 웃고서는 다시 다른 곳의 눈을 치웠다. 리돌은 그렇게 지구에서 맞는 첫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리돌을 지켜보는 내 눈 앞에, 그림자가 새까맣게 드리웠다. 나는 그림자의 주인을 한 번 흘끗 바라 보고서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자리에 쌓인 눈을 치워 주었다.


 “고마워요.”


 성희 씨는 미소로 화답하고서는 내가 치워준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에 리돌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오늘도 우리 집에 음식을 갖다 주기 위해 올라오던 성희 씨를 만났다. 눈밭을 산책하러 간다는 그 말을 듣고서는, 성희 씨는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 하였다. 나는 요 앞에 사육신공원으로 가 있겠다는 말만 남기고선 뛰듯이 계단으로 내려갔다. 무언가 눈을 빨리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리돌이 내 팔을 잡아 당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