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13화



돌계단의 양 옆에는 잎 무성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있어 상당히 어두웠다. 내려가는 도중 뒤를 돌아보면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이 숲을 비추는 만화같은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만, 계단을 내려가는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 없지.


그래도 아래로 내려가는 쪽의 모습도 볼만하다. 양편 나무 군데군데로 내려쬐는 노을이 예쁘다. 엉성하게 제멋대로 쌓여있는 돌계단은 계곡처럼 느껴진다. 


근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조금 위태위태하게 보여서 아까같은 슈퍼점프는 못하겠더라. 뭐어 어쨌든 그렇게 돌계단을 내려가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

'와...우...'


여기는 끝없이 넓게 펼쳐진 산의 한 가운데였다. 과연 진짜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을까, 보고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 시야 내의 몇개에 달하는 산을 다 덮고 있었다. 


'이 광경만은, 기호 정보만이 아니라 진짜 풍경으로도 기억하고 싶네...' 

"------멋지지? 우리 나라의 숲도 크지만, 여기는 여기나름의 운치가 있네. 봐도 질리지 않아."

"그 마음에는 동의해요, 선배."


레이나 선배는 계단 앞에 돌 위에 앉아있었다. 교복에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검을 찬 채로, 깔끔하게 베어진 돌 위에 정갈한 자세로 경비를 서고 있다. 


내 마력 내성 덕분에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옷과 반지에 걸린 마법 때문에 검이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등산객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이 돌계단 역시, 계단 양 옆의 나무에 걸린 요술에 의해 가려져있다. 




"경비인가요? 근데 왜 여기서..."

"아직은 여우 구슬을 교체하지 않아서 결계가 강하거든. 이 반지를 끼면..."


레이나 선배는 손가락의 반지를 가리켰다. 


"...결계에 대한 내성을 충분히 내어 주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진 것보다는 기분이 못하지." 

"흐음. 확실히 좀 강하긴 했죠 그거."


마을에서 충분히 벗어나 강화배율은 천천히 떨어지고 있지만, 지금도 일반인의 2~3배? 나는 타이어 고무로 변해버렸던 내 몸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선배도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그래서 나도 품에서 손망치를 꺼냈다. 어휴...


선배는 내 낡은 손망치를 바라보았다. 이건 선배가 선금 대신이라고 내어준 물건으로, 평소에는 액세서리정도 크기로 줄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리고 매우 튼튼하다. 


장점은 이 두가지 뿐이지만 지금은 이걸 보여주는 것으로 내가 나 자신, 연세열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지. 그것만으로 칼을 내려놓기에는 좀 부족했나보네. 날카로운 눈매가 전혀 풀리지 않았거든.




"아직 수습인 너에게는 여기와 점접이 없어야 할텐데?"


지당한 말씀입니다. 오늘 해뜰때만 해도 내가 노을을 이런 곳에서 맞이할 줄은 몰랐지.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얌전히 칼빵 맞을 수는 없으니 나는 열심히 사정을 설명했다. 미사여구도 많이 섞었다. 덕분에 내가 강화마법 하나 받고 여기까지 쫓기듯 왔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표정에 어이가 많이 빠졌다.  


"...운이 없으면 오지랖이라도 줄이든가."

"하하..."

"뭐 나도 마침 너를 부르려 했으니 할말은 없지만."


오지랖 문제가 아니잖수 그럼. 어찌됬든 난 오늘 여기로 끌려올 신세였군. 근데... 왜?


"어째서요?"




이유를 알기위해 나는 되물었다. 다만 되묻긴 했어도, 이유가 아주 짐작안가는 건 아니다. 내 가벼운 물음에 레이나 선배는 뒤를------ 숲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 서서 바라보니 아까 날 보듯 눈매가 꽤 매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당히 낮은 목소리로, 


"...혹시, 이 근처에서 수상한 기운을 느끼지 못했어?"

"마력, 요력. 어느쪽의 기운도 느껴지지만 그게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죠."


정론으로 되돌렸다. 요기가 느껴진다고 해도 그게 요호들과 적대하는 나쁜 요괴의 요술일지 모르고, 그게 마력이라 해도 선배들의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정론도,


"귀찮게 하긴." 


그런 정론도 사람에 따라 인상을 떨어트리는 요소가 되나보다. 날 흘겨보며 말을 잇는다. 


"이 근처에서 나를 제외한 마법의 기운이라던가... 아니면 수상한 시선이 느껴진다던가..."

"뭐에요 그게."


살짝 선배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 뭐 그러니까... 수상한 느낌이라는 걸 나보고 탐지하라는 겁니까. 그런 걸 기대했나요.




'날 진짜 소나 대용으로 생각해서 스카웃했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왠지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쪽 방면으로는 워낙 고성능이거든 예를 들어...


"그러고보니 마법에 걸린 붉은박쥐를 아까 봤었죠."

"뭐...? 어떤 마법이었는데?"

"그걸 어찌 아나요." 


뭐 박쥐에게서 박쥐 자신의 의지가 제약받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건 넘어가자. 아마도 그건 판타지에서 많이 보는 테이밍 마법일 것이다. 아님 말고. 


"그럼 어디서 발견했어? 마을 안은 아니지?"

"여기 근처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결계로 보호된 목책의 틈새였죠."


선배의 숨이 멈추었다. 




...알 만 하다. 그 결계의 기능 중 하나는 마을의 위치를 숨기는 것. 목책이 나한테도 약간 흐릿한 형체로 보이기에 알 수 있다. 


그 1차적 방위가 뚫렸다는 놀람. 그래도 선배는 침착하게 품 속에서 나에게 카드 1장을 던졌다. 


"세열."

"네."

"너는 이 숲 주위를 산책하면서 박쥐를 찾아줘."

"네." 

"명심해. 절대로, 박쥐를 찾는다는 티를 내지 마. 그저 산책하는 척을 해야해 알았어?"


선배는 마치 평상시처럼 돌 위에 건들건들하게 앉아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그 박쥐를 만난다면, 이 카드의 볼록한 부분을 손으로 밀어넣어. 그럼 이 카드가 주위 10.31미터 안의 마법진을 자동으로 복사하니까."

"신기한 물건을 다 가지고 있네요."


마법진 복사라니, 엄청 사기 아니야? 과학으로 따지면... 


'음... 뭐려나. 어쨌든 작은 카드 주제에 상당한 귀물이네.'




"흥. 회장님이 날 맨손으로 경비를 보낼 바보로 보여?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

"알겠어요. 그럼 선배는..."

"이 근처에 다른 마력은?"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일단 제 감각에 걸리는 건 없어요."

"그래, 그럼 나는 잠깐 다녀올게."


레이나 선배는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 걸음걸이에는 다급함은 묻어나왔지만, 당황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냉철하군. 나는 생각 정리가 좀 필요한데 말이야. 내가 선배랑 같이 올라가면 그것도 이상하니까, 나는 교대근무를 서듯 선배가 있던 자리에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사실 노을도 다 져서 이제 어둠이 깔리는 시각.


'하아... 난 왜 여깄을까...'


모르는 마을을, 미지의 적에게서, 지키기 위한 싸움에, 전초인 첩보전에, 제 1수? 그게 대체 뭔데? 내가 돌아가도 너무 돌아가나?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은...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