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빨리 나오셨네요?”


 “겉옷만 차려 입고 나온건데요, 뭘. 어차피 집 앞에 나오는 거잖아요?”


 “하긴, 그렇죠.”


 아닌게 아니라 성희 씨는 아까 입고 있던 옷 위에 점퍼만 걸쳐 입고 나온 듯해보였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아까 입고 있던 츄리닝 바지가 그대로인 것을 보면. 옷 입은 모양새는 나도 비슷했다. 하지만 자고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옷걸이라고 했다. 패션만 보면 나는 담배 사러 나온 아저씨의 모습이지만, 성희 씨는 그 안의 내용물이 주변의 모든 것을 화보로 만들고 있었다. 난 아무래도 여자친구라도 만들려면 나중에 잠시 절에라도 한 두달 정도 들어갔다 나와야 될 듯 싶다. 지금은 성희 씨 때문에, 눈이 알게 모르게 더럽게 높아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 보이네요, 리돌은.”

 

 “네. 아무래도 전에 살던 곳에서는 눈이 오지 않았었나 봐요.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좀 많이 들떠 있는 것 같네요.”


 나는 굳이 리돌이 달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꺼내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대답하였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성희 씨도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희 씨는 사생활에 관해서는 그닥 꼬치꼬치 캐묻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단지 나와 리돌의 먹거리에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참, 이번에는 미역국을 끓였는데, 좀 있다가 올라갈 때 드릴 테니까, 리돌하고 같이 드세요.”

 

 “아유,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매번 그렇게 안 챙겨 주셔도 되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뭘.”


 “아니에요, 성희 씨. 참,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좀 여쭤 볼 게 있는데요.”


 성희 씨는 내 부름에 대답 없이 궁금함을 담은 옅은 미소로 화답하였다. 어우, 아무리 봐도 참 적응이 안 되는 얼굴이란 말이지. 나는 그 아름다움에 잠깐 넋을 잃었다가, 잠시 투레질 비슷하게 얼굴을 떨며 정신을 차리고선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저야 고맙죠, 언제나. 저도 신세 많이 지고 있고, 특히 리돌을 이렇게나 챙겨 주시는 게.  그런데, 가끔씩 받는 입장에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단 말이죠. 보통 친척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잘 대접해 주지는 않거든요.”


 “그렇죠.”


 성희 씨는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혹시... 원래 알고 있는 사이였나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질문을 꺼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성희 씨에게 꼭 하고 싶던 질문이었다. 리돌은 달나라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일단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리돌을 아는 사람이 지구에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같은 달나라 사람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하나가 있으면 둘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실질적으로 정체가 의심되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성희 씨의 과도한 친절에도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희 씨는 얼굴에 올린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뇨. 민재 씨네 집에서 처음 봤어요.”


 “그래요.”


 짧은 대답 뒤에, 약속이나 한 듯이 성희 씨와 나는 다시 뛰어 노는 리돌을 바라보았다. 물론 성희 씨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때였다. 


 “닮았어요.”

 

 “네?”


 성희 씨의 잘라 낸 듯한 대답은 어떤 말을 꺼낼까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당황하여 다시 성희 씨를 바라 보았다. 금발의 미녀는 리돌을 응시한 채로, 약간 취한 듯이 말을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리돌은, 제 동생을 닮았어요.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챙겨주고 싶었어요. 그게 다에요.”


 그렇게 말하는 성희 씨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띄웠던 미소가 아닌, 다른 표정이 떠올랐다. 젖어가는 빛바랜 사진이 천천히 물에 풀어져 찢어져 가는 듯한, 그런 표정이.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위화감에, 더 이상 물어 봐서는 안 될것 같다는 느낌에 이야기를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나와 성희 씨는 다시 리돌을 보고 있었다. 지구의 겨울을 만끽하는 달나라 소녀는 눈 속에 녹아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 역시 회색 하늘에 젖어 들고 있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또 지나갔다. 세 사람은 각자의 집에 들어 갔고,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졌다. 내리던 눈은 온데간데 없이 그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옥상에 깔린 하얀 눈밭은 느지막히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햇살을 따갑게 창문 안으로 던지고 있었다. 아침 메뉴는 전날 성희 씨가 가져다 준 미역국이었다. 


 “성희는 요리가 아주 잘하는 것 같습니다.”


 리돌은 언제나처럼 성희 씨가 가져다 준 음식을 극찬하였다. 나는 말 없이 동감을 보내며 같이 밥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나비 역시 군말없이 리돌이 준 사료를 옆에서 같이 먹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브즈으으으으....


 밥이 두 숟가락 쯤 남았을 때였다. 참으로 울리는 일 없는 내 핸드폰이 갑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리돌이 식사를 하기 전까지 동영상을 보고 있던 덕분에, 전화기는 그 녀석의 옆에 있었다. 리돌은 심드렁한 얼굴로 내게 폰을 건네 주었고, 나는 젓가락을 놓고 그것을 받아 들었다. 핸드폰의 화면에는 '아버지' 라는 세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아버지? 집에서 직접 뵈도 말씀 잘 안 하시는 분이 웬일로? 

 나는 마음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민재냐? 공부 잘 되고?”


 “네, 맨날 같죠, 뭐.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어, 딴 건 아니고, 너 선 자리 봐 놨다.”


 ...젓가락을 내려 놓기를 잘 했다. 지금 뭐라도 입에 넣고 씹고 있었으면, 앞에 있는 리돌한테 모다 뿜어 버렸을 테니까.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나는 무의식중에 핸드폰 액정을 다시 쳐다 보았다. 화면에는 여전히 '아버지' 라는 세 글자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잘 못들었습니다? 아버지, 선이요?”

 

 당황하니까 갑자기 군대 용어가 튀어 나온다. 아니, 아무런 전조 없이 본론부터 이야기하시니,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 나중에 너한테 전화번호 줄 테니까, 전화 해. 알았어? 끊는다.”


 “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턱.


 끝없는 의문 뒤에 돌아온 것은 통화종료음 뿐이었다. 통화가 진짜 끊긴 건지를 확인하기 위해 바라본 그 화면에는 여전히 '아버지' 라는 세 글자와 함께 통화 종료 시간이 깜빡이고 있었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민재?”


 내가 통화 후에 갑자기 남은 밥도 먹지 않고 멍하니 핸드폰 화면만을 바라 보고 있자, 리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응시했다. 나는 마치 기름칠 하지 않은 기계가 삐걱이듯 리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선이래.”



 

 간신히, 모래 씹듯 남은 밥알을 모두 삼켰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돌은 옆에서 선이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궁금해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건 나비에게 물어보라고 떠넘기고서는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아버지한테는 다시 이야기해 봤자일 듯 하여. 

 어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시골 고향에서 아버지께서 아는 분의 아는 분이 있는데, 그 아는 분이 아는 분의 아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식농사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 때 그 아는 분의 아는 분의 과년한 따님이 현재 서울에 있다는 이야기를 아는 분이 듣고서는, 우리 아버지도 아들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열성적으로 피력하며 꼭 한번 만남을 주선하겠노라 호언장담을 하신 모양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단 하루만에 이루어졌고.


 “아니, 어머니, 그게 말이 되요? 무슨 선 보는게 시장에서 물건 고르는 것도 아니고?!”


 “얘, 그래도 이게 어디냐. 아직까지 여자친구도 없는데 잘 됐지, 뭐.”


 “어머니...”


 어머니마저 왜 그러십니까. 세상에 내 편이란 없는 거구나. 어른들 생각이라는 게 다 그런 건가. 갑자기 허탈해 지려 한다.


 “어쨌든, 아버지가 다시 말씀 주실거야. 그 때 다시 얘기하자. 알았지?”


 내가 대답을 잘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어찌저찌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아까 아버지한테 전화를 받았던 때와 같이 멍하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간신히 다시 날아가 버린 정신을 찾아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리돌이 나를 곱등이 바라 보듯이 쳐다 보고 있었다.


“뭐야,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리돌은 약 5초 정도를 주저하다, 저어하듯 말을 꺼냈다.


 “민재는 쌍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쌍?”


 “나비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들의 좋은 행위는 친구를 찾는 것이라고.”


 “뭐, 친구를 찾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 지금 그게 왜?”


 내가 말을 끝내자 리돌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리고선 머리를 감싸쥐곤 다시 또 무언가 알 수 없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다. 

 대답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침묵이란 정체 현상을 해소해 준 것은 나비였다.


 “내가 주군에게 선이란 무엇인지를 말해 주었느니라. 주군께서는 지금 단어 선택이 명확치 않아 고민하시는 듯 하군.”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러네. 도대체 뭐라고 설명을 해 준 거야?”


 “인간들이 선을 본다고 하는 행위는, 짝짓기 상대를 고르는 일이라고 말해 드렸다.”


 진짜, 생각이라는 것을 거치지 않고, 나의 날카로운 손날치기는 얼룩무늬 고양이의 두개골로 직행했다.  그리고 손끝이 허공을 가르고 침대를 가격하고서야, 나의 두뇌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의 고양이를 절단을 내버려야 겠다 라고.


 “또 무슨 말을 한 거야아아!”


 나의 공격을 피한 나비는 사뿐히 리돌 옆에 안착하며,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대답하였다.


 “아닌가? 어차피 인간들의 결혼이란 행위 자체가 번식을 위한 계약이 아니던가. 그 전조단계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틀린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틀렸다, 이 새끼야. 다른 것보다, 이 녀석이 말을 하면서 자꾸 입꼬리를 씰룩거리면서 웃음을 감추는 것이 거슬린다. 분명 이 녀석,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데도 굳이 왜곡해서 말한 게 틀림 없다. 지금 그렇게 말하면, 리돌이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니, 방금까지 얘기하신 우리 부모님은 뭐가 되냐, 엉?!

 동물과 인간의 눈빛 사이에 걸린 침묵은 쓸데없는 긴장감을 일궈 내고 있었다. 또 한 번 방 안에 술래잡기의 광풍이 몰아 닥치려 하던 그 때,


 “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