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어둠이 내려앉아 거리는 조용했다. 사륜마차 몇 대가 지나며 만드는 울림 외에 거리의 침묵을 가르는 것은 없었다. 해는 이미 끝자락으로 넘어갔으나 달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유유하게 흘러가는 탬즈강과 풍경이 되어버린 가게의 유리창들 만이 가로등 불을 받아 조요하게 빛을 발했다. 신사들이 사교클럽에서 시가를 피우며 마지막 게임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불빛이 드문드문 죽어가기 시작하는 런던의 여유로운 저녁이었다. 허나 제국의 중심ㅡ의회에서는 바깥의 여유 따위는 알지 못한다는 듯 격렬한 폭풍우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10번은 넘게 '정숙'을 외친 의장은 처음으로 선조들이 그어놓은 레드라인(국의 의회의 중간에 그어진 두 줄의 선. 그 바깥으로는 의원들이 앉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발언한다. 선을 넘는자는 의장 직권으로 퇴출이 가능하다. 그 폭이 칼 두 자루의 길이여서 회의 중 칼부림을 막을 목적이었다고 한다.)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선 마저 없었다면 오늘 어떤 사단이 났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아직 본 게임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노신사는 생각했다.


"이렇게 이번 분기 예산안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안건을 상정하겠습니다. 외무성과 해군성에서 상정한 개전안입니다."


잠시나마 유지되었던 소강상태가 산산조각나고, 회장이 다시금 끓어올랐다. 기껏 진정시켜 놓은 분위기가 다시 엉망이 되어 가는 것을 본 의장은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에 대해 외무상 파머스턴 경이 간단히 브리핑하겠습니다."


입구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발언대에 나서며 연설을 시작했다. 


"친애하는 의장님, 저는 이 자리에 우리 대영제국의 명예와 위신, 그리고 제국 신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얼마 전 우리 상인 중 일부가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행하는 도중 자신의 물품을 빼앗기는 불상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우리 상관 책임자 및 이하 관리들과 상인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였다는 보고를 저는 받았습니다. 우리 대영제국의 명예와 위신이 모욕당했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끔찍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외무성과 해군성은 내부적으로 논의를 거듭하여 수상 각하께 개전이 유일하고 완전한 해결책일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했고, 각하는 해결책에 동의하셨습니다. 이에 내각은 개전을 위한 긴급 예산안 집행을 의결할 것을 하원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잠시라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의장을 외무상의 말이 끝나자 마자 바로 예산안을 표결에 붙였다.


"표결하겠습니다. Yes, 혹은 No로 의견을 표시해 주십시오."


대부분 Yes가 들리는 가운데, 간간히 No라는 외침이 들렸다. 이 분위기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한 남자가 걸어나오며 연설을 요청했다.


"의장님, 저는 지난 50년 간의 공직생활 중 우리의 국기가 이렇게 모욕을 당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를 위협하는 자를 굴복시켰고, 그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얻어내었습니다. 패배, 굴욕과 치욕따위는 제가 살아오면서 본 적도, 앞으로 볼 생각도 없습니다. 제국의 신민과 관리가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가 전쟁을 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올해 일흔 살에 이른 전쟁영웅의 연설은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논거가 되는 듯 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노원수의 강경한 연설에 찬사를 보냈으며, 개전안은 그대로 통과되는 듯 보였다. 30살의 젊은 초선 의원이 분개한 표정으로 발언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의장님, 지금 외무장관은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예, 중국이 우리 상인들의 물품을 압수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러한 사태는 우리 내각이 결코 간과하여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물품이 아편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아편의 무서움을 아는 자들이 아편을 금지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의 외무장관은 중국의 권리를 깡그리 무시하며 이 더러운 무역을 위해 피를 흘릴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부정하고 치욕스러운 전쟁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그 이익은 확실할 것입니다. 하지만, 금전적 이익에 제국의 명예를 파시겠습니까? 여왕폐하와 제국의 명예, 위신과 존엄 모두를 가져다 바치시겠습니까?"  


그 연설은 앞으로 진행될 긴 논의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아서 웰즐리가 말했다.


"의장님, 본인은 이 개전안이 모든 것을 떠나 우리 상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침해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전쟁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자신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이, 대체 어떤 상인이 외국에서 마음놓고 상업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까? 이것은 다른 문제가 아닌, 우리 정부에 신임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파머스턴이 거들며 나섰다.


"아편의 해악은 술보다 덜 해롭습니다.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해악을 끼치지는 않지 않습니까?"


글래드스턴이 비웃으며 발언을 요청했다.


"의장님, 지금 외무상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는 개인적이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의장님, 실례합니다만 어제 저녁에 식전주를 드신 바가 있으십니까?"


그는 뒤로 몸을 돌려 의원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기 계신 신사분들, 혹시 최근에 술을 드신 바가 있습니까? 하워드 경, 모른척 하지 마시오. 당장 어제 저와 위스키 한 잔 하셨지 않습니까? 자,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저기 아편굴에 굴러다니는 인간 쓰레기들보다 못한 말종이 되신겁니다!"


웰즐리가 나서며 말했다. 


"의장님, 지금 상대는 논의와는 상관 없는 발언으로 논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제재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논의를 지켜보던 의장이 말했다.


"인정합니다. 글래드스턴 의원은 자중하시오. 웰즐리 의원께서는 계속 발언 이어가시오."


웰즐리는 고개를 살짝 까딱여 감사를 표한 후 발언했다.


"아편을 팔았든, 혹은 시계나 자명종을 팔았든 우리의 권리가 침해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실행하기 이전에 중국 정부는 우리 정부와의 충분한 논의 후 그에 대한 보상안을 논의했어야 옳은 것입니다. 허나 그러한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진행한 것은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글래드스턴은 자리에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귀국이 이 곳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나 귀국이 그 거리를 감수하고 오는 이유는 아국에 그만한 이득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이는 아국과의 교역이 어떠한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즉, 귀국에서 흘러온 모든 부는 중국의 정당한 몫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찌 중국인들을 해치는 약을 사용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어떠한 해를 입히지 않는 다 하여도, 이익에 목숨을 건 그들은 계속해서 그 약을 사용하여 우리 신민을 해칠 것입니다. 질문을 허하신다면 묻겠습니다. 그대의 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청국 내각 전권 대신 겸 광저우 총독 임칙서. 이게 뭔지 아십니까? 오늘 아침, 우리 여왕폐하 앞으로 온 중국 관리의 서신입니다! 이걸 보고도 명예니, 권리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인지 본인은 묻고 싶습니다. 의장님, 저는 친전파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 바게트들이 우리 신민에게 아편을 판다고 하여도, 아무런 반응 없이 '정당한 교역을 보장'할 것인지 말입니다!"


웰즐리가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의장님,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국의 이익이 가장 우선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깟 야만인 몇 만명이 죽어나가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고 싶습니다."


글래드스턴이 한숨을 내쉬며 나아갔다.


"의장님, 저들은 이제 기독교인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던지고 돈을 찾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서 웰즐리는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의장님, 이 전쟁이 제국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저의 의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국 국민을 보호해야 하며, 더 나아가 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교역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현대 국가의 기본입니다."


글래드스턴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비웃었다.


"자유와 평등이라. 거기에 박애도 넣으시죠. 나폴레옹이 무덤에서 좋아하겠군요. '좋아, 이제야 런던에 들어가서 '그' 아서 웰즐리의 항복을 얻어냈군' 하면서요. 워털루, 아니 그전에 이베리아에서 나폴레옹에게 배워 온 것이 고작 그것입니까?'


글래드스턴의 이 말에 글래드스턴을 지지하던 이들마저 야유를 보냈다. 브리튼을 구해낸 전쟁영웅에게 하기에는 지나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래드스턴은 주위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언제부터 공작께서 이렇게 독실한 자유주의자가 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수상께서는 꽤 좋아하시겠군요. 진정하시죠, 신사 여러분! 한 마디만 더 하고 갈테니. 우리 법률은 그 나라 현지의 법을 따를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아직도 중국의 법률을 어긴 이들에 대한 중국의 제재가 왜 잘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전쟁이 얼마나 계속될지, 그 피해와 이익이 어떨지 본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자한 단 한가지, 이렇게 더러운 전쟁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글래드스턴은 가까스로 발언을 마쳤고, 의장은 흥분한 의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정숙을 외쳤다.


"정숙! 정숙! 이제 표결을 진행하겠소. 더 이상의 이의는 받지 않을 것이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의장은 표결 결과를 발표했다.


"찬성 271표. 반대 262표로 하원은 예산안을 가결하는 바이오."


이에 글래드스턴은 분노하며 자신이 레드라인을 넘은지도 모른 채 소리쳤다.


"아편! 아편을 못 팔게 했다고 전쟁을 해? 당신들이 그러고도 기독교도야!"


의장은 레드라인을 넘은 글래드스턴을 자신의 직권으로 퇴장시킬 것을 명했다. 끌려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외쳤다.


"262! 262! 겨우 이게 그대들이 말하는 대영제국 명예의 무게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글래드스턴은 양쪽에서 팔을 잡고있던 사내들을 뿌리치고 아서 웰즐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나가 짓씹듯 말했다.


"똑똑히 명심하십시오, 각하. 당신의 이 결정은 죽을 때 까지, 아니 죽어서도 뿌리칠 수 없는 멍에가 될 거니까. 

당신들도! 확신하건데, 당신들이 오늘 당신들 손으로 내린 이 결정은 100년이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최악의 불명예, 최악의 멍에로 남아 영원히 제국의 위신을 갉아먹을 것이오!"


그렇게 외친 글래드스턴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듯 자신의 발로 회의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나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무겁고 싸늘한 침묵만이 천천히 자신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틀 뒤 내각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 전쟁 예산을 집행했다. 해군성은 인도양에 위치한 영국 함대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한 달 뒤, 영국 인도양 함대의 대포가 아모이의 항구를 향해 불을 뿜었다.




아편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