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배틀을 할 때 맞춤법을 틀린다고 욕을 하면 십중팔구는 메세지를 반박하질 못하니 맞춤법이나 지적한다고 역공이 들어오게 마련입니다만, 소설 안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전체적인 내러티브나 기승전결이 훌륭하다고 해서 단어 선택, 문장 배열에 엄밀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소설의 첫문장에서부터 결집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어려운 단어는 아닙니다만 단순히 '모인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단순히 단어 하나만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단어들이 하나하나가 모여 문장을 어색하게 만들고(실생활에서 쓰지 않는 문장들의 나열로 소설 속의 문장과 독자 사이에 거리감이 생깁니다) 문단을 어색하게 만들며 소설과 독자 사이에 벽이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 첫 문단에서부터 '사방팔방에 출현', 혹은 '혼란의 소음을 내뱉' 같은 단어들이 어색합니다. 며칠 전에 논란이 있던 사흘과 3일, 심심한 사과 등의 문해력에 관한 이슈 때문에 이런 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에서는 가능하다면 쉬운 단어를 써야 한다가 두 번째 금언입니다.


사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지우개인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지우개인 이유는 단순히 두 지우개 왕국이 어떻게 세워졌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장치면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재를 사용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제약을 걸었다는 사실이 됩니다. 분명히 인간은 갖고 있지 않고 지우개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이용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 거리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그런 지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풍자 소설의 느낌이 듭니다. 양도 적고요. 그렇기에 커다란 현상에 있어서의 자세한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왕국은 하루아침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왕국이 하루아침에 건설되었다고 해서 개연성이나 사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핀트가 어긋난 일입니다. 그러나 전후관계에 대해서 지적을 해보자면 걸리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소설의 맨 처음 장면에서 책상 위의 파란 가루들은 서로 생판 모르는 남처럼 보였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패닉 상태가 될 정도라면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은 없거나 희박할 것이며, 왕국이 건설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국민들이 자신의 친척, 조모, 형제, 자매, 부모를 핍박하는 데에 있어서 '심지어'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풍자 소설이 풍자하려는 지점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의 개연성을 지적하는 것은 일리 있는 비판이라고 보여집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2편의 소설까지 다 읽은 뒤의 제 속마음은 더스트프리 왕의 말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에잉, 쯧, 재미 없군. 실제로 결말은 맥이 빠집니다. 거대한 집단에서 배신자가 사악한 인자를 색출하려다가 결국 집단이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인원이 빠져버리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합니다. 물론 이런 소설에서 이것 이외의 재미있고 의미있는 결말을 내라고 하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참신하고 좋은 결말을 낼 자신이 없었다면, 뻔한 결말을 디테일과 흥미진진한 전개로 살려내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짧게 쓰여진 소설의 분량상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분량으로 소설을 짠 것 역시 작가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정상참작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