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적 현상 연구팀 일지-1: 감정 조절 오르간


초자연적 현상 연구팀 일지-2: 어느 극본가의 시나리오 수첩


초자연적 현상 연구팀 일지-3: 황금빛 욕망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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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도시의 인구는 가파르게 줄어들다 늘어나다를 반복하고, 같은 얼굴을 여러 차례 마주하는 일이 드문 사회이지만, 여전히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 인력들은 존재했다.



대부분이 뒷골목 출신들로 이루어진 경찰들은 제 주인인 깨방과 같은 뒷골목 동지들에게 미움받는 존재였다. 



깨방들에게는 자신들 덕분에 버러지같은 골목에서 벗어났으면서 기어코 넘어서는 안될 상전의 밥그릇을 탐하려 한다며 경멸의 시선을 받고, 뒷골목 사람들에게는 발발 기는 개처럼 깨방들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나마 탐하는 걸신들린 자들이라 조롱당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경찰들의 고통과 노고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뒷골목에서 삶의 목표를 잃고, 부유하는 자들이었음을, 그조차도 무료한 눈동자들에게 거두어져, 무의미한 삶이나마 상류 사회를 위해 바치는 개가 되었음을.



그렇기에 이 도시의 경찰들은 대부분 상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제6구역의 형사, 카를라도 그러했다. 



“으… 이번에도 같은 형태의 사체네요. 무릎을 꿇은 상태로 대가리만 깔끔하게 잘려나간 인간이라니…”



카를라가 거리에 있는 어린이 장난감 가게에 눈길이 팔려있던 무렵, 동료 형사가 비릿하고 눅지근한 냄새에 코를 막으며 그녀를 불렀다.



“...음… 그렇군.”



동료 형사의 말대로 마구잡이로 계획 없이 건설되어 작고 좁은 건물들이 들이차 있는 골목가의 모퉁이에는, 주변과 대비했을 때 이질감이 들도록 깨끗하고 세련된 옷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절대로 뒷골목 출신은 아닐테고… 그러면 높으신 분들일텐데… 허어, 참 이거 골치아픈데.”



“벌써 7번째 사망자가 나왔으니, 일단 형사무소로 돌아가서 신병 확인부터 해야 할듯 하니, 돌아가지. 정말로 깨방놈들이면 유가족한테 알려야 할 테니까.”


그녀의 말은 매우 타당했고, 현장을 유심히 관찰하던 감식반을 제외하고는 카를라를 따라 깨방과 뒷골목 사이에 있는 형사무소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지형에 완만한 벽이 세워져 있는 형사무소는 여러 공격과 시간의 흐름동안 보수되지 않은 채로 낡고 더러운 형체를 남기고 있었다. 



어차피 직장의 질이 올라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 또한 없었기에 그들은 깊은 한숨을 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에는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불을 꺼놔 매우 어두컴컴했으며 벽면에는 파이프가 터졌는지 주황빛 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나마 깔끔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경찰들이 일을 하는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카를라는 제게 배정받은 위치에 앉아 스크린을 열었다. 감식반이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자료들이 망막에 새겨지며 개탄스럽게도 누추한 뒷골목에서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신병을 찾았다.



“225년생, 알베르토 메라디. 45세, 제6구역 거주, 3등급 깨방이네? 꽤 잘 사나본데요…?”



카를라보다 먼저 피해자의 신병을 찾은듯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예상했듯이 거주구역 안에서 살던 깨방 출신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가족관계는?”



“가족이요? 어디보자… 부모는 양쪽 다 돌아가셨고…아내가 있었네요.“



“있었다고, 과거형이야?”



“아내는 223년생, 에라 메라디. 3년전 급성 심장발작으로 사망했습니다.”



무언가 의뭉스러운 사실이 있었다. 7명의 사망자,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심지어 생활방식과 배경지식조차 다른 이들에게는 특이하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전부 사망했다는 점, 오래 전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재앙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점, 그리고… 상실을 경험했다는 점이었다.



이건 따로 조사해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에, 카를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에 동료들이 그녀의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그냥, 따로 찾아볼게 있어서.”



“이거, 떨어뜨리셨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가 여러번 접혀진 조그마한 사진을 줏어 카를라에게 건넸다. 하도 만져대 모서리 부분이 닳고 닳은 이 사진은 추억의 한 조각을 빚어놓은 듯이 환했다. 그녀는 동료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



카를라는 낡고 병든 형사무소를 떠나 본디 목표였던 뒷골목의 사무소로 향했다. 뒷골목에서 몇 안되는 유명한 곳인 봉리수 사무소의 앞에는 어둡고 텁텁한 분위기가 개탄스럽도록 절망스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고, 길게 늘어진 줄 마다 불화의 연기가 서려있었다.



그만큼 뒷골목에서 유망한 사무소는 왠만한 깨방의 해결방과도 비슷한 숫자의 손님을 받았다. 가만히 줄을 서다가는 하루내리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기에, 그녀는 뒷구멍으로 들어가려 했다.



주점을 개조해 설계했는지 건물의 뒷편에는 직원들이 오가는 뒷문이 존재했다. 오색빛 커튼이 눈을 어지럽히고, 천의 보드라움이 촉감을 간지럽히는 와중에도 카를라는 제 길을 제대로 찾아갔다.



“뭐, 뭡니까?”



안쪽에는 귀찮은 일들을 직원들에게 맏긴 채 가죽 소파에 들어누워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 봉리수 사무소의 사장, 마르셀로가 카를라의 사복 차림을 보고는 제풀에 놀라 굴러 떨어지며 신음했다.



“아니, 조사 일은 저번 걸로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또 무슨일로…?”



“뭐긴 뭐야, 정보 관련은 제6 구역에서 자네가 가장 유능한거 아니었나? 당연히 이번에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물어보려 왔지. 벌써 7명이나 죽었다고.”



그녀의 말에 마르셀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최근 깨방들 사이에서 유명한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테고, 그저 일을 하기 싫은 것일 터였지.



“아쉽지만 ‘7명’이 아니라 ‘49명’입니다. 제6구역에서 7명, 제3구역에서는 12명, 제7구역에서 3명, 제10구역에서 10명, 제4구역에서 8명, 제9구역에서 9명이 죽었죠.”



“그래, 그럼 누가 이딴 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겠지?”



카를라는 확신에 찬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마르셀로는 다시금 떠벌거렸다. 이렇게 주절거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올렸음을 생각하면 실력 있는 자였지만, 여전히 반푼이 같아 보이는 건 여전했다. 



“저도 최근 입수한 정보인데, 요즈음 도시를 뒤흔들고 있는 ‘초자연적 현상’과 비슷해 보인다고들 하더라고요. 인과를 알 수 없는데다, 그 결과조차도 통상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오히려 이유를 밝힐 수 없지만 그 점이 유사하죠.”



“좋아, 그러면 제거하거나 무력화 시킬 수도 있나?”



“지금까지 한 번도 ‘초자연적 현상’이라 직접적으로 명명한 것들 중에는 제압한 사례가 없지만…이번에 연쇄 살인사건을 일으킨 놈은 하도 난리를 피워서 그런지, 목격자가 많더라고요.”



그것이 바라던 말이었다. 카를라는 그에게 다가가 추궁헀다.



“특별한 점이 있나?”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지는 몰라요. 패턴같은 것도 없는지라…정말 잡으러 가시게요? 지금까지 초자연적 현상에 개기려고 한 놈들은 죄다 죽어 자빠진 거, 형사로서 잘 아시잖아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흠, 뭐, 제 알 바는 아니니까, 드문드문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망자들이 죽기 전에 무언가를 급하게 찾았다고 하는데요.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미친놈처럼 쏘다니는 걸 봤다고도 하고… 아마 그리움을 매개체로 유인하는 놈인 것 같다는데요.”



그리움…익숙한 감정이었다. 아마 상실의 고통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오랜 친구 처럼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일 터였다. 



그리고 죽은 이가 되살아날 수 없으니. 

죽음에 자리에 드는 날에도. 

그녀와 함께 관에 누우리라.



***



결국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다. 비록 그것에 대한 특징적인 것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게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터덜터덜 형사무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화목해 보이는 모녀가 깨방들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도로 건너에 보였다. 



두 다채롭고 조화로운 가정의 아름다움은 카를라의 눈을 멀게 했고, 홀린 듯 자리에 멈추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가 장난감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는 걸 보니, 그녀의 생일인 듯 했다.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려왔다. 눈에 무언가 들어간 듯 뻑뻑해 손에 낀 장갑을 벗어 넣고 눈을 비비려는데,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조그만 사진이 손가락에 걸려 나왔다.



카를라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손에 들고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모서리를 펼쳤다.



한 여성과 조그만 소녀. 여성은 자연히 카를라 자신이었고,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발랄하고 깜찍한 소녀는 그녀의 딸이었다.



삶의 목표였고, 모든 것이었던, 깨질까 두려워 뒷골목에 살았음에도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었던 그녀의 보물, 그녀의 지고했던 등불, 하지만 이제는 없다. 너무 어두워, 아무런 광원도 없는 것 같이, 그저 천천히 자살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아름다운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그 탐스러운 이마에 입을 맞출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내놓을 수 있을 텐데. 



의미없는 기도가 소리없는 메아리를 내질렀다.



휙!



그 때, 저 골목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인기척임을 깨달은 카를라는 그것이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작은 인영은 어린이의 형체였으며 자신의 허리 부근에 오는 키, 잠깐 보았지만 나풀거리는 치마는 그 아이가 소녀임을 보증했다. 아무리 깨방들의 거주구역과 가까운 곳이라지만 뒷골목의 일부일 터, 어린아이가 홀로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했기에 데려가기로 결심한 그녀는 그 소녀가 사라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세상을 환히 비추던 태양이 모습을 슬쩍 감추고, 낡은 건물의 지붕이 천장을 가리자 아무런 광원이 없어져 칠흑의 그림자가 진득히 묻어져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카를라는 뒷주머니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내 앞을 비추었다.



“어…?”



공허한 어둠에 갑작스레 빛이 비추자 놀란 쥐들과 바닥을 기는 벌레들이 건물의 틈새로 도망쳤다. 그보다, 카를라가 놀랐던 이유는 쥐와 벌레 때문도, 갑작스러운 빛이 망막을 공격해서도 아니었다.



“너… 너는….”



손전등의 빛이 검은 경계와 대치하는 그 공간, ‘그 아이’가 서 있었다.



둥글고 아름다운 호박석같은 연갈색 눈동자, 오똑한 코, 아기자기하고 조그만 입, 그녀가 매일 땋아 주었던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 하얀 치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쪼그려 앉아 눈의 높이를 그 아이에게 맞추었다. 올망졸망한 눈과 거울같이 맑은 동공에는 그녀 자신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눈물로 적셔진 눈가. 



“아…얘야…”



그녀는 웃었다. 아니, 웃으려 노력했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어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 채라면 얼마나 가슴아프겠는가. 그녀의 입고리는 천천히 올라갔다.



카를라의 딸, 니나의 얼굴도 점차 펴지더니,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과 거울처럼, 입고리를 올린채 웃었다. 



무언가 아려오면서 잃어버린 듯한 상실과 감정의 부유, 과거에 대한 끔찍한 후회와 고뇌, 그리움.



사실 카를라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과거 사고로 죽은 자신의 딸 니나가 아니라, 그저 껍데기를 흉내내는 흉측한 흉물이라는 것을.



하지만 목젖을 진동시키는 애탄과 오열이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분별할 수 있는 이지를 흐렸고, 



그리고, 그리운 이와의 재회를, 반쯤이나마 성사시켜준 사신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움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




도시의 제6구역, 한 뒷골목에서 40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를라로, 경찰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처럼, 그녀 또한 무릎을 꿇은 상태로 목젖 위가 깔끔하게 베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50명째의 피해자가 나온 가운데,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일명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사전 대비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