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모습을 형용할 수 없다. 하늘을 찌르는 기둥을 타고 화염이 솟아오른다. 유리가 녹아내리고 기둥엔 검은 그을음이 낀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이상하다. 하필 이 순간에 대형 화재가 발생할 개연성이 어디에 있는 걸까. 모르겠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만들어내는 소음과 사이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안전선 밖에서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저 건물은 이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걸. 

 “여기! 여기 사람 있어요!”

황급한 외침이 오른쪽에서 들림과 동시에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구조대원 중 한 명이 다가간다. 급하게 들것에 구출자를 늬고 다른 한 명이 또 다가와서 들어 옮긴다. 살짝 곁눈길질로 쳐다보았다가 나는 후회하고 말았다. 전신 화상을 입은 사람의 겉모습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물집과 시뻘건 얼룩이 피부에 번지고 튀어나와 있다. 아마 폭발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것이었을 것이다. 

 폭발은 뒷문으로 탈출을 감행한 후 수 초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날 뻔 했다. 유리창은 뜨거운 유독가스가 만들어낸 고압력에 밀려 금이 갔고 골조는 내부 가연성 물질을 매개로 한 화염에 녹아내렸다. 유리창이 께지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렇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눈길은 그 방에서 들고 온 서류로 이동한다. 어떤 가치가 있을까. 표지만 보니 한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서류이다. 인물에 대한 정보라면 대다수 사람들은 나이, 성별, 이름, 졸업한 대학을 언급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장소는 자칭 탐정, 타칭 정보 조사 회사. 정보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설마 그런 것만 넣어 놓진 않을 터였다.

 페이지들을 차례차례 빠르게 넘긴다. 목차나 읽기 도움말 같은 건 없어서 그냥 훑어보기만 했다. 종이가 뒤로 갈수록 매끈해지고 먼지가 덜 묻어 있는 걸 보니 시간순별로 정렬되어 있다. 

 “괜찮아? 휴우. 십년감수 했네.”

내가 할 소리를 얘는 왜 하는 거지.

하지만 지나친 솔직함은 때로는 좋지 못한 수가 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잖아. 증거를 얻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 

“그렇긴 한데… 알았어. 현장에서 일단 빨리 벗어나. 현장진술은 피하는 게 좋으나까..”

경찰차들이 와 있긴 하지만 일단 현장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을 보냈으니까 대로에서 기다려.  그럼.” 

보통의 경우라면 6차선 고속도로의 끝자락에서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본다면 아마 미쳤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확률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낮다. 

복잡한 화재 현장에서 빠져 나가는 것은 사실 쉽지는 않다. 운 좋게 땅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계단을 부리나케 내려와 불길과 유독가스를 피해 정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 끝도 없이 밀려드는 부상자들과 그들을 실은 들것과 구급차가 이동하는 것이 현장을 매우 혼잡하게 했다. 장점이 있다면 눈에 띄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잘 활용하면 된다. 인파가 이동하는 방향은 현장으로부터 나가는 방향이기 때문에, 그 방향에 반하지 않으면서 유유히 흘러 나갔다. 강줄기가 흩어져 흐려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수도 옅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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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제각기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가족, 친구, 애인, 돈, 혹은 권력이 그 오지선다형 문제의 선택지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자에게만 의미있을 아이템을 만지는 것은 미련 때문일까, 혹은 그냥 흥미가 있어서일까. 아마 전자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랬어야 했다, 저랬어야 했다. 나를 둘러싼 관중들의 훈수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경기장 안에서의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다가오는 적들을 하나 하나 격퇴해낸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적을 만난다. 

 어디에선가 본 얼굴이다. 몸짓, 생김새, 표정 모두 나에겐 친숙하다. 

내가 상대할 마지막 적은 바로 나 자신. 

 과거에 한 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어떤 싸움에서라도 승리한다고. 그런데 나는 나를 알지도, 상대를 알지도 못한다. 상대가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상대할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있어.” 

어디선가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야. 그럴 수 없어. 

난 승리에 걸맞는 사람이 아니야.

이대로 패배를 받아들이는 편이 더 좋아.

진실을 알면서도 부정한다면 그건 탐정이라고 할 수 없어.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준비가 된 거야?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 말이야.”

또각또각,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성급한 선택은 하지 말아줘. 현실에 순응하면 네 삶이 저절로 방향을 바꿀까? 그렇게 생각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너가 가치있게 여기는 건 지금 너한테 없어. 내가 너였다면-”

“그만해!”

나의 텅 빈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넌 틀렸어. 난 진실을 이미 찾아냈어. 그러니까 지금 받아들이면 돼. 네가 나를 알아? 난 너를 모르거든.”

“아직도 모르겠어? 그건 진실이 아니야. 너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상념 한 조각이 널 지배하게 두어선 안 돼. 진실을 찾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할 일! 기억해 내!”

얼어붙었던 몸에 물기가 서서히 맺힌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녹아내린 입술 사이로 목소리가 미끄러져 나온다.

틀렸어. 그럴 리가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가항력에 저항해 봤자 결국 남는 것은 지독한 무력감과 패배감 뿐이다. 그러니-

“아니, 너야말로 틀렸어.”

지금 너-

“아직 진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기다려 줘. 스스로 확인할 때까지는.”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런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 뭐,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만.

좋아, 다시 돌아가자. 이번이 마지막이겠네.

주변의 경기장이 빛나더니 시야가 다시 흐려진다.. 

뒤돌아보니 그 사람의 실루엣이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자세하지 않게 지켜보고 있다. 

넌 대체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