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어구이를 좋아한다. 장어를 입에 넣을 때 느끼는 단백한 식감을 좋아한다. 장어살을 목젖 아래로 넘길 때마다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나는 원래 장어처럼 징그럽게 생긴 것은 잘 먹지 않았다. 더구나 장어는 비쌌고, 다른 경제적인 단백질거리가 충분히 있는데, 꼭 장어를 먹어야 하냐는 생각이었다.


장어를 처음 먹어보게 된 것은 뱀장어 같은 놈에게 사기를 당한 뒤부터다. 심란한 마음으로 길거리를 걷다가 장어가게 앞에 전시된 큼직막한 어항 안에서 미끌거리며 움직이는 놈을 봤을 때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예상보다는 질기지 않아 씹어서 화를 풀어내지는 못했다. 


사기꾼은 같은 수업을 받던 놈이었다. 그 놈은 정황상 전혀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도 나한테 한 학기 등록금에 상당하는 돈을 빌려갔다. 말로는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나뿐만 아니라 여럿이 빌려주었던 거금을 피라미드 마케팅 비용으로 다 날렸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나한테 전한 녀석도 놈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로 띨띨했지만 나보다는 조금 더 똑똑했다. 놈의 아버지는 진작에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고 어머니는 병원신세를 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시단다. 


놈은 평소 말수가 없고 강의시간만큼은 아주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강의시간이나 점심식사를 제외하면 바쁘게 이곳저곳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뛰어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내 기준으로 비추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듬직하기까지 했다.


놈은 한건 크게 먹기 위해 의도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척했던 것이다. 암웨이와 같이 사업적으로도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마케팅 방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금융사기수법을 물씬 풍기는 피라미드에 당했다는 사실에서 아주 교활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같은 반 친구들의 돈을 긁어모으는 꽁수를 쓰기에는 충분히 미끌미끌한 놈이었다. 


놈이 말로는 꼭 갚겠다고 생짜를 놓아서 한 대 쥐어박지도 못한 채 녀석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월세방을 나왔다. 내 속은 아주 부글부글 끓었다. 


피라미드 사건 이후로 놈은 어떤 수업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휴학을 했다고 한다. 


학기의 중간과 기말에 있는 시험으로 분주하게 두 달을 보낸 어느 날 옆 자리의 친구가 사기꾼 놈에게 경찰에 고발하겠다며 아주 강하게 몰아부친 친구들에게는 꼬박꼬박 빚을 갚고 있다고 한다. 나한테는 한푼도 갚지 않았으니 괜히 사람을 차별한다는 생각에서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놈이 내 돈을 떼먹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놈이 자주 다니는 길목의 벤치에 앉아 공책을 뒤적거리거나 거기에다 낙서를 하고 있었다. 멀리 놈의 생김새가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양이 내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김철진, 너 요즘 뭐 하냐?"


"나, 요즘 16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네 돈은 꼭 갚을께, 조금만 기다려줘."


철진이의 얼굴은 피로가 켜켜이 누적된 것이 드러나보였다. 차마 내 돈을 먼저 갚으라는 말은 못했다. 철진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가던 길을 간다. 몇 발자국 걸은 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철진아, 저 앞의 편의점에서 음류수나 한 병씩 마시면서 간단하게 얘기나 나누자."



철진과 대화를 나누는 중 알게 된 사실은, 그 녀석의 어머니가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신장이 좋지 않아 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몇 년 내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철진과 함께 길을 걷다 장어구이 집을 지나게 되었다. 어항속의 장어는 그리 미끌미끌해 보이지 않았다. 단백한 맛을 내는 놈이 아주 미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철진아, 너 요즘 너무 고생한다. 이러다 몸에 탈 나겠다. 내 돈은 차차 갚아.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장어로 몸보신 좀 하자."


이 날의 장어는 더욱 담백했고 입에서 슬슬 녹아 세포에 힘을 바로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