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가 끝나고 거의 해가 지는 시간에 난 운동장에서 애들 사이로 급하게 집으로 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난 그것이 왜 그런지를 알고 있다.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별로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오직 조금의 친분만이 남아있는 사이인데도, 왜 마음이 빠르게 뛰고 움직임 하나에 삐걱거림이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집으로 가는 길을 지나가고, 집 앞 옆 골목으로 가면 한 문방구가 보인다. 그곳은 내가 많이 들락날락거리는 곳이다. 집에 가까워서 그런 것도 있었고, 이렇게 자주 가보니 금새 문방구 아저씨랑 친해지기도 했다.

서서히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 끝에는 검은 하늘도 보이기 시작했다. 문방구 앞의 벤치에서 난 앉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직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골목에 지나가는 작은 발소리에도 고개를 들며 거의 격하게 반응하곤 했다.

곧 이어, 발소리가 나에게 커다랗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며, 난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왔다. 그녀가.

“미안, 조금 늦었지?”

“네? 아.. 아녀요 아녀요. 괜찮아요.“

”그래? 그래도 미안해. 많이 추웠을텐데.“

하린 누나. 그녀의 이름이다. 내 형이랑 동갑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 그래서 늘 그녀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착한 마음씨다. 그녀는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웃음으로 답했으며, 하루마다 학교 가는 아침 날에 우리는 항상 같은 골목에서 만났으며, 가끔식 집에 갈때도 만나서, 누나가 먹을 거를 사주기도 했댜.

이런 그녀의 친절한 마음이 날 흔들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예쁜 얼굴도 한 몫 하겠지만. 난 평소에 사랑 비슷무리한 감정을 잘 느끼지 않았지만, 하린 누나 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나에게 흔히 말하는 여신이었다. 내 마음 속에 안착하여 아름다운 꽃을 심어주는 아리따운 여신.

누나는 내 손을 잡고 문방구 문을 열며 아저씨께 인사했다. 아저씨도 누나의 인사에 미소로 받아주었다. 누나는 내 손을 잡은 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다. 난 이 손을 놓고 싶다는 생각과 영원히 잡고 싶다는 생각이 또 동시에 들었다. 그녀의 촉감을 느끼니 마음이 정말 미친듯이 뛰었기 때문이었다. 

누나의 손에는 하얀 반지가 하나 있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옥 반지였다. 그 반지는 서서히 지고 있는 태양 빛을 흡수해 지금은 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붉게 물든건 반지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러다가 진짜 큰일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자연스레 누나의 손을 놓았다. 다행히 누나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도 문방구를 돌아다니며 새로운게 왔나 하는 생각으로 괜히 구경하는 척을 했다. 그때, 내 눈에 한 물건이 눈에 보였다.

그건 볼펜이었다. 아주 세련되고 둥글게 뾰족감을 자랑하는 볼펜이었다. 난 이 볼펜을 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한 얘가 이 볼펜을 들고와서 ”아버지가 만년필 사주셨다!“ 라며 애들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금방 이것이 문방구에 파는 볼펜인 것이 들통나 그 애는 애들에게 아우성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참 재밌었다.

난 이런 추억에 그 볼펜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그저 대충 보면 정말 만년필 처럼 생기긴 했지만, 또 이렇게 자세히 보면 아니다. 이게 속임술까 생각했다. 그때 옆에서 하린 누나가 와 날 보더니 말했다.

”저 펜 가지고 싶어?“

잠깐 멍 때리며 보고 있는 찰나에 말 소리가 들려오니 난 얼떨결에

”…. 네..?“

라고 했더니, 누나는 망설임 없이 그 펜을 집었다. 그리고 막대 아이스크림 두개와 같이 그 펜을 아저씨께 주었다. 난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말할 때에 이미 누나는 빠르게 결제를 마친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누나와 같이 문방구에서 나왔다. 그리고 누나는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주며 나에게 볼펜과 함께 하나 주었다. 난 그걸 받고 그 볼펜을 서둘러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 누나가 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게 역시 달콤했다.

누나는 이런 나를 잠깐 보더니, 뭔가 고민하듯 하늘을 보다가,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이라니, 난 부탁이란 두 글자에 순간 놀랄 뻔했다. 그 기분 좋은 달콤함이 싸그리 사라지는 느낌.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부탁까지 한다면 더욱이나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뭐요?”

라고 했다. 차마 그 여신에게서는 거절을 못했다.

“그게 말이야….“

누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뭔가 마음속에 꿍꿍이가 있음에 틀림 없었다. 나도 그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해 걱정되기도, 기대하기도 했다. 

”형진이한테 말이야…“

”형진이 형이요?“

”응…”

“형이 왜요?”

“걔 한테 있잖아…”

형진이 형은 내 친형이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기로 유명했으며, 가족에게도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형이었다. 형은 꽤나 성실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도 늘 공부를 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 왔으며, 항상 나에게 교훈을 말해 주어서 나 역시 형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 형이 하린 누나 입에 나온다는 건, 뭔가 맞지는 않았다. 

“나 좀… 그만 쫓아오라고 말해줘.”

누나가 말한 말은 나한테는 조금 충격이었다. 형진이 형은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나쁘지 않는데(그렇다고 얼굴도 못생긴건 아니다.) 그런 착한 그녀가 나에게 이런 부탁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형진이 형이 하린 누나에게 몹쓸 짓이라도 한걸까?

형은 거의 학교 아니면 집에서만 틀혀박인 채 살다보니, 형이 몹쓸 짓을 한 기억은 전혀 없다. 그저 집에 오면 늘 방에서 공부만 하는 형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형이 하린 누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을까 전혀 짐적도 가지 않았다.

좀 예전의 생각을 떠올려 보면, 형진이 형이 누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경험은 있다. 그때는 주말이었다. 전에 공터에서 혼자 놀다가 지쳐서 티비를 볼려고 집으로 들어가던 참이었다. 거실로 가서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형의 방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형이 신음하는 소리였다. 난 형이 왜 신음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아픈건 아니였다. 형은 아침부터 굳건히 의자에 앉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책을 거의 쏘아보듯, 싸움이라도 할 것 처럼 열심히 임했으니까. 그런 형이 갑자기 아파서 신음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궁금증에 그 문에 기대어 그 소리를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형은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형은 ‘하린아… 하린아…’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난 형이 사랑으로 앓아서 신음하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아무리 지적인 형이어도 너무 막나갔다. 난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이 문을 열어버릴까 생각했지만, 이 신음은 보통 신음이 아니였다. 짧은 신음이 아니라, 정말 길게 지속되었다. 내가 궁금증을 치우고 티비나 볼려고 했을 때도 계속해서 이 신음이 들렸다. 그래서 만화에 잘 집중을 못했다.

형에게 따질려고 생각도 해봤으나, ‘그래도 형인데…’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만화나 볼려 했다. 신음도 그 생각 이후로 멈췄다. 난 멈춘 신음에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했지만, 얼마 않가 그냥 다시 티비에 집중했다.

이런 하린 누나에 대한 형의 기억은 있지만, 정작 형과 관련된 하린 누나의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난 물어봤다.

“왜요…?”

이런 나의 질문에 하린 누나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 얘가 날 계속 따라다녀서 말이야… 그 얘에게 직접 말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도통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 그래서 너에게 말한 거야. 날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렇게 쫓아오면 소름만 끼쳐서..“

”우리 형이 누나를 쫓아온다구요? 정말로요?“

”…그래.“

그 말에 난 십사리 누나의 말을 믿지 못했다. 집에서도 점잖은 형이, 그런 위험한 짓을 하다니. 그 말을 잘 믿을 수는 없었지만 누나의 얼굴은 심각해 보였다. ”“…. 알았어요. 말해 볼께요.”

난 일단 그녀의 말에 알겠다고 말했다. 누나의 안색이 조금 밝아지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난 조금 부끄러워서 잠시 허공을 보았다. 얼굴이 붉어진걸 들키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리고 보니 금새 해는 저버리고 어둑어둑한 저녁만이 있었다. 위에는 가로등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거니?“

”네? 아뇨. 전 괜찮아요.“

”그래? 하하. 혹시나 힘들다고 생각하면 말해줘.“

”괜찮대두요. 정말루요.“

”그럼 다행이네. 나중에 후회해서 나한테 박치기는 하지 말구.“

”아잇, 왜 제가 누나에게 박치기를 해요.“

”그래? 하핫…“

난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애가 있으면 박치기를 해서 눕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하도 학교에는 돌머리라서 다들 내 박치기의 위력은 알고 있었다. 그 얘기가 하린 누나에게 까지 갔다는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누나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날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문을 두드리자 엄마가 문을 열어 날 반겨주었다.

”어머 욘석이. 왜 이제 오냐.“

”나 하린 누나랑 같이 있었어.“

”그래도 집에는 빨리 와야지. 밥은 먹었어?“

”아직.“

”그럼 어여 먹어야지 일루 와.“

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하지만 내내 하린 누나의 부탁만을 생각해서 밥이 잘 들어오진 않았다. 결국에 난 밥을 다 먹고, 형에게 누나의 말을 전할 시간만이 남았다. 

형의 방에 들어가는게 좀 무서웠다. 이때까지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마음이 무겁고 몸이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난 침을 한 번 삼키고 형의 방 문을 열었다. 형은 여전히 공부 중이었다.

”형.“

내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응? 왜?“

”있잖아… 말 할께 있는데…“

”응, 뭔데?“

”그… 하린 누나 있잖아… 혹시 알아?“

그 말을 듣자 형이 들던 펜을 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기 시작했다. 책으로 쏘아보던 눈빛이 이젠 나에게 향해게 향하자 긴장감이 더 솟아 올랐다. 형은 잠시 뜸들이다가, 이내 말을 했다.

”그럼, 알지. 같은 고등학교 다니는걸.”

“그래? 그럼…”

쉽사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어색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형도 이 직감을 알았는지 애써 웃음을 보이며 뭔 일이라며 내게 재촉했다. 그리고 이내 난 형에게 누나의 부탁을 말했다.

“하린 누나가… 형 보고… 그만 쫓아오래…”

그 말을 뱉자 형의 눈빛이 바꼈다. 그 애석한 웃음기가 사라지자 확 소름이 돋았다. 형은 무표정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난 형의 시선을 차마 견디지 못해 바닥으로 시선이 쏠렸다. 이제 난 무슨 운명을 맞이할까… 너무나도 무서웠다. 혼을 내는 걸까. 어쩌면 더 심한 상황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서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내 형이 입을 열었다.

“하린이가….. 나 보고 그만 쫓아… 오래?”

“…응..”

목소리가 떨린 채 답했다. 형은 잠시 고개를 돌리더니, 벽을 보곤 알았다며 잠시 나가달라고 말했다. 난 그 자리를 아주 빠르게 나갔다. 마치 뭔 커다란 일을 끝마친 것 처럼 난 숨을 헐떡이며 거실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걸 본 엄마가 의아해 하며 방에 뭔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난 답할 정신이 없어서 내 방으로 힘없이 들어갔다.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참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형이 어째서 나의 통보에 그렇게 반응 했을까. 형도 사랑의 아픔을 느껴서, 결국 그 분노를 애써 참아낸 걸까 생각했다. 내 기억 속에 형은 사랑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형이 처음 느끼는 하린 누나의 사랑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나 싶었다. 애써 형을 이해하려 난 잡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피곤했는지 얼마 않가 잠에 빠졌다.


2.


아침에 일어나고, 아침밥을 먹는 나에게 형이 갑자기 다가왔다. 어젯 일 때문에 난 형이 다가오는 것도 긴장되 잠이 달아났다. 

“성규야.”

“응?”

“있잖아… 그 하린 한테… 오늘 수업 끝나면 잠깐만 나랑 만나자고 얘기 해줄 수 있어?”

“하린 누나?”

“응.”

“어… 알았어..”

형은 내 대답을 듣고 집을 빠져나왔다. 난 다시 이런 부탁에 난감하여 밥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부탁을 듣고 학교에 갈려 하니, 뭔가 움직임이 거북했다. 그리고 학교길을 나서는데, 늘 같은 거리에서 만나던 하린 누나를 오늘은 뭔가 만나고 싶지는 않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늘 우리는 만나였고, 하린 누나는 늘 나를 웃음으로 인사했다. 하지만 난 누나의 시선을 잘 맞지 못했다.

“잘 잤니?”

“네.”

“어제 내가 하던 부탁은… 잘 말했니?”

“네… 근데..”

“근데? 왜?”

“그… 형이… 하린 누나께 말할게 있데요. 그래서 잠깐 만나자고…”

이 말을 들은 하린 누나는 잠시 할 말을 잊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늘 같이 학교에 같이 갔다. 난 이 순간 만큼은 하린 누나는 몰라도 난 너무나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어제의 형과 나 처럼.

학교에 도착한 난 늘 같은 학교의 분위기랑 다른 기분이었다. 평소 까불던 애들에게 박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고, 또 수업에도 별 집중을 잘 하지 못했다. 단지 계속 밖 창문에 보이는 햇살과 파란 하늘만이 내 눈에 보일 뿐이었다. 칠판에 쓰여진 글씨니 뭐니, 내 관심에는 없었다.

또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갈려는데, 외딴 골목에서 하린 누나와 형진이 형이 같이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다. 난 이 둘이 만남에 그냥 지나칠 법 한도 했지만, 하린 누나의 부탁은 이유가 있어도, 형의 부탁 이유는 몰라서, 그래서, 난 단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 그들을 염탐했다.

조심스레 그들을 따라가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산이었다. 이 마을은 외딴 골목으로 좀 가면 산으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형진이 형이 하린 누나를 데리고 산을 간 것이었다. 난 산으로 간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대체 뭘 할려고 그런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들도 모르게 나 혼자 조금 무리를 하였다. 아무래도 산이다 보니 내 모습을 숨길 수 있는 곳은 숲풀 말고 없었다. 그래서 난 나무를 잡으며 최대한 숲풀의 소리가 나지 않게 계속 따라다녔다. 

가다보니 점점 길목이 좁아지고, 나중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옆이 모두 급하게 기울어진 길목이었다. 이 곳은 울타리도 따로 쳐지지 않아,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내 뒤도 돌아보니 발만 조금 헛디디면 떨어질 것 같아서, 난 그들이 멈춰선 골목에 풀숲으로 몸을 억지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 풀숲에는 빽빽한 가지들이 별로 없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얼굴만 빼꼼 내놓은 채, 난 그들이 뭘 할지 지켜보고 있있다. 하린 누나는 형진히 형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고, 형진이 형은 그런 하린 누나 앞에서 그저 바닥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형이 바닥에 있던 돌을 주워서 하린 누나의 머리를 타격한 것이었다.

하린 누나는 작은 단말마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누나의 머리에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난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 모습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눈알만 격하게 떨릴 뿐이었다. 숨도 멈춰있는 것 같았다.

형은 그런 누나를 뒤로 옮기고, 그대로 누나의 교복에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있던 속옷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의 젖가슴이 나왔다. 형은 그런 젖가슴을 보고 그 가슴을 만지고, 핥기 시작했다.

형의 모습과 눈빛은 가히 사람의 눈과 모습이 아니였다. 그건 짐승의 모습이었다. 형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해방된 듯 헐떡이며 먹이를 먹는 짐승의 눈빛이자 행동이었다. 도저히 사람이 하는 짓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형은 계속 중얼거렸다. 작게 신음하듯, 그 저번의 사건 처럼. 

“절대 못 끝네… 절대로…”

형은 계속 이런 말투로 중얼거렸다. 보다보니 나도 형 처럼 뭔가에 강한 욕구가 내 마음을 삼킬려 했지만, 그것보다 난 점잖게 생각했던 형이 이런 끔찍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에 난... 그 순간은 정말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그건 나의 환상에 대한 형의 배신이기도 했다. 성인의 모습이 한순간에 욕망에 휘둘려 악인이 되버린다니. 그리고 이렇게 쉽게도 변해버린다니! 그리고 더 중요한건, 하린 누나가 형의 공격으로 가엾게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는 것이다.

난 이걸 두 눈으로 봐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공포스럽고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선도 고정을 못한 채, 떨고 있는 찰나, 허공의 시선이 느껴졌다.

느낌이 와서 시선을 돌아보니 하린 누나가 눈을 뜬 채 나를 향해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생명이 없었다. 그저 공허를 가득 담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난 그 눈빛에서 뭔가를 느꼈다. 그것이 오랜 분노와 원망이라고, 억울하게 당한, 한 순간에 변한 인간의 욕심에 의한 가여운 희생자에 분노의 눈빛이라고 말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형이 바지 지퍼를 내려 이윽고 하면 안될 짓을 할려 할때, 난 숲풀에서 뛰어 나와 형에게 박치기를 했다. 형은 대처도 못하고 숲풀의 소리만 듣고 놀라며 내 박치기를 정통으로 맞았다. 형도 단말마와 함께 뒤로 몸이 기울어져 언덕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형이 굴러 떨어진 것을 내가 고개를 들고 보았을 때, 형이 나를 보면서 그대로 낙엽에 몸을 맞아 굴러 떨어질 때, 내 머리 부터 시작하여 그 충격이 내 온 몸에 스며들어 곧 죄악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건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였다.

내 형을 내 몸으로 죽였다! 물론 형은 사람을 죽였고, 심지어 시체에 천박한 짓 까지 할려 했다. 그래서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한동안 생각을 했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내 형을 죽이지 않았어. 그건 사람이 아니였어. 그건 분명히 사람의 눈으론 확인 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내가 죽인 건 짐승이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야…


곧 이어 난 뒤를 돌아봤다. 누나가 힘도 없이 처절하게 누워 있었다. 난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그리곤 뭔가를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 누나를 들고 갈려 했다. 아직까지 생명이 남아 있으면 사람들에게 알려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고 누나를 업고 갈려 했다.

하지만 누나는 내 몸에 비해서 너무 컸다. 결국 난 누나의 시체를 질질 끌면서 가파른 산을 뛰어갔다. 중간중간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난 마음이 급해 다시 누나를 끌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내려가니 내가 아는 외딴 골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다시 그 골목을 보자 흥분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사람이 죽고 있어요!”

난 계속 누나를 끌면서 길가에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 둘 씩 집에 불이 켜지더니, 이윽고 옆에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건 수염이 더부룩하게 달린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얘야… 대체 뭔 일이 있던 거냐..?”

난 아저씨의 말에,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흔들리는 다리를 겨누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잠시 뒤로 물러 갔지만, 난 뛰어 올라 아저씨의 무릎을 잡았다. 아저씨는 기겁하며 놀랐다. 하지만 난 그 다리에 눈을 비비며 한탄했다.

“제가…. 제가… 제 형을 죽였어요…”

“뭐… 뭐, 뭐라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구요…”


3.


하루가 밝아왔다. 창문 너머 사이로 빛들이 새어 나왔다.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가 선선히 들린다. 난 눈을 겨우 떠서 사방을 둘러본다. 그럼에도 변한 건 없었다.

하루마다 엄마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곤 엄마는 말한다.

“잘 잤니?”

“네.”

답하고, 엄마는 알겠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오늘 아침밥을 문 앞에 놔두시고 조용히 방문을 닫으신다. 엄마가 주신 국 한그릇과 연기가 피어나는 밥 한그릇을 본다. 한 숟가락 떠 먹어본다. 여전히 밥은 하루랑 다르게 따뜻했다.

형을 죽이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하린 누나도 사라진지 2년이 지났다.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흔들어진다. 여전히 내가 꿈에서 갇힌 기분이 든다. 내 스스로 시체를 끌고 사람을 죽인 것을 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하린 누나를 죽인 혐의를 받았다. 내가 누나를 죽인 걸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울면서 하소연했다. 난 절대로 누나를 죽이지 않았다고, 형이 누나를 죽였다고. 난 아니라고. 그럼에도 난 더 이상 말 할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난 누나의 죽음을 도운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형이 다음 날 산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걸 알았을 때, 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무서웠다. 내가 형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은 형을 따라갈 것만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차가웠고 견디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늘 똑같았다. 형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뒤 부터.

난 증거 불충분으로 감시 처분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누나를 죽인 줄 알고 있다. 엄마도 그런 날 부정할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았나 보다. 친구들이 가끔식 나에게 편지를 써서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여러번 나에게 왔을 때, 모두 성의 없는 똑같은 말들 뿐이었다.

모두를 위해 난 계속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것도 벌써 2년이 흘렀다. 외롭고 쓸쓸했다. 그때 날 살아게가 해준 건 이 반지였다. 누가가 끼고 있던 이 하얀 반지.

어느새 이 반지는 내 주머니 속에 있었고, 그 반지를 보자 누나와 나의 옛날 기억들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만큼은 행복하고 편안한 순간들이었다. 난 이 반지를 껴서 조금이나마 평안을 찾을려 했다. 

누나의 따뜻한 선의를, 누나의 아름다운 미소를, 누나의 파릇한 성격들을. 난 기억한다. 그녀는 나에게 여신이었다. 내 마음 속에 안착하여 꽃을 심어주는 아리따운 여신. 그녀를 난 잘 느끼고 있었다. 마음 속에 꽃들 하나하나의 향기를 전부 맡았다.

내가 그녀를 생각할 수록 나도 그녀를 더 느끼고 싶었다. 형이 만든 죄악이 내 마음에 썩은내를 풍기게 만들 때, 난 어떻게라도 무마할려고 이 하얀 반지를 씹고, 누나가 선물해준 볼펜을 입에 넣다 뺐다. 그녀가 죽을 때 그녀의 속은 육체에서 이 반지로 스며 들어갔다. 난 이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곤 언젠가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렸을 때, 반지를 삼킨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내 속에 있었다. 하지만 난 곧바로 정신을 차려 그 반지를 토해냈다. 그리고 한 동안 기절 한듯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울었다.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당신 때문에 내가 미치는구나 소리치며 그녀를 미워했다. 그리곤 다시 슬프게 죽은 누나를 미워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내 마음이 애증으로 가득 찼을 때, 누나가 사준 볼펜으로 시를 쓴 적이 있었다.


꽃 처럼 매일을 피워오르던 당신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쓰러진 것을 보았을 때

전 그 바람이 무서워 여린 새싹 처럼 그저 두려움에 

제 작은 풀 뿌리를 잡은 채 바람을 두려워 했습니다.


당신이 흘리던 그 피에 붉은 연기가 솟아 오를 때

전 도저히 버틸 수 없었습니다.

연기들이 나에게 속삭이며 

분노와 슬픔을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 여린 눈빛으로 날 보았을 때

전 다시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 눈빛은 그 누구에 대한 원망도 보이지 않았지만

오직 그 이유만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당신의 억울함과 슬픔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또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한지를 알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난 내 삶 한편을 내 몸으로 부셔트렸습니다.


이걸로 당신의 억울함이 풀어졌나요.

아직도 전 그 고통이 심하게 쓰라립니다.

제가 당신을 끌고 거리를 활보했을 때

그때 당신의 생명은 이미 길거리에 쓸려간 것을 알기에

그 운명을 버티지 못해 수 없이 울었을 뿐입니다.




4.


조사실에서, 경찰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손에 낀 저 반지는 누구껍니까?”

“이건….. 하린 누나가 저에게 준거에요.“

”왜죠?“

”왜긴요…. 주고 싶어서 줬겠죠.“

”살인 현장 당시에 박하린양 시체에도 이 하얀 반지가 있었는데, 설마 동일 반지는…“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그 때의 반지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이 반지는 다른 무언가로 가득 찼다구요.“

”… 그게 뭐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