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어폰이 5분만 작동하게 되어 있다는 것에 안심을 했다. 어차피 꿈을 최대한 꾼다고 하더라도 5분이니 별다른 부작용은 없겠거니 했다. 

"그래요. 그런데, 혹시 제가 처음은 아니겠죠?"

"그렇죠. 저도 몇 번 사용해 봤어요." 


나는 단지 이어폰만 끼면 된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과연 이어폰만으로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니.

"자, 이제 잠에 들 차례로군요. 저쪽 침대로 가세요."

나는 사무실에 놓인 침대로 걸어갔다. 신기한 경험이 될 것이다. 과연 꿈을 제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역시 5분만 잠드는 것이니 괜찮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먼저 이어폰을 귀에 꽂으시고 눈을 감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쉬세요. 저희는 이어폰으로 잔잔한 음악을 틀어드릴 테니까요." 


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내가 보는 세계가 꿈속의 세계라는 것에 기대와 희망으로 한껏 부푼 채로.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컴컴한 암흑만이 보일 뿐이다. 


나는 뭔가를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역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꿈 조작에 대해서 크게 실망을 했다.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쎄, 다시 생각하니 내가 원하는 꿈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잠에 들면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인상을 다 잊어버린 것이었다. 어떤 환상적인 공간을 상상해서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었는데, 막상 꿈속에 들어오니 별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꿈 꾸려고 해도 그 재료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암흑만을 느끼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서 꿈속에서 수면을 취한 것이다. 


내가 눈을 감고 조금 있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꿈 조작꾼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깬 것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나는 곧바로 소리쳤다. 

"꿈을 꿨는데, 암흑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실망했어요. 제가 원하는 세계를 바로 볼 수 없더군요. 저는 아주 화려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원했는데요." 

나는 짜증 난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미맛살을 찌푸렸다. 


조작꾼은 그럴 것을 기대했고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사실 꿈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일종의 상상력이 필요하죠. 당신이 꿈에서도 어둠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은 상상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상상력은 어떻게 발휘할 수 있나요? 저는 아주 화려한 세상이 나타났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한가요?"


"어떤 구체적인 사고가 필요하죠. 평소에 사물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평소에 보던 사물을 떠올리면 된다는 것이 퍽 쉬워보이기도 했다. 


"아, 그럼 다시 한번 꿈꾸는 것을 시도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마음 편히 먹으시고 다시 눈을 감아보세요." 


나는 또 다시 암흑이라는 꿈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무의식적인 연상작용이 정지된 상태에서는 오직 암흑만이 존재할 뿐이므로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뭔가를 떠오르게 하려고 했다. 


일단 너무 어두웠다. 빛이 있어야겠다. 머릿속으로 하얀 빛을 상상했다. 

"빛이 있어라."

나도 모르게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소리치게 되었다. 


은은한 빛이 비추었다. 주위가 하얀 종이처럼 변했다. 나는 내 발을 쳐다 보았다. 허공에 붕 뜬 것이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땅이 필요하겠군. 나는 머릿속으로 갈색의 땅덩어리를 상상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정도의 소혹성이 내 발 아래 생성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으면 뭔가를 하기 어렵겠군. 땅의 크기를 더욱 키우기 위해 집중을 했다. 땅은 점점 커졌다. 조금 지나자 땅이 적당하게 커져서 내가 평소에 익숙한 거리에 지평선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나는 지평선을 향하여 무작정 걸어갔다. 아무리 걸어도 동일한 땅만 나왔다. 나무나 동물과 같은 배경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동물도 동물원에서 본 것 몇 개를 생각해냈다. 내 눈에 나타난 토끼, 염소, 양, 오리, 코끼리, 호랑이 등등은 형태를 보였지만 마치 그림처럼 멈추어 있을 뿐이다. 나는 토끼를 움직이기 위해서도 상상을 해야 했다. 다른 모든 짐승도 일일이 신경을 써서 움직여야 했다. 


한참 내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꾸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나뭇잎의 색깔이나 동물의 움직임까지 일일이 상상하기란 여간 지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휴 한숨을 쉬면서 나무 아래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