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실체와 가치를 가지려면 그 개인이 시간속에 있어야되는데, 개인이 시간속에 있으려면 개체성과 불확실성이 전제되어야한다


눈과 입과 귀와 피부와 코 등으로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입과 몸을 통해 외부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경제성, 실리성 등의 관점으로 봤을때 너무나도 번거롭고 불편한 방식이지만


시간 속에서 움직임이 있으려면 '관계'라는것이 있어야만 하기에 개별적으로 각각 독립되고 구분되는것이 가치와 실체를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수 있다


또 공장 크기가 화성 크기만하고 공정 단계가 수천억 단계라 할지라도 그것은 패턴 안에 있기에 공간속에 있다고 할수 있으며, 수천경을 아득히 뛰어넘는 소스코드들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부피만 클뿐이지 어떤 큰 틀 안에 있다는점에서 공간속에 있다고 할수 있을것이고, 사람이랑 최대한 유사한 천재 동물들도 어떤 큰 패턴 안에 있다는점에서 그 동물들은 공간속에 있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정해진 조건에 따라 반응이 정해진다면 그것은 부피의 차이만 있을뿐 계산기와도 같을것이며 그 연산하는 과정과 결과에는 아무 가치가 없을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치가 생기려면 사물을 보고 반응하는데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자유, 즉 불확실성이 있어야만 하는데 이 불확실성이 있으려면 최소한의 이성이라는게 있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해서 인지할수 있게된다



만약 사물에게 효율성, 경제성, 실리성 등의 목적만 남게된다면 최종적으로 껍데기적으로만 상호작용하게될뿐이고 공간속에만 있게된다


경제성과 실리성만을 초점으로 삼는다면 모두가 백인 DNA로 편집하는게 나을것이고,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온갖 실리적인 지식들을 뇌에다 인스톨시키는게 나을것이고, 불편하게 스마트폰 들고다니지 말고 프로토스처럼 칼라로 싱크로 시키는게 더 나을것이고, 불편하게 비행기나 차를 타고 다니지 말고 저그처럼 군집체가 되거나 안개처럼 되어서 모든곳에 편재하는게 더 나을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는게 실리성, 경제성의 목적에 부합할것이고 모든것은 공허로 돌아갈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가치와 실체가 있는 이유는 경제성, 실리성 등의 이유에 따른것이 아니라 개체성과 불확실성이 있는 인간들이 시간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라 할수 있다. 마치 자유가 전제되어야 질서에 가치와 실체가 생기듯이, 사람들에게 개체성과 불확실성이 있는것이 전제되어야 그 이후에 경제성 실리성 등에도 가치가 생기는것이다


그리고 개체성과 불확실성을 기본 전제로 각 개인이 삶을 산다면 무조건 상대성을 가질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각각 지능, 인성, 감성, 성향, 환경, 기억, 유전자가 다 다르며 그로인해 시간속에서 만들어지는 고유의 움직임도 다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체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세상은 자연스레 나-세상의 이중 구조로 되었고, 그 구조상 개인이 자유를 가진채 자신을 시초로 살아야만 자신과 세상 모두 가치가 생기기 때문에 결국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사는것이 자연스러운 순리가 되는 원리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속 고유의 움직임은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진실되기만 한다면 개성이라는것은 저절로 딸려오게 된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것은, 즉 세상을 나-세상의 이중 구조로 만드시고 각 개별자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해주신것은, 개체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모든 사물들에 가치와 실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판단할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각자가 다르게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시간속에 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각자의 초상화가 달리 보이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 산다면 자신만의 움직임이 나올수밖에 없고, 각각이 서로 다른 움직임 속에 있으니 그 사물을 대하는 각도도 다를것이고, 보여지는 면도 다른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그 개인의 판단은 그 개인의 움직임 속에서 이루어지는것이므로 거기엔 어떤 교과서적인 반듯반듯함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존재가 다른 민족에게 "그 민족은 목이 곧고 완고한 민족이다" 라고 했다면 그저 그 존재의 판단일뿐이다


설령 그 존재가 절대적인 존재인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시간 속에서 개별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사물끼리 상호작용을 하는 특성상 대상을 상대적으로 보고 판단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희는 목이 곧은 민족이다"라고 한것은 반듯반듯한 교과서적인 발언이 아니다. 누군가가 "67%정도만 완고한데 '일반화'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어린아이일것이다


시간속에서 영혼을 가진채 움직이고 있는 존재는 그로부터 나오는 발언 또한 동향이 있을수밖에 없기에 정지되어있고 반듯반듯한 교과서적인 발언은 세상에 존재할수가 없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삶이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자아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 기초적인 1단계인 자신을 건너뛰고 2단계인 관계부터 시작하는것을 기본으로 여기는것 같다. 


자아에 대해 설명을 해줘도, 어렸을때부터 공교육 시스템에 의해 현대주의적인 철학과 시각을 학습하며 현대인으로 '동기화'된데다 온갖 미디어 속에서 정신이 해리된채 살다보니 이런 말을 해줘도 아예 감조차 안잡히는것이다


현대인들이 자주 하는 말들중 하나가 '일반화',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니다'라는 말인데 이 현대인들의 사고관은 그들의 영혼없음을 증거해준다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어떤 대상에게 내려지는 평가를 아주 당연한듯이 관계 속에서 반듯반듯한 교과서적으로 내려지는 평가로 여기는 사고관을 가지고 있으며, 평가뿐만 아니라 지식도 관점도 이론도 의견도 모두 모든 각도에서 봤을때 반듯반듯하고 흠결없는것을 추구하며 그게 정상인줄안다


현대인들은 어차피 모든 개인이 집단속에 있으니 경제 실리적 관점에 따라 그냥 관계를 시초로 여기고, 자신의 집단의 선택도 경제 실리적으로 선택하는게 옳다고 여기며, 1~10단계의 과정이 있을때 각 단계로 넘어가는 부피가 크면 그냥 1~9단계를 생략해버리는 성향을 가졌다


어떤 집단의 구성원들중 50%정도가 나쁘더라도 나머지 50%가 좋으면 어중간하더라도 나쁘다고 '일반화' 해서는 안된다 생각하고, 75%정도면 어중간하다 생각하고, 98.5%정도면 사실상 그런것이나 다름없으니 나쁘다고 관계속에서 정답으로 공인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으며, 어떤때에는 온갖 궤변들을 지어내서 80%가 나쁘다고 공인되기도 하지만 95%여도 나쁘다고 공인되지 않게끔 방어하기도 한다


자신을 존중하면 자신에 대해 진실되게 되고,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진실되면 저절로 독립적으로 서게되고, 독립적으로 서게되면 저절로 남을 관계 속에서 판단하지 않고 그 자체로 보게되는데, 현대인들은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 안에서 사는 존재들인지라 남을 존중할때에도 어떤 심리적인 트릭을 만들어내거나 자신의 사고를 패턴 안에다 넣는 방식으로한다


이들은 만약 메뉴얼 바깥의 경우를 겪거나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경우를 겪었을때 자신의 메뉴얼보다 무게가 더 무거운것이 반대쪽에 제시되어 본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다시 정적인 영역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잡으며 단면 게와도 같은 캐릭터를 위해 그 경우까지 메뉴얼에 포함시킨다.


한마디로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관계속 자신으로 여기니까 당연히 상대도 관계속 상대로 여기게 되는것인데 이런 구조에 대해 이해도 못해서 상대를 존중할때 굉장히 번거롭게 메뉴얼들을 많이 만들고 스스로의 자유를 구속하는식으로 정답 실리를 챙기는것이다. 외부의 양식과 형식들을 조립해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관계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삶은 관계적 이득을 위해 자신을 무시하는것인데도 이들은 굉장히 번거롭게 '외부에서 보는 나'에 취하는식의 나르시즘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은 자신을 가장 하찮게 여기고 상대를 기만하면서도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한다고 착각하는 뒤틀린 정신구조를 가졌다는것이다


또, 상상력이 있으면 사회성은 아주 쉽게 저절로 갖춰지는건데 현대인들은 온갖 경로 메뉴얼들과 실리적 교리들에 의존해가며 오답 되어질까봐 스스로의 자유를 없애는식의 실리적 길을 택한다. 이런 행태는 사회적으로 아주 보편적으로 보여질뿐만 아니라 장려되거나 심하면 강요되기까지 한다. 동쪽으로 가는길이 옳더라도 서쪽으로도 갈수 있는것은 그 같은 원리에 따른것인데도 현대인들은 이걸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인정도 안하며, 동쪽으로만 가게끔 틀을 만들고 통로를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계산기처럼 공간속에 자신을 집어넣으려고 한다. 경제성, 실리성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것이다


현대인들이 인터넷에다 시사, 언론 관련해서 댓글 다는것들도 보면 관계속에서 정답을 정하는것에 초점이 잡혀있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개인 사설 글에도 사방의 각도에서 흠결이 없는 반듯반듯 정확무오한 기준점을 근거로 타인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자신의 인생길에서 어떤 집단에게 해를 계속해서 입었는데도 궁벽진 강원도 삼척에 선한 사람이 살고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상 집단에 대한 판단을 '일반화'로 여기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기만한다면, 그 판단은 집단의 경제 실리적으로 봤을때는 정답일지라도 개인으로 봤을때는 노예의 삶이고 영혼없는 삶일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포로로 끌려가는 다니엘같이 선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외부에 의해 본인의 의사가 종속된 경우라 할수 있을것이다. 약 수천명 되는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벌거벗고 춤췄을때 나머지 200만명쯤 되는 사람들이 떼몰살 당하는 심판을 받은것이나, 다단과 아비람과 수백명 되는 사람들이 반역했을때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멸망당하는 심판을 받았던것은 하나님 또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채 시간 속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현대인들이 이런 관계 시초적인 삶을 사는 이유에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문명을 통해 공학적으로 인간의 모든 삶을 통제해 '움직임'이라는것을 아예 안일어나게끔 원천 차단했기 때문일것이다. 또 그 원천 차단의 동인은 세계대전때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일것이다. 그 결과, 기본적으로 심성이 유아적이게 되어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 독립성과 개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 자신과 연관되어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또 경제 실리적인 온갖 이유들에 의해 평생을 살다보니 움직임이라는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진짜 자아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었고 어린아이처럼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개체성과 불확실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시대가 된것이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해야될 기독교인들조차 이런 현대시대의 세태에 승인하고 지지하며 따라가고 있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