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든지간에 세상에 있는 모든것들은 다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겨났고, 어떤 원인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눈앞의 공이 동쪽으로 굴러가고 있는것도 그 공을 굴러가게 하는 '움직임'이 그 이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원인없이 공이 알아서 굴러가지는 않는다

무생물뿐만 아니라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생물이라 할지라도 그 생물의 동향은 그 이전의 '움직임'에 의해서 만들어진것이다. 자식은 부부가 관계를 가져서 생겨난것이고, 축적된 유전자나 교육이나 경험 등 또한 '움직임'으로 그 사람에게 작용하여 그 사람의 동향을 결정짓거나 영향을 끼친다

기차 사고가 난다던지, 냉장고에 팔이 껴서 다쳤을지라도 그 원인을 추적해보면 움직임을 가진 존재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짠 하고 만들어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있어야 무언가가 생겨나는것이고, 유지되는것이다. 역사는 움직임을 가진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것의 시초되는 '원인', 즉 처음의 '움직임'에 대해 알기 위해 수많은 탐구들을 하고 여러 가설들을 내놓았다. 그것들중 대부분은 현재 있는것들을 기반으로 이전 처음을 유추하고 과정을 유추하는식이라, 다 그럴싸하게 말이 맞긴해도 주관의 영역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모든것 이전에 존재한다고 나와있다

하나님이 모든것의 시초이고, 그 하나님이 피조물들을 만든다고 한다면 반드시 각각이 독립되어있는 개체로 만들어야만 했을것이다. 왜냐하면 효율성, 실리성, 경제성 등의 이유에 의해 뭉뚱그려진 군집체로 만든다면 그 같은 목표에 의해 차라리 만들지 않는게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 피조물에게는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패턴이 없어야만 할것이다. 설령 피조물이 알파고 뺨칠 정도로 수천억 단계의 매우 입체적이고 다발적인 단계들로 구성되어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부피만 클뿐 패턴 안에 있다는점에서 공장이나 로봇과도 같을것이다. 거기에는 가치와 실체가 없으며,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독립되어있고 주관적인 개체로 만든다 할지라도, 세상에 "나"만 존재한다면 그 또한 군집체나 다름없을것이다. 그래서 "나"와 "관계"를 모두 만드는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눈과 입과 귀와 피부와 코 등으로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입과 몸을 통해 외부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경제성과 실리성 등의 관점으로 봤을때 너무나도 번거롭고 불편한 방식이지만 그 '하나님의 형상'을 취해야만 가치와 실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근간은 불확실성과 개체성을 가지고있는 "나"와, 그리고 나의 실체를 만들어주는 "관계"이다.(여기서 관계란 두사람부터 국가 민족까지 포함하는, 움직임을 가지고있는 주관적인 존재들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을 말한다.)

거울과도 같은 "관계"가 있어야만 "나"에 실체가 생긴다. 보여지지 않는것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버리고 관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모든것에 실체가 사라진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보여지는것은 거울일뿐 보이지 않는것이 그것의 뿌리인데, 보여지는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것에 실체가 생기는것이다. 둘중 하나라도 없으면 모든게 공허가 된다

그래서 "나"도 중요하고 "관계"도 중요한것이다. 관계가 아무리 탐스러워도 언제나 "나"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주관대로 사는 존재이다.(이것은 자유와 가치를 위한 절대적인것으로서, 결코 타협을 할수 없는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기초로하는 "나-관계"의 구조속에서는, 관계에서 눈에 보여지지 않는것은 그 다른 주관을 가진자에게 있어서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다른 피조물들은 소통을 해야만 한다.


즉, 개체성과 불확실성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야 되는게 모든것의 근본인데 하나님 또한 그 "나"의 형상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피조물과 하나님은 소통이 불가능한것이다. 서로 소통을 하지 않는다면 관계라는게 없게되는것이고, 처음의 "나"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하나님이 늘 수준낮은 피조물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소통을 해야만 할까? 또는 피조물들이 "나"를 버리고 주입식으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하나님의 형상'이란 개별자의 실체와 가치의 근본이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 양보할수 없다. 설령 외부의 실리성 효율성 등의 이유에 의해 "나"를 버리고 아랫것들의 눈높이에 맞추거나, 아랫것들이 위로부터 오는것을 주입식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버린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로인해 생기는 모든 관계는 허상이 될것이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은 케루브(bWrK)라는 피조물을 만들었다. 케루브는 총 다섯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안팎으로 눈이 가득 있으며 각각은 각각의 피조물들을 대표하는 동물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들은 각각이 다 다르게 가지고있는 지능, 정서, 인성, 성향, 천성 등등 자신에게 있는 고유의것들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1인칭 주관속에서 고유의 움직임을 내며, 그 움직임은 모두 상대적일수밖에 없다. 방향도 각도도 다 다르고, 크기도 힘도 다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들은 모두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 속에서 상대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만약 눈이 안팎으로 가득 있는 존재라면, 사물이나 현상 등을 볼때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각도'로 그것을 보고 해석할수 있게된다. 또, 안에도 눈이 가득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각도'로 내면을 해석하고 받아들일수도 있게된다.

한마디로 '신의 형상'을 가진 존재는 무조건 상대적일수밖에 없는데 케루브라는 특별한 존재는 시간속에서 상대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살면서도 절대성 또한 가지고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이 케루브들은 다섯으로 구분되어 만들어졌다. 각각 새를 대표하는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케루브, 초식동물을 대표하는 소의 머리를 가진 케루브, 육식동물을 대표하는 사자의 머리를 가진 케루브, 영장류를 대표하는 인간의 머리를 가진 케루브, 물 또는 양서류를 대표하는 용의 머리의 케루브 등이 있다

왜냐하면 영장류, 조류, 초식동물, 육식동물, 물고기 등의 피조물들은 각각의 천성과 사고방식과 언어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하나의 케루브만을 중간에 두고 다른 피조물들과 소통한다면 그것은 동기화나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래서 각각 피조물들의 고유함을 지켜주면서 하나님과 소통하게끔, 케루브들을 피조물들의 카테고리 숫자만큼 다섯으로 만든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머리를 한 케루브는 영장류의 '언어'로 영장류들에게 신의 뜻을 해석해서 신과 소통하게끔 도와주는것이고, 독수리의 머리를 한 케루브는 새들 고유의 '언어'로 새들에게 신의 뜻을 전달해서 신과 소통하게 도와주는것이고, 소의 머리를 한 케루브는 초식동물의 방식대로, 사자의 머리를 한 케루브는 육식동물의 방식대로, 용의 머리를 한 케루브는 양서류 또는 어류의 방식대로 도와주는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다섯의 케루브들중 용의 머리를 한 케루브, 즉 사탄을 보고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라고 하였다.


천사나 영같은 존재는 죽일수가 없는데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살인자라고 한것일까?

왜냐하면 그 케루브가 다른 구성원들로 하여금 눈에 안보이는 "나"를 버리고 눈에 보이는 관계 그 자체를 추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케루브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존재들로서, 스스로 창조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수 있기에 껍데기적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하며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들이 자아를 가진채 '움직인다면', 그 정지된 단면 피라미드는 살아 움직이는 입체의 원형으로 바뀌게된다. 왜냐하면 모든것의 시초를 "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케루브는 하나님과 다른 구성원을 연결시켜주는 종노릇을 하게될뿐이다.


가장 낮은 존재일수록 가장 높아지고, 가장 높을수록 가장 섬기는자가 되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용의 머리를 한 케루브가 다른 구성원들에게 관계속에서 더 탁월하고 잘나지는것을 미끼로 "나"를 버리게끔 유도한것이고, 일부 구성원들이 거기에 속아넘어가 자신을 버리고 관계시초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는 살인을 한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관계속에서의 살아 움직이는 입체의 원형은 '하나님의 형상'을 전제로 유지되는것인데, "나"가 사라지고 움직임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움직임이 하나도 없고 죽어버린 단면 피라미드로 바뀌게된다. 관계의 모형이 정지된 단면 피라미드로 바뀌게 되면 그때에는 용의 머리를 한 그루브가 모든것의 최정점에 서게되는것이다


그리고 그 용의 머리를 한 케루브는 모든것들을 살인해가며 삼키다가 결국 예수님께 패하고 번개처럼 추락하게 된다. 이것이 사탄이고 마귀들이다


사탄은 천사장이 아니라 케루브이다. 사탄이 천사장이라고 하는것은 아마 카톨릭 교도들의 지어낸 전승일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에스겔 28장 14절에서 "너는 기름부음받은 덮는 그룹이라"라고 하셨다. 이는 그가 그룹이라는 증거이다. 눈이 안팎으로 가득찬 그룹이기에, 그는 하나님을 대적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20년경 스카랴가 쓴 기록에 따르면, 나머지 네 그룹의 형상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추정해봤을때 사탄뿐만 아니라 나머지 넷 또한 벌을 받은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위와 같다

일단 날개가 여섯에서 넷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케루브들은 한 몸에 독수리, 인간, 소, 사자 등의 머리를 동서남북으로 넷이나 가지고있게 되었고, 케루브들의 영혼이라고 할수있는것이 바깥 공중에 매달려있게 되었다. 그 공중에 있는 영혼에 의해 육체가 의체 관리당하면서 살게된것이다

이는 명백히 '나-세상'을 기초로 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반대되는 형상이다

아마 죄악을 저지른 넘은 용의 머리를 한 케루브 외에도, 나머지 네 케루브들도 관계적인 이득을 추구하며 은근히 교만함을 즐긴것 같다.


독수리는 새의 고유함이 있고 소는 초식동물만의 고유함이 있고 사자는 육식동물만의 고유함이 있고 인간은 영장류만의 고유함이 있는것인데, 관계적으로 더 탁월하게 되고 높아지기 위해 "나"를 버리고 인간의 방식이나 소의 방식이나 사자의 방식이나 새의 방식 등을 취하다보니, 그에 따른 벌로 네 케루브들이 비빔밥처럼 뒤섞여버린 복제인간들이 되었고, 관계시초적인 그들의 삶은 그들의 영혼을 바깥 공중에 삐져나오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고 공중에 의해 의체관리 당하듯이 살게되어버린것이다


그리고 약 500년쯤 후, 지중해 팟모섬에 사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때 네 케루브들을 다시 보게 되는데, 그들은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날개가 4개에서 6개로 회복되었고, 각각의 몸에는 머리가 하나씩만 있고, 바깥 공중에 매달려있는 큰 바퀴같은것은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가 합쳐졌다. 아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지셨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들을 이어주는 처음의 목적인 종노릇을 열심히 했기 때문인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형상은 저 사탄과 마귀들의 형상과 매우 비슷하다. "나"를 버리고 관계시초적인 삶을 사는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게 되어있다

현대인들은 모두가 다 복제인간들이고 다 똑같다. 머리를 네개나 비빔밥처럼 가지고 있고 넷이 다 똑같이 생긴 케루브랑 같다

현대인들은 본체가 공중에 매달려있고, 그 공중이 육체를 의체관리하며 살아간다. 공중에 영혼이 매달려서 그 공중에 의해 육체가 의체처럼 움직여지는 케루브랑 같다

그 안팎의 많은 눈들은 시간이 없으면 결국 정신분열일뿐이다. 그 많은 안팎의 눈들은 시간이 전제되어야지 그제서야 가치를 가지는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형상'을 가져야만 하고, 인간의 형상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진실해야만 한다. 결국 돌고 돌아서 원점인것이고, 처음의 모형이 가장 좋은 모형인것이다


눈에 보이는 공간에 있는것들의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속에 있는것이다. 눈에 보이는 관계에서 보여지는것의 뿌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나"에게 있다.

사람은 각각이 다 고유한것들을 가지고있고 그 고유한 요소들에 의해 사물을 보는 눈도 다 다르고 움직임도 다 다른데, 만약 사람들이 관계적인 이득을 위해 나 자신을 버린다면 그때에는 움직임이 하나도 없고 죽어있는 단면 피라미드 서열 안에 들어가게 될 뿐이다. 또, 사람 숫자만큼 있는 눈들이 다 사라지고 오로지 동기화된 단 하나의 눈만 있게될것이다.

보여지는 이득을 위해 자신을 버려가며 그 지체에 담기고, 뿌리없고 허상일뿐인 피라미드 서열 속에서 위에 올라가려고 더더욱 자신의 영혼을 아둥바둥 버리며, 모든 사물과 현상을 그 지체속 통일된 하나의 눈을 통해서만 보게되는것이다

설령 자신을 버려도 그 피라미드는 뿌리가 없는것이기에, 결국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할뿐이다

사탄은 그가 천사들을 '살인'했을때처럼 동일하게 현대인들을 '살인'하고 있다


굉장히 탐스러워 보이는 관계적인 이득을 미끼로, "나"를 버리라고 미혹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기만 하면 이 모든것들을 다 취할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모든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을 뿌리로 하고 있으며, 그 눈에 보이는 모든것들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그림자이기에, 그림자를 추구하려고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게 되면 그림자마저 다 사라지는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을 버린자들의 최후는 어떻게될까? 사탄이 취하게되는것이다. 모두가 사탄의 지체안에 들어가게 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