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모든것들중 가장 큰 가치로 여기셨으며, 거짓말을 가장 큰 악으로 여기셨다. 


그런데 "믿음은 그냥 믿는것이고, 거짓말은 그냥 구라치는것일뿐일텐데 대체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둘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셨을까?" 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굉장히 많으며, 의문을 가지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를 하기보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사람들뿐인것 같다


그래서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구한것을 써보고자 한다



일단 거짓말이 가장 근본된 악인 이유에 대해 알려면 악의 기준과 조건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악의 정도를 따질때에는 고의적이냐가 가장 우선이어야 할것이다. 고의성을 먼저 따지고 부피는 그 다음인것이다.


그런데 이점에 따르면 거짓말은 모든 악중에서 거짓말이 가장 큰 악이된다



거짓말은 단지 구라치고 속이는것일뿐인 작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거짓말이라는 악이 성립하려면 먼저 올바른것을 알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어야만 한다

마치 빛이 비춰야만 그림자가 생겨나는것처럼, 거짓말이라는 악은 옳은것을 먼저 알아야만한다는 대전제가 있어야 성립된다

만약 모르고 어떤 사실에 대해 말했다면 그것은 틀리게 말한것이지 거짓말을 한게 아니다

그러므로 먼저 올바른것을 알아야하는데, 올바른것을 알아도 저지른다는점에서 거짓말이라는 악은 태생적으로 고범성이 따라올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짓말의 근본 속성은 유사함이다

유사할수록 거짓말이 더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을 잘 칠수록 더 유사해야된다. 거짓말이 유사해지려면 그 행위자는 더 입체적으로 옳고 그름을 알고있어야만 한다

즉, 거짓말이 더 거짓말이 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올바른것을 더 깊고 자세히 알아야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잘 칠수록, 그 죄악의 독특한 구조상 올바른것을 더 알고있다고 스스로 증거하는셈이 되며 더 고의적이라고 스스로 증거하는셈이 된다.


또 거짓말은 모든 죄악의 모체가 되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졌다.

눈에 보이는 살인, 강간, 강도, 폭력 등의 범죄도 물론 사악하지만 그 행위의 정도에 따라 구조적으로 고범성이 자체 증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인, 폭력, 강도, 절도 등의 범죄를 안들키게끔 저지르거나 저지른 뒤 숨는다면 그 범죄에는 근본적으로 거짓말이라는 틀에 담기게된다. 즉, 거짓말은 모든 죄악을 담는 모체의 속성을 가졌다

만약 대놓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빼앗다가 집단에 의해 피드백을 받으면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은것이다. 행위자의 두뇌 결함에 의해서인지, 무지 때문인지,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 겉 행위 자체만으로는 고의성을 알아내기 힘들다. 비커가 10리터짜리라 해도 물이 1리터만 들어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감시와 통제 영역을 잘 계산해서 들키지 않게 저지른다면 위장이라는 속성이 추가되기 때문에 거짓말이라는 모체에 담기게 된다. 더 들키지 않을수록, 더 감추려고 할수록, 더 책임지지 않으려 할수록 역설적이게도 고범성을 더 증거하는셈이라 죄의 무게는 더 커진다. 모순을 시도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것이 잘못된것임을 알고있으며 그럼에도 저질렀다고 스스로 증거하게 되는셈이다


이렇듯 거짓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중에서 독보적으로 구조와 성질이 다르다. 거짓말을 잘 칠수록 더 유사해야하며, 더 유사할수록 더 진실을 알고있다는 뜻이며, 더 올바른것을 알면서도 저지를수록 고범적이다. 또 모든 죄악의 모체가 된다는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범적일수록, 알면서도 저지른다는 점에서 사악함의 무게는 남다르다. 거짓말은 그 구도상 거짓말을 잘 칠수록 더 사악하다는것이 자체적으로 증거된다. 인과에서 벗어나려고 모순을 실현시키려 할수록 스스로 매를 더 벌게되는 그런 구조를 가졌다

0%는 100%와 시각적으로 가장 거리가 멀지만 거짓말이 없다는점에서 개념적으로는 가장 가깝다. 오히려 99%는 시각적으로 100%와 가장 가깝지만 '사실은 틀리지만 겉보기엔 최대한 유사하다'는 점에서 개념적으로는 가장 거리가 멀다. 시작점부터가 틀린점에서 시작했으므로 결코 100%가 될수 없으며 아무리 노력해봤자 99%에 한없이 가까워질뿐이다. 그리고 99%에 가까워질수록 더 사악함이 증거되는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악의 컬러는 검은색이 아니라, 절대로 흰색이 될수 없는 흰색에 가장 가까운색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의 색깔이라 생각한다




또 믿음이라는것도 거짓말과 똑같이 모든 인간의 행위중에서 독보적으로 구조와 성질이 다르다.


사람은 사물과 현상을 볼때 자신이 가지고있는 상대적인것들을 기반으로 해석한다. 사람의 움직임 또한 그 사람이 가지고있는 상대적인것들에 의해서 나온다. 또 그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그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국뽕들과 혐한들이 동일한 하나의 점을 봤을때 서로 상반된 해석을 하는것도, 좌파들과 우파들이 같은 뉴스를 보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것도, 스님들과 천주교인들이 서로 같은 점을 봤을때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것도 서로가 가지고있는 상대적인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것들이 다름으로 인해 사물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이 상대적인것들, 즉 큰 틀의 근본되는것이 바로 믿음이다.


뉴턴의 법칙으로 수성의 궤도를 계산했는데 100년당 43초의 오차가 생겼을때, 그것이 아무리 극도로 유사하게 겹쳐있고 거의 정답이라 할지라도 오답이라고 여겼던것 또한 믿음에 의해서였다


그것이 오답이라는 믿음에 의해서 움직임이 달라졌고, 그 다른 움직임에 의해 역사가 달라졌고, 그 다른 역사에 의해 아인슈타인이 나왔으며 인공위성과 GPS와 원자력발전과 기타 여러 현대사회의 문물들이 나왔다 


현대인들의 눈앞에 보여지는, 텔레비전과 아파트 계단과 전자레인지와 엘리베이터와 도로와 전선줄과 자동차 등의 "이미지"는 그 믿음에 의한 결과일뿐이다. 그것의 실체는 그 껍데기에 있는게 아니라 믿음에 있다. 믿음에 의해 움직임이 생기고 움직임에 의해 공간속에서 이미지가 만들어진것이다.


만약 철수가 영희와 토요일 오후 2시에 만나자고 약속했다면, 철수는 "영희와 토요일 오후 2시에 만나는것"을 믿었으므로 그 믿음에 의해 철수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다른 움직임에 의해 철수의 역사도 달라진다


유럽 국가간의 조약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믿음에 기반해서 상대적인것들이 바뀌고, 그 바뀐 상대적인것들에 의해 이전과 다르게 사물과 현상을 해석하고 다른 움직임을 형성하는것이다


인간의 언어 또한 믿음에 의해 유지된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 정보를 소통하는것은 믿음을 근간으로 한다. 만약 이 단어들과 언어들이 그 뜻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소통 자체가 안되었을것이다


예를들어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인이 신에게 열렬히 기도를 했으나 기도를 끝내고 다시 일상 모드로 돌아온다면 그 종교인은 믿음이 없는 종교인일것이다. 열렬히 한것은 그것이 마일리지 축적의 개념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거나, 나르시즘적인 또는 카타르시스 만족을 위해서일뿐일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전능하다는점과 신이 모든것을 이루어준다는 수학적인 조건들하에 신에게 기도를 했다면 이미 받은것이라고 여겨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것이라고 여긴다면 그 믿음에 의해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대하는 움직임이 달라져야만 한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물이 4면체로 보이기도 하고 5면체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믿음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게되고 역사가 달라지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실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것의 실체이며, 모든 움직임을 담는 모체라 할수 있을것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자신에게 느껴지는 걸리는것, 즉 영혼을 포기해야만 한다. 현재 현대인들은 워낙에 양심이 없는 존재들이 너무나 많아서 '걸리는것'에 대해 이해가 잘 안가겠지만, 90~2000년대 일본인들을 예로 들자면, 2ch같은곳에서 낚시 스레를 하면 거의 항상 끝에 낚시라고 고백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게 본능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의해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이 자신의 움직임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끔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눈에 보이는것을 위해, 공간속 이득을 위해 영혼을 버리는것이라 할수 있다. 영혼이 있어야 시간속에서 살수 있으므로 사실상 시간을 버리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 껍데기, 사실은 허상일뿐인 껍데기를 위해 시간을 버리는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이와 정반대이다. 믿음을 가지려면 자유가 있어야되는데, 이 자유는 영혼에서부터 나오니 영혼이 있어야 믿음을 가질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 의해 상대적인것들이 만들어지고, 움직임이 생겨나고, 그 움직임에 의해 세상에서 이미지로 보여진다. 즉, 믿음이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것의 실체이면서, 동시에 현재 모든 눈에 보이는것들의 뿌리이다.


현재 공간속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믿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관점으로 보자면, 믿음이라는것은 시간적인 속성을 가졌다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거짓말이 공간적인 속성을 가졌다면 믿음은 시간적인 속성을 가진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음과 거짓말이라는것이 세상에 존재하는것들중 가장 독특한 두가지라 생각하며,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이유들에 의해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셨고, 거짓말을 가장 큰 악으로 여기셨던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