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에서 살았던 마리 에머리라는 여자가 쓴 '악마가 사랑한 여인'이라는 책을 보면 책임 안지는 거짓말의 기술이 나온다

국가나 집단이나 개인 등의 대상에게 메타적으로 정보를 알려준 뒤 대상에게 상대적인것들을 설정시키거나 상대적인것들이 설정되있을때 어떤 절대적인 제안을 하는데, 설정된 상대적인것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대상이 그 절대적인 제안을 승인하게되면 대상에게 원하는 행위를 책임 안지면서 저지를수 있다는것이다

대상에게 정보를 알려주는것은 직접 전달하는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절대적으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대전제가 있다면, 편지를 통해서 전달하거나 기사를 통해서 또는 심부름꾼을 통해서 전달할수도 있을것이다. 매체가 정보를 변질시키지 않는 계산기, 수화기, 편지, 미디어 등이라면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다. 개념적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또 대상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대상과 가깝거나 같이 묶여있거나 대상 집단의 일부에게만 전달할수도 있다. 대상에게 전달하지 않는것은 대상 주변인에 의해 정보가 전달될때, 그 상황이나 환경이나 그 주변인의 이미지 또한 상대적인것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추론능력 범위 내 끝자락에 걸쳐 전달한다. 왜냐하면 껍데기적으로는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옳은 소스에 기반해 가짜들이 섞인 매체들을 통해 다리 건너건너 전달하는데, 그 '언어'는 직접적이지 않고 기호와 은유와 상징에 의해 감싸져있으며 그 감싸진것을 해석하는 키는 또 다리 건너건너를 통해서만 알수 있다. 또 언제나 대상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대상과 연결된 존재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해석의 난이함은 모든것들을 전체적으로 봤을때 보편적인 인간의 추론능력 끝자락에 딱 걸칠 정도로 만든다.


끝자락에 걸친 프랙탈의 연속으로 만들어놓아 껍데기적으로는 합법 범위 내에서 대상에게 승인을 요구하지만, 대상은 그것을 승인할수밖에 없게끔 만드는것이다

'상대적인것들'이라 함은 문화, 움직임의 방향, 감성, 감정, 지식, 맥락, 분위기, 움직임에 따른 상대적 시각, 경험, 상태, 기분, 욕구, 시각적인 자극, 많은 사람들의 수, 처세적 욕구, 트렌드, 눈치, 체면, 이미지, 정보전달 매체에 대한 평가, 사회적 위치 등 여러가지일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절대적인 소스를 기반으로, 추론에 의해서만 파악되게끔 보편적인 인간의 능력 범위 끝자락에 걸친 상징과 기호와 패턴을 만들고, 그 상징을 간접적이지만 접근성은 낮지않은 매체를 통해 유효숫자의 끝자락에 걸친 구성원 일부 숫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는, 같은 권리의 분깃을 가진 일부에 의해 구성원들에게 전달시키게 유도하는것이다. 물론 각 다리마다 가짜들이 섞여있어서 절대적인 하나가 아닌 여러 상대적인것들중 하나로 보이게 만든다. 그 다리다리를 건너 정보가 전달되는식인데, 진짜 다리를 구분하는 해석 키에 대한 힌트 또한 프랙탈로 이루어져있다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하는것이나 다를바 없지만 그래도 어느 때까지는 껍데기적으로, 언발에 오줌누는식으로 유지할수 있다. 인위적으로 언발에 오줌누는식으로 연명하는 그 과정속에서 또 모순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하여 상대적인 부피를 극단적으로 늘려 그것을 절대적으로 만드는것이 최종 목표이다

구성원들은 같은 권리의 분깃을 가졌으나 '음모론' 카테고리에 속한 초라해보이는 일부 구성원들의 정보를 보고도 그 정보에 따른 움직임을 취하는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별볼일 없어보이고 관계속에서 못난이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라는것은 그림자일뿐이므로 절대적인 기준점이 되지 못한다. 한마디로 절대적인것보다 상대적인 부피를 택한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침묵이 그 일에 대한 승인이 되게끔 설계하여 대상의 지배력을 대가없이 확보한다

또 정보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고 일단 거짓말로 대상에게 상대적인것들을 설정시키고 관성 속에서 유도하다가, 메타적으로 그것을 포괄하는 정보를 나중에 알려준 뒤 대상에게 상대적인것들과 절대적인것 둘중 하나를 택하게해 처음의 불법성까지 합리화시키는 방법도 있다. 처음을 불법으로 시작한다음 나중에 껍데기적으로 그것의 승인을 얻어내어 처음의 불법을 합법으로 만드는것이다. 이 경우에도 껍데기적인 기준만 충족시키기만 하면 되기에 정보들을 끝자락들에 걸친 간접 및 상징들에 의해 전달한다

모든것을 메타적으로 포괄하는 올바른 정보를 알려줘야만 거짓에 실체가 생긴다. 낭떠러지로 데려가는 상대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면 그 지식은 피해자에게 밀폐되어있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 가해자가 책임을 져야만 하지만, 그 상대에게 어떻든간에 정보를 알려주면 껍데기적으로 피해자가 스스로 선택한것처럼 끼워 맞출수 있으며 자신은 인위적이고 언발에 오줌누는식이지만 존재를 유지시킬수 있다. 제안받는 피해자는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이 서로 상반되는 두가지 맥락에 의해 해석되어, 마치 동전의 양면같이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동전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이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에 실체가 생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빛을 먼저 비춰주는 이유는 밀폐되지 않게 해서 가해에 실체를 만들기 위함이며, 자신은 잠시동안이라도 책임지지 않으려는것이다.


언뜻 보면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저 일들의 원리는 알고보면 굉장히 단순하다

사람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속에서도 사는 존재이다. 시간속에서 산다함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공정 과정이 수억개나 되는 공장은 패턴 안에 있기 때문에 일의 선후가 있어도 공간속 존재다. 버튼을 누르면 정해진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도 공간속 존재다. 동물들도 패턴 안에 있기에 공간속 존재다. 부피에 상관없이, 복잡함에 상관없이 패턴 안에 있다면 공간속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영혼이라는것이 있기에, 불확실성을 가지기 때문에 시간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의 절대적인 행위는 바꿀수가 없지만 불확실성을 가진 존재는 시간 속에서 살기 때문에 과거의 절대적인 행위가 이후에 다르게 규정될수 있다. 동물이 공간 속에서 어떤 행위를 했으면 그 행위를 한것이겠지만, 사람이 공간 속에서 어떤 행위를 했어도 이후 시간 속에서 다른 행위들을 하면 그것까지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즉 시간적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지인에게 돈 꿀때 진심을 담아 빚 반드시 갚는다고 약속하고 돈을 꾸었으나 나중에 갚을때가 되자 생돈 나가는것 같아서 안갚는다면, 처음의 그 말은 그 공간속에서 아무리 진심으로 했어도 나중에 의해 거짓말이 된다.

남녀가 서로 굉장히 사랑하고 맹세까지 했어도 시간이 흘러 배우자가 퇴직할때 퇴직금 절반을 노리고 황혼이혼을 해서 편하게 따로 산다면, 아무리 처음 맹세할때는 진심이었어도 나중 행위에 의해 처음 행위가 다르게 규정된다. 절대적인 처음 행위가 나중 행위에 의해 상대성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자식이 엄마 지갑에 있는 돈 슬쩍 한다음 상대적으로 기가 약하고 편한 아빠에게, 명절날 주변 친척들 시선이나 체면이나 분위기나 기분이나 여러 상대적인 요소들이 있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도둑질한 정보를 특정 텐션과 어투와 강도 속에서 적당히 알려주고, 엄마 또한 아빠에 의해 '문간에 발들이는식'으로 정보가 접해져 결국 부모가 상대적인것들에 의해 자식이 제안한 절대적인것을 승인하게되면, 처음의 도둑질은 껍데기적으로 양도로 바뀌게된다. 절도가 시간속 구조에 의해 양도로, 처음의 불법성까지 뒤집혀져 바뀐것이다

이명박이 수십년간 신실한 장로였어도 대통령 직위와 bbk 잘못인정 둘중 하나를 택하는 상황이 생기자, 눈에 보기에 작아보이고 언제든 가질수 있는 신에 대한 믿음보다 눈에 보기에 커보이고 한번뿐인 대통령 직위를 택한것도 같다. 회개땡하면 된다고 얄팍하게 생각한것 같은데, 이명박은 그 나중 행위로 인해 자신의 신앙이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 '여러 상대적인것들중 하나'라는걸 스스로 증거했으며 조건부에 따라 자극이 셌기에 신앙이라는것을 택해왔다는걸 증거했다. 또 그 나중 행위로 인해 처음의 부피가 큰 동전이 뒤집혀져 기만과 위선과 악함으로 바뀌었다. 동전이 뒤집어져 그 신실함의 부피가 위선의 부피로 바뀐것이다. 그의 인생 전체의 신앙생활이 이후 그의 나중 행위에 의해 전부 다르게 규정된것이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형은 진심으로 불평하며 거절했고 아우는 진심으로 기꺼이 따르겠다고 했으나, 형은 뒤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한 반면 아우는 중간에 생각이 바뀌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형이 아버지의 말을 따른것이고 아우는 거절한것이다. 


독일 괴한들이 17세 소녀를 납치한 뒤, 몸값 협상을 위해 일정 기간동안 데리고있다가 서로 정이 들어 소녀가 괴한들을 용서해주는것도 같은 원리이다. 여자 특성상 관계중심적이고 관계시초적이라서 '관계속 자신의 외면'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그런데 그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 자신만 못나지고 초라해지고 비루해지게되면 그 즉시 무의식적으로 '이 일은 관계속에서 그다지 못난축에 끼지 않는 일'이라고 스스로 세뇌시켜버린다. 그리고 괴한들이랑 정이 들게되고 나중에는 용서까지 해주게되는것이다. 이 경우 또한 나중이 처음된 경우라고 할수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사건을 보는 기준이나 관점은 스스로에 의해서 또는 외부에 의해서 바뀔수 있다는것이다. 나중에 생긴 인간적인 감정과 친근감 등 상대적인것들에 의해 처음의 납치 및 구속 등을 용서해주면 처음의 불법적 행위가 나중에 의해 다르게 규정된다.


한국 정부가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려주는짓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승인으로 작용되는 상대의 침묵에 의해 그 처음 불법을 나중 행위로 합법으로 만들려는 시도라 할수 있다. 일단 강제로 대상을 징병하고 착취한다음, 이후 대상에게 여러 상대적인것들을 셋팅해놓고, 그 이후 아직 어리벙벙한 스무살 청년들에게 개념적으로 승인을 요구하고 침묵으로 허락받아서 처음의 불법을 합법으로 뒤집어놓는식이다. 부사관 월급이 167만원쯤 한다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징병을 한다음 200만원을 주는것은 모병제로는 원하는 병력 숫자를 유지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굳이 표현하자면 '나중으로 처음을 만드는것'이라 하겠다

시간과 공간속에서 사는 존재는 하나의 공간속 절대적 행위가 이후의 행위에 의해 다르게 규정된다. 공간속 행위는 불변성과 절대성을 가졌으나 시간이 더해지면 상대적인 속성으로 바뀌게 된다. 인간의 행위는 분명 절대적인데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게 된다. 절대성이 사라진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속에서는 절대적이다.


또 공간속에서 한 행위는 절대적이어도 시간 속에서 각각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상대적인것들의 설정에 따라 하나의 절대적인 행위가 각각 다른 이미지로 보이며 다르게 해석될수 있다.



그런데 종교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기록되어있다. 바로 아합왕의 경우이다

아합왕은 고대 북이스라엘 왕국의 7대 왕이었는데 당시에는 반역이 빈번이 일어났었기에 왕권 안정을 위해 주변의 강대국이었던 페니키아 지역의 티루스 왕국과 혼인동맹을 맺었었다.

이 아합왕은 굉장히 교활하고 쥐새끼같은데다 생존운이 무척이나 좋은 인간이었다. 자식은 70명이 넘었고, 모든 악한짓을 저지를때마다 책임 안돌아오게끔 형식을 통해, 주로 혼인동맹으로 온 이자벨이라는 아내를 통해 손 안대고 코푸는식으로 저질렀었다.

그 죄악들이 정도를 넘다가 어느날 나봇의 포도원을 이자벨이 손안대고 코 풀어주는 방식으로 빠앗아 갖다주자, 신에 의해 심판이 확정되었는데 그 확정을 듣고는 이 가증스러운 살인자는 생존본능에 의해 즉시 반성하는 퍼포먼스를 취했다

밭에 독보리가 있어도 밀이 있다면 밭이라는 형식 자체를 건드릴수 없는 원칙상 그 반성하는척 하는 퍼포먼스를 인정해줄수밖에 없기에 결국 그 일에 대한 심판이 취소되었고 아합왕은 그떄에도 생존할수 있었다. 아합왕은 이렇게 생존에 탁월한 매우 교활한 쥐새끼였으며 생명력과 번식력이 굉장히 강했다.

시간이 지나 시리아에게 빼앗긴 라못길르앗 지역을 되찾으려고 남유다왕국의 왕과 동맹을 맺었는데 평소 유대교를 열심히 믿었던 유다왕이 선지자들을 통해 신의 뜻을 구하자고 권해, 평소에 늘 재수없는 예언만 해서 미워했던 선지자 한명을 제외한 400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을 불러 예언을 시켰다

왕 앞에서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400명이나 되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반드시 승리할것이라 말해줬었다. 신의 이름으로 하는 예언들은 신이 책임지는것이니 100% 확실하게 신이 정보를 전달한다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단 한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절대적인 하나가 아닌 여러 상대적인것들중 하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신의 책임상 공공 영역에서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는것은 절대적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일 이후 유다왕이 이 외에 더 없냐며 또 권유하여, 결국 평소에 미워하던 재수없는 선지자도 불러 예언을 시켰는데, 그 미카야라는 사람이 와서 신이 아합왕으로 하여금 라못길르앗으로 가게해 죽게 하려는 계획으로 선지자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 이런 거짓 예언들이 나왔다고 예언해줬다

당연히 아합왕 입장에서는 평소 재수없는 예언을 해오던 인간이 못마땅했기도 했고 400명이나 되는 시각적 권위가 있기도 해서 미카야의 말을 무시하고 전쟁터에 갔으나 그 예언대로 라못길르앗에서 패배하고 죽게되었다

절대적인 사실만 전해왔으며 절대적인 사실만 전할수 있는 신의 선지자들이, 그것도 400명이나 되는 숫자가 예언했다면 무조건 믿을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면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신은 절대적이라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처음에 아합왕에게 400명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확실하게 거짓말을 쳐서 이전의 절대적 맥락에 따른 믿음과, 시각적 권위와, 라못길르앗 지역에 대한 욕망 등의 상대적인것들을 설정시켰다. 설정된 상대적인것들에 의해 아합왕에게는 움직임의 방향과 움직임의 힘이 생겨났고 그는 그 움직임에 담겼다. 그리고 그 이후, 아합왕이 미워하던 평소 재수없는 예언만 해오던 선지자를 통해 메타적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그 메타적인 정보를 전달한것도 공식 절차에 의해서가 아닌 사사로운 감정에 따른 우연적인 경우에 의해 일어났다.


결국 아합왕은 상대적인것들의 입체와 프랙탈로 이루어진것들 속에서 절대적인것을 제시받았으나 상대적인것을 택해 '알고도' 스스로 죽으러 가게 되었다. 신은 진실만 말한다는 절대적인 원리에 의한 공간속 행위 또한 시간속에서는 상대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것이 성립할수 있는것이다

만약 A라는 사람이 B 보는 앞에서 C에게 'B한테 이런 선택을 하면 살것이다'라는 말을 전하게 한뒤, 다시 B보는 앞에서 D에게 'C를 통해 시킨말은 B를 죽이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해라'라고 했을때 B가 D의 말을 따르지 않고 C의 말을 따른다면 그 결과에 대해 B가 책임을 질것이다.

그것이 도식을 통해 이루어진것이 바로 아합왕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신이 아합왕에게 한 거짓말은 무죄인데, 마리 에머리 패거리들이 사람들에게 하는 거짓말은 유죄인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 지갑 도둑질한 딸이나, 한국 정부의 야바위짓 또한 나중으로 처음을 만들려는짓인데 이건 무죄일까 유죄일까? 껍데기적으로 승인만 받으면 무죄인것인가?


독일 괴한들의 경우 그들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것에 대해 알지도 못했으며 그 경우를 노리지도 않았다. 지식적으로 밀폐되어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을것이다. 그 소녀 또한 여자 특성과 인간 본연의 생존 욕구에 따른 행동이었므로 몇몇 부분이 밀폐되어있기 때문에 책임이 없을것이다. 그러면 그 여자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괴한들은 무죄일까? 꽁으로 운좋게 얻어 걸린것일까?



내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이 아무리 시간 속에서, 입체 속에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를 하나로 보고 판단해야된다는것이다. 입체같아보여도 그것을 담는 입체가 더 있다는것이다


사람을 죽이는것은 잘못된 행위이지만, 살인 강도 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죄자를 사형시키는것은 올바른 행위이다. 사람을 증오하는것도 좋지 못한 행위이지만,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증오하는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하나의 공간속 행위는 그 담겨있는 시간에 따라 성질이 완전하게 바뀐다. 저 '나중으로 처음을 만드는' 기술 자체도 마찬가지이다. 저것을 담는 더 큰 틀에 의해 봐야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더 큰 틀은 바로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은 진실성에서 나오며, 자신을 시초로 자신의 눈 앞을 보며 살아가야만 나온다. 결국 돌고 돌다보면 다시 '인간의 형상'이라는 원점으로 돌아오는것이다


지식과 지혜라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 글에 동의를 하든 하지않든간에 이 글의 내용을 이해했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 마리 에머리같은 사람이랑 지식적으로 동등하게 된다. A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아놓았다가 B 컴퓨터에 복사 붙여넣기를 하면 적어도 그 부분은 똑같아지는것이다. 지엽적인 지식이 아무리 많아봤자 그것은 학습하느냐 안하느냐 단지 그 차이일뿐 그 사람의 우열을 증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혜(慧)라는것은 지식을 분별하고 처리하는 능력이라서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 얼마나 지식이나 사물이나 대상을 진실되게 대하느냐에 따라 능력이 나온다


바깥 관계적인 이득을 위해 양심을 거스른다면 그 사람의 중심이 육체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그 순간 그의 시간은 멈추게된다. 왜냐하면 영혼이 있어야 시간 속에서 사는것인데 영혼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관계, 공중, 허공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그런 마리 에머리의 패거리같은 인간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고 그 누구보다 시간적으로 행동한다면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증거하는 꼴이 되는것이다


그들이 더 시간에 대해 잘 알수록, 시간과 공간의 모든것들에 대해 탐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수록,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자신들이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스스로 증거하게 된다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면 선한것에 유사하게 위장하고 맞출수록, 그 유사함의 부피가 커질수록 오히려 고의성이 증거되어 더 사악하게 판단되는것과도 같다. 시간을 버린 공중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들이 시간의 원리에 대해 잘 알고 더 시간적으로 살수록, 그 부피가 커질수록 오히려 더 어리석음만 증거되는것이다


눈 앞을 보며 사는, 나 자신을 시초로 나에 의해 사는 그 1단계 기초를 절대적으로 고정시켜놓은채 '나중으로 처음을 만드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무죄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 자체가 생명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글 본문보다 10배는 더 긴 사족이 될것 같아서 적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사람의 중심이 바깥 공중에 매달려있고 그 사람은 퍼펫처럼 의체관리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나중으로 처음을 만드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유죄이다. 꼴뚜기가 주제도 모르고 끼요끼요로 껍데기를 맞추고는 껍데기적으로 같으니 그만큼 자신은 지혜롭다고 착각하나, 시초가 글러먹었기 때문에 그 부피만큼 지혜가 증거되는게 아니라 어리석음이 증거될뿐이다. 그들의 그 지식은 먼저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뿐, 중심적으로 봤을때는 그들은 어리석은 종자들이다


범죄를 저질렀을때 고의성 유무를 모른다면 용서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범죄가 거짓말이라면 고의성이 담겨있기 때문에 용서하기가 힘들다.


지식에 대해 모른다면 그 사람이 어리석은지 지혜로운지 아직은 알수 없다. 그러나 지식에 대해 알면서도 저런 짓거리들을 한다면 어찌 구제할수 없는 어리석은 종자들일뿐이다


어중간하고 어설프게 지식을 아는것은 차라리 아예 모르는것보다 못하다. 어중간하고 어설프게 지식을 알고 저런 행위를 한다면 구제불구의 미련한 종자들이라 할수 있다


저 공간속 종자들은 식칼이나 다이너마이트가 허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단면만 보고는 사람을 찌르고, 폭파시켜대는 야생의 동물들일뿐이다. 그들이 입체적일수록, 역설적으로 그들의 단면성을 증거해준다. 단지 많은 지식들로 위장시켜 중심을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어놓았을뿐 그들의 본질은 야생 동물과도 똑같다. 동물은 영혼이 없고, 저 공중에 의해 지배당하는 종자들도 영혼이 없다. 그러나 동물은 이쪽도 저쪽도 다 누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저 중심이 공중에 매달려있는 존재들은 동물보다 못한것들이라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