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 날씨: 눈

제목: 으아

어제 친구들이 학교에서 교환일기를 쓰는 걸 봤다. 나도 끼워 달라고 했는데, 들은 채도 안했다. 언젠 자기가 베프 해준다더니. 거짓말쟁이.

그래서 나도 그런 거 사려고 했는데, 가게에 그렇게 쓸 만 한 건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거라도 샀다.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이런 일기장은 친구들이 무시해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버리기엔 아깝고.. 하여튼! 그래서 쓰는 거다.

일기장 표지의 이름 칸에는 사촌 동생 이름을 써넣었다. 히히

 

 

12/5 날씨: 많은 눈

제목: 무서워

친구들이 그러던데, 옆 구역에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거에 감염되면 몸을 조종당한다고 한다. 그러고선 남자들은 자폭병으로 훈련받고 여자들은 창녀로 키운다고 한다. 그래서 나처럼 못생긴 애는 어떻게 되냐고 하니까, 난 곱게 생겨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너무 걱정되는데..?

근데 그 소문 덕에 오늘은 오전수업으로 끝났다. 무서운데 즐겁다. 응?

 

 

12/10 날씨: 은근 맑음

제목:

이거 격자 맞추기 되게 어렵다. 그냥 무시해야지

친구들이 아까 낮에 놀자고 불렀다. 따라 나가서 실컷 놀다가 왔다. 진짜 그거밖에 안했다. 근데 아까 광장에서 같이 수다 떠는데 군인들이 와서 천막을 차리고 있었다. 군인들이 하나같이 일하기 싫은 얼굴을 해서 우리끼리 엄청 킥킥거렸다. 다시 생각해도 웃겨 ㅋㅋ

군인들이 일하는 걸 보다가, 하영이가 그 중에 한명한테 반해버렸다. 그거 구경하는 내내 조용히만 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그 남자 얘기만 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잘생겼긴 했다.

 

 

12/12 날씨: 애매

제목: 많은 눈

행정부에서 여군을 모은다고 했다. 우리 나이쯤 학생도 지원할 수 있다고 했고, 지원하면 돈도 많이, 꼬박꼬박 주고 깨끗한 데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했다. 올해 초부터 남자애들만 주구장창 데려가더니 (내 남친도!! ㅠㅠ) 그게 부족해서 여자애들도 부려먹는다고 했다. 근데, 친구들이 거기 가는 게 여고에서 지내는 거보단 훨 낫다고 했다. 진짜 그럴 거 같다. 나도 오랜만에 남자 좀 보고 살고 싶다. 공부도 하기 싫고, 음, 하여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조금 생각해 봤는데, 군대면 엄청 굴리는 거 아닌가? 저번에 텔레비전에서 여기 앞 군대가 나왔는데, 남자들이 모두 온종일 훈련만 하고 있었다. 땀 냄새도 엄청날 거 같은데.. 근데 친구들은 괜찮을 거라고 한다. 어차피 여군은 따로 재울 거고, 일단 남자보단 대우도 좋을 거라고.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12/14 날씨:

제목: 동생

동생이 집에 오자마자 입던 군복을 획 벗어던지고선 말 한마디도 없이 방에 들어갔다. 그러고선 나오지 않았다. 문에 귀를 대봤는데 뭘 적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보고서 같은걸 쓰나보다.

그 뒤로 동생은 밥 먹을 때 한 번, 화장실 갈 때 두 번 빼고 방에 처박혀 있었다. 그 나와 있는 시간조차도 나한테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제도 그저께도 이랬다. 전엔 일에서 돌아오면 엄청 해맑게 인사했는데.

뭔가 되게 짜증이 나있던 표정이었다. 내가 시험공부 하느라 말을 안 걸어줘서 삐졌나보다. 귀여운 것 ㅋㅋ

 

 

12/15 날씨: 눈 안 내림

제목: 나도

그 때 친구들 말에 넘어가서 같이 신청하는 데로 갔다. 근데 보니까 그때 군인들이 설치하던 천막 이였다. 신청하는 동안 하영이가 그때 그 군인 보고 소리 지르는 거 막느라 힘들었다.

여군에 신청하려면 어떤 종이에 이름 연락처 주소 그런 거만 써 내면 됐다. 진짜 5분 만에 다 끝났다. 근데 다 쓴 걸 군인들이 검사해서 장난은 못 쳤다. 내 옆에 사람이 그러다가 군인 한 명한테 엄청 혼났다.

신청서에는 부모님 정보? 도 쓰라고 되어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면 어떡해요 하고 물어보려 했는데 친구들 때문에 안했다. 그래서 둘 다 살아계시는 척 하고 모두 적었다.

친구들이랑 그렇게 짧게 만나고 나서 집에 왔다. 은근 허무한 느낌이 든다...

 

 

12/17 날씨: 맑음

제목: 친구

오늘 학교가 끝나고, 그 때 여군에 같이 신청한 애들 셋이서 모였다. 근데 다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 얼굴이었다.

광장 벤치에 앉아서 두 시간동안 수다만 떨었다. 그 얘길 다 하고서 든 생각은.. 모르겠다. 걔들이 한 말을 간단하게 하면, 생각해보니까 나중에 너무 빡쎄서 후회할 거 같다 는 얘기였다. 솔직히 같은 생각이긴 한데, 쬐~~끔 다르다. 나는 더 잘 살려고 신청한 거고, 걔들은 재밌어 보인다고 날 따라온 거였는데. 그래도 걔들이랑 같이 있으면 군대에서도 재밌을 거 같다. 마지막엔 파이팅 하나 외치고선 헤어졌다.

 

 

12/19 날씨:

제목: 어이없어

오늘 모르는 전화번호로 메시지가 왔는데, 보니까 행정부였다. 메시지에는 신청한 사람들은 모두 이 앞 군대로 잠깐 오라고 쓰여 있었다. 시험도 끝났는데 학교 뺄 이유가 생겨서 좋았다.

나가보니까 그 때 같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셋이서 군대로 갔다. 근데 도착하니까 군인들이 주르륵 서서 우릴 보고 있었다. 그 군인들이 가라는 데로 가서 막 신체검사 같은 거 하다가, 나중에는 힘든 운동을 막 시켰다. 마지막엔 가짜 총을 줘서 쏘는 법 같은걸 알려줬는데, 총이 엄청 무거웠다. 군인들이 진짜 총은 그거보다 더 무겁다고 했다. 여군에 신청한 게 후회된다. 그래도 그 때 들은 혜택을 생각해보니까 참을 만 했던 거 같았다. 정말 그 정도 혜택이면 몇 년 동안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듯싶다. 동생도 이제 맘껏 볼 수 있을 거고..

힘내자 힘!

 

 

12/28 날씨: 추움

제목: ?

일주일 동안 군대에서 우릴 불러대더니, 이젠 시험을 보라고 했다. 근데 되게 쉬웠다. 여자라고 봐주는 건가??

친구들은 나랑 다른 데서 시험을 봤는데, 밤이 돼서 시험이 끝나고 만나니까 다들 엄청 헉헉대고 있었다. 모두 자기들이 떨어질 거라고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저번 주에 기말고사가 끝나서 떨어져도 노니까..

근데 동생이 걱정돼서 여군에 지원한거라곤 말을 못했다. 더욱이 붙으면 내가 살던 집은 팔 거라곤 더더욱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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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랑 형식이 바뀌는 건 의도한 거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긴장 후하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