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구멍에서 피와 오물이 새어 춤추듯 쓰러지는 너를 상상한다. 춤을 춘다. 참혹하고 가련하게 으스러진다. 귀로에서 본 큰 쥐는 발톱을 까먹고 있었고 나는 구토를 하기 마련이었다. 오, 댄스. 팔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라. 오, 너는 꽤나 춤꾼이구나.

 

 위트가 천재의 특권이었던가? 절도했다. 팔을 힘차게 저어라. 백-스탭. 흰 백이 너를 어지럽게? 그것은 단순한 멀미일 뿐이다. 계속 해서 점프-, 스탭- 셋 하나는 두번째로 작고 첫번째로 작은 소수이다. 전번에 윗집 스무살 난 아리따운 따님이 실종되셨다. 관심도 없다. 어쨋든 롱ㅡ 스탭. 그녀의 어머니는 울다가 다섯 번 절도하셨다. 약 사십 사 도 정도로 스윙. 정말 거지같이(혹은 제 멋대로) 추는군. 좋다. 스윙 스탭 점프 턴. 단, 우리는 별나지 않다.

 

 그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새끼가 내가 사는 이곳 B시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희열했다. 글쎄, 찢어죽이는 것보다도 더 한 일은 잘 몰랐으나 그 개자식이 내 손 안에 들어온다면 그것도 나름 만족할만한 일이었다. 그 개새끼, 돈을 갚지 않은게 오늘로 947일이다. 

 정보(유명한 SNS의 아주 유명한 페이지가 있는데 이 페이지는 누군가가 찾는 사람을 언급하면 페이지를 구독한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준다. 나는 그 곳에서 그 녀석의 사진과 출신학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던 곳을 언급했고, 협조심 넘치는 B시의 페이지 구독자들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 녀석의 정보를 넘겨주었다.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 제보자는 관리자에 의해서 문화상품권 만원을 받았을 것이다.)는 객관적이고 정확했다.

 

 제보자가 올린 것은 틀림없이 그 녀석의 사진이었다. 나와 함께 할 적과는 달리 그는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기름칠까지 한 모습이었다. 그 정장 입을 돈이면 내 돈을 갚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텐데. 또 손목의 시계는 무엇인가? 내 돈을 갚고도 충분한 돈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R사의 시계가 사진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사진의 배경은 우리가 자주 향하던 피시방이었다. 우리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그곳에서 만나서 밤 늦게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주변인이 손가락질 하기 딱 좋은, 우리는 그런 일상을 살았다.

 항상 때와 같이 게임을 끝내고 근처의 편의점에서 츄파 - 츕스를 사먹으며 별 실 없는 이야기를  하고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멀뚱히 그 녀석을 바라봤고, 그 녀석도 그랬다. 내가 사탕을 으드득 하고 깨부순 순간 녀석이 말했다.

 

 "일은 언제 구할꺼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내가 호쾌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웃을 때 크게 웃는다. 입도 아귀처럼 찢어서 웃는다. 허허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나는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녀석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아까부터 통 웃지를 않는다. 간지럽고 그래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녀석은 담배 꽁초를 바닥에 5번 정도 버리고 나서야 손을 흔들며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은 나도 특이하게도 곧장 집으로 가질 않고 도로 피시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컴퓨터는 켰는데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우두커니 앉아서 멈춘 모니터를

 

 응시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관두는 것이 좋겠다. 도무지 말이 나오질 않으니 재미가 없다. 방금 페이지 관리자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그녀석이 어제 '돼중탕' 이라는 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시켜 먹었으니 당장 가서 추적해보라는 메시지였다. 그 녀석 잔인해진 것이다. '돼중탕' 이라니 살생행위를 피해자에게 전가시킨 그런 찝찝한 곳에서 밥을 먹다니, 아주 어른이 된 것이다. 

 나는 흰색 모자를 깊게 눈이 보이지 않도록 눌러쓰고 국밥집 문을 열었다. 쨍그랑 하고 울리는 문 위에 달린 종소리가 60년대 서부영화를 방불케 하는 비장한 고음을 울렸다.

 

 늦가을 찬 바람을 등에 지고 가게를 빙 둘러보았지만 녀석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정장을 입은 몇몇의 얼굴을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 자식은 볼 수 없었다. 그냥 나가기도 그렇고 마침 배도 고팠던 나는 그 곳에서 돼지 국밥을 시키려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파전을 시켰다. 막걸리는 시키지 않았다. 대신 물을 마셨다.

 후르릅, 쩝쩝 나를 사이에 둔 양 테이블은 모두 돼지 국밥을 시킨 직장인 둘이었다. 그 뜨겁고 기름지고 짭짤한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데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나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흰색과 흑색의 데칼코마니 같은 두 중년 회사원이 서로 맞춘 것처럼 동시에 국물을 삼키고 국에 말은 밥을 우적거렸다.

 

 결국 나는 파전도 다 먹지 못하고 그 국밥집에서 나왔다. 사장으로 보이는 오십대 여자가 나에게

 "학생 왜 다 안드셔? 입에 안 맞아?"

라고 넉살 좋게 물었으나 나는 이런 겉치례에 대답할 정도의 숫기도 갖지 못한 사람인지라 돈만 스윽 내고 가게에서 나와버렸다. 그 여자가 내 뒷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전화가 왔다.

 

 J! 그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는 일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나와 삼겹살을 구워주는 좋은 친구이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삼겹살 한 조각을 잘라 밥 위에 올려주는 그가 이제 내 마지막 하나 남은 친구였다.

 

나는 기분 좋게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너 지금 어디야!"

 

 그의 목소리가 급박하게 흔들렸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지 바람소리와 발 쿵쿵대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려퍼졌다.

 

 "어 나 돼중탕 인데 무슨 일이야?"

 

  겨울의 해는 짧았다. 다섯시가 조금 넘었는데 상가의 네온사인들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거리는 완전히 어둠을 끌어안고 찬란히 빛났다. 거리의 빛 중에서도 '아가씨 항시 대기' 이 문구가 쓰여진 간판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씨발 지금 좆 됐다니까? 빨리 거기서 나와!"

 

 "뭔데 갑자기?"

 

 "잔말 말고 빨리! 나 그 근처거든? 백화점 보이지 그 백화점 후문으로 당장 튀어. 진짜 좆되기 싫으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번화가라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내가 '좆'될만한 사고가 일어날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못하게끔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의 거리였다. 글쎄, 설마. 하는 생각으로 나는 천천히 백화점 쪽으로 걸었다. 걸어서 5분도 안 걸릴 거리라서 딱히 뛰지 않아도 그가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예상대로 거리는 나를 '좆'될만한 상황을 내어주지 않았고 나는 나라는 모습 그대로 J를 만날 수 있었다. 근 일년만에 본 J는 헬쑥해진 모습이었다. 양볼이 움푹 파인 정도가 조만간 볼끼리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눈에 그늘이 선한데도 그는 밝게 나를 맞아주었다. 역시 그는 내친구였다.

 

 "야 너 오늘만 나랑 같이있자."

 

 "왜?"

 

"너 페이스북에 제보글 올린 적 있지."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잽싸게 그 건강치 못한 면상을 내 얼굴에 밀착시켰다. 입가에 묻은 허연 치약자국이 마치 구토 자국처럼 보였다. 지나치게 병약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차라리 후자가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그러나 입에서 나는 냄새는 치약 냄새가 확실했다.

 

 "야 이 미친새끼야. 그 새끼가 반대로 널 찾고 있었어 나한테 전화가 왔었다니까?"

 

 "참나 그 새끼가 뭐라고 하디?"

 

 "몰라,하여튼 널 찾는데. 그 게시물 본게 틀림 없다니까?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라 반갑다. 새끼, 밥 좀 먹고 다니라니까. 안되겠다 밥먹으러 가자."

 

 그는 내 손목을 붙잡고 근처 삼겹살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뿌리치며 그의 손을 밀어내는 척 할 뿐 발은 질질 끌려 가게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특히 삼겹살을 구울 때의 향기를 좋아한다. 사람끼리 마주 앉아 맛있는 고기가 익는 맛있는 향기를 맡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먹을 때에는 먹는 데에 집중하느라 하지 못한다. 먹은 후에는 사장에게 눈치가 보여 오래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고기를 구울 때 딱 그 때가 좋다.

 

 고기를 한점씩 집어 먹으며 한 옛날 이야기와  마신 소주 탓에 우리 자리의 데시벨 수치가 높아져가는 때 마침 이를 저지하는 듯한 전화가 J에게 왔다. 꽤나 길게 통화를 했는데, 그를 기다리면서 고기를 먹다보니 이미 내 배는 한계치를 넘어선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돌아왔을 때 나는 물도 억지로 넘겨야만 하는 상태였다. 이런 내 상황은 생각도 하지 않는 그는 취기가 벌겋게 올라온 면상으로 횡설수설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 밑밥을 깔아보았으나 한 남자의 등장으로 계획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남자는 자신이 J의 대학 친구라고 소개했다. 심하게 취한 그를 부축하러 왔다고 말했다.

 

 "혀 형씨는 돼 돼지고기 안 드십니까? 히히히."

 

 동그란 안경을 쉴 틈없이 고쳐쓰는 그는 틱 장애가 확실해보였다. 의도 자체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으나 나는 그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아니 짜증났다. 말을 더듬는 것도 간사하게 들리는 웃음 소리도 내 신경을 박박 긁어놓는 것들 뿐이었다.

 

 그는 고기를 구워 내 앞접시에 가져다놨다. 중간중간 보이는 탄 부분에 시선이 갔다.

 

 "드, 드세요. 계산도 제가 하겠습니다. 히히히."

 

 왜? 그는 무엇이 웃겨서 자꾸 웃는거지? 그는 내 뇌를 쿡쿡 찌르는 듯 고통스러운 행동을 계속 되풀이했다. 탄 고기를 쉬지도 않고 내 앞접시에 가져다놓고 잘 익은 고기는 제 앞접시에 가져다놓는 꼴을 보려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그그 형씨는 무.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히히히히."

 

 나는 술에 절어 술상을 베개 삼아 잠드는 J를 확인하고 답했다.

 

 "그냥 회사 다녀요."

 

비굴한 거짓말에 씁쓸함을 느낀 나는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켰다. 알코올이 꼭 썩은 약냄새처럼 느껴졌다. 술을 다 넘기고 J의 친구라는 사람을 본 순간 나는 놀라서 뒤뚱거리는 의자때문에 뒤통수가 깨질 뻔 했다. 그는 입을 꾹 닫고 맨홀 구멍처럼 크게 뚫린 동공을 나에게 향했다. 미동도 없었다. 

 

 깨닫고 본 그의 눈은 비정상적으로 컸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처럼 크게 뚫린 눈이었다.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광대는 왜 저렇게 큰거지? 아니 말라서 저렇게 보이는건가? 도무지 살아있는 느낌이 없는 자였다.

 

 "진짜?"

 

 손뼉을 탁 치며. 그러더니 그는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붙잡은 술잔이 찰랑찰랑 날뛰었다. 

"아하하하하하!"

 

 이제는 폭발하려고 하는 내가 상 위를 세게 보다는 조금 약하게 치자 그는 웃음을 멈췄다. 그의 눈이 사뭇 진지해지자 나는 떠올렸다. 나는 호쾌한 사람이었다. 눈웃음을 길게 찢었다.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만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그는 사뭇 진지한 느낌 그대로였다. 그야말로 나에게 맞춰주지를 않으려했다. 입은 억지웃음을 머금은 모양으로 변했으나 나는 그것에도 상처받는 놈이라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그를 꾀어낼 호쾌한 아니 호탕한이었나? 아무튼 그런 수작을 꾀하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사람이 들어오라고 난리예요.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밥값은 제가 낼게요. 히."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는 그에게서 나는 보고말았다. 나는 볼 수밖에 없었다. 승자와 패자를 구분짓는 옅고 날카로운 비웃음이 반짝 내 위를 스쳤다. 지갑을 꺼내봤다. 보라색 카드를 꺼내어 쥐어봤다. 만든지는 꽤 됐는데 새 것 그대로의 깨끗한 상태였다. 고깃값을 낼 정도는 들어있을 터였다. 내 돈… 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받은 돈이니까. 나는 호쾌, 호탕, 호색은 아닌 그런 사람이라 고깃값을 내고 싶다 어쩌지? 아 어쩌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계산대 앞에 와 있었다. 카드를 줄까? 말까? 할 생각은 J의 친구라는 그 놈이 화장실을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의미가 없었다. 일단 카드를 내밀긴 했는데 내 손에는 빨판이라도 붙었는지 카드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 양반아 지금 뭐 하자는거요?"

 

"저도 잘…"

 

 사장의 대머리에 핏발이 섰다.

 

"장난 그만 치라니까요!"

 

 팔뚝이 꼭 소나무 같은 고깃집 사장이 양 손을 써서 잡아당기자 내 팔은 약 3미터 늘어났다가 그가 손을 놓자 스멀스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게의 똑같이 생긴 손님들(근처에 장례식이라도 있었는지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검은 정장에 흰 셔츠 차림이었다.)은 아주 잠깐 그리고 동시에 이 쪽에 시선을 힐끗 하더니 다시 삼겹살에 집중했다. 꼭 직어낸 것처럼 왼손에는 집게 오른손에는 가위를 쥔 모양이었다. 나는 어느쪽이던 그 영문을 몰랐다.

 

동시에 사장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일, 일, 그래 구를 누르겠지 팔이 이렇게 늘어나다니 중상이잖아? 아니었다. 그는 칠을 눌렀다. 일 일 칠.

 

"경찰서죠? 강도입니다. 네 강도요!"

 

 그 순간 누군가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그 전화기를 뺏어 가게 밖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전화기는 아스팔트에서 통 통 튀다가 지나가던 승용차에 의해 쥐포가 됐다. 나와 사장은 입을 떡 벌린 채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바로 J의 선배였다.

 

"안, 안됩니다. 경찰은 안됩니다. 히히."

 

 "알았으니까 빨리 누가 계산 좀 하시라고요. 뒷사람들 기다리잖아요."

 

 그 말마따나 어느새 나와 선배 뒤로 검은 정장들이 일렬로 쭉 서있었다. 그것들은 피아노 건반처럼 가지런했다.


미묘하게 똑같은 얼굴들이 차례차례 내 시선을 스쳤다. 네모 반듯이 각진 정장들의 어깨 매무새는 숨이 막혔다. 비열하게 웃는 J의 친구의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고기 타는 냄새와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게를 가득 메웠다. 사장의 짜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졌다.

 

 내 손에는 빨판이 있어서 카드를 놓지 못했다. J의 친구가 꼴을 보며 미친듯이 웃었다. 뇌 기능을 상실시키는 강력한 음파였다. 그것엔 어떠한 과학적 원리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내 손에는 빨판이 여전했다. 손가락은 다섯개나 있었다. 아아 그 손 밑의 주름 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J의 친구가 날뛰었다. 계산대 위를 스테이지 삼아 강렬한 춤을 추었다. 아니 강렬과 동시에 광적이기도 했다. 그의 손에는 빨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드가 꼭 손에 붙어 양 옆으로 위 아래로 흔들렸다. 흰색 신발이 대리석 위를 삑삑 미끄러졌다. 종국에는 발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다리가 여러개로 보였다. 다리가 셋, 넷, 아니 여덟이었다.

 

 이 미친 댄스를 중지시킨 것은 일렬로 서 있던 정장들 중 하나였다. 정장인 동시에 그는 내가 찾던 그 개자식이었다.

 

 "그만! 그만! 밥 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춤을 멈춰주세요."

 

 나는 곧장 달려가 그 자식의 멱살을 잡고 뒹굴었다.

 

 "이 개새끼야 내 돈 내놔 내 돈!"

 

 그리고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 갖은 욕을 쏟아붓고 저주했다. 그 자식은 아무 말도 아무 짓도 하지않았다. 망연자실한 듯이 맞고만 있었다. 그를 때리는 내손이 점점 느려질 때 그의 손이 올라왔다. 그 손세 들린 노란 지폐 한 장, 나는 멈췄다.

 

 "원래는 만 원이었는데 남은건 이자까지야."

 

  J의 친구가 물었다.

 

 "저희가 거집니까?"

 

 그 자식은 옅게 그리고 씁쓸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그리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니요 당신들은 아직 부자입니다."

 

 가게에 있던 손님들이 하나씩 하나씩 똑같이 생긴 검은 가방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왼손엔 가방 오른손엔 핸드폰을 들고서 왼발 오른발 발맞춰 걸어나갔다. 그 자식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지나고나서는 그가 어느 줄에 있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오만원을 들고 그 피씨방을 찾아갔다. 오천원을 넣고 따로 라면을 시켰다. 나는 그곳에서만큼은 일반적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