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경기가 열릴 때에는 항상 많은 관중들이 자리잡던 경기장.


하지만 이번에는 열기의 차원이 달랐다. 


단순한 운동경기를 수준을 넘은, 한국 최초의 프로 스포츠 리그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이 시간부로, 한국프로야구 1982년 한국야구선수권대회 개회를 선언합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앞으로 열릴 승부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참이었다.


환호성을 뒤로 하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경기장을 나섰다.


실업야구에서 뛰다 군대에 다녀온 뒤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 박시용은 푸념 섞인 잡담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 참. 이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밖에서 지켜봐야만 하다니. 우린 뭐 경기 보면 안 되는 건가?"


"훈련해야지, 훈련. 우리 슬로건이 뭐여? '야구를 통해 호남인의 긍지를 심자'잖어?


우리 팀 선수 수가 끽해야 십 몇 명밖에 안 되는데 다른 팀이랑 똑같이 훈련해서야 뭐 따라잡을 수 있겠어?


인제 우리가 겁나게 잘해야 호남인들이 좋아하고 뭐 그럴 거 아니여?"


확실히 그랬다. 해태 선수층은 삼미보다는 나았지만, 선수 수가 부족하여 15명으로 창단식을 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저~어기 상현이는 투수랑 타자를 같이 하겠다고 자원했을 정도니 말 다했졔. 내 말이 틀리나?"


"에잉... 그래 훈련 하면 될 거 아니겠어?"


동료의 타박에 못 이긴 시용은 마지못해 구단 버스를 타고 훈련장으로 향한다.


시용은 버스 안에서 동료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선수 수는 왜 이렇게 적은 걸까... 호남 지역에 야구한다는 사람이 그리 없나?'


그래도 위안을 삼는 건 자신의 동료가 될 사람들의 경력이 타 팀에 뒤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업야구 최고의 스타 중 한명으로, 시용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구병우는 말할 필요도 없었으며,


강상현, 김정문, 강재후, 김영길 등의 선수들은 국가대표에 승선한 적이 있을 정도니.


이에 비하면 시용 본인의 경력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으로 입학한 후에


1년 뛰어 간신히 3할 언저리를 기록하고 중퇴해 군대를 간 것이 전부였다.


'내가 미쳤지. 생각해보니 다 쟁쟁한 사람들인데 이러면 나만 쩌리잖아?


열심히 안 하면 진짜 방출되어 나가리되는 거 아니야?'


시용은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동료가 신문 기사에 실린 개막전 내용을 알려주는 것도 듣는 둥 마는 둥 바로 뛰어가서 훈련을 시작했다.

 

"야! 박시용! 니 경기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이거 참말로 명승부였다고!"

 

"아, 미안. 훈련해야 한다. 나중에 듣자고 나중에."

 

"아따, 쟤는 훈련 하자 할 때는 경기를 보려 하고 경기 기사를 보자고 할 때에는 훈련을 하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구만, 왜 그러나?"

 

김병도 감독이 직접 훈련장에 나타났다.

 

"아, 감독님 오셨습니까! 모두 집합!"

 

주장의 부름으로 모든 선수들이 감독 앞에서 일렬로 모여 섰다.

 

"그래, 앞으로 이곳이 너희들이 훈련하게 될 훈련장이다. 열심히 훈련하여 전기리그의 우승을 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알겠나?"

 

"넵!"

 

"사실 시설은 타 구단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의 노력과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땡땡이 칠 생각을 하다가는 이 구단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각오는 되어 있나?"

 

"알겠습니다!"

 

"좋아, 이제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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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스태프들의 지도 끝에 첫 훈련이 끝났다.

 

시용은 매우 지친 기색이었다.

 

대학 시절에 겪었던 훈련보다도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역시 프로야구는 다르구나.'

 

시용은 곧 치뤄질 해태의 첫 경기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