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어 슬슬 출출해질 쯤이었다. 심리상담사인 나는 상담실에 갇혀있어서 더욱 배가 고팠다.

 

- 김 비서, 저녁으로 뭐 먹을까?

 

- 벌써요? 저번에 먹었던 보쌈으로 해요.

 

 카운터에 있던 김 비서가 문서를 뒤적이며 말했다. 

 

- 그런데요 선생님, 아직 한 분 남았어요. 부부 관계 상담 이라네요. 10분 뒤니깐 대기해주세요.

 

 한 명이 더 있다니!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상담실로 가서 상담용 소파에 앉아 혼잣말로 불만을 투덜거렸다.

 

 어느덧 10분에 지났다. 그런데도 상담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 김 비서, 상담자한테 전화해서 왜 안오는지 물어봐.

 

- 이미 걸어봤는데, 지금 오고 있다네요.

 

 젠장. 난 이렇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제일 싫다. 

 

- 죄송합니다!!!

 

 어느 아줌마가 갑자기 상담실로 들이닥쳤다. 머리는 땀이 흐르고 있었고, 그 아줌마는 핸드백에서 휴지를 꺼내 땀을 닦았다. 

 

- 죄송해요, 제가 늦었죠?

 

- 아닙니다. 그럼 상담 시작하실까요?

 

  나는 애써 웃으며 그 아줌마와의 상담을 시작했다. 그 아줌마는 핸드백에서 돌돌말린 종이를 꺼내 내게 보여줬다.

 

- 이거, 저희 아이가 그린건데요,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아줌마가 보여준 그림은 매우 섬뜩했다. 색은 검은색, 빨간색 밖에 없었고, 선 마저도 거칠었다. 게다가 무엇을 묘사한 건지도 모르게 일그러져 있었다. 

 

- 흐음.. 원래 이런 그림을 자주 그리나요?

 

- 네! 사인펜으로 집에서 맨날 이런 것만 그린다니깐요?

 

 아줌마가 새로운 그림을 보여줬다. 색선택은 똑같았지만, 이번엔 어항 그림임을 잘 알 수 있었다. 

 

- 여기 물고기 3마리 보이시나요?

 

- 네, 네 보이네요.

 

- 이 물고기들은 각각의 인물을 특정합니다. 위의 두 물고기는 건강하고 무섭고... 빨갛군요. 반면에 아래의 물고기는 하얀 물고기인데, 배에서 빨간 무언가가 새어나오네요.

 

- 그렇군요.

 

 이 여자, 미친건가? 이 정도 말했으면 '내 아이가 힘들구나' 라고 할 법한데, 그렇군요 라니? 아이에 무관심한건가? 

 

- 자녀분이 외동이시죠?

 

- 와! 어떻게 아셨죠?

 

- 아까 말했듯이, 각 물고기는 특정 인물을 대표합니다. 위의 두 물고기는 부모님, 아래 물고기 하나는 자녀분을 대표하는 것이겠네요. 자녀분 물고기가 조금 이상합니다만, 뭔가 자녀 분을 다치게 하신 적 있으신가요? 

 

- 그것 보다, 이게 자신을 다치게 했다는 것을 알리는 건가요?

 

 수상하다. 왜 저런걸 궁금해하지? 한번 떠보자.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속 썩일 골칫거리가 사라져서 다행이네요.

 

- 호호, 그러게요. 정말 행동 하나하나가 역겨웠었는데, 제대로 처리해서 다행이에요.

 

- 하하하

 

- 호호호.... 

 

 그녀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이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러고서는 동태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뭐하냐?

 

- 사인펜으로 그린 그림이 아직 마르지 않았네요. 오늘 아침까지는 무사했겠죠.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 오늘, 왜 상담 주제가 바뀐거죠? 왜 오늘 늦으신거죠?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그녀를 계속 쳐다보았다.

 

- 아이를 때리던 중에, 뭔가 변수가 생긴거죠?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문앞으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멈춰섰다.

 

- 너네 딸, 예쁘더라?

 

  소름이 돋았다. 맞다. 나는 가족이 있다. 이 여자를 더 위협하다가는... 내 가족이 위험하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상담실을 나섰다. 나는 한참을 의자에서 고뇌하다가 이내 실 없이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