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시절 때, 한 여자애와 친해진 적이 있다. 검은 생머리에 고운 입술을 앙다문 채 공원 벤치에서 다소곳이 책을 읽는 모습의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어느새 엄청 친해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있던 그녀에게 말을 걸 때마다 그녀는 항상 자기가 읽고 읽던 책을 흥분해서 소개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한참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몸이 닿거나 얼굴이 가까워지면 둘 다 깜짝 놀라서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어느 가을날, 낙엽이 그녀의 머리에 떨어졌다. 오늘도 공원에 그녀를 만나러 간 나는 무심코 그 낙엽을 머리에서 떼어주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 아, 아니 별건 아니고, 낙엽이 머리에 떨어져서..

 

- 그, 그렇구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계속 책을 읽었다. 책이 잘 넘어가지 않는 걸 보니 내 행동이 신경쓰여서 책이 읽히지 않는 듯 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 저기, 글의 어떤 점이 제일 좋아?

 

 내가 정적을 깨자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 으, 응... 글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 그래서 나를 더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

 

 그녀가 자기가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귀가 더 빨개졌다. 거친 가을 바람이 우리를 감쌌다. 

 

- 날이 춥네.

 

- 응... 

 

 그녀는 계속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갑자기 바로 앉아서 나를 쳐다보았다.

 

- 저기! 나...

 

 그녀도 자기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자각했는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 나...

 

 무슨 말을 할려는지, 알 것 같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줄곧 하려고 했던 말, 만날 때마다 말하기로 다짐했던 말, 하지만 매번 전하지 못한 말. 그 말을 그녀에게 듣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엄청난 행복이었다.

 

- 잠, 잠시만 기다려줘...!

 

 그녀가 주머니에서 포스트잇과 볼펜을 꺼내 뭐라 적었다. 그런 다음 내게 포스트잇을 전해주고는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녀의 글을 읽자, 내 마음이 가을의 거친 바람 속에서 따듯해졌다.

 

 글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