ー활짝 갠 하늘 아래, 스바루는 내리붓는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다. 그것은 이제 힘껏 기합을 넣은 울음소리로, 작은 몸을 멋대로 이용해 전력으로 울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 전부를 그렇게 전령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자니, 어린애라는 건 어째서 저렇게나 기운이 넘치는 걸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생각한 순간에, 그것이 너무나도 늙은이 같은 사고라는 것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옛날부터 뭔가 자신이 노성해 있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의식적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깨달으니 슬프네. 아직 팔팔한 영맨일 건데 말이야."

"뭐가 팔팔하다는 거야. 조금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거냐, 어이."

아직 현역, 이라며 자신의 텅 빈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스바루에게 옆에서 욕이 날아든다. 귀에 익은 악담에 한숨을 흘리며, 스바루는 천천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의자에 앉는 스바루의 옆에서, 앉은 스바루와 시선 높이가 같은 위치의 소년이 있었다. 스바루의 말 없는 주시에 소년은 부루퉁해하며, "그것보다" 라고 말을 이으며,

"저기 빽빽거리면서 울고 있는 스피카 좀 어떻게 해 봐. 정말이지 어쩔 줄 모르겠다고."

"난 이제 무리야. 순수한 마음이 매정한 한 마디에 부서져서는 너덜너덜하다고. 이제 나도 스피카 처럼 동심으로 돌아가서 울부짖을 거야. 못 써먹을 날 용서해 줘."

"천하의 왕래에서 다 큰 어른이 그런 상태면 용서 못 한다고?!"

스바루의 어른답지 못한 토라짐에, 소년은 과장스럽게 몸을 흔들며 힘차게 추궁한다. 그러자, 그 거동에 스바루의 품에 안겨진 갓난아기ー 스피카라고 불린 소녀가 숨을 들이쉬고, 남자 두 사람의 "아" 와 "어" 라는 무의미한 한 마디 후, 감정이 폭발한다.

"으아ー앙!!"

"으아아! 울었다! 스피카가 울었다! 어이 이봐 리겔, 네 녀석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오빠잖아!"

"그렇게 말하면 네 쪽이 훨씬 어떻게든 못하면 안 되는 거다만!"

왕래가 많은 거리, 그 큰 거리의 일각에서, 남자 둘이서 갓난아기를 안고 빙글빙글 돌리며 책임을 서로 떠넘긴다.

소란스러운 세 명에 거리를 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얼굴을 들어, 분주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는「뭐야 언제나의 일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다시금 무시.

결국, 우는 여자아이와 울리는 남자 두 사람의 도식은 그대로 계속. 흐뭇함과 소란죄적인 불쾌함의 종이 한 장 차이를 그저 내달린다. 그러자,

"이렇게나 여자애가 빽빽거리며 전신전령으로 울고 있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하나 나오지 않다니...... 젠장, 어떻게 돼먹은 세상이야! 인심은 이렇게나 황폐해진 건가."

"세상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이대로 스피카의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면, 돌아왔을 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누가, 돌아온다면 인가요?"

"그런 거, 당연히......"

리겔, 이라고 스바루가 불렀던 소년이 팔짱을 끼고는, 수긍하며 돌아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놀라서 굳고, 멍하니 입이 커진다. 리겔의 시선을 좇아 스바루도 같은 인물을 시계에 넣고는 "오" 하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장보기, 끝난 거야?"

"네, 막힘없이. ......당신 쪽은 큰일인 것 같아 보이네요."

"이야, 스피카 완전 건강하네. 이거 나중에 걸을 수 있게 되면 남자를 휘두르고 다닐 타입으로 자랄 것 같아. 악녀계의 장래성이 있다니, 나 완전 두근거려!"

그런 말을 하는 스바루의 품 안, 스피카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살며시 열어, 정면에 서 있는 여성을 알아채고는 그 단풍잎과도 같은 자그마한 손을 펼쳐, 팔을 뻗는다. 아직 상반신의 힘이 부족할 텐데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는 모습에, 안겼을 때의 기분이 나쁘니 바꿔달라고 선고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씁쓸한 남심.

"그렇다고는 해도, 요구를 무시하고 울려도 도로아미타불이지. 자, 맡기겠어."

"받았습니다."

말하는게 약간 거칠긴 하지만, 안은 갓난아기를 건넬 때의 스바루의 행동은 무척이나 다정하다.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는 듯한 손끝에, 받아 드는 여성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받아든 여성은 제대로 스피카를 가슴에 안아 들어, 그 몸을 가볍게 흔들며,

"네, 못 써먹을 아빠랑 오빠네요. 스피카도 얼른 커서, 두 사람을 꾸짖어주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어이어이, 말도 이해 못 하는데 그런 각인은 그만두라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발언한 후, 허리에 손을 올리고 흥흥거리며 화내는 두 사람에 끼일 자신을 떠올린다. 리겔과 함께 꾸짖음을 당할 그 광경은,

"어라, 뭔가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너무나도 행복한 미래상이라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가 될지도 몰라."

"난 싫어. 여동생한테 혼나다니, 오빠 체면 완전 구기잖아."

"나랑 같이 허둥대는 시점에서 이미 그런 건 완전히 구겨졌다고. 보여, 보인다고...... 여동생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응석받이로 키우고는, 완전히 휘둘러지는 네놈의 미래가."

손가락을 복잡괴기로 움직이며 부채질하는 스바루에, 한껏 핏대를 세운 리겔이 반론. 하지만, 그 리겔의 노성에 눈썹을 찌푸린 것은 스바루가 아니다.

두 사람의 만담을 흐뭇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을 터인, 푸른 머리의 여성이다. 그녀는 온화하게,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리겔" 이라고 소년의 이름을 불러,

"아까부터 밖에서 말하는 게 그게 뭔가요. 눈꼴 사나워요."

"읏,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도 그래도도 이 엄마는 싫답니다. 거기다, 아까 했던 말도 틀렸다구요."

우물거리는 리겔을 가차없이 꾸짖고, 그녀는 품 안에서 얌전해진 스피카에게 흐뭇한 표정을 보이며,

"엄마는 아빠를 휘두르거나 하지 않아요. 아빠는 언제라도, 이 엄마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니깐요."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천하의 왕래에서 울부짖는 것보다도 부끄러운 발언.

그것을 당당하게 단언하는 모친의 앞에서, 리겔은 이번에야말로 똑똑히 양손을 들어 포기하는 듯한 몸짓.

근질거림과도 닮은 감각을 느끼며 스바루는 웃고, 그 가족의 모습을 행복한 듯이 지켜보는 그녀는 살짝 머리를 다듬는다.

하늘을 투영한 듯한 렘의 아름다운 긴 청발이, 산들바람에 휘날려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 * *

카라라기 지방 도시의 일각ー 공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조금 의문이 남는 광장과도 같은 장소에서, 설치된 벤치에 앉으며 스바루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

눈앞에는 짧은 청발을 곤두세우고 있던 리겔이, 친구들과 악동 연합을 만들어 뛰어다니고 있다. 부친을 대하는 말투는 글렀지만, 그런 점을 보고 있자면 귀여운 면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이다음은 저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나쁜 눈빛만 어떻게 하면 말이지."

"안 된다구요. 저 나쁜 눈빛도 포함해서 리겔이니깐 말이죠. 저렇게나 즐거운 듯이 하고 있어도, 아무리 기뻐하고 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처음 보면 기분 나쁘게 흉계를 꾸미는 듯이 보이는 얼굴. 그게 리겔이니깐요."

"듣고 있자니 말이지, 엄마가 하는 말 쪽이 훨씬 상처입는다고?!"

스바루가 가르쳐 유행시킨『얼음 귀신』에 열중하며, 귀신에게 잡혀 얼음에 절여진 상태의 리겔이 무언가 소리친다. 스바루는 거기에 적당히 손을 흔들고, 렘도 잠자는 스피카가 깨지 않을 정도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 삼백안을 불만스럽다는 듯 날카롭게 하는 리겔. 그것이 앨범 같은 데에 남아있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참 닮아 있어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깐, 저 녀석의 미래는 이렇게 될 거라는 게 이미 확정이라는 거야. 내가 저 녀석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자니 전율이 든다고...... 20년 후에 나처럼 된다는 말을 듣는다면 말이지."

"요리에 뛰어나고 가사만능. 견실하게 남편에게 헌신하고 남편을 지지하는, 이상적이고 멋진 신부와 맺어진다...... 라는 의미가 되는 게 아닌가요?"

"뭐야 그 리얼충, 폭발해버려. 아, 나였구나!"

머리에 손을 올리며 혀를 내미는 스바루에 렘은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입가에 손을 대고 목을 울리며, 그녀는 스바루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며,

"그렇게 부정 안 하고 가버리면, 렘은 우쭐해지고 만답니다?"

"칭찬에 가버리는 게 되는 건가, 지금 이 흐름. 자화자찬을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뿐인 이야기잖아? 뭐, 부정할 요소가 없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오히려, 스바루의 입에서 멋쩍음이나 사양을 완전히 배제하고 렘에 대해 말하라고 했다면, 좀 더 찬미가 난비하게 돼 곤란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패권을 다투는 오전의 공원에는, 가족 동반이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다. 일단 아내 자랑을 시작해버리고 만다면, 미주알고주알 캐물어져 내일 우물가의 이야기 화제를 독점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려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잔뜩 해를 입겠지만, 스바루는 그 부근의 것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따뜻한 단란 속으로 의식을 잠기게 한다.

눈을 감고 햇살에 몸을 맡기자니, 일광의 따스함에 몸이 붕 뜨는 듯한 착각이 생겨난다. 계속해서 밤늦게까지 자지 않던 몸이 졸음에 흘려가듯 의식을 잡아당겨져, 머리가 몹시나 무겁게 느껴져 붕붕 흔들고 만다. 그러자,

"어라."

"잠자고 싶은 거라면, 렘의 어깨에 어서. 품 안은 지금 스피카가 독점 중이니."

한쪽 눈을 떠보니, 어느새인가 바로 옆에 몸을 기대고 있던 렘의 몸이 스바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앉은키의 차가 조금 있는 두 사람. 스바루가 머리를 기울이면, 딱 그녀의 어깨에 머리가 올려지는 상태가 된다.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며, 스바루는 그녀의 품 안에서 곤히 잠자는 스피카를 본다.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흑발에,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귀여운 얼굴. 아직 세상의 일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무구하게 나날을 살아가는 사랑스런 생명.

"칫, 스피카 녀석. 사랑스런 딸이라고는 해도, 내 성역을 점령하다니 나쁜 녀석이야. 나중에 간질간질 형에 처해주겠어."

"렘의 품 안을 독점하는 건 밤까지 기다려주세요."

"지금, 여기 오전의 공원이니깐 발언에 신경 쓰라고?!"

렘의 대담발언에 스바루가 크게 상체를 돌리며 반응. 힐끗 옆얼굴을 보니, 말한 본인의 뺨이 새빨갛개져 있는 모습. 정말 뭐랄까,

"내 아내, 완전 귀여워."

"매일, 사랑받고 있기에."

스바루의 낯부끄러운 발언에 렘도 또한 낯부끄러운 발언으로 회답하고는, 두 사람이서 미소를 교환. 렘이 방긋, 스바루가 히죽 하는 의성어의 미소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조금 부끄러운지, 스바루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마음을 다잡고, "그럼, 말씀하신 대로" 하고 다시금 렘의 어깨에 머리를 올린다.

살랑살랑,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머리가 볼에 닿아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그대로 코를 킁킁거려 냄새를 맡으며, 렘의 어깨에 볼을 문지른다.

"간지럽다구요, 당신."

"아, 미안. 왠지 엄청 기분 좋아서 텐션 올라가버렸어. 스피카를 본받아서 진정하고 있어. 진정하지 못하는 건 리겔에게 맡겨두지. 우와, 리겔 어린애ー."

"듣고 있다고, 바보 아빠! 일일이 말하지 말라고!"

"리겔. 여동생이 자고 있으니,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납득 못해!"

언 상태의 리겔이 불합리함에 소리치지만, 가족 누구로부터의 옹호하는 말도 없다. 덧붙이자면 누구도 얼어 있는 리겔을 도우러 오지 않는다. 결국, 놀림당하는 포지션인 것이다.

성격이나 언동, 행동 패턴이 꽤나 자신과 닮아 있는 것치고는, 주변의 아이들에게서 왕따당하지 않는 점만은 자신보다 복 받은 걸까 하고 스바루는 생각한다. 다만, 어린애일 때는 자신도 나름대로 집단에 들어가 있었던 기분도 들기에, 리겔의 미래는 상상 이상으로 밝지 않다.

"스피카는 저렇게 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말이지. 리겔은 저렇게나 안타깝지만, 엄마를 닮은 네 미래는 밝아. 이다음은 나 같은 못 써먹을 남자에게 붙잡히지 않는 걸 기도할 뿐."

"당신의 대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요. 렘의 당신은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이랍니다."

부인의 보증을 받고는 작게 웃고, 그로부터 잠시간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메운다.

부드러운 바람이 자신을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스바루는 그렇게 렘의 체온을 피부로 느끼며 무심의 세계의 들어갈 것처럼 된다.

매일 노동에 힘쓰는 탓에 나름대로 피로가 쌓인 몸이다. 가끔의 가족 서비스 시간, 행복한 일상을 구가하고 있다. 화창한 햇살을 쬐며, 아들이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있는 것을 먼눈으로 하며, 딸을 안은 아내에게 다가붙어 자신은 선잠.

"스바루 군ー."

문득, 이름을 불려 스바루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흘끗 시선을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하니, 고개를 살짝 이쪽으로 기울이는 렘이 있다. 그녀는 투명한 푸르스름한 눈으로 스바루를 보고,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듯 입술을 떤다.

"......그 호칭."

"ーー"

"오랜만이네. 요즘 들어 계속,『당신』이나『여보』였는데 말이지."

한쪽 눈을 감으며 스바루가 입가를 누그러뜨리니, 대신 렘이 입술을 굳게 다문다.

그런 그녀의 태도는 수 년 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도망쳐 다니던 때』에는 빈번하게 하고 있던 것이다. 스바루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하고 있던 것이겠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스바루는 그녀를 보고 있었으니깐.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오늘, 이렇게 가족이서 장을 보러 가자고 한 것은 렘이었다.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왠지 모르게 짐작은 가고 있다. 어째서냐면,

"그날로부터, 오늘로 벌써 8년이네."

"알고 있던 거네요......"

"그야, 나한테 있어선...... 아니, 우리한테 있어선 대전환기의 날이잖아?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달까 잊을 수 없어. ー잊혀지지 않는다고."

운명에 굴한 날.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도망쳐왔던 날.

모든 것을 단념할 셈으로, 하지만 단 하나만은 단념하지 않았던 날.

그 날의 결단과, 그녀의 사랑ー 그것이 있었기에, 스바루는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스바루 군은......"

그리운 호칭은, 두 사람이서 카라라기로 도망쳐 온 이후로 얼마 안 있어, 그녀가 의식적으로 하지 않게 된 그것이다. 부부라는 형태를 자신들과 주위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어딘가 일부분이라도 과거와 다른 형태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던 걸 거다.

오늘 이 날까지 구태여 그것을 언급했던 일은 없었고, 렘도 또한 그 이유를 스바루에게 말하는 일은 없었다.

그 내버려두어 왔던 나날 속에 있던 호칭으로 스바루를 불러, 렘은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후회, 하고 있나요?"

"후회?"

"네. 도망쳐 왔던 것. 포기해버리고 만 것. 내던지져버리고 만 것. 렘을......"

"선택한 것, 이라던가 말하면 완전 화낼 거라고. 리겔이랑 스피카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 리겔은 역시 됐어. 놔둘래."

저편에서 리겔이 흉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스바루는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깐" 이라며 아들을 천길 아래의 골짜기로 떨어뜨리고는 모르는 체. 다시금 렘에게 돌아앉아, "저기" 하고 말을 잇는다.

"8년이나 지나서 완전 지금 와서지만, 이런 거 솔직히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말해 와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난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내 아내는 너뿐이고, 네 남자는 나뿐이야. 넌 나 같은 남자가, 타협해서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한 쉬운 여자가 아니야."

몸을 일으켜, 스바루는 손끝으로 렘의 이마를 가볍게 때린다. 이마에 손을 얹고 놀란 듯한 얼굴을 하는 렘에게 스바루는 슥 하고 얼굴을 가까이해,

"그 날의 맹세대로, 내 모든 건 네 거야. 너에게 온 힘을 다하고, 너에게 봉사하고, 오직 널 위해서만 살아갈 거야. ー지금은, 나와 네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눈앞으로 입술을 가져다 대, 눈을 감은 그녀의 입술을 빼앗았다.

가볍게 닿는 정도의 입맞춤을 나누고, 숨결이 닿을 정도의 근거리에서 스바루는 나이를 먹어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만들며,

"그걸로는, 안심 못 하겠어?"

"......죄송해요. 렘은 언제라도, 불안해요. 그야, 점점 스바루 군을 좋아하게 되는 걸요. 이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좀 더 행복해지고 말아요. 행복해서, 좋아해서, 그래서 불안한 거에요."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행복하다고 단언하며 렘은 고개를 젓는다. 고개를 저으며, 스바루의 이마에 이마를 맞대어, 서로의 열기를 교환하며,

"이렇게 닿아 있는 당신을, 언젠가 잃게 되고 말 것 같기에."

"안심해. 난 널 내버리지 않을 거고, 없어지거나 하지도 않아. 네가 나한테 질려하지 않는 한, 서로 떨어지게 될 일은 없어."

"렘이 스바루 군을 질려하게 될 일 같은 건 없답니다ー."

"그럼, 쭉 함께야. 사랑해, 렘."

자신 안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렘에게, 스바루는 다시금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입술에 이가 닿아 어쩔 줄 몰라하며 굳어 있는 그녀에게 다시금 깊게 들어간다. 서로의 부드러운 기관이 얽히고, 뜨거운 타액을 혀끝으로 느낀다.

거기까지 하고는 입술이 떨어진다.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조금 숨을 깊고 길게 하는 렘. 스바루는 그런 그녀에게 "애초에" 라며 손가락을 세우고는,

"타협이라던가 그런 바보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냐. 그럼, 뭔데? 리겔이랑 스피카는 애정이 아니라 동정으로 된 애이기라도 하다는 거야? 스피카는 나와 네 계획성으로 찬 사랑의 결정이고, 리겔은 타오르는 애정의 미숙함에 따른 폭주의 결과로 태어난 애라고."

"......리겔이 태어났을 때는 큰일이었죠."

허리에 손을 얹은 채의 설교 자세인 스바루에게, 대답하는 렘의 입술이 미소 짓는 모양을 그린다.

추억에 이것저것 생각하는 그녀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과거의 기억을 손끝으로 덧그리며,

"카라라기로 이주하고 나서 드디어 살 장소와 일할 곳을 발견하고,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생활기반을 정돈해야만 했는데."

"아니 그야, 어렸으니깐 힘든 걸 참을 수 없어서."

"스바루 군도 일하고 와서 피곤했을 텐데, 자기 전이 되면 무척이나 기운 넘치게 돼버리고 말아서."

"아니 그야, 젊었으니깐 체력이 남아돌아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 것과 아이를 배고 만 게 거의 동시였으니깐요. 그때는 렘도 얼굴이 새파래지고 말았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 자신의 미숙함에 따른 실수라는 건......"

렘의 노도와도 같은 공격에, 스바루는 먼눈을 하며 감개에 젖은 듯 중얼거린다. 저편에서 스바루에게 실수 취급을 당한 리겔이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듯 떨떠름한 얼굴을 하였지만, 분위기를 읽고는 어떻게든 자제에는 성공한 듯하다. 그런대로 된 아들이다.

그런 아들의 성장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스바루. 그 옆에서 렘도 마찬가지로 떨떠름한 얼굴로 얼어 있는 체의 아들을 보고, "그래도" 라고 작게 한숨을 쉬며,

"렘은 리겔을 뱄을 때에, 정말로 무척이나 기뻤답니다."

"그야, 나도 기뻤다고. 처음 들었을 땐 콧물에다 오줌도 살짝 지려서,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렘한테 얻어맞아서 유혈 사태가 일어났고 말이지."

렘도 나름대로 초조했던 탓도 있던 것일까, 풀스윙으로 얻어맞고는 임시 거처가 기울 정도의 위력으로 벽에 내던져졌던 것이다. 곧바로 낙법 자세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자칫하면 죽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추억은 일단 뒤로 하고, 렘이 스바루에게 임신을 보고해왔던 때의 일은 극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때의, 자신의 가슴에 끓어오른 따뜻한 기억도 전부.

하지만, 렘은 스바루의 그 대답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반응의 의미를 알지 못해 스바루가 고개를 갸웃하니, 그녀는 그 미소에 살짝 그늘을 비추며,

"렘의 기쁨은, 분명 스바루 군의 순수한 그것과는 다를 거에요. 렘이 생각하는 기쁨은...... 이걸로, 스바루 군을 잃지 않고 끝났다는 기쁨이었으니깐요."

"......"

"리겔은, 렘과 스바루 군의 사이에서 분명한 형태로 태어난 인연이에요. 말투는 무척이나 나쁘지만, 아기가 태어난 걸로 렘과 스바루 군의 사이에는, 결코 끊을 수 없는 확실한 무언가가 연결되었어요. ......그게 렘에게는 기뻤던 거에요."

불안한 나날이, 계속해서 그녀에게는 내리누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도 전부 내버리고, 신천지에 자신과 상대방 둘만이서 도망쳐 왔던 것이다. 이미 서로 기댈 것은 상대방밖에는 없는 나날 속, 렘은 언제 다시 스바루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계속 참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녀의 자신 없음은, 스바루와 무척이나 좋은 승부가 될 법한 레벨의 것이었다.

과소평가가 너무나도 굉장한 렘에게 있어, 스바루와의 생활은 극한의 행복과 극한의 공포로 계속해서 깎여 나가는 시간과도 같았다.

그런 시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새로운 생명.

"믿지 못했던 거야?"

"아뇨. 렘은 스바루 군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믿고 있답니다."

"아니. 날 믿지 못했냐는 게 아니라...... 자신을, 믿지 못했던 거야?"

스바루의 부정의 말에, 렘은 작게 숨을 죽이고, 그 후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녀 안에서 스바루의 존재는 너무나도 크다. 거기에 대치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작게 느껴져 불안했을 것이다.

ー그와 같은 생각을 언제라도, 스바루도 품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렘은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여자라고 스바루도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

"됐어요. 렘이 바보였던 거에요. 웃음을 사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아니아니. 다시 한 번 생각했을 뿐이야. 나랑 넌 본성적인 부분이 똑 닮았고, 내 아내는 역시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고."

기습적인 스바루의 말에 렘은 한순간 놀라서 굳은 후, 확 하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그 반응을 보고 있자니, 역시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렘을 사랑하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 큰소리로 외치는 것도 가능하다. 라기보다, 사실은 때때로 하고 있다. 이웃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열혈 부부다.

"ー리겔, 스피카."

"응?"

문득, 렘이 사랑스러운 듯이 자신들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고개를 갸웃하는 스바루에 렘은 "아뇨" 하고 말하고는 칩뜬 눈으로 스바루를 바라보며,

"둘 다, 별의 이름이었죠. 스바루 군이 살고 있던 장소에서의, 별을 부르는 방법."

"그래그래. 내 아빠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이상해서 상식을 장식이라고 읽을 정도로 안타까운 인간이었지만, 내 이름을 스바루라고 지은 것만은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마음에 든다고, 이름. 스바루라는 것도, 별 이름이고 말이지."

(*스바루(昴)는 28수의 하나인 묘성(좀생이별)을 의미. 영어로는 플레이아데스. 다만 플레이아데스는 본래 별이 아니라 산개성단에 해당)

초등학교 때였나, 자신의 이름의 유래를 확인하라는 과제인가 무언가로, 스바루는 자신의 이름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 중 하나가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어울리지도 않게 들뜨기도 했었다.

이후, 취미는 뭐든지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별 도감을 바라보는 것만은 계속해서 습관으로써 계속했다. 별의 이름이라면 웬만해선 알고 있고,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기회가 있다면 선택지는 당연,

"별 이름에서 따와야지, 하고 말이지. 넷에서의 별명도 별 이름이고, 가명 같은 걸 댈 때에도 아마 별에서 따올 것 같고 말이지. 이것도 어떤 의미로는, 이색 이름?!"

(*원어로는 キラキラネーム(키라키라 네임). 본래 이색 이름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キラキラ(키라키라)가 본래 반짝반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말장난)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이름에서 따온 건 멋지다고 생각해요. 세 번째가 태어난다 해도, 꼭 그렇게 지어요."

"벌써 세 번째 이야기라니 성급하지 않아? 스피카, 아직 유아라고?"

"수유할 때 말고는 리겔한테 맡겨 두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뭘 위해서 리겔이 자랄 때까지 다음 애가 안 나오도록 주의했다고 생각해요?"

"나 때문에 눈에 띄진 않지만, 렘도 꽤나 리겔을 대하는 태도가 냉담해?!"

평소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 쓴웃음을 지으며, 스바루는 엉덩이를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올려다보는 렘 앞에서 스바루는 등을 향하고, 허리를 돌리며,

"슬슬 장본 것도 갖다 두고 싶으니 집으로 가자고. 밖이면 다른 사람 눈이 신경 쓰여서 맘껏 이것저것 못 하고."

"그렇네요. 지금 렘, 오랜만에 전력전개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오, 귀신의 체력에 어울리다니 지금 내 에너지로 가능할까나......"

두려워하며 중얼거리고, 이후 스바루는 긴 의자에 앉은 렘에게 손을 내민다. 렘이 천천히 그 손을 잡으니, 잡아당겨지는 듯이 일으켜, "와" 하는 소리를 내는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는다.

스피카를 안은 채인 그녀를 끌어안고, 그 온기를 확실히 느끼며,

"그럼, 돌아가자고. 우리들의 집에, 말이지."

"네, 여보."

한 손에 장거리가 든 비닐봉투를 들고, 다른 한쪽 손으로 렘이 내민 손을 잡는다. 앞을 걷는 스바루보다 반 보 늦어, 손을 잡은 렘이 다가붙으며 걷는 모양새다.

그렇게 광장의 한가운데, 아직도 얼어있는 채인 아들 쪽으로 가,

"어이, 삿포로 눈 축제 중인 아들이여. 어지간히도 얼음 귀신에 진전이 없어서 보고 있자니 최고로 시시하니깐, 나랑 엄마랑 여동생은 집에 돌아가겠어. 넌 친구 집에서라도 묵으라고."

"노골적으로 쫓아내려 하고 있어?! 그것보다, 부모가 대낮에 공원 한가운데서 당당하게 키스하면서 농탕치다니."

"무슨 소리야, 질투 남동생. 안됐는걸, 리겔. 이 렘, 내 전용이거든."

"시끄러!!"

코를 부풀리며 크게 웃는 스바루에게, 리겔이 삼백안을 날카롭게 하며 고함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스바루가 기쁜 듯한 모습을 하는 것을 보고, 리겔은 길고 깊은 한숨을 흘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정하자 진정하자. 아빠의 페이스에 휘둘리지 말라고. 진정하자, 진정하자ー. 좋아, 진정됐다. 그래서, 엄마랑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아아? 네 이름의 유래가 별 이름이라는 느낌의 이야기야. 네 처음 이름 후보는 실은 베가였지만......"

"세보이잖아! 왜 안 한거야."

"아니, 셀 것 같잖아? 강하게 자랄 것 같아서, 반항기라던가 상대하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만뒀어. 결국 벗어날 거란 걸 알고 있어도, 아들한텐는 지기 싫다는 부친심이라는 녀석이 나한테 그리 중얼거렸어."

"그런 생후 수일밖에 지나지 않았을 유아를 상대로 거기까지의 미래를?!"

스바루의 상쾌하리만치 가벼운 말에, 뛰어오르며 딴죽을 거는 리겔. 그러자,

"아ー, 리겔 움직이고 있다! 얼음 귀신의 규칙을 깨면 안 돼!"

"아!"

그때까지 리겔을 의도적으로 빼놓고 있었다고밖엔 생각되지 않는 귀신이, 움직인 리겔을 이때다 하고 규탄한다. 목이 막히며 굳은 리겔. 그 어개를 스바루가 두드리며,

"얼음 귀신의 규칙을 깬 녀석에게는 벌칙 게임이야. 더 이상 웃거나 울거나 할 수 없을 정도로 귀신에게 간지럼 당하겠지. ー힘내."

"진지한 얼굴로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어이, 뭐야, 너희들! 잠깐 기다려! 이 남자 이야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잠, 우와아아아아ー!!"

줄줄이 나타난 아이들에게 리겔이 쫓긴다. 리겔은 도망쳤다. 하지만, 앞쪽에서 다시금 발견되고 말았다. 그대로 사지를 붙잡혀 지면에 꽉 눌려, 저항도 무색하게 그 몸에 하얀 손끝이 몇 개고 달려들어,

"그럼 아들이여. 넌 좋은 아들이었지만. 네 아버지가 나쁜 거야."

"리겔. 아빠랑 엄마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오늘은 친구 집에서 묵으렴. 그리고, 뿔의 사용은 금지랍니다. 옷은 찢어지지 않도록."

"기, 기억하겠어, 박정한 부모ー!!"

산더미 같은 마수에 몸을 농락당해, 강제적인 웃음소리가 리겔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다. 오빠의 그런 추태를 흐릿하게 뜬 눈으로 보며, 스피카가 즐겁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들렸다.

그런대로, 장래유망한 감성을 하고 있다. 분명, 그녀의 약진은 리겔의 나츠키 가에서의 입장을 보다 견고한 것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사랑해 마지않는 귀여운 자식에게 조금은 비뚤어진 형태로 애정을 표하며, 스바루는 렘의 손을 끌며 걸어나간다.

소중한 가족이 사는, 평온과 행복으로 가득 찬 자신의 집으로.

"스바루 군."

"응?"

손을 이끌려 걸음을 멈추고, 스바루는 뒤돌아본다.

그 순간, 강한 바람이 문득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무심결에 눈을 감고, 바람 소리가 멈춘 후 천천히 눈을 뜬다.

렘의 긴 청발이 바람에 크게 흩날려, 햇볕 속에 녹아드는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는 듯이 된 렘. 그것이 누구에게 대항해서였는지, 지금의 스바루는 왠지 모르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의 소녀를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미, 눈앞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성이라는 것도.

푸른 머릿결이 조용히 흐르고, 품 안의 귀여운 딸을 안은 렘이 스바루에게 웃어 보인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스바루에게 있어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사랑스런 존재의 미소였다.


"렘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ー 행복해요."


Fin.